그녀와는 우리 파트의 인턴으로 처음 만났다. 일을 시작하고 익숙하지 않아, 넋이 나간 모습이 그녀에 대한 첫 기억이었다. 그 모습이 그렇게 귀여워 보였다. 하얀 얼굴에 빵 같은 수술 모자, 하늘색 너덜너덜한 수술복, 제대로 못 입어 한쪽 어깨가 풀려있는 주황색 c-arm복 그리고 반쯤 울 것 같은 그 표정에 뭐라도 사 먹여야 되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매일 같이 수술 하다가 점심 때 즈음 재빠르게 휴게실로 달려가 서로에게 음식을 만들어 달라고 하며 같이 먹곤 했다. 휴게실 아주머니가 한번은 이야기 했다. “여자친구 있어요?, 잘 해봐요” 우리의 마음속에 있던 미묘한 감정이 보였나 보다.
늦은 밤까지 끝나지 않는 업무의 연속은 사람을 지치고 감정적으로 피폐하게 만든다. 그래서 저년차들은 스트레스와 중압감 때문에 종종 도망 가기도 한다. 우리는 특히나 로딩이 강한 곳이라 포기하고 나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차가운 공기가 조금씩 사라지며 꽃들이 피어나고 있었지만 병원 안에만 있는 사람들은 봄이 다가왔는지 알지 못한다. 구름 한점 없고 달도 숨어있던 어느 날, 갑자기 그녀에게 연락을 하고 싶어졌다.
“오늘 밤에 당직이에요?”
아니라고 한다.
“삼겹살 좋아해요?, 근처에 먹으러 갈래요?”
차를 몰고 한강변에 있는 고기 집을 찾아갔다. 강 건너편에 반짝이는 건물들이 강에 비추어 하늘에 있는 별들과 같이 흔들리고 있었다. 고기 굽는 냄새와 약간의 맥주 냄새, 그녀의 생기 발랄함에 내 마음도 두근거리고 있었다. 하얀 긴 팔 티셔츠에 검은색 미니스커트, 그 아래로 드러난 하얀 다리,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내 입은 뭔가를 말하고 있었고 그녀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분위기에 취하고 우리는 계단을 내려가 한강 변에 도착했다. 아직 추운 바람이 불던 곳에서 한참을 걸었다. 다시 차에 타고 그녀에게 물어봤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되는데 한군데 더 갈래요?”
차를 조금 더 몰아 두물머리로 향했다. 학창시절 내 자전거 라이프의 로망이 깃들어 있는 곳, 이곳은 눈을 남으면 경치가 머리에 또렷하게 떠오른다. 그러나 그날 따라 주차장 가는 길은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이 주변에 주차장이 있었는데, 헤매다가 결국 가로등 꺼져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밖에 빛이 없는 골목에 다다랐다. 차로는 더 이상 잘 모르겠고 걸으면 어딘가 나오겠지 하는 생각에 일단 내리자고 했다. 자동차의 불빛이 꺼지자 어둠이 우리를 뒤덮었다. 전혀 안보여서 무서워하는 그녀에게 내 손을 잡으라며 손을 내밀었다. 약간의 망설임 후에 내 손을 살포시 잡았다. 기억을 더듬으며 두 눈을 크게 뜨고 한치 앞도 안보이는 어둠을 헤쳐 나갔다. 얼마 가지 않아 탁 트인 공터가 나왔고 우리 주변을 강이 휘둘러가고 있었다. 익숙했던 나룻배와 액자 또한 어렴풋이 보이고 있었다.
“아.. 별들이 아름다워요”
그녀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고 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콕콕 박혀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손을 잡고 한참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곳에는 별들과 강, 너와 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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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시작에 앞서 끝을 염려하게 된걸까요.
모든 것이 처음이던 어린 날, 내일이 기다려지고 그 내일이 오늘보다 나을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을 때는 그러지 않았던 것 같은데...
겁이 많아지는 거, 사소한 불안들이 쌓여가는 거, 전부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는 증거겠죠.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