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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9/08/01 11:17:22
Name 글곰
Subject [일반] (삼국지) 이릉 전투 (3) (수정됨)
  이릉 전투 (1) : https://cdn.pgr21.com/?b=8&n=82020
  이릉 전투 (2) : https://cdn.pgr21.com/?b=8&n=82031

[지도의 출처는 https://blog.naver.com/sjkim2090 입니다. 기타 표시는 제가 했습니다. 이후 모든 지도가 동일합니다.]


1

  일단 지도를 보시죠. 주황색으로 표시한 곳 왼쪽이 219년, 유비가 한중왕에 등극했을 당시 유비의 영토입니다. 이후 손권의 뒤통수와 관우의 죽음, 그리고 맹달의 배신 등으로 인해 유비의 영토는 붉은 선까지 축소되지요. 유비가 얼마나 많은 땅을 잃었는지 한눈에 보실 수 있습니다.

  이 전쟁에 있어 유비의 전략적 목적이 무엇이었을까요. 손권의 목을 베고 동오를 점령하는 건 아니었을 겁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이 전쟁을 통해 적어도 상실했던 저 영토만큼은 다시 회복하려 했겠지요. 상용이야 이미 위나라의 손에 넘어갔으니만큼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남군/무릉군/영릉군 등 세 군은 되찾고 싶었을 겁니다.

  전쟁의 초반 주도권은 유비의 손에 있었습니다. 평생 전장을 누벼온 늙은 황제는 조운을 후방인 강주에 남겨둔 후 장강을 따라 동진합니다. 육군과 수군이 함께 진격했죠. 저 물길은 이른바 삼협(三峽)이라 불리는 곳인데 험준한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살이 무척이나 거세고 빠른 곳입니다. 그 물길을 따라 어복현까지는 유비의 영토였고, 동쪽으로 더 나아가면 219년 이후 손권의 땅이 된 무현과 자귀현이 있습니다. 이곳은 유비가 손권을 공격할 수 있는 거의 유일무이한 통로나 다름없었기에 손권 역시 믿음직한 장수를 배치해 두었지요. 바로 육손입니다.

  하지만 1년 반 동안이나 절치부심하여 준비한 유비의 대병력은 물경 4만 명이나 되었습니다. 육손은 적을 저지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후 물러납니다. 물론 무작정 도망친 건 아니고 도중에 유비를 저지하려는 시도도 했습니다만 오반과 풍습에게 격파당합니다. 오반과 풍습은 무현에 이어 자귀까지 점령하지요. 유비는 동쪽으로 향하는 통로를 온전히 확보했습니다.


2

  이 때 본래 관우의 부하였다가 손권에게 사로잡힌 후, 병으로 죽은 척하고 탈출해서 서쪽으로 오고 있던 자가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요순. 이후 바꾼 이름은 요화입니다. 양양의 대가문 출신이었으며 황건적의 잔당과는 아무 관련 없습니다. 유비는 그를 의도태수로 임명한 후 한 부대를 맡겨 전장에 동행합니다.  

  손권의 대응도 신속했습니다. 일단 조비에게 칭신(稱臣)하며 구원을 요청했지요. 하지만 조비는 손권을 대장군(大將軍)에다 오왕(吳王)으로 임명하고 무려 구석까지 내리면서도 막상 손권이 갈망했던 구원병은 보내지 않습니다. 너희들끼리 한번 치고받아 보라는 속내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거죠. 손권은 혼자의 힘으로 유비를 상대해야 했습니다. (제가 지난번 글에서 잘못 적었는데, 조비가 황제가 된 건 220년 10월이고 유비의 동오 침공은 221년 7월이며 손권이 조비에게 구원을 요청한 건 221년 8월, 그리고 조비가 손권을 오왕에 임명한 건 그 이후의 일입니다. 헷갈리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하지만 유비가 전쟁을 준비하는 동안 손권도 놀고 있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그는 무려 5만이나 되는 대병력을 그러모아 반격에 나섭니다. 대도독으로 임명된 인물은 지난날 형주 공방전에서 여몽과 함께 큰 공을 세웠던 육손이었습니다. 게다가 주연, 반장, 한당, 서성, 손환, 송겸 등 쟁쟁한 장수들을 최대한 동원했습니다. 병력의 수에 있어서든 장수들의 진용에 있어서든 간에, 이 전쟁은 분명 오나라가 유리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초반에 승세를 탔음에도 불구하고 유비는 신중하게 움직입니다. 무에서 자귀를 통해 이릉까지 나아가며 중간 중간에 둔영을 수십 개나 세워서 보급로를 확보하는 데 만전을 기했지요. 그리고 마침내 이릉에 도달하자 험준한 산에 의지하여 목책을 세우고 진영을 구축하며 방비를 튼튼히 합니다. 육손전을 보면 보광, 조융, 요순, 부융 등을 별독(別督)으로 임명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아마 부대를 여럿으로 나누어 각기 요충지를 점령하게 한 것 같습니다.

  여기에 대한 육손의 대응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육손의 장수들은 모두들 반격을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육손은 거부했죠. 유비의 기세가 대단한 데다 이미 요충지를 점거하여 있으니 쉽게 이길 수 없다는 것이었죠. 전략적으로는 옳은 판단인 것 같습니다. 유비가 병력이 적고 보급선은 길게 늘어나 있으니만큼 이대로 대치하고 있으면 아무래도 동오가 유리해질 테니까요. 하지만 장수들은 거세게 반발합니다. 자신들의 땅에 들어온 적을 당장 격파해도 시원찮을 마당에 총사령관이 소극적으로 행동하니 말입니다. 더군다나 주연, 반장, 한당 등은 모두 육손보다 경력이나 전공이 한참 많은 장수들이었죠. 결국 육손은 칼을 쥐고 군령까지 들먹이며 부하들을 억누릅니다. 전황은 신중한 유비와 그보다 더 신중한 육손의 대결 구도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비에게도 믿는 구석이 있었습니다.

  220년,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무릉군에서 번주라는 자가 손권에게 반란을 일으켰죠. 그는 무릉에 사는 이민족들인 무릉만이(武陵蠻夷)들과 연합하여 유비에게 귀순하려 했습니다. 이들의 기세는 대단하여 손권의 부하들이 병사 일만 명은 보내야 반란을 진압할 수 있다고 우려할 정도였습니다.

  게다가 221년에는 영릉에 있는 습진이라는 자도 호응하여 함께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관우의 부하였던 습진은 관우가 죽었을 때 홀로 손권에게 저항하다가 동생의 설득으로 거짓 투항했던 인물입니다. 그러다 번주가 반기를 들고 유비가 동쪽으로 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때가 왔다는 생각에 반란을 일으킨 거지요. 여담이지만 이 인물은 작금 중국의 황제인 습근평의 까마득히 먼 조상이기도 합니다.

  유비는 여기에다 무릉만이들에게 금과 은과 비단 등을 내리고 벼슬을 주면서 회유합니다. 이 무릉만이들은 오계 지역에 살았다 해서 오계만이(五谿蠻夷)라고도 하는데, 오나라가 멸망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오나라와 대립했습니다. 무릉만이가 반란을 일으키면 오나라는 창칼로 진압하는 식이었죠. 반면 이민족에게 온건한 태도를 보였던 유비와의 사이는 상대적으로 좋았던 걸로 보입니다. 그들을 설득하는 임무를 맡은 자가 바로 시중(侍中) 마량입니다. 제갈량이 친동생처럼 아꼈던 인재이자 어떤 등산가의 친형이지요.

  마량이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해내어 무릉만이 다수가 유비의 편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인물이 사마가입니다. 본래 손권보다 병력이 적었던 유비였지만, 무릉만이들의 가세로 인해 오히려 병력이 더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유비가 먼저 응수타진에 나섭니다. 산비탈에 주둔해 있던 오반의 병력 수천 명이 평지로 나왔죠. 몸이 달아 있던 동오의 장수들은 즉시 요격하자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육손은 여전히 신중했습니다. 유비의 속임수라고 확신하고 부하들의 출격을 막았지요. 실상 육손의 예측이 옳았습니다. 유비가 산골짜기 어둑한 곳에 복병을 팔천 명이나 숨겨두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육손이 반응하지 않자 유비의 계책 또한 무위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서로 지리한 대치를 지속하는 동안 220년이 차츰 저물어 갔습니다. 전쟁을 시작한 지 벌써 반년이 흘렀지요. 그리고 해가 바뀌어 221년 정월, 봄이 찾아온 것과 동시에 유비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방향이 뜻밖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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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zePsyki
19/08/01 11:18
수정 아이콘
그림이 ㅠㅠ....
19/08/01 11:18
수정 아이콘
악전고투하고 있으나.... 이미지를 못 올리고 있습니다. ㅠㅠ
19/08/01 11:29
수정 아이콘
일단 피지알 게시판의 업로드 기능으로 올려 놨는데, 이미지 파일을 문단 중간에 넣을 방법을 찾아보는 중입니다....
구글 포토 링크를 따도 안 되고 이거 참 곤란하네요.
Bemanner
19/08/01 11:30
수정 아이콘
1. https://ko.imgbb.com/ 에 들어갑니다
2. 이미지를 해당 사이트에 올립니다.
3. embed codes 밑에 선택칸에서 HTML full linked를 고른다음 그 밑칸의 코드를 복사해서 피지알 글쓰기에 붙여넣습니다.
(예시 - <a href="https://ibb.co/BtSSSpj"><img src="https://i.ibb.co/80SSSC2/1.png" alt="1" border="0"></a> )
4. 완료
19/08/01 11:36
수정 아이콘
우오 사랑합니다 고객님! 됐네요 됐어. (덩실덩실)
이미지가 줄어들긴 하지만 그래도 성공입니다!
홍승식
19/08/01 11:58
수정 아이콘
절단마공이... 마공이...
고지보딩
19/08/01 12:00
수정 아이콘
아니 절단신공이 어마어마하십니다
Bemanner
19/08/01 12:00
수정 아이콘
블로그 들어가서 대충 축척 보니까 익주-이릉 거리가 한반도 폭보다 넓어보이네요.. 후방에 유능한 사람들 없으면 반란진압/보급을 제대로 할 수가 없겠어요. 조운 제갈량 다 후방에 놓을만 하군요..
19/08/02 10:20
수정 아이콘
제갈량을 성도에 두는 건 선택의 범위가 아니었습니다. 필수적인 것이었죠.
19/08/01 12:42
수정 아이콘
500원 미리보기 버튼은 어디에??
19/08/02 10:22
수정 아이콘
운영진에 건의해서 만들어달라고 하겠습니다??
19/08/01 12:47
수정 아이콘
근데 생각해보면 병력도 우세할 것이 없는데 저 어마어마한 영토를 수복하려고 생각한 것이 좀 지나치게 야심찬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오나라의 능력을 본인보다 확실히 아래라고 본 것일까요 아니면 형주와 이민족이 자신이 나타나면 바로 호응할 거라고 생각한 것일까요.
Summer Pockets
19/08/01 13:06
수정 아이콘
비록 장군들 여럿이 이릉에선 빠졌지만 바로 직전에 한중에서 조조를 깨트린 걸 생각하면 촉이 더 우세했다고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19/08/01 13:15
수정 아이콘
하긴, 그 조조를 상대로로 완승을 거두었는데 육손 따위(?)는 본인 아래로 볼 여지가 충분하긴 했겠습니다.
19/08/02 10:25
수정 아이콘
일단 강릉만 확보하면 장강에 기대어 그 남쪽 영역을 차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형주(번주와 습진)와 이민족(무릉만이)도 모두 호응해 왔고요. 물론 사전작업이 있었겠지요.

다만 유비가 손권이나 육손의 군재를 자신보다 낮게 본 건 아마도 사실일 겁니다. 당대 유비보다 낫다고 할 만한 군사지휘관이 그리 많지 않았거든요. 그리고 대략 적벽대전 이후인 209년에서 형주 공방전 이전인 219년까지 10여년 동안 패배 없이 승승장구하기도 했고요.
19/08/02 10:43
수정 아이콘
말씀듣고보니 10년간 무패네요. 아이고 그럼 그렇게 생각할만하네요.
19/08/02 10:47
수정 아이콘
라이벌인 조조도 죽었겠다, 조카뻘인 손권이나 육손을 보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들이 말야. 나 젊을 때는...'이라고 생각할 법도 했죠.
치열하게
19/08/01 13:05
수정 아이콘
저 산들 사이를 비좁게 빠져나오는 입구가 이릉이군요
19/08/02 10:25
수정 아이콘
중요한 길목이죠. 계곡과 산지를 빠져나와 마침내 드넓은 평야가 펼쳐지니까요.
파이몬
19/08/01 14:02
수정 아이콘
절!단!
사업드래군
19/08/01 14:33
수정 아이콘
영걸전에서도 장판파 전투와 함께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이릉전투군요. (물론 1599로 렙업노가다를 충실히 해왔다면 괜찮습니다만).
시작과 함께 체력은 1/4로, 사기는 1/2로 깎이고 시작하는.
다음 편 빨리 올려주세요~~.
19/08/01 15:32
수정 아이콘
1599 안했다는 가정하에, 장판파는 적토마 꼼수라도 있지 이릉대전은 정말 어렵지 싶습니다. 일단 출진순서와 맵배치 관계부터 외우고 시작해야....
19/08/02 10:26
수정 아이콘
적 전멸은 꿈도 못 꾸고 무조건 도망쳤던 걸로 기억하는데...ㅠㅠ
CozyStar
19/08/01 14:49
수정 아이콘
으아아악! 절!단!신!공! 드라마도 안보는데 여기서... 어서 다음편 주세요 ^^
패트와매트
19/08/01 16:18
수정 아이콘
의외로 뜯긴영토는 많지 않은느낌인건 저뿐일까요 죄다 산지에다 형주 자체가 생각보단 작은것 같은데
19/08/02 07:13
수정 아이콘
일단 형주의 '근거지'를 상실했고, 목젖인 상용을 잃은게 가장 컸죠.
영토로만 따지면 현재 대한민국만큼 잃었다고 보심 비슷할겁니다.
19/08/02 10:21
수정 아이콘
구글 지도에서 보시면 대략 지금 대한민국 영토만큼이 날아갔습니다. 어마어마한 상실이었어요.
MC_윤선생
19/08/01 16:31
수정 아이콘
다다음편쯤 분명히 울텔데‥맨날 울던 데에서 또 우는건 대체 뭘까요 엉엉. 미리 울어야지
지탄다 에루
19/08/01 22:37
수정 아이콘
작금의 황제가 누구지? 했는데 습진평이군요....;; 그런 관계가 있는지 몰랐습니다.
연의에서처럼 무식한 돌격, 노망이 아니라, 그야말로 반백년 전장을 누린 용감한 노장의 마지막 전쟁이었다라는 느낌이 드네요...!
서현12
19/08/02 00:05
수정 아이콘
(수정됨) 선주전에 따르면 정월에 장군 오반(吳班), 진식(陳式)의 수군(水軍)은 이릉(夷陵-남군 이릉현)에서 장강을 끼고 동서 연안에 주둔했고 2월, 선주가 친히 제장들을 이끌고 자귀에서 진군하여, 산을 따라 고개를 넘어 이도(夷道) 효정(猇亭)에 주둔했다. 한산(佷山)에서 무릉으로 통하여 시중 마량(馬良)을 보내 오계만이를 위로하자, 이들이 모두 서로 잇따르며 호응했다. 진북장군 황권은 장강 북쪽의 제군을 감독하며 이릉도(夷陵道)에서 오군(吳軍)과 서로 맞섰다라고 되어 있는데 삼국지 위지 문제기에 달려있는 주석 위서에 따르면 유비는 222년 2월에 갈라진 무리(支黨) 4만명, 말 2,3천필을 이끌고 자귀에서 출발했다고 합니다. 이를 보면 유비의 병력이 4만만 있었던 것 것 같지는 않고 다른 병력(오반과 진식의 수군, 황권의 강북 병력이라던가, 오계만이라던가)이 있는 가운데 유비가 4만명을 따로 이끌고 효정에 진을 쳤던거 같습니다. 그리고 유비가 오반을 데리고 유인책을 편 것은 유비가 효정에 도착한 후인 222년 6월의 일(자치통감)이지 221년에 자귀에 있을때가 아닙니다.
19/08/02 10:38
수정 아이콘
육손전의 서술이나 이후 유비의 움직임을 볼 때 저는 유인책이 222년 1월 이전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즉 유비가 이릉에서 자귀로 돌아가기 전에요. 유비가 당초 출병했을 때 병력이 4만여명이라는 건 자치통감에 명시되어 있고, 이 때 황권의 병력을 따로 계산할 이유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후에 무릉만이가 가세한 건 명확한 사실이지만 그들이 수만 명의 병력을 너끈히 보내줄 거대한 세력도 아닌 만큼 저는 222년 시점에서 유비의 병력은 죄다 박박 긁어 모아도 5만 정도나 혹은 그보다 조금 많은 수준이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서현12
19/08/02 16:02
수정 아이콘
자치통감에서 나온 4만명은 선봉대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222년 정월에 따로 진식과 오반의 수군을 이릉에 주둔시켰고 2월에는 자신은 자귀에서 효정으로 이동하고 황권은 장강 이북에 있었던 제군들을 감독하라고 보내죠. 222년 시점에 이릉에 있는 수군과 강북에 있는 황권군이 따로 있는 상황에서 손권이 조비에게 직접 보낸 상소에서는 유비가 갈라진 무리 4만명을 이끌고 자귀를 출발했다고 썼습니다. 이것만해도 유비가 이끄는 병력 4만 외에도 이릉의 수군, 강북의 황권군이 따로 있었다고 봐야 겠죠. 자치통감에 따르면 무현부터 이릉경계까지 수십의 둔영이 있었다고 하니까 거기도 조금씩 배치되어 있었을 거구요. 오반의 유인책의 경우 저 같은 경우엔 자치통감의 순서를 따랐습니다.
강미나
19/08/02 13:02
수정 아이콘
다음편에서 유비 박살나나요? 개꿀잼 기대합니다 크크크크
19/08/05 09:25
수정 아이콘
육손도 참 대단한게 저걸 끝까지 참아내고 또 참아내다 결국 대승을 해버린걸 보면 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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