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친)누나와 저의 휴일이 맞아 조카도 볼겸 누나집에 놀러 갔습니다.
이제 막 돌이 지난 조카랑 놀아주는건 정말 힘이 듭니다. 그냥 안아주는걸로 끝났으면 좋겠는데
이 녀석이 언제부터인지 자기 주장이 생겨서 안긴 상태로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서
무언가를 만지고 싶다는 사인을 손가락질로 합니다. 원하는대로 안 되면 짜증내는법도 배웠고
집에서는 숨바꼭질도 해줘야하고 그냥 아무튼 피곤합니다. 그래서 동네 놀이터로 어야 갔죠.
멀리 안 가고 아파트 앞 놀이터로 갔습니다. 지나가면서 많이 본 흔한 놀이터인데 그 동안 관심이 없어서
들어와보지 않았죠. 그런데 놀이터안에 들어와서 놀이터 바닥을 밟으니 푹신 푹신한게 그냥 딱 봐도 '안전'
이라는 단어가 생각납니다. 넘어져도 별로 안 아플것 같아요. 와 라떼는 흙 파먹으면서 놀았는데 세상이
참 좋은쪽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제 조카나이대에 아이들은 호기심이 많나봅니다. 지나가는 강아지도 신기해 하고 주변에 놀고 있는 다른 엉아들
졸졸 쫒아다닙니다. 저랑 누나는 그런 조카를 쫒아다니면서 사진을 열심히 찍었습니다. '아 확실히 밖에 나오니까
편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나이가 지긋한 할머니들의 "몇 살이냐, 돌인데 잘 걷네, 말은 하냐?" 등 질문 공세가
있긴 했지만 그냥 뭐 적당히 대답하고 조카를 쫒아다녔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상한 할머니가 제 조카에게 지나친 관심을
가집니다. 저와 누나가 조카를 졸졸졸 따라다니는데, 처음보는 할머니도 조카를 계속 따라와요. 그러면서 위에서 말한
질문 외에도 자기 손녀는 몇 살이고 언제 걸었고 언제 무슨말을 했느니 이런 별 관심 없는 이야기를 합니다. 저랑 누나가
무시하는데도 계속 따라옵니다. 뭐 조금 더 커서 어린이집 가서 도시락 까먹어라 등의 이야기를 제 조카에게 하면서
계속 말을 걸고, 계속 따라옵니다. 그러다 조카가 넘어졌습니다. 그리고 웁니다. 뭐 그럴 수 있죠. 누나가 조카를 안고
달래주는데 그 할머니가 조카에게 말을 거는것에서 그치지 않고 은근슬쩍 뺨을 어루만지네요. 누나가 몸을 돌렸는데도
계속 만지려고 합니다. 안되겠다 싶어서 놀이터를 빠져나왔는데도 계속 따라옵니다. 누나가 저에게 속삭입니다. "대체 어디까지
따라오려는 거야?" 저는 제 자식도 아닌데 괜히 누나네 동네 주민과 불화가 생기면 누나와 조카에게 해로울까봐 크게 터치도
못하겠다고 생각했는데, 누나는 저 이상한 할머니가 조카 데려갈까봐 무섭답니다. '아 부모라면 그런 방향으로 걱정 될 수도 있겠구나!"
그래서 저희는 집쪽으로 바로 가지 않고 조금 방향을 틀어서 아파트를 크게 돌아 다른 놀이터에 갔습니다.
다행히 여기에는 이상한 사람은 없었고 할머니들이 묻는 질문도 허용 가능한 예상 범주 "몇 살이냐, 아빠랑 왔느냐?" 등이었기
때문에 깔끔하게 조카 체력을 방전 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기도 흙 같은건 찾아볼 수 없고 아주 부드러운 바닥재질로
마무리 되어있었습니다. 다만 놀이기구는 시소와 미끄럼틀, 그네 같은 전통적인 어트렉션들만 보였습니다.
아이가 아직 많이 어려서 그런지 외출 준비 하는 시간이 나가서 노는 시간만큼 긴 놀이터 마실이였습니다.
그래도 요즘 시대가 많이 달라져서 그런지 할머니들이 오지랖성 질문 멘트를 던질때 존대 하시네요.
가끔 반말 하시는분이 있긴한데 대부분 존대합니다. 그리고 반말 들으면 저랑 누나는 그냥 무시합니다.
오늘 저희 조카를 따라다니는 할머니는 정말 역대급 빌런이었구요. 제 조카에게 크게 관심을 가지고 졸졸
따라다니는 모습을 보고 무슨 고모할머니인지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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