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저는 사람이 혼자 사는 것보다는 둘이 사는 것이 더 낫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결혼 찬성파라고 강력히 주장합니다.
제 주변에도 대부분 결혼 찬성파들이라 인터넷 상의 결혼 비관론을 보면 꼭 그렇지는 않다고 이야기 하고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참고로 탕수육은 부먹입니다.)
예전 다니던 커뮤니티의 결혼게시판에 시댁 막장론, 결혼 비관론, 하지마 XX론이 올라올 때마다,
‘아냐, 결혼은 그렇게 나쁘지 않아. 비율을 맞춰야겠어.’
라며 소소한 일상 글을 올렸는데, 그 글의 댓글 중에 피지알과 어울리는 글이라는 댓글을 보고 피지알이란게 어떤 사이트인가 하며 검색한 것이 저와 피지알의 첫 인연이었습니다.
검색으로는 스타 등 게임 사이트라던데,
게임이야기는 조금 있고 똥이야기는 환호받는,
나름 소소하게 재미있는 글들과 견해가 많이 올라오는 사이트라 몇년간 조용히 가입안하고 눈팅만 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몇 달전부터 남자 여자 서로 싫어하고 으르렁거리는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하면서,
‘아냐, 실제로 만나보면 괜찮아. 싸우지 말고 연애하고 세수해.’
라며 가입버튼을 누르게 되었고,
최근 결혼 비관관련 글이 올라와서 결혼 찬성론자로서 글을 올릴 핑계를 찾았구나 하고 글쓰기 버튼을 누르게 되었습니다.
자유게시판이니, 자유롭게 쓰면 되겠지 하고 한번 써본 글이니 그냥 소소한 수필로 봐주셨으면 합니다.
2.
요즘 들어 가장 좋은 것은,
출근 알림 따위 울리지 않는 휴일 아침,
잘 만큼 자서 눈이 떠졌을 때, 아직 따뜻한 온기가 남아있는 보들보들 한 이불속에서 코 끝에 느껴지는 찬 겨울 공기를 한가득 들여 마시며 일어날까 말까 고민하면서 발가락을 꼼질 꼼질 움직이는 것이다.
암막커튼으로 가리운 아직은 어두운 방이지만, 암막커튼의 아일렛 사이로 밝은 햇살이 기어이 비집고 들어오는 것을 보면 해가 꽤 높이 떠있다는 것은 예상이 된다.
이불속에서 보들보들한 이불의 촉감을 느끼며 발가락을 꼼질 꼼질 움직이며 좀더 찬 곳에서 좀더 따뜻한 곳으로 움직이다 보면 천연난로처럼 후끈후끈한 지점에 이르른다.
여기서 나는 조금 더 고민을 하게 되는데, 지금 남편을 깨워도 되는 시간인가 아닌가 인 것이다.
‘ 잘 만큼 잤지 뭐.’
라고 생각이 되면 발가락을 꼼질꼼질 움직여 따뜻한 남편의 다리에 밀착한다.
항상 남편은 신기할 정도로 따뜻하다.
내 기척에 일어난 남편은, 좀더 자고 싶다면 주변의 이불을 잔뜩 끌어와 날 덮어주며 끌어안고
“ 더 자자. 자장자장.”
하며 토탁 토닥여주면 후끈한 온기가 주변에 가득 찬다. 온기에 다시 꿈나라로 갈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숨이 막힐 듯이 더워서 이불속에서 한참을 바둥 바둥거리다가 남편의 품에서 겨우 빠져나온다. 그때 이미 남편은 장난기가 가득 찬 눈길로 터져나오는 웃음을 입가로 꾸욱 누르고는 날 쳐다보고 있다.
다음에는 그냥 혼자 이불에서 빠져나와서 거실로 나와야지, 라고 생각은 하지만,
인간은 어리석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했던가,
다음 휴일에도 어김없이 온기를 찾아 발가락을 꼼질 꼼질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3.
요즘 들어 가장 좋은 것은 2.
아는 사람이 결혼을 하게 된다고 집에 있는 코타츠를 처분하게 되서 코타츠를 싸게 집에 들이게 되었다.
안 그래도 좁은 집에 코타츠까지 들이는 것이 맞는건가, 과연 나는 싸다고 충동구매를 한 것인가 고민을 많이 하고는 있지만,
찬양하라. 코타츠. 이불의 장점과 테이블의 장점을 모두 가지고 있는 코타츠.
그리고 코타츠 위에는 귤을 담은 쟁반을 거진 항상 올려다 둔다.
내가 코타츠 속에 들어가 꼼질꼼질 스마트폰을 하면서 귤을 까먹고 있으면,
컴퓨터에서 덱을 짜며 하스스톤을 하고 있던 남편이 날 빼꼼 쳐다보다가 아이패드를 들고 비키라며 슬며시 날 밀쳐낸다.
한사람이 앉을 정도의 넓이로, 조금 더 옆으로 움직일 때까지 내 엉덩이를 발가락으로 꼼질꼼질 괴롭히면서
귀찮아서 느릿느릿 움직이는 날 ‘엉덩이 무거운 거 보라’며 타박한다.
그렇게 남편은 코타츠에 들어와 내 옆에 딱 붙어서 아이패드로 하스스톤에 다시 접속하면서 자랑스럽게 말한다.
“내가 아이패드를 산 거는, 내가 게임하면서 계속 등 보여주기 싫어서 산 거야.”
“아이고, 그러세요?”
나는 남편 책상위의 미패드와 트렉과 또 다른 이름모를 타블렛들을 쳐다보며 대답한다.
뭐 그리 타블렛이 많이 필요한지.
제 작년엔 150만원을 주고 메인보드, cpu, 그래픽카드 삼총사를 업그레이드 한적이 있었다.
저정도면 아마 피지알을 풀옵션으로 돌릴 수 있을 터였다.
“저건 언제 할 건데. 갓 오브 워 엔딩 봐야지. 몬스터헌터도 결국 엔딩 안 봤자나.”
나는 턱으로 먼지가 두껍게 올라간 티비 옆의 플레이스테이션을 가르키지만
남편은 고개를 저으며 ‘ 집중하긴 싫어서 ’라고 대답한다.
나는 입을 뾰쭉 내밀며 귤 중에 가장 딱딱한 놈을 들어 손톱으로 후벼 파며 까기 시작한다.
“거봐, 내가 오빠가 안할거라고 했잖아. 공간만 차지하고.”
“나중에 할거라고.”
아이패드의, 네크리움 단검을 찬 발리라를 슬쩍 쳐다보며, 방금 깐 귤을 조금 잘라 남편의 입안으로 넣어준다.
귤을 씹다 오만상을 찌푸르는 남편을 보면서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한다.
“아이고, 신가보네. 내거 먹던건 달던데.”
아이패드에서는 수액 괴물에 의해 방금 찬 네크리움 단검이 깨지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며 내가 먹던 귤을 조금 잘라 남편의 입에 넣어준다. 오만상을 찌푸리며 얼굴로 개그를 하고있던 남편의 얼굴이 스르르 펴진다.
“이건 맛있네.”
“그치?”
나는 남편의 오른쪽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따뜻한 온기가 귀를 타고 전해진다.
들여 마시는 공기속에서 향긋한 귤내와 남편의 숨결이 섞여 들어온다.
남편이 끙끙대다가 어깨에 힘을 준다. 나도 웃음을 머금고 어깨에 기댄 머리에 일부러 힘을 준다.
남편은 머리에 눌린 팔로 아이패드를 조작하다가 투덜거린다.
“걸치적거려.”
결국 몇 번 진 남편은 투덜거리며 패를 바꿔야겠다며 코타츠를 빠져나간다.
그리고 코타츠는 다시 온전히 나의 것이 되었다.
하지만, 다시 이곳으로 남편이 돌아올 것도 알고있기에 내 왼쪽 자리는 항상 조금은 비워 둔다.
왼쪽을 비워 둬야 나는 스마트폰을 실컷 하면서도 남편을 괴롭힐 수 있으니 말이다.
4.
결혼 찬성론자로서 결혼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는,
완벽한 커플은 절반이 만나 완벽한 하나가 되려 하는 것보다는, 완벽한 하나와 하나가 만나 같은 방향을 보고 걸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 혼자서도 스스로 사랑하고, 자립하여 잘 살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남을 받아들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일상을 공유하는 것은 다소의 불편함도 있지만, 또 그것을 넘어서는 장점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남편이 탕수육 찍먹파라 담먹으로 살고있습니다)
반응이 나쁘지 않다면, 가끔 이렇게 두 사람이 사는 소소한 일상 이야기를 올릴까 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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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정말~~ 부먹 찍먹 고민할 시간에 한개라도 더 먹으라고~~
참고로 저는 주는대로, 처한 상황대로 먹습니다.
예전에는 울 마눌님도 내 팔베개를 좋아했었는데(물어보니 팔베개가 안편안한데 억지로 참았다고...) 지금은 이불 속에서 손 끝만 스쳐도 소스라치게 놀라서
떨어지게 되는 나이?, 사이? 가 되어서 슬픕니다.
손이라도 잡을라치면..손은 됐고 허리나 주물러라 라고 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