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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9/10 15:27
근데 궁금한게 있는데.. 왜 유물이나 유적은 다 땅밑에 있나요?
예전에는 땅이 더 낮았는데 그 위에 흙이 쌓이는 건가요? 지금도 산위에 폐사같은 거 있는데 그게 시간이 많이 지나면 땅속에서 발굴되게 되는건가요?
18/09/10 15:37
건물안에 있었던 거면 일반적으로 집을 짓기 전에 터파기로 원래 땅 높이보다 약간 파는데 건물이 무너지면 바닥도 같이 무너지니 땅속에 들어가게 될테고 그 위로 건물 잔해와 흙이 쌓이게 돼서 땅속에 뭍힌것처럼 보이는거죠
18/09/10 16:16
요즘이야 중기가 있으니 다 걷어내고 그 위에 새로 지으면 된다지만
옛날에는 모든 것을 인력, 잘해야 가축을 일부 활용하는 정도로 집을 지었습니다. 때문에 옛날에는 원래 집터였던 곳을 다시 활용할 경우, 땅 자체는 다짐이 이미 되어 있어 튼튼하기 때문에 그 위에 일부 성토하여 기단을 놓고 바로 집을 짓는 경우가 흔합니다. 옛날 궁궐 터나 사찰 터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초석만 해도 크기가 어마어마합니다. 목재야 다시 해체해서 조립이라도 한다지만 석재는 무거운 데다 가져가는 것도 모두 공력이기 때문에 그대로 놔두는 경우가 많은 거죠. 언제 불이 탔다거나 하는 기록이 남은 건축물 터들은 미저 기초까지 다 수습하지 못하고 그대로 몇 백년 이상 방치하거나 그 위에 다시 건축물을 짓게 됩니다. 개별 건축물 규모라도 수습이 어려운데 전쟁이 발생하여 마을이나 도시 규모라면? 대충 수습하여 다시 위에 건물을 올릴 테니 땅을 파보면 당연히 유물이 많을 수밖에 없지요.
18/09/10 20:14
자연은 알게 모르게 계속 변화합니다. 수백년, 수천년의 세월이면 같은 지역도 서로 다른 기후, 서로 다른 지형을 갖게 되는 경우가 흔하죠. 예를 들자면 영화 300의 배경이었던 테르모필레 전적지는 과거에는 해안가였으나, 지금은 토사의 퇴적으로 내륙이 되었죠. 황하도 과거와 현재의 물줄기가 바뀌었고, 한강도 과거와 현재의 물줄기가 조금은 다릅니다. 강화도도 여러 섬들로 나뉘어져있었으나 현재는 하나로 합쳐졌고, 과거로부터 이어진 여러 토건사업으로 서울이나 베이징 등의 도시 지형도 많이 바뀌었지요. 이는 사람의 손을 거쳐 인위적으로 변한 경우일 때도 있고, 자연의 힘에 의한 변화일 때도 있습니다. 유물이나 유적이 사람들의 눈에서 벗어나, 땅 밑에서 발굴되는 경우도 이로 인해서입니다. 다른 분들이 말씀하신 것처럼 사람들의 힘에 의한 경우도 있고, 바람이 불면 흙이 날리게 되고 ,알게 모르게 이 흙이 조금씩 쌓이면서 땅 위를 덮고, 수백년 수천년이 지나면서 과거 땅 위에 있던 것들이 땅 밑 수십cm, 혹은 수백cm 이하로 내려가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혹은 지각변동이나 대홍수 같은 원인으로 인한 경우도 있고요.
18/09/10 20:37
저런 귀한 물건이 땅속에 파묻혀 있었다면 천재지변이나 전쟁과 같은 참화로 건물이 붕괴되었다고 봐야겠지요. 특히 과거엔 홍수나 산사태가 빈번했으니 파묻히면 그냥 그 위에 다시 지었을 겁니다.
18/09/10 15:58
앞의 황자의 한자가 어떻든 용룡 자는 같으니 둘 다 황룡사로 읽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왜 황용사로 읽는지 모르겠네요.
이청용이나 김창열의 경우에는 개인의 이름이니까 두음법칙 미적용해도 그렇다고 넘기겠는데 왜 황용사인지...
18/09/10 16:53
예전에는 혼용해서 지칭하기도 했는데, 황용사가 있는 곳 행정구역명이 황용동으로 정해지고 동네 이름도 황용골이라고 불러서 황용사라고 정해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황룡사야 원체 유명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황룡사고...
18/09/10 16:11
저게 경주에 얼마만큼 큰 재앙인지 모릅니다.
그동안 경주 살려보겠다고 별 사업을 다 진행해왔지만 삽만 뜨면 유물이 나와서 지연되고 취소된 사업이 대체 몇갠지.. 시가지 거의 대부분이 국립공원이라 고층빌딩은 고사하고 10층 이상 건물도 손에 꼽을 정도죠. 덕분에 인구 유출이 심각해서 지금 시내에 남은건 다 노인들 뿐이고 젊은이들은 주변 포항 울산으로 다 빠졌습니다.
18/09/10 21:27
근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유물 때문에 먹고 사는 게 경주라...
사실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 경주에 신라 유물이 없었으면 경주땅을 일부러 밟을 일이 없겠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안타깝죠. 저런 유물 유적들을 이용해 젊은 층을 붙잡을 방법을 생각할 수밖에는.
18/09/10 16:44
이번에 경주 갔었는데 생각보다 관광할만 하더군요. 다만 입장료들로 나가는 돈이 생각보다 많아서 깜짝 놀랐습니다. 외국처럼 원데이나 투데이패스 같은걸 출시하면 더 좋겠다 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아 그리고 원데이 파킹티켓도요. 생각보다 관광지가 걷기에는 애매하게 떨어져 있어서 갈 때마다 돈 내는게 귀찮았습니다.
차라리 신라패스 혹은 경주패스 를 만들어서 이틀동안 돌아다니면서 지불하는 주차료와 주요 관광지 입장료를 한꺼번에 내고 들어갈 때 티켓만 보여주면 되는 식으로 하면 더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18/09/10 18:00
역사관련팟캐중 개그맨 장웅씨와 허진모(김어준 뉴스공장 피디였던... 지금도 맞는지는 모르겠음)님이 하는게 있는데 허진모님이 경주 출생이신가봐요
근데 경주가 위에서 말씀들 하시다시피 땅파면 나오는 동네라 그런지 옛날부터 도굴꾼들이 그렇게 많았다고 하더라구요 동네에서 '저기 저 아저씨 혹은 할아버지 도굴하는 사람임' 이라고 동네사람들은 다 알고 있고 거기에 허진모님 친구분의 부모님중에서도 있었다고 할 정도니 지금 파도 나오는 저 유물들이 얼마나 사라졌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일본으로도 상당히 갔을거라고 보는데 일본에서 도는 골동품들중 30%가 한국꺼라는 뉴스에서 나오던 일본인 전문가의 말도 생각나고 막 그러네요 (한국것을 값을 잘 쳐준다고 합니다)
18/09/11 10:22
황룡사만 알았지 다른 황용사가 있는지는 몰랐네요 (황룡사(皇龍寺)가 아닌 황용사(黃龍寺)..
기사 제목만보면 다들 전자일거라고 생각할 사람들이 많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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