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총무 쪽이었고, 50명정도의 중소 기업이었습니다. 두 회사가 한 사무실에서 함께 쓰는 형식이었는데,
제 사수는 다른 회사의 총무쪽 경리분이셨습니다. 그분이 그만두시면서, 충원인력은 뽑지 않은채 제가 그 일을 인수인계 받았고
업무 분장도, 월급 인상도 아무것도 없이 진행 되었습니다.
당시에 pgr에도 글 쓰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많은 분들의 조언(물론 그 답안은 모두 동일했지만)을 들으며 많은 생각을 또 했습니다.
내가 일을 못하는건가? 아니면 일이 많은건가?
회사에서 항상 듣던 말이 있었죠. 넌 일을 못한다. 업무로스가 너무 심하다. 일이 많은게 아니라 일을 못해서 늦게까지 있는거다.
너 여기서 못하면 다른데서도 못한다. 나갈거면 여기서 인정 받고 그때 나가라.
그래서 한번 해보고, 그래도 도저히 안되겠다 싶으면 그만둬야겠다 다짐했습니다.
그렇게 2달을 했습니다.
못하겠더군요. 죽는줄 알았습니다. 애초에 프로그램도, 하는 방식도 다른데다가 업무분장을 안해줄거면 다른 일을 주질 말아야지
잡일은 잡일대로 주면서 업무로스를 줄이면서 늦게까지 하지 말라고, 그러더군요.
한번은 상무가 불러서 면담을 하다가 하는말이 "난 니가 이걸 전부 쳐낼수 있을꺼라 애초에 생각하지 않았다." 라고 하덥니다.
제가 경력도 일천하고, 능력도 일천한거 아는데, 쳐낼수 없을거라 생각을 했으면 업무 분장을 시켜주던가 사람을 뽑던가 해야지
거기에 저한테 그딴 소리를 하면 제가 "아 열심히 해야겠다!"" 라는 생각을 가지기 보다 "아.. 그렇구만 때려쳐야겠네" 라는 생각이 먼저들거라고는 생각을 안한걸까요?
주말에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푸념하고 있는데 옛날엔 다들 힘들다고 버티라고 하던 친구들이
"너 그만두게 하려고 지금 엿멕이고 있는거 아니냐?"
"그만둬라. 그런 소리 들으면서까지 거기 왜있냐. 사람이 귀한줄 모르는 회사 다"
"너 회사 진짜 그만 둬라. 너 성격 변한거 알고있냐? 엄청 날카롭고 엄청 신경질적이다. 옛날의 네가 아니다"
라는 조언으로 말이 바뀔 정도였습니다.
근데 걱정이 되긴 하덥니다. 회사일을 하면서 자존감은 땅끝까지 떨어진 상태에서, 내가 뭘 할수 있을까? 잘할수 있을까? 이런 생각만 들고
다른데 붙고나서 일을 그만둬야지, 밑도 끝도 없이 그만두기부터 하면 어떻게 하나.. 생각도 들고 말이죠.
그러다 어찌저찌 좋은기회를 잡게 되어 다른 곳으로 갈수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 했죠.
쿨하게 승인 되었습니다. 다른곳에 가면 지금처럼 욕먹지 말고 잘하라는 얘기를 들으면서요.
붙잡으면 어쩌나 생각했는데, 다행히 그런일은 없었습니다.
다만 급하게 나가게 되서 인수인계가 제대로 되지 않아 문제가 생길까봐가 제일 걱정이었습니다.
전 그만두더라도 깔끔하게 정리를 다 해두고, 다음에 맡을 사람이 부담이 되지 않게끔 하고 싶었는데,
이미 업무 과중화로 인해 전부 처리를 할수가 없었고, 밀린 업무가 산더미라 어떻게 할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친구가 한마디 해주더군요.
"너 이거 다 쳐낼 생각하지마라. 어짜피 니가 이걸 다해도 또다른 일이 또 생기고, 넌 결국 욕을 먹는다. 어짜피 니가 아무리 일을 쳐내줘도
욕을 먹는다. 아무도 그걸 고맙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걸 다 할 생각하지마라. 진짜 중요하다 생각되는건 몰라도 "
그 한마디가 힘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나름 이렇게 나가는건 내자신이 용납이 안된다 해서 나가는 그날 주말까지 최대한 처리할수 있는거 처리하고, 인수인계 자료 넘기고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 피시방에 있습니다.
제 상태는 마치 미세먼지로 가득차있던 하늘에서 그 미세먼지들이 죄다 사라진 말끔한 파란하늘같이
한숨 푹푹쉬고 신경질적이던 그런 모습이 사라지고, 여유롭게 되었습니다.
그만두기 전에는 회사 걱정으로 한가득이었는데, 막상 그만두자 "내가 할수있는 만큼 전부 했다" 라는 생각 때문인지
이제 회사 걱정은 나지도 않더군요. (물론 인수인계 때문에 오는 전화나 연락은 답변해주고 있습니다)
와.. 이렇게 행복할수가
앞으로 또 회사에서 스트레스받고 살겠지만, 그래도 그 전처럼은 안 살거 같아서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 선택에 후회는 전혀 없습니다. 그전처럼은 이제 살라고도 못살겠네요.
못했던 게임이나 맘껏 해야겠습니다. 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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