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교보에 책을 사러 갔었다. 나오는 길에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이 웃으면서 말을 걸어왔다. '마음공부 해보실 생각 있으세요' 이런 건가 생각했으나 아프리카 어린이들 사진을 잔뜩 들고 온 것을 보니 모금 활동을 하는 중인가보다. 뒷주머니에 지폐가 몇 장 있었던 것 같은데 공교롭게도 바지를 바꿔 입고 온 것 같다.
"저희는 국경 없는 의사회입니다. 지금 당장 모금을 하는 것은 아니구요 여기에 가입을 하시면 1달마다 어쩌고저쩌고~~"
후원을 거절하는 순간 당신은 아프리카의 불쌍한 어린이들을 학대하는 끔찍한 범죄자와 다를 바 없는 사람이 된다는 이야기를 생글생글 웃으며 설명해주었다.
아 어쩌다가 하필 오늘 여기에 오게 되었을까…. 이야기는 이렇게 된 것이다.
몇 년 전만해도 어딜 가든 책을 들고 다녔는데 어느 순간부터 내 생활에서 책이 사라져 버렸다. 곰곰이 이유를 생각해본 끝에 컴퓨터나 핸드폰 같은 영상매체에 과도하게 노출된 환경에 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과감히 모니터와 본체를 연결하는 선을 뽑아서 봉인하고 핸드폰에는 데이터를 제한하는 앱을 깔았다. 이제 기상 알람이 울리자마자 발가락으로 컴퓨터 전원을 켜지 않는다. 세수하고, 이를 닦고, 큰 컵에 물을 가득 채워 한잔 단번에 비우고 책상에 앉아 노트를 편다. 그래서 뭐든 쓰기 시작한다. '내가 만든 원칙을 존중하자', '난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놈이다', '오늘 하루 아끼는 사람들을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해보자' 이딴 병신 같은 글을 적으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근데 5분도 채 안 걸리는 이런 짓거리가 뜻밖에 내 삶에 더 높은 만족감을 준다. (병신같지만…. 병신 같군)
생활의 균형이 잡혔으니 이제 책을 사러 갈 차례다. 난 책을 가리지 않고 읽는 편이다. 왼손에는 코란, 오른손에는 반야심경을 들고 있다. 하지만 심리학과 처세술 관련 책만큼은 거의 읽지 않는 편이다. 심리학은 의식주에 아쉬움이 없는 사람들이 이제 뭘 해야 할지 몰라 헤매다가 마지막 해결책이랍시고 찾는 학문처럼 느껴지고, 처세술은 어떻게든 상대방에게서 조금이라도 무엇인가 더 긁어내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기술을 다루는 학문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오늘은 심리학과 처세술과 관련된 책을 사기로 결정했다. (응?) 누군가가 '너를 불편하게 만드는 책을 읽어라'고 조언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매대에 거절당하기 연습이라는 책 제목이 눈에 띄었다. 왠지 자극적인 제목이 빨리 책을 사라고 내 정신을 조종하는 것 같아서 강한 거부감이 들었다. 그 책을 통독으로 빠르게 읽기 시작했다. 1시간 30분 정도 걸쳐서 1회 독을 끝내버렸다. 요약하자면 이런 내용이다. 중국계 미국인인 작가가 행인에게 100달러 빌리기, 던킨도너츠에서 하트모양으로 도넛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기, 비행기에서 안내방송을 하고 싶다고 승무원에게 조르기 등 상대방에게 다소 무리한 요구를 했을 때 어떻게 거절당했는지, 어떤 경우 성공했는지, 거절당하면서 본인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경험담을 가벼운 필치로 서술한 내용이다. 거절은 그냥 싫다는 의미일 뿐이고 결코 나를 무시한다거나 인격적으로 경멸하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이 이 책의 포인트다.
그래 거절은 그냥 거절일 뿐이다. 거절당했다고 해서 내가 존중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늘 책에서 읽은 내용을 실천에 옮겨보는 거다. 모금하는 여학생에게 거절당할만한 제안을 던져보자. 무엇이 좋을까?
내가 머릿속으로 구상한 그림은 이런 식이다.
"저기…. 혹시 10만 원만 빌려주실 수 있나요?"
"왜…. 왜죠?"
"사실 제가 거절당하기 연습이라는 책을 읽고 거절당하는 연습을 하는 중이거든요. 하하. 거절 한 번만 해주세요^^"
"아하하…. 제가 10만 원이 없어서요. 죄송합니다."
" 시원하게 거절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오늘 미션은 성공했네요. 크크 기왕 도와주신 김에 부탁 한 가지만 드려도 될까요?"
"예? 무슨…. 부탁이요?"
"어려운 사람들 도우려고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아서요. 혹시 연락처 좀 주시면 안 될까요?"
현실은 언제나 상상과 다르다.
더듬거리면서 저기 혹시 10만 원 하는 순간 뭔가 일이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예의 바르고, 기분 좋은 냄새가 나고, 새하얀 유니폼처럼 환하게 웃던 그녀의 눈빛은 어두운 뒷골목에서 정장 바지에 토사물을 뒤집어쓰고 자빠져 자는 주정뱅이를 바라보는 눈빛으로 바뀌어 있었다.
음…. 어떻게 수습해야 할까. 난 완전한 무력감을 느꼈다.
다짜고짜 미안합니다 라고 말하고 버스정류장 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그날 밤 사슴처럼 순수한 눈빛이 경멸로 물들어 가는 상상 때문에 잠을 설쳤다.
복수가 필요하다. 무너진 나의 디펜스 메커니즘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복수해야 한다.
나는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 위해 기부자로 등록했다.
국경없는의사회가 아니라 적십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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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지알에 첫글 쓰는 건데 인사드리는 걸 깜빡했네요
위버멘쉬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가끔 도움 안되는 글 올릴게요ㅠ
규정 읽고 맞춤법 검사 돌렸는데 제가 이렇게 많이 틀리는줄 첨 알았네요
많이 배워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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