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파게티 눈금 선에 물을 붓다가 깨달았다. 아 기타 줄 갈아야 하는구나. 종이 용기에 찰랑거리며 올라오는 물을 보다가 아차차 황급히 주전자를 치웠다. 읽다가 책상 위에 엎어뒀던 책을 집어 들어 그대로 컵라면 뚜껑 위에 덮고 일어섰다. 옷걸이 뒤에서 몇 년을 숨죽이며 자리했던 기타를 꺼내기 위해.
특별히 기타를 원했던 것은 아니다. 휴학 후 시골에 내려와 알바를 2개씩 뛰며 학비를 벌었고, 복학 시기를 한 달 앞두고 소일거리가 필요했을 뿐이다. 마침 어머니의 권유로 시작한 기타 강습을 듣고 낙원상가에서 일하던 외삼촌이 냉큼 사서 보내줬기에 가지게 되었을 뿐이다. 그뿐이다. 때문에 복학하고, 졸업하고, 취직하고, 다시 구직자가 되는 일련의 과정에서 몇 번을 손에 쥐었다 놓기를 반복하다 보니 배웠던 코드와 주법을 까맣게 잊어먹고 옷걸이 뒤에서 먼지만 쌓이게 되었을 뿐이다.
그랬던 기타를, 일 년에 두세 번 반복되는 이사와 경제적 궁핍 속에서도 버리지 않았던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케이스 위에 뽀얗게 앉은 먼지를 걸레로 닦아내고 지퍼를 내렸다. 습기와 온도에 예민한 통기타의 목은 주인의 보살핌에 따라 생명력이 좌우지된다지. 슬고 닦으며 연주를 해주었을때야 비로소 생명을 연장한다는 기타의 나무 보디는 햇빛도 바람도 못 본체 그늘진 옷걸이 뒤에서 먼지만 먹고 살았다. 이미 지나가 버린 청춘처럼 말이다.
기타를 들어 목이 휘어지진 않았나 눈대중으로 밸런스 체크를 하다가, 보디에 얇게 칠했던 유광이 조금도 벗겨지지 않고 형광등 아래서 빛나는 것이 보였다. 줄을 갈기 전에 헤드의 줄감개를 느슨하게 풀었다가 조았다. 너무 팽팽하지 않게, 그러나 일말의 긴장감으로 튕기기 직전까지 조이고 보디를 품에 안았다. 어색한 왼손의 손목을 꺾어 손가락 끝으로 줄을 짚고 오른손으로 피크를 집어 들었다. 한번 크게 숨을 들이쉬고 조용히 정적. 다시 조용히 코로 내쉬면서 피크로 줄을 쓸어내렸다.
촤라라랑~
초면에 찰랑거리던 음색은 아직 남아있구나. 튜닝을 위해 2번 줄을 팽팽히 조았다가 팅! 소리를 내며 줄이 끊어졌다. 어차피 줄을 갈기 위해 꺼냈던 기타니까 내색 없이 기타 케이스 앞주머니에서 새 줄을 꺼냈다. 브리지 핀에 줄을 꼽고 사운드 홀을 지나 넥을 타고 헤드로 갔다. 줄감개에 걸고 서서히 서서히 줄을 조았다. 헐렁하고 느슨하게 넥 위를 허둥대던 줄은 줄감개를 돌리면서 팽팽하게 넥 위로 안착했다. 조금 망설이다 1번과 3번, 4번, 5번, 6번 줄을 모두 순서대로 교체했다. 보존을 위해 기름 먹인 새 줄은 조금 미끈거렸고 형광등 아래서 반짝였다.
유투브를 보면서 새 줄을 감은 기타의 튜닝을 마쳤다.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기타를 쥐었다가 엉거주춤 손목을 세웠다가 무슨 곡을 쳐볼까, 어떤 코드를 잡아볼까 고민을 했는데 결국 기억나는 곡이 하나도 없었다. 배운다고 한참 연습했던 곡들은 회식용 십팔번이 되어버렸고, 당장 C코드도 왼손가락 어디를 짚어야하는지 도통 기억이 나질 않는다. 뭐 어때 인터넷으로 악보 보면서 다시 배우면 되지. 기타를 바닥에 내려놓고 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카카오톡 채팅 목록 중간에 한 개방을 골라 잘나온 기타 사진을 전송하고 전화번호를 눌렀다.
"외삼촌 저예요. 옛날에 사주셨던 기타 줄 갈았어요. 몸은 좀 어떠세요? 항암 치료 많이 힘들진 않으세요? 다음 주말에는 제가 병원에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기타 가져갈테니까 옛날에 그 노래 쳐주세요. 외삼촌 제 이야기 듣고 계신거죠?"
ps. 초안은 외삼촌 병문안을 다녀온 당일 저녁에 썼습니다 . 그리고 지난주에 49제를 치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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