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Multi-armed bandit problem이라는 유명한 문제가 있어. 이게 무슨 문제냐면 말이야…. 슬롯머신이 여러 개 있고 각각 당첨될 확률이 다르다고 하면 말이야…. 슬롯머신에서 여러 번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해당 슬롯머신의 당첨 확률은 알아갈 수 있겠지? 근데 진행하지 않은 슬롯머신의 당첨 확률은 모르니까…. 새로운 슬롯머신에서 게임을 시작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결정을 해야 하는데 문제가 복잡해…. 위험을 감수하기 싫으면 계속한 슬롯머신에서 게임을 플레이하는 거고…. 아니면 높은 확률의 슬롯머신을 다시 찾는 거고…." "아, 오빠. 진지하게 얘기하는데 이상한 얘기 좀 하지 마. 공대생인 거 다 티 내네."
"아니야, 이게 저 문제랑 똑같다니까? 남자들의 선택은 한 슬롯머신에서 계속 돌리는…." "됐어. 그만해"
전 여자친구는 토라질 때면, 항상 자신의 온몸을 이용해서 토라졌다는 기분을 표현하곤 했다.
그럴 때면 항상 긴 머리 사이로 보이는 볼이 약간 부풀어 오르고, 고개를 약간 숙이며 흘겨보았는데,
나는 그 모습을 몹시도 사랑했던 것 같다.
#2
소개팅에 나온 그녀는 키가 크지 않았다.
소개팅에 나온 그녀는 머리가 길지 않았고,
소개팅에 나온 그녀는 한심하게, 캬라멜 마키아토마끼야또 같은 단 커피를 주문했다.
소개받은 그녀가 마음에 들지 않은 이유는 이것 말고도 수없이 많았다.
그녀는 전 여자친구와 너무나 다른 사람이었다.
#3
전 여자친구는 이소라의 노래를 즐겨 듣곤 하였다.
그중에서도 바람이 분다는분다 라는 곡을 좋아했는데, 사귀는 내내 그 감정이 공감되지는 않았다.
모든 남자가 공감하겠지만, 항상 머리를 자르러 가는 것은 매우 큰굉장히 큰 부담을 주곤 했다.
나는 그냥 머리가 적당히 자라면 중지스톱, 하고 그만 자랐으면 좋겠는데. 머리를 자르는 일은 딱 그 정도의 의미였다. 나에게는.
#4
훈련소 입소를 앞두고, 군대 가기 전에 밥이나 먹자는 말로 전 여자친구를 불렀다.
평소와 다름없이 갔던 카페도 굉장히 이질적이었고,
내 손은 어디에다 두어야 안 어색할지 굉장히 신경 쓰였으며 무엇보다도 단발머리의 전 여자친구가 쉽게 적응되지 않았다.
"너도 머리 잘랐네? 나 머리 민 기념으로 같이 잘라준 거야?"
어색한 분위기를 타개하고자 실없는 농담을 했고 그녀는 조용히 웃었다.
카페에는 이름 모를 여자가수의 음악이 흐르고 있었는데, 왠지 내 귓가에는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5
어떤 작은 왕자가 나오는 책에서 사랑은 길드는길들여지는 거라는거야 라는 문구를 본 적이 있다.
나는 로맨틱한 사람도 감성적인 사람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녀와 맞는 남자친구가 되기 위해서 알고리즘처럼 학습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에, 나는 그녀에 fitting 된 한 사람의 남자가 되었다. 아니 되었다고 생각했었다.
#6
머리를 자르는 것은, 시간을 잊겠다는 의미라 했다. 그리고 그녀가 머리를 자른 것은 내가 알고 있는 그녀와는 다른 그녀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겠지. 그리고 그것을 다시 생각해보면 그녀에게만 fitting 된 나란 사람은 이제는 더는 쓸모없는 남자가 된 것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그녀와 헤어지고 새로운 사람을 몇 번 만날 때마다 항상 새로운 사람에게서 그녀의 모습을 보려고만 했던 것 같다. 아, 이제야 전 여자친구가 했던 말을 알겠구나. 왜 남자들이 전 여자친구와 비슷한 여자를 다시 만나려고 했던 건지. 나는 너에게, 과적합 되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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