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결이 20주년 공연을 국립극장에서 하고 있습니다. 아주 예전 코엑스에서 했던 마술박람회(?)에서 그의 무대를
보지 못한 게 내내 아쉬웠는데 이번에 그 아쉬움을 풀 수 있었습니다.
마리텔에서 보여지는 이은결의 모습은 잔망스럽다가 딱 어울립니다. 장난기 많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동네형이
동네 꼬꼬마들 골려먹는 것 같이 이은결의 퍼포먼스는 보는 사람이나 당하는 사람들을 유쾌하게 웃게 합니다.
이번 공연도 그런 이은결의 개성이 여기저기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관객들과 대화할 때나 마술 공연하는
순간 모두 유쾌하게 즐길 수 있었던 공연이었습니다. 최근 몇년 간 봤던 여러 뮤지컬, 영화, 연극, 공연들 중에
적어도 유쾌함이라는 측면에서는 최고였습니다.
하지만 잔망스러움만 있는 공연은 아니었습니다. 어찌 보면 자신이 걸어 온 길을 담담히 고백하는 수필과도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가 국립극장의 이 자리에 오기까지 이런 일들을 겪고 느끼고 했어요'라고
얘기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 자기 분야에서 끊임없이 해온 노력들, 한 우물만 파 온 사람의
내공이랄까 감성이랄까 그런 것들이 전해지는 공연이었습니다. 마술사이면서 아무런 트릭없이 마술같은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멋진 일루젼을 보여준 마지막 퍼포먼스는 공연 전체의 주제, 그가 지금 고민하는
어떤 지향점을 그대로 보여주었습니다.
마치 여러 에피소드가 하나의 큰 주제 속에 엮여 있는 옴니버스식 연극을 보는 듯 했습니다. 유쾌하게 웃고
즐기는 속에 자신이 걸어온 길, 그 길에서 함께 했던, 하고 있는 사람들, 앞으로 가려는 길까지 차근차근
풀어낸 진중함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습니다.
영화나 드라마와 달리 공연은 지나고 나면 다시는 볼 수 없는 그 순간의 예술이라는 점이 매력적입니다.
공연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신나게 즐기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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