굉장하고, 뛰어나며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적입니다. 어쩌면 제2차 세계대전 직후를 그린 책 중 가장 뛰어난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전후사(戰後史)를 다룬 다른 책들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만큼 정열적으로 그리고 자세하게 해당 주제를 다룬 책들도 있습니다. 토니 주트의 <포스트워>가 가장 대표적이죠. (개인적으로 전후 유럽사 서적 중 최고봉으로 꼽습니다. 아직 읽어보지 않으셨다면 꼭 읽으십쇼. 두께에도 불구, 그 시간을 보상해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책의 독특한 점은 그 넓이와 깊이에 있습니다. 대서양에서 태평양까지, 세계 구석구석을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서유럽/동유럽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한국 등의 전후사정에 대해서도 꽤 상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사실 제2차대전이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의 정치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전혀 알지 못했지만, 이 책 덕분에 약간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전쟁으로 인해 폐허가 되고, 기아로 신음하는 세계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 난관 속에서도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하고 있습니다. 폐허로부터 조국을 재건하는 남자들의 이야기, 하지만 더욱 중요하게는 여성들의 이야기도 자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차마 입에 담지 못할 폭력을 당해야 했던 여성들, 그리고 전후에 스스로 삶을 개척해야 했던 여성들, 특히 라이너 파스핀더 영화의 주인공 "마리아 브라운"처럼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죄책감, 복수, 그리고 회개. 이 또한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중요한 주제들입니다. 한 국가/민족 전체가 과거를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했습니다. 상상된 또는 실제의 반역자들을 처단해야 했고. 새로운 국가적 신화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다시 말해 과거를 땅에 묻어버리고,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야 했던 것입니다. 현대 세계는 이렇게 탄생했습니다. 과거의 망각과 현재의 재창조, 폐허와 복수 그리고 회개, 그 회개가 비록 상상되고 가공된 회개일지라도.
1945년은 이 모든 파괴와 복수 그리고 재탄생이 모두 이루어진 해입니다. 그리고 이 책의 제목이 암시하듯, 현대 세계는 이렇게 창조되었습니다. 결국 우리는 모두 1945년의 유산 속에서 살고 있는 셈이죠. 이 책은 많은 디테일뿐만 아니라 인사이트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아직 읽어보지 않으셨다면 꼭 읽어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