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시판
:: 이전 게시판
|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15/12/26 17:34
아, 사실 파르메니데스가 "최초"라는 타이틀에는 더 적합하겠네요! 제가 글을 쓰면서 염두에 뒀던 것은 존재론에 관해 최초로 통일적인 체계를 세웠던 철학자 정도로 플라톤을 고려했던 것 같습니다. 지적 감사합니다!
15/12/26 17:16
개인적으로 이러한 종류의 철학 논쟁을 볼때마다 '통일된 언어'가 전제되지 않는 이상 자꾸 헛발질이 나올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실제로 고대 중세쪽의 철학적 토픽을 보면 이러한 언어적인 문제 때문에 논쟁이라는 이름의 병림픽을 달렸던 적이 많고...
이 글의 제목만 해도 '존재하는 것은 무엇일까' 인데 만약 이게 '실존하는 것은 무엇일까' 였다면 받아들이는 뉘앙스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겠지만 영작하려면 둘다 What does exist mean? 정도일텐데 실제로 실존과 존재 실현과 구현은 전혀 다른 뉘앙스의 표현이라는것을 고려하면 영어로 했던 논쟁을 단순 번역을 통해 한글로 가져오는것도 좀 무리가 있고 그 반대도 좀 무리가 있죠. 글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15/12/26 17:33
동의합니다..뭔가 언어의 유희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직관적으로 a와b가 다르다는 것은 알겠는데 그 다름이 언어적 측면에서 생기는 부분도 있어보이고 실제 직관을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어보이고 어쨌든 언어에 의한 인식이 꽤나 중요한 부분인거 같네요..
15/12/26 17:42
위에서 자세히 서술하지는 않았지만 카르납이 대표적으로 그런 생각을 하는 철학자입니다.
형이상학적 논의들이 아무리 세련되게 바뀌어봤자 어쨌든 "말뿐인 논쟁(verbal dispute)"이라는 거죠. 그런데 그런 주장이 강력하기는 하지만, 일관되게 지지되기는 또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15/12/26 17:39
20세기 초반에 러셀과 논리실증주의자들의 생각도 바로 그런 것이었다고 봅니다. 그래서 현대철학의 "언어적 전회"가 있었다는 말을 하니까요. 실제로 그래서 존재론에 대한 메타적 논의(metaontology)를 하고 있고, 거기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문제 중에 하나가 "존재", "실존", "존속", "있음" 등등의 단어가 전부 동일한 의미냐 아니면 각각 다른 의미냐 이런 논의입니다. 나중에 더 관심이 있으시다면 그런 것도 찾아보시면 재미있을 겁니다. 고맙습니다.
15/12/26 18:14
그러한 개념의 정의가 참으로 어려운게
1. '삼각형의 네번째 변' (기하학적 정의) 2. '뿔과 날개가 달린 유니콘' (상상속의 동물) 3. '사랑' (관념) 4. '세종대왕' (조선의 왕) 5.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6. '이 댓글' (이 댓글) 이 여섯가지의 일종의 '존재의 정도'? (이것도 애매한 표현입니다만) 는 각각 유의미한 차이가 있죠. 1은 정의 자체가 비존재의 인과성을 가지고 있고 2는 있다는 증거가 없지만 있을수도 있으며 3은 관념적인 표현이라 실재성이 애매하고 4는 실재했다는 증거가 많지만 죽었기에 확실하지는 않고 5는 실재하며 현재도 살아있지만 우리가 아는 오바마가 정말 그 오바마라는것이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 의심의 여지가 있고 6은 그에 반해 적어도 이 댓글에서 다룬 그 어떤것들보다도 가장 실재하는것이 확실합니다. 근데 여기서 어디서부터 존재하고 어디서부터 실제하고 어디서부터 존속하며 어디서부터 '있음' 을 속성으로 가지고 있는지 이야기하려면 사실 너무 어렵습니다. 마이농과 비슷한 생각을 지닌 누군가는 [어쨌든 우리가 그 개념을 다뤄야 하기 때문에 모두 존재한다] 고 생각할 수 있고 대체적인 보통의 사람이라면 [사랑까지는 존재하고 유니콘부터는 구라임]이라고 말할테고 어제 크리스마스였는데 집에서 혼자 영화보신분들은 [사랑부터 존재 안하는데 크크크 위에 최소 존알못] 이라고 할테고 (...) 의심하기 좋아하는 누군가라면 [6번 빼고는 다 구라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개는 영혼이 없다고 발로 뻥 차버릴거 같은 쓰레기 인성을 가진 사람 (...) 은 [1~6 전부 존재하지 않는다. 그걸 의심하는 나만 존재함] 이라고 말하겠죠. 근데 이 생각들을 가지고 투닥투닥하려면 다른 외적으로 헷갈리는 부분이 적어야 할텐데, 언어가 통일이 안되면 그게 힘들거 같아요.
15/12/27 15:17
우선 6번 존재자가 가장 확실하게 존재하는 것 같은 이유는 그 표현 안에 이미 존재를 함축하고 있는 지표어(indexical) "이(this)"가 포함되어있기 때문일 겁니다.
1과 2의 경우에는 둘 다 허구적인 존재자일 텐데, 특히 1은 정의상 불가능한 모순적인 존재자라는 점에서 마이농의 입장에서도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2의 경우에는 의견이 분분할 수 있습니다만, "유니콘"이 기본적으로 이름(name)이라는 점에서 존재할 가능성은 없는 것입니다. 이는 이름과 기술구(description)에 관한 긴 논의를 필요로 하는데, 대표적인 철학자가 크립키(kripke)입니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유니콘에 갖다붙이는 여러 속성들(말임, 뿔이 하나임 등등)을 가지는 어떤 생물을 발견할 수는 있지만 유니콘 자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3의 경우가 위에서 논의한 속성의 존재와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이는 지적해주셨다시피 충분한 논의의 대상입니다. 4는 과거 존재자들에 관한 논의와 연관되는데, 특히 시간 철학에서 주된 연구 주제입니다. 영원론(eternalism)이라는 입장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런 과거 존재들도 전부 현재 존재들처럼 존재한다고 봅니다. 반면에 현재론(presentism)은 과거나 미래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지요. 5의 경우가 많은 사람들이 존재론을 공부하면서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의문 중에 하나인데, 이는 인식론적인 것과 존재론적인 것을 혼동함에서 비롯됩니다. 우리는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주장을 그것은 인식된다는 주장과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미국의 대통령인 오바마가 존재한다는 주장은 오바마를 직접 인식하고 있다는 주장에 의존하고 있지 않습니다. 비록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더라도 존재하는 것들은 존재하는 것이지요. 첨언하자면, 존재한다라는 말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그리고 존재와 실존 등이 어떻게 의미가 다른지 하는 문제는 분명 존재론을 하는 데에 있어 중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존재한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고, 그런 일반적인 직관 위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어떤 언어 표현이 애매하거나 모호하다는 점이 그 표현을 사용하는 권리를 앗아가는 것은 아니죠. 가령, '대머리'라는 표현을 우리는 자유롭게 사용합니다. 머리카락 몇 개부터가 대머리인지 애매하더라도 그렇게 하는 것처럼 말이죠.
15/12/26 17:47
being의 쓰임 때문에 혼동도 오죠. 온톨로지야 그리스어의 being과 유사한 것인데, 존재라는 의미도 되지만 '규정성(~임)'으로도 사용되죠.
20세기 중반 이후부터 있음(존재)보다 ~임(규정성)으로 'be'를 해석하는 입장도 많아진 것 같습니다. 몇 년 전 한국 서양고대철학 전공 학회에서 서양어와 한국어의 차이-한국에서는 존재하다는 말에서 계사의 의미(~이다)의 의미는 없으니-때문에 한국에서 기왕의 형이상학(존재론)의 논의가 유효한가의 반성도 있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15/12/26 18:21
사실 '존재'라는 한자어 자체가 언제, 어디서 먼저 쓰였냐를 생각해보면 exist being 양쪽으로 다 해석하는것은 말씀하신대로 좀 무리가 있는것으로...
15/12/26 18:41
서양의 be동사는 다의어죠. 현대 영어의 be동사야 시어(詩語)를 빼곤 '존재하다'는 의미로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there is/are' 형태로 사용해도 이것이 존재하다의 의미보다 어디 장소에 무엇이 있다 정도로 쓰이는 것 같습니다.(영알못이라 틀렸을 것같은데) 이건 존재의 범주가 아니라 장소의 범주에 가깝죠. (그리스어에서는 영어와는 용례가 달랐다고 합니다) 온톨로지(존재론)는 '있다/-이다'의 다의어 (영어로 치면 옛 be동사, 즉 존재하다의 의미가 살아있는,의 분사형태로 알고 있습니다)의 용례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있다/없다이니 흔히 한자식의 존재론과 관련이 있고, '이다/-아니다'에 대한 논의이니 진리론과 연결됩니다. 거짓말을 통해 플라톤이 비존재도 어떻게든 존재해야 한다로 연결된 것은 be동사의 다의성 때문이라고 봐야 합니다. 한국에서 존재론이 창시되었다면 진리론과 큰 연관이 있었을까는... 모르겠습니다. 분명 존재론과 범주론은 사실상 같고 같이 발전했으니 인식-논리-언어학과는 밀접하지만 진리론과는 직접 연결을 맺을 필요가 있을진 모르겠습니다.
15/12/26 17:44
위에 지적해주신 대로 존재/비존재 문제는 파르메니데스가 가장 먼저 제기했다고 봐도 되겠죠.
마이농-러셀-논리실증주의-콰인으로 이어지는 깔끔한 정리 잘 읽었습니다. 어려운 주제를 이렇게 쉽고 재밌게(!) 정리하기 쉽지 않은데, 좋은 글 감사합니다. 크립키 이야기도 같이 나왔으면 했는데.. 다음에 또 글 부탁드립니다. (어...그런데... 러셀 콰인 마이농도 있고... 치좀도 있고... 호 혹시 이번 학기 존재론연스... 아 아닙니다 잘못 짚은 걸수도..)
15/12/26 17:48
아 그리고 묻어가는 질문인데
존재론, 인식론, 윤리학 각각에 대한 서양철학의 역사적 흐름을 다룬 교양서적이 있을까요?(전문서적은 사양합니다..;; 저번에 도전해봤다가 실패한 적이 있어서) 급궁금해지네요 흐흐
15/12/26 18:04
음..각각에 관한, 게다가 "역사"는 마땅한 교양서적이 있는지 잘 모르겠네요. 다만, 개인적으로는 철학사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러셀의 <서양철학사>를 추천하구요, 전반적인 논의는 네이글의 <이 모든 것의 철학적 의미는?>, 블랙번의 <생각>, 러셀의 <철학의 문제들> 정도 추천합니다!
윤리학은 사실 또 조금 다른 분야라서 제 생각에는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도 좋은 책인 것 같구, 브로디의 <응용윤리학>이라는 책도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혹시 무슨 책을 읽다가 실패하셨는지 궁금하네요 흐흐..
15/12/26 18:13
콰인의 <논리적 관점에서>요.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요.
음.. 근데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샌델 개인의 생각이 너무 들어간 책 아닌가요? 전 좀 일반적인 철학적 논의를 보고 싶은데.. 답변 감사합니다.
15/12/26 18:16
헉, 센델의 정의는 보통의 저자들에게 본인 생각이 너무 없고 그냥 소개만 한다고 까이는 책 아닌가요. 교양서적중에서 저것보다 더 객관적인 시점을 가진 노잼책은 출판되기 어려울거 같아요.
15/12/26 18:18
음? 정말인가요? 그렇다면 읽어보겠습니다!
샌델의 정의 책을 비판한 책도 나와서, 샌델이 개인의 생각을 너무 많이 집어넣은 줄 알았네요.
15/12/26 18:30
음 일단 비판서의 내용은 비판서 쓴 사람들 생각일뿐 객관적인것은 아니라는것을 먼저 밝히고... 아울러 저는 그 비판서의 내용에 별로 동의하지 않는것도 밝힌뒤에 이야기하자면, 위에서 말했던 대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불분명하고 용어 사용도 불분명하고 일관성이 없다~ 이러한 기조였던걸로 기억합니다.
다만 정의라는 책 자체가 워낙 한국에서 히트를 쳐서 이거 말고도 비판서가 더 있을텐데 다른건 안 읽어봐서 모르겠어요. 제가 읽은 책은 그랬습니다.
15/12/26 18:33
답변 감사합니다.
샌델의 정의 책이 그렇게 노잼인데 어떻게 히트를 쳤을까 의문이네요;; 가뜩이나 전공책 아니면 안 읽는 우리나라에서.. 그리고 샌델의 다른 책인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도 궁금하네요. 과연 좋은 책인지..
15/12/26 18:37
음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객관적으로 봤을때 센델의 정의 자체는 제 생각엔 핵꿀잼이에요. 근데 그것마저도 학계에서는 '제대로 된 본인 의견이 없다' 같은 이유로 비판하는거니까, ohmylove님이 원하는 정의보다도 더 개인의 생각이 절제된 책은, 대개 거의 전공서적의 가까운 책일테고, 그러면 이미 실패하신 경험이 있다고 하셨으니 아마 노잼이라 또 실패하실거 같다 그런 의미였습니다.
저는 마이클 센델 정의는 정말 좋은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삼을 여지가 없는것은 아니지만 그 정도 문제로 인해 좋은 책의 지위가 박탈된다면 사실 교양과학책중에 좋은책은 아예 없다고 봐야...
15/12/26 18:59
박제윤 교수님이라고 처칠랜드의 뇌과학 책을 세 권 정도 번역하신 분이 계신데
그 분이 제 대학에 와서 교양강의를 하셨어요. 그 분과 지금도 연락하면서 그분께 과학철학 쪽에 질문을 가끔 던지는데.. 뭐 어쨌든 그 교양강의가 끝나고 나서 그 강의에 너무도 깊이 감명받아(포퍼, 쿤 이야기도 좋았지만 뇌과학과 뇌과학의 철학적 함의를 처음 접함) 그 강의 끝나자마자 포퍼의 분석, 종합명제 구분 비판에 대한 질문을 했죠. 그 근거가 뭐냐구요. 그러니까 그 교수님이 "<논리적 관점에서>라는 책에 써 있다. 하지만 봐도 니는 모를거다."라고 하셨죠. 하지만 저는 너무도 궁금해서 그 책을 읽어보았죠. 하지만 gg. 이게 독해능력 부족이라기보단.. 혼자서 아무 배경지식 없이 읽으니까 의미 자체가 이해가 안 되고, 또 하나의 말을 중의적으로 해석 가능하더라구요.;; 오히려 읽으면 오개념만 쌓일까봐 gg..
15/12/26 19:32
존재론과는 별개의 이야기입니다만, 본문의 논리실증주의나 콰인의 말을 보니 제가 요즘 생각하는 것과 어느 정도 통하는 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쉽게 서술(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은 1. 대부분의 경우 설명하는 사람 조차도 그 의미를 제대로 모르기에 쉽게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2. 그 이외의 경우에 있어서도 설명하는 것이 공감을 얻기 힘들거나 개인적 생각의 결과인 경우가 제일 빈번할겁니다. 이럴 경우 난해함은 그저 무가치할 뿐입니다. 그러나 쉽게 설명할 수 없는 모든 것이 무가치하진 않습니다. 정말 난해하게 설명하는 것 외에는 도리가 없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철학은 그런 경우가 많은 학문이죠. 대신 난해하다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쉽고 직관적으로 다시 서술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올바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때때론 난해함을 좇는 것이 아닌가 싶은 모습도 많죠. 많이 감추고, 꽁꽁 싸맬 수록 환호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그리고는 무슨 소리인지도 모를 소리에 의미를 부여하죠. 저는 이런 걸 '숨은 그림 찾기'라고 부릅니다. (넓은 의미에선 '지적 사기'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요) 영화 비평이나 리뷰를 보다보면 이런 '숨은 그림 찾기'가 오작동하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비평이 아무리 헛소리라고는 하지만 '그럴 듯한' 헛소리여야 하는데, 그저 헛소리인데도 불구하고 난해함으로 멀쩡한 듯이 위장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떻게 쓸 것인가를 고민하다보니 요즘엔 이런 생각을 하고 있네요;; 본문과 별 상관없는 댓글 죄송합니다;;;;
15/12/27 15:28
동의합니다. 저도 예전에는 글을 잘 쓴다고 할 때 반드시 수사학적인 요소가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도 어떤 글을 쓰느냐에 따라서 다르겠죠. 자신의 감정을 관찰하고 하루를 정리하는 일기를 쓰면서 반드시 논제와 근거로 이루어진 방식으로 글을 쓸 필요는 없겠지만, 논문을 쓰거나 특히 우리가 무언가를 탐구하기위한 학문적인 글을 쓸 때는 최대한 간명하면서도 논증적인 글을 써야할 겁니다.
그런 학문적 글쓰기에 한정한다면 제가 생각하기에 어려운 글이 허용되는 경우는, 오직 그것이 기존의 생각들과 너무 달라서 한번에 이해되기 어려울 정도로 독창적인 생각을 담고 있거나, 문장 하나하나가 긴 논의들을 밀도 있게 담고 있어서 빠르게 읽기 어려운 경우 정도밖에는 없다고 봅니다. 일전에 참고했던 글쓰기 책에서 재미있는 구절을 읽은 적 있었는데, 거기에서 저자는 학생들이 사상가들을 공부하면서 그들의 글쓰기 스타일을 따라하는데 그건 정말 멍청한 짓이라고, 왜냐하면 그 사상가들이 교과서에 실린 이유는 글을 그렇게 써서가 아니라 그렇게 난해하고 서투르게 썼음에도 불구하고 독창적인 생각을 했기 때문이라고, 그러니까 우리같은 사람들이 무작정 따라하다가는 평생 읽히지도 않은 글을 쓸 거라고요...크크크
15/12/27 15:36
실제로 그런 대립(분석철학vs대륙철학)이 유명하죠. 찾아보면 재미있는 농담도 많구요. 그렇지만 그런 구분법 자체가 사실 그렇게 실질적(substantial)이지도 않을 뿐더러 이제는 논의에 있어서도 서로 많은 교류를 합니다 크크
15/12/28 08:50
우와아아앙 정말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저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 논리실증주의를 살짝 접한 뒤로는 '그렇군 언어의 정리가 필수겠군.' 이라고 마음 편하게 고민하기를 멈추었는데, 그래도 이런 글을 읽는 것은 참 좋아합니다. 이런 글이 많아져야 자게가 더욱 풍성해지겠죠. 좋은 글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