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얼마 전에 알게 된 분의 딸이 자가 호흡이 되지 않아서 오늘 새벽에 응급실로 실려 갔다. 희귀병을 앓고 있는 그 아이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이가 아니다. 정확한 병명은 모르겠지만 올 해 12살인 아이는 시력이 없고 말을 못하고 스스로 음식물을 씹지 못한다. 뇌 발달이 거의 되지 않아서 한 살 수준의 행동을 하다 보니 대소변을 가리지 못해서 기저귀를 찬다. 다행이라고 한다면 그 병을 앓고 있는 아이들은 대개 걷지를 못한다는 데 그 아이는 어느 날부턴가 뒤뚱거리며 걸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혼자서 할 수 있는 걷기도 지능이 발달하지 않았고 시력이 없다 보니 가족의 도움이 필요하다. 보통 그 병에 걸린 아이들은 10년을 넘기지 못한다고 하는 데 12년을 살고 있다는 건 그만큼 아이를 향한 부모의 돌봄과 보살핌이 극진했던 것 같다.
2. 그 아이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마음이 복잡해졌다. 단지 아이가 불쌍하다, 가족들이 힘들겠다는 라는 생각 때문이 아니다. 물론 올 해 13살인 큰 딸아이는 조금 마음이 쓰였다. 그런 병을 안고 태어난 한 살 아래인 동생이 태어나서 3년 동안은 하루가 멀다 하고 응급실을 다녔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한 살 밖에 안 된 큰 딸은 부모의 돌봄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분으로부터 들은 바에 의하면 큰 딸아이는 친구가 거의 없고 친구들과의 관계를 잘 하지 못한다고 한다. 엄마에 대한 불만이 많지만 잘 표현하지 않는다고 한다. 부모가 집에 없을 때는 동생의 기저귀도 잘 갈아주고 돌본다는데 부모는 그런 큰 딸아이가 대견하기도 하지만 너무 안쓰럽다고 했다. 그 아이에게 동생은 어떤 존재일까 싶은 생각이 문득 든다...
3. 5년 전에 부모는 병을 앓고 있는 둘째가 떠날 빈자리를 대신하기 위해서 아들을 낳았다. 처음엔 그런 게 과연 옳은 건지 고민도 했지만 다섯 살이 된 아들을 보고 있으면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마음이 아픈 건 둘째의 모습이 막내에겐 너무나 이상하게 느껴져서 인지 누나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둘째의 얼굴은 (이런 표현을 쓰는 게 너무 미안하지만) 보통 사람의 얼굴처럼 보이지 않는다. 차라리 다운증후군은 그 아이에 비하면 양호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아이랑 외출을 하고 여행을 가면 주변의 시선 때문에 무척 불편하다고 한다. 누나를 보는 막내의 시선을 보고 있으면 혼을 낼 수도 없고 설명을 해주는 것도 힘들다고 한다. 아직 어린 막내가 누나의 그런 모습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건 어려울 거다. 막내가 둘째를 누나로 받아들이지 못한 지금, 둘째가 떠난다면 막내에게 둘째는 어떻게 기억될까...
4. 대체 인간은 뭘까 싶은 생각을 새삼스럽게 하게 된다. 희귀병을 앓고 있는 그분의 딸 앞에서 과연 종교는 무슨 대답을 할 수 있고, 철학은 뭐라 말 할 수 있을까. 그 아이 앞에서 문명의 언어들은 별로 의미가 없어 보인다. 그 어떤 힘도 영감도 도전도 감응도 주지 못할 것 같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삶은 의미가 있다, 삶은 의미가 없다, 신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아들을 보냈다, 명상을 통해서 마음에 안정을 찾아라, 인간은 다양하다, 차이가 생성을 만든다, 의미는 연기 된다’ 등등 이런 말들도 결국은 자신의 의지로 움직일 수 있거나 어느 정도 지능을 갖추고 있고 생각하는 힘이 있는 인간에게나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아이와 같은 존재들은 기존의 인간에 대한 인식을 흔들고 새로운 물음을 던지며 인간에 대한 생각을 확장하게도 한다. 허나, 정작 그 아이에게 세상의 그런 인식과 언어와 의미는 무용하지 않을까 싶다.
4-1. 사실 그 아이에겐 철학이나 종교의 언어 보다는 과학이 더 유용하고 절실 할거다. 아직까지는 그 병의 원인이나 치료법을 찾지 못했지만 언젠가는 그런 아이들을 치료할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물론 막대한 자본의 지원이 필요한 과학이 돈도 안 되는 그런 연구를 계속 할까는 싶지만 말이다. 더욱이 유전자 조작이 기술적으로 가능해진 현재, 애초에 그 싹을 잘라버릴 테니 얼마 후면 그런 아이들은 태어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인류에겐 축복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여하튼 인간은 생물학적 조건이 더 본질적이고 우선이라는 생각을 더 하게 된다.
5. 그분의 아이는 이번에 운이 좋아서 상태가 안정이 되도 이미 한계치를 넘어선 삶은 지속할 수 있을 만큼의 생의 에너지가 그리 많이 남아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 아이를 떠나보낸다면 부모의 심정은 다른 아이를 보내는 것과는 조금 다를 것 같다. 이미 오래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한편 담담하기도 할 거고, 오랫동안 무겁게 짓누르던 생의 무게를 덜어내는 것이라서 가벼워지기도 하겠지만 그 만큼 상처는 깊을 것이다. 마치 원죄처럼 부모는 아이에게 미안함과 죄책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는 둘째를 차별 없이 대하고 사랑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첫째가 소외감을 느낄 만큼 정서적·경제적 자원을 아낌없이 내어주었다. 내가 보기엔 자신들의 삶의 자원들을 당겨쓰는 것처럼 보였지만 아이를 돌보고 사랑하는 데 헌신적인 부부에겐 그 마저도 턱없이 모자른 듯 했다. 그만큼이면 됐다고, 이젠 덜 미안해하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분이 그걸 몰라서 여전히 미안해하고 안타까워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알기에 술 잔을 조금 더 나누는 걸로 대신했었다.
6. 그 작은 아이의 세상은 그리 길지 않은 시간에 다른 세계로 연결될 것이다. 그날이 언제 인지 알 수는 없지만 여린 숨을 몰아쉬며 견디고 있을 아이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세상의 언어와는 다른 언어를 가지고 있던 아이, 어찌 보면 태생적으로 세상과 불화일 수밖에 없는 아이였지만 그래도 부모로부터 수용되었던 아이였기에 덜 쓸쓸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 아이와 가족에게 조금 더 시간이 주어진다면 둘째가 언니와 막내와 깊은 감정을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특히 막내가 둘째 누나를 한껏 안아줄 수 있을 만큼 자랐을 때 떠났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그 아이와 가족에게 평화가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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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태연씨가 태양의 노래라는 뮤지컬을 한 적이 있습니다. 태연양이 중요한게 아니라, 불치병을 갖고 있는 태연양의 아버지가 했던 대사가 기억에 남습니다. '평범한 가정을 꿈꾸던 나에게, 신은 수 많은 사람들 중에서 하필 나에게... 왜 하필 나에게...'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분들도 막내도 마찬가지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합니다. 착착한 마음 달래기 어렵네요.
본문의 내용과 비슷한 케이스로...
특수교육을 전공하고 장애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학생의 형제들을 학교에서나 학교 밖에서 마주칠 때가 있는데요
그 형제들을 살펴보면 정말로 어른스러운 형제가 있기도 하지만 심하게 위축되어있는 어린아이같은 형제가 있기도 합니다.
특히 초등학교의 경우 학제가 길어서 장애학생과 그 형제가 같은 학교에 다니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아무래도 형제가 비장애인일 경우보다
부모로부터 받는 관심은 적고 기대는 커서, 어린 아이로써 감당하기 어려운 무거운 책임감에 짓눌려서 위축되어있는 경우가 많더군요
2문단 내용이 이와 비슷한 맥락이 아닌가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