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번주 시험 치시는 분들 시험치기 전에 나눠드린 전치사구나 관용어구 다시 한번 보시구요. 시험 잘 치시길 바랍니다.'
두달 남짓 다녔던 토익학원도 이제 끝나고 몇일 뒤 토익 시험만을 남겨둔 문돌이. 아직 문돌이에게서 취업에 대한 절박함이나 간절함은 찾아 보기 어렵다. 그저 막연히 '어떻게든 되겠지'라며 어찌보면 허황된 장밋빛 미래를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지 토익시험에 대한 부담감도 별로 없다. 두달 동안 학원을 다니면서 그래도 단어 외우기 숙제는 하루도 빠짐 없이 했기에 충분히 예상했던 결과가 나오리라 믿고 있다.
다만 등록할때 부터 꿈꿨던 학원에서의 핑크빛 로맨스를 결국 이루지 못함 아쉬움만 남는다. 학원 1층 정원에 마련된 실외 흡연장에서 우수에 젖은 눈빛으로 말*로 골드를 피던 단발머리 여학생에게 미친척 하고 들이대볼까도 고민 해봤다. 하지만 어차피 까일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힐끔힐끔 쳐다만 보고 만게 다였다. 아무튼 학원도 이제 끝났고 서면에도 당분간 나올일이 없을거 같아 서면이나 한바퀴 돌아볼 생각이다.
아직 5시도 안됐지만 불금이라서 그런지 서면에는 벌써부터 사람들이 북적인다. 무엇을 할까 고민하던 문돌이는 일단 밥을 먹기로 한다.
사실 문돌이는 혼자 밥 먹는거에 대하여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되려 별로 친하지도 않는 사람들과 앉아 대화를 이어 나가기 위해 딱히 궁금하지도 않은걸 물어보는 것 보단 차라리 편하게 혼자서 먹는게 더 좋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의 반응은 그런 문돌이를 별나다고 한다.
혼자 밥 먹으면 왕따 같지 않느니 혼자서 무슨 맛으로 밥을 먹느니하지만 개의치 않는다. 왕따처럼 보일까봐 혼자 밥 못먹는게 더 왕따 같고 혼자서 조용하고 평화롭게 먹는게 더 맛있다라고 반박해보지만 그래도 이해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인다. 그래서 문돌이는 혼자서 밥먹을때 반주도 곁들인다는건 차마 이야기 하지 못 한다. 진짜 이상하게 볼까봐...
뭘 먹어야 맛있는거 먹었다고 소문이 날까 고민하는 문돌이. '뜨끈한 국밥에 소주 한잔 먹을까? 얼큰한 짬뽕에 소주를 한잔 먹을까?'
한참을 고민하면서 배회하는 문돌이의 발이 새로 오픈한 스시집 앞에 멈춘다. 고급 스시집이 아닌 캐주얼한 느낌의 스시집. 앞에 내놓은 입간판을 보니 가격도 만원선이다. '그래 오늘은 초밥에 소주 한잔이다.'
가게로 들어가보니 오픈한지 얼마 안된 가게답게 무척이나 정갈하다. 새로 오픈한 집 그 특유의 냄새도 나고. 무척이나 상쾌한 분위기다.
'몇 분이세요?' 하는 질문에 무심한듯 쿨하게 검지손가락을 펴보이며 '한 명요' 라고 답하는 문돌이.
주방을 마주 보는 다찌에 앉아 초밥 1인분과 좋*데이 한병을 주문한다. 행여나 문돌이가 어색할까봐 초밥을 쥐던 주방장이 한마디 건낸다.
"요새는 혼자서 오시는 분들이 많더라구요"
"일본에서는 거의 혼자서 많이 먹더라구요"
"아 일본에서 좀 있으셨나봐요? 제가 일본에 갔을때...."
"아니요. 아직 여권도 없어요."
"아.. 네" 되려 주방장이 어색해진거 같다. 초밥을 쥐는 손놀림에서 미세한 흔들림이 느껴지는거 같다.
그렇게 둘 사이의 잠깐의 어색함이 지난 뒤 한 눈에도 탱글탱글한 초밥이 나왔다. 초밥은 8피스. 소주도 대충 8잔 나오니까
하나 먹고 한잔 먹고 하면 딱 떨어진다. 기분 좋게 초밥을 입에 넣는 문돌이. 역시 뷔페나 회전 초밥집에서 먹던 것들이랑은 차원이 다르다.
보통 초밥집도 이 정돈데 진짜 고급 초밥집은 무슨 맛일까 내심 궁금한 문돌이. 나중에 취직하면 그런곳에 꼭 가봐야지 하면서 다짐을 한다.
초밥 하나 먹고 소주 한잔 먹고 다시 초밥 하나 먹고 소주 한잔 먹고 초밥이 나온지 10분도 안됐는데 벌써 절반은 사라졌다.
주방장이 그런 문돌이를 보더니 오픈 기념이라며 빙긋이 웃으며 초밥 두어개를 더 내어준다. 그런 주방장의 친절함에 아까 어색하게 만든게
갑자기 미안해진다. 그래서 최대한 맛있게 먹어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와사비가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간장에 초밥을 약간 돌려 생선만 살짝 뭍히고 그대로 입에 넣는다. 신선한 재료의 몰캉몰캉한 식감에 밥 알 하나 하나 씹히는것 같은 쌀의 탱글함. 그리고 어느새 전해지는 와사비의 찡한 자극. 거기서 그대로 이어지는 차가운 소주 한잔, 이 순간만큼은 어느 누구 부럽지 않고 행복하다. 주방장도 문돌이가 먹는 모습에 내심 뿌듯한 모습이다. 그렇게 들어온지 30분도 지나기 전에 어느새 초밥들과 소주가 동 난다. 배도 빵빵하고 기분 좋은 취기도 올라오고 이제 나가서 뭐할까 고민하던 찰나...
하루종일 조용하던 전화기가 울린다. 전화기에 표시 되는 이름 '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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