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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15/10/08 22:17:04 |
Name |
yangjyess |
Subject |
[일반] 호구 아재 |
평범한 직장인 아재가 있었다.
혼자 사는 그는 퇴근 후 거리를 산책하는게 유일한 사생활이었는데
어느날 한 여성이 불한당으로 보이는 남자에게 쫓기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다급한 추격이라기보다는 여성의 뒤를 따르는 남자가 수상한 낌새가 보여 불안해진 여성이 걸음속도를 높이는 모양새였다.
조용이 지켜보던 아재는 불한당의 움직임이 노골적으로 여자와의 간격을 좁히는걸 확신하고 얼른 여자 옆에 다가가며 친근한척 말을 걸었다.
어쩌면 겉모습으로는 그 불한당과 아재는 별 차이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어쩐지 여자는 안심했고 불한당은 물러갔다.
서로를 소개한 그들은 다음날도 그 거리에서 만나자고 약속했다.
여자는 아무리 고마워도 아재는 아재였으니 데이트 신청이라면 사양이라는 입장을 밝혔으나
아재는 그런게 아니고 그냥 내가 매일 산책하는 거리에 당신이 한번 더 그 자리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고
여자는 그정도는 괜찮다고 승락했다.
다음날 둘은 벤치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자는 갓 20대가 된 나이였고 할머니와 둘이 살고 있었다.
아재는 혼자 사는 자신의 재미없는 삶에 대해 말했고 특별히 미화하거나 비관하는 말투는 아니었는데
여자는 기대 이상의 공감과 연민을 표시했다.
여자도 할머니와 함께 사는 이야기를 했고 여자의 옥탑방에 세 들어 사는 대학생에 대해 말했다.
여자는 그 대학생을 사랑한다고 했다.
대학생은 1년 정도 세를 살다가 취업을 위해 멀리 떠났고
대학생이 떠나기 하루 전날 여자는 눈물을 흘리며 고백을 했다.
난감해하던 대학생은 자신의 형편이 여자를 사귈 상황이 아니라 딱 1년만 기다려 달라고 했단다.
그래서 여자는 1년을 기다렸는데 그날이 바로 내일이란다.
대학생에게서 무슨 연락이 있을법 한데 감감무소식이라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것 같아 불안하고 속상하단다.
아재는 긍정적인 예상으로 여자를 격려했다.
내일 반드시 대학생이 찾아올 거라고.
다음날 대학생은 찾아오지 않았다.
깊은 슬픔에 빠진 여자를 아재는 위로해 주었고
그 후로 둘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처음에 아재는 여자에 대한 자신의 감정이 순수한 우정이라고 생각했으나 점점 이성에 대한 사랑으로 변해가는걸 느꼈고
그런 속내를 고백했을때 여자는 순간 놀라면서도 그동안 서로간에 사이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깊어졌다는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이내 그 둘은 미래를 계획하고 있었다.
집은 어떻게 할 것이며 할머니를 어떻게 모실 것이며 아재의 연봉과 할머니의 연금에 대해 이야기했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었지만 이유없이 앞날이 밝아 보였다.
그렇게 또 같이 산책을 하던 어느날 여자가 깜짝 놀라 멈춰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 어떤 청년이 있었다.
청년도 걸음을 멈추고 아재와 여자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아재의 가슴은 떨리기 시작했다.
"누굽니까?"
"그 사람이에요."
여자는 경련적으로 속삭이며 대답했다.
아재는 몸을 가누기 힘들었다.
청년이 여자의 이름을 부르며 청년이 아는 여자가 맞냐고 물었다.
그때의 그 비명소리란. 그녀는 얼마나 떨었던가. 아재의 손을 뿌리치고 청년을 향해 총알처럼 달려가는 모습이란!
그래도 여자는 청년의 품에 안기기 전에 갑자기 다시 몸을 돌려 아재에게 달려와
미처 정신을 차리지도 못한 아재를 얼싸안고 다시 청년에게 돌아가 그의 손을 잡고 끌어당겼다.
아재는 오랫동안 서서 사라져 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
얼마나 시간이 흘었을까, 궂은 하루였다.
빗방울이 아재의 창문을 우울하게 두들겼다.
방 안은 어두침침했다.
아재는 여자의 사과를 떠올렸다.
여자는 용서해 달라고 했다.
자기 자신도, 아재도 속였다고. 하지만 그 청년이 아재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다고.
'저희를 버리지 말아 주세요. 저의 영원한 친구, 오빠가 되어주세요. 저희는 결혼해요. 그 사람과 함께 아재를 찾아뵙고 싶어요. 그 사람을 좋아해 주실거죠, 그렇죠?'
×××
×××
×××
이상 도스토예프스키의 단편 '백야'의 줄거리 요약이었습니다.
뭔가 엄청난 감동인지 빡침인지 구분이 안되는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여운이 느껴지는 그런 소설이었습니다.
특히 마지막 한 단락은 줄거리 요약에 포함시키지 않고 반드시 그대로 옮겨적어 소개시켜드리고 싶습니다.
사실 이 한 단락을 옮기기 위해 여태 줄거리 요약을 했습니다.
나스첸카. 너는 내가 모욕의 응어리를 쌓아 두리라 생각하는가.
내가 너의 화사한 행복에 어두운 구름을 드리우게 할 것 같은가.
너를 비난해서 너의 심장에 우수의 칼을 꽂을 것 같은가.
너의 가슴이 비밀스러운 가책으로 고통받고 행복의 순간에도 우울하게 고동치도록 만들것 같은가.
너가 사랑하는 이와 함께 걸어갈 때
너의 검은 머리카락에 꽂힌 꽃들 중에서 단 한 송이라도 나로 인해 구겨져 버리게 할 것 같은가.
천만에.
너의 하늘이 청명하기를.
너의 미소가 밝고 평화롭기를.
행복과 기쁨의 순간에 축복이 너와 함께하기를.
너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득 찬 어느 외로운 가슴에 행복과 기쁨을 주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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