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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8/11 13:24
저도 보면서 이건 확실히 메시지가 있는 영화구나.
보고나서는 바로 딱 뭐라고 정의내리기에는 성급하다고 느꼈습니다. 천천히 곱씹어 볼 만한 영화에 대한 예의가 아니랄까나.
13/08/11 13:26
설정이 너무 엉성해서 몰입하는데 방해되더라구요. 눈이 녹고 있다는걸 남궁민수 말고 아무도 인지하지 못한다는것. 좁은 기차칸에서 윌포드를 왕으로 한 수직체제가 완성될 근거가 부족하다는것 등등..
13/08/11 13:39
윌포드는 왕뿐이 아니라 사회설계자이기도 하죠.
모든 사람들의 생명을 살려준 자이자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자이기도 한데 윌포드를 중싱으로 한 사회질서 확립은 당연하다고 보입니다.
13/08/11 13:44
저는 눈이 녹고안녹고는 별로 중요하게 보지 않아서인지 별로 신경안쓰였던것 같습니다. 어짜피 마지막에 나오는 장면이기도 하니 그전 까지는 아무 상관 없는 내용이기도 하고요..
사실 영화에 설명은 많이 부족한건 맞는데 그게 오히려 영화적 완성도를 높였다고 느껴졌습니다. 저도 어설픈것보다는 꽉짜여진 내러티브를 대부분 더 좋아하긴 합니다만 가끔 안그럴 때가 있는데 이번이 그런 경우 같습니다.
13/08/11 13:37
저는 만약 다크나이트만큼의 제작비가 있었다면....다크나이트를 넘는 걸작이 되었을지도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체적으로는 좋은데..자본력의 부족으로 중간중간 허접한게 보이긴 하죠. 봉감독이 이번 영화를 북미에서 성공시킨 후..한 2억불 투자받아서...대박 영화하나 찍었음 합니다.
13/08/11 13:41
근데 디스트릭트9보다 훨씬 예산이 많은 영화가 설국열차에요.
그걸 보면 꼭 이게 예산만의 문제는 아닌걸로 보이더라구요 전.
13/08/11 14:18
디스트릭트9은 적은예산으로 믿을수없을만큼 훌륭한 특수효과를 보여준것으로 유명한 영화죠 가격대비특수효과면에서는 세계최고수준이라... 거기에 비해 효율이 떨어지는건 어찌보면 당연한것 같습니가. 설국열차도 가격대비특수효과측면에서보면 세계최고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좋은효율을 보여준 수준에는 랭크된다고 봐요
13/08/11 13:40
설정을 인물의 감정으로 전이시켜야하는데 그 부분이 많이 취약한 영화에요.
그러다보니 결말에서 윌포드가 무슨말 하는지 도통 들리지를 않구요.
13/08/11 13:52
그러고 보니 감정이이할 대상이 있어야 하는데 그럴만한 캐릭터가 없긴 하네요.
저는 봉감독 영화에서 감정이입된적이 없어서 아마 그런 기대를 못해본것 같습니다. 그러고보니 플란더즈의개, 괴물, 살인의 추억, 마더 생각해보면 딱히 감정 이입해서 관람했던 영화가 아니었던것 같아요. 뭔가 특정 캐릭터에 감정이입 할라치면 엉뚱한 장면으로 맥을 끊어 감정이입을 못하는 느낌이랄까요. 특히 괴물때도 그런게 많았던것 같습니다.
13/08/11 13:57
저와 기대감은 달랐지만 완전히 같은 영화를 보신거 같네요!
의도적으로 감정이입을 거부하는 장면들을 영화에 많이 넣는 감독인데 살인의 추억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중생이 살해되면서 감정으로 후욱 빨려들어가잖아요. 그런데 갈수록 영화에서 그 장면들이 줄어들다가 마더에서 정점찍고 설국열차에서는 약간 삐뚫어진 느낌이 드네요.
13/08/11 13:55
저고 오늘 봤는데 마지막에 부품으로 이용되던 흑인 꼬마가 계속 생각났는데
뭔가 방글라데시 의류공장에서 일하는 아이가 떠올라서 이게 마음 아프더라구요 전 정말 재미있게 봤는데 동생은 별로라고 하는게 정말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더라고요
13/08/11 14:17
제가 이해력이 딸려서 그런거겠지만 딱 한장면 멍때린거 빼고는 재밌게 봤네요. 그 팔이 부숴진사람(앤드류였나요)의 아들인 앤디가 부품만드는곳에서 커티스에게 구원받았는데 거의 혼이 없는 사람처럼 멍하니 가만있다가 갑자기 엔진쪽으로 올라가는것은 좀 뜬금없었던 느낌. 이미 세뇌당했다는 뜻인건지;;
13/08/11 15:09
호불호.....
그러나 해외에서 "의미"있는 흥행을 거두지 못한다면 한국에서의 흥행이 마케팅이나 배급덕분이었다는것을 인정해야 할겁니다
13/08/11 15:43
크게 공감되네요 흥미로운 설정과 주제의식은 정말 좋았는데 주제가 이야기를 잡아먹은 느낌이었습다. 초반 물탱크 까지가 이야기이고 그후로는 주제에 대한 나열이라 생각합니다.
13/08/11 17:22
알레고리로만 작품을 가득 채우는 것과 자연스러운 내러티브가 상충적이라면 예술가는 하나의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다크나이트는 내러티브속에 주제의식을 담은 영화였고, 설국열차는 알레고리속에 주제의식을 담은 영화입니다. 다크나이트보다는 브이포벤데타나 판의 미로에서의 판타지세계와 비교될 영화죠.
그런점에서 좋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다크나이트처럼 내러티브속에 의미를 담는 영화는 봉준호보다는 박찬욱에게 바래야죠. 봉준호는 플랜다스의 개부터 꾸준히 작품 내적인 완결성 대신 알레고리를 선택해왔습니다.
13/08/11 21:36
알레고리 속에 주제의식은 담는 건 상관없지만 내러티브의 꼴은 멀쩡히 갖추어야죠. 내러티브가 영화에 있어서 회피할 수 없는 전제이며 한계인 이상 당연히 서사적 긴장은 유지를 해야합니다. 뭐, 소설이든 영화든 서사라는 형식적 전제에 저항하고 전회를 꾀하는 반례도 있습니다만 적어도 설국열차는 그러한 작품들과는 거리가 심하게 머니까요. 참으로 교과서적이지요. 아니, 교과서적이고 뭐고를 떠나 영화 내에서 그리 논할만한 깜냥이 되는 걸 단 하나도 찾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마지막 순간의 윌포드/길리엄이나 남궁민수 등을 보면 알 수 있듯 알레고리에 담긴 주제의식과 내러티브 사이의 접점이 없는 것도 아니거든요. 해당 캐릭터들은 알레고리 차원이 아니라 내러티브 차원에서 역할이 있습니다. 즉, 해당 캐릭터가 표방하는 바는, 내러티브 차원에대한 이해 없이는 주제의식으로 온전히 연결되기 어려우니까요. 따라서 이 둘을 나눠놓고 보는 건 불가능합니다. 나누려거든 주제의식조차 포기해야죠. 그리고 매트릭스 1과 2의 차이가 여기에 있습니다. 모리님께서 말씀하시는 바는 매트릭스 1에 해당할만한 이야기 같지만, 설국열차는 아무리 긍정적으로 보고 싶어도 매트릭스 2에 가까워뵈는군요.
13/08/11 21:59
가장 기초적인부분에서 팟저님과 저의 생각이 갈리는것 같습니다. 전 예술에 반드시 지켜야할 가치는 없으며 기존의 것을 포기함으로써 얻어지는 가치가 있다면 무엇이든 포기할수 있다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브이포벤데타의 엉성한 내러티브에도 불구하고 좋은 영화라구 생각하구요.
알레고리의 해석은 작품 안에서 이루어 져야한다면 설국열차는 실패한게 분명하지만 현실이라는 거대한 서사를 믿고 시나 단편소설을 쓰듯 영화를 만들 수도 있다고 봅니다. 황병승의 남장여자시코쿠나 김연수의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가지 즐거움처럼요. 모두가 서정주처럼 시를 쓸필요도 이문열처럼 쓸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13/08/11 22:28
브이 포 벤데타는 안 봐서 모르겠습니다.
모두가 서정주나 이문열처럼 시를 쓸 이유는 없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그런 점에서 근래 이상문학상을 받은 김애란의 작품은 저도 긍정하고(긍정적으로 봤다가 아니라 그러한 시도가 가능하다는 걸 시인한다는 말입니다), 인문철학적 저술을 소설이라고 펴내는 파스칼 키냐르 등도 부정하지 않습니다(여담입니다만, 좀 더 논지를 보강하기 위해, 하다 못해 관점에 따라 철학자 김영민의 동무론과 같은 저작을 소설이라 부르는 사람이 있다면 저는 그 역시 그럴만하다고 생각할 겁니다.). 문제는 해당 작품들의 경우 분명 기존 문학적 형식, 교과서적 서사에 대한 형식적 전회가 작품 자체에서 드러나고 있고 그에 대한 주장인 동시에 근거로서 작품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기존 문학적 형식을 따르지 않고도 보는 이들로 하여금 미적 쾌감을 주며, 기존 형식에서 벗어난 영역이라고 할지언정 기존 문학과는 다른 방식으로 형식적 완결성을 갖는다는 것이죠. 허나 설국열차는 그렇지 않죠. 아니, 형식적 완성을 못했다는 게 아니라 기존 영화적 관습에 대한 형식적 전복은 영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아니, 애초에 형식적 고찰조차 없죠. 영화의 서사는 지극히 도식적인 대중영화의 흐름을 따라갑니다. 그 때문에 설국열차는 님께서 언급하신, [현실이라는 거대한 서사를 믿고 시나 단편소설을 쓰듯 만든 영화]에 포괄할 수 없다고 생각하구요. 그런 시도가 엿보였어도 작품을 통해 제시된 바가 미진하다면 비판할 판에, 그런 시도조차 하지 않은 작품에 어떻게 그러한 수사를 붙일 수 있겠습니까.
13/08/11 23:16
서사의 포기나 전복이 아니니까요. 방점을 서사에 두지 않는다는겁니다. 김애란이 아니라 김연수를 예로 든것도 그 차이때문이었습니다. 알레고리를 서사를 빛나게 하기위해서 배치하는게 아니라 알레고리를 위해 서사가 존재하는거고 그렇기 때문에 도식적일수록 좋습니다. 흰색도화지가 그림을 빛낼수 있는것처럼요.
그렇다면 형식에 대한 순수한 고집이 작품내에 드러났는가 하면 아니라고 봅니다. 왜 그러지 않았는가하면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요. 말씀하신 예와는 다르게 설국의 접근 방식은 완전히 새로운 접근도 아닐뿐더러 기존 봉의 영화스타일이기도 했습니다. 살추에서도 마더에서도 뿌리기만하고 회수하지 않은 알레고리는 무지많습니다. 설국에 대한 지적은 살추나 마더에도 그대로 통용된다는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국만 유독 평이 갈리는 이유는 기존의 작품이 현실에 기반해 있었기에 그 빈공간을 관객이 현실의 연결고리로 거부감 없이 매꾸었다면 이번 작품은 상상의 산물, 마치 판의 미로의 환타지세계와 같은,이기에 평이 갈리는것 같구요. 아무래도 기존작보다는 이질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겠지만 이질감 대신 얻는 알레고리의 재미가 있죠. 그럼 실패는 아니라고 봅니다. 더욱이 브이포벤데타같은 해외 사례가 이미 있는데 형식의 인정을 위해 싸울필요는 없죠. 결국 저와 팟저님이 설국을 평가하는데 평이 갈리는 지점은 내러티브의 미완성이 다른 것을 위한 선택이었는가 ? 아니면 실패인가에서 갈린다고 보이네요. 저는 두시간의 제약속에 하고싶은말을 더 끌고 나갈것인가 작품내 완결성을 추구할것 인가는 감독의 선택이라고 봅니다. 존중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구요. 시대를 뛰어넘는 명작이 될수있을까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작품내적완결성을 포기한 대신에 시대성에 묶여버렸으니까요. 다만 그럼으로써 의도적인듯한 영화와의 거리를 통해 얻게되는 즐거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13/08/11 23:34
예, 선택의 문제지요. 그리고 그 선택에 따라 나타나는 서사 상의 미진한 부분은 비판 앞에서 비호될 수 없을 거구요. 알레고리를 위해 도식적인 서사를 끌어올 수 있다는 걸 부정한 게 아닙니다. 근데 그 도식적인 서사를 작품 속에서 제대로 끝맺어야하죠. 그렇지 못하면 비판받을 수밖에 없구요. 저는 두 시간이라는 제약이 이러한 영화를 상정하기 불가능할만치 힘겨운 조건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상업영화로서 투자된 자본 앞에서 실현하기 어려운 문제가 될 수야 있겠습니다만만, 그조차 극복한 사례는 드물긴해도 찾을 수 있구요(또한 이 부분은 지금 투자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지금 예술 작품으로서 설국열차에 대해 논하고 있으니 굳이 언급할만한 문제는 아닌 거 같네요.).
13/08/11 23:39
사실 전 알레고리를 주로 하며 내적완결성을 잡을수는 없다고 봅니다. 알레고리를 쓰는 이유자체가 말 안해줄거야인데요. 다크나이트나 매트릭스는 적절한 예가 아니죠. 그건 분명 서사가 주였으니까요.
13/08/11 23:49
아뇨, 다크나이트는 내러티브 차원은 물론 알레고리 차원에서의 주제의식도 꾸역꾸역 집어넣어둔 영화입니다. 그리고 앞서 밝힌 바, 설국열차의 알레고리 역시 내러티브에 대한 이해없이는 성립될 수가 없구요. 설국열차의 알레고리가 힘을 잃는 순간은, 그 알레고리가 내러티브에 기반하지 않으면 주제의식까지 나아가지 못하면서도 그 내러티브가 완성도를 같지 못한다는 겁니다. 알레고리를 설득할 수준이면 된다구요? 예, 그런데 서사는 완성해야죠. 아바타가 3D의 화려한 연출과 영상미로 승부하는 영화인 건 맞고 그 서사는 헐리웃 영화에서 지금까지 밟아온 도식적인 구조를 그대로 따라갑니다만, 최소한 아바타는 그 도식적인 흐름이나마 영화 내에서 끝까지 다루고 있습니다.
13/08/12 00:04
다크나이트의 경우는 결코 알레고리의 배치자체가 주가 아니죠. 올드보이에서 박찬욱이 보여준 그런 식입니다. 신형철의 평론처럼 작품내의 알레고리를 가지고 숨은 뜻을 살필수는 있지만 작품자체가 알레고리는 아닙니다.
그에 반해 봉준호스타일은 무한정으로 담는 스타일이죠. 현실에 대한 이해만으로 해석될수 있다고 믿고, 노골적으로 힌트를 마구 드러내구요. 알레고리의 해석만으로 주제의식에 닿을 수 있습니다.
13/08/12 01:16
글쎄... 봉준호고 박찬욱이고 크리스토퍼 놀란이고 대중영화의 형식, 서사적 구조를 전제로 용인하고 작품을 만드는 감독들인데 그들 사이에서 알레고리와 내러티브의 비중간 차이를 스타일의 본질적 차이로 환원하는 게 온당할 것 같진 않습니다. 무엇보다 지금 말하고 있는 봉준호의 영화인 살인의 추억 역시 내적 완결성이 없는 서사는 아니었는데요.
13/08/11 22:04
아니, 잘 보고 잘 이해하는 사람이 많은 상황에서,
이건 이래서 저렇고 저렇고 해봐야, 제대로 현실을 설명하고 있는게 아닌거죠. 어쨌거나, 흥행에 성공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영화에서 자기 나름의 이해를 건졌죠. 전체 관람인원의 10%만 했다고 해도 수십만명인걸요.
13/08/11 23:00
그런데 솔직히 내러티브가 그렇게 엉망이었나요? 저는 훌륭하고 잘 짜여진 내러티브는 아닐지언정 허접한 수준이라고 느껴지진 않았기때문이 약간 의아합니다.
이정도면 특별히 억지쓰지 않아도 관객이 충분히 여백을 채워가며 즐길만한 수준이지 설국열차라는 영화가 서사적 개연성이 망가져있다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애초에 봉감독의 영화는 주제의식이란게 뚜렷하게 살아있는적이 제 기억엔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살인의 추억, 과물, 마더에서 꽉짜여진 내러티브와 맞물려 잘 살아난 주제의식은 뭐가 있었나요? 그럼에도 그의 영화가 엉망이었던적은 없었던것 같습니다, 사실 내러티브는 살인의 추억이나 과물이 좀더 낫긴하지만 그건 영화의 내적서사의 완성도의 차이라기보다는 한국적인 정서의도움을 받아 취약한 내러티브를 보충되었던 점또한 상당히 컸다고 생각합니다. 배트맨과 조커를 전혀모르는 사람은 다크나이트를 봤을때 평가가 얼마나 갈리게 될까요? 물론 원체 잘만든 영화다보니 그렇다고해도 훌륭한 영화임에는 틀림없지만 내적 완성도를 바라보는 관점은 다소 달라질겁니다.
13/08/11 23:32
동의하구요. 아무래도 좋은 예술이란 내적완결성을 지녀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으니까 봉준호에 대한 기대감과 맞물려 이렇게 평이 갈리는듯 합니다.
13/08/11 23:41
내적 완결성과 무관한 영역에서 좋은 서사 예술을 논한다는 것이 얼마나 의미를 가질지 모르겠네요. 내적 완결성에서 고개를 돌리는 순간 작품에 대한 평가는 평가가 아니라 일개 감상문이 되어버리며, 그 사이에서 수준을 가늠할 기준은 죄 사라집니다. 만약 이러한 말씀을 하는 거라면 전 그조차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그리 말을 내뱉는 순간 '좋은 예술'이란 개념은 그야말로 공중에 산산히 흩어질 수밖에 없지요.
13/08/11 23:49
예술은 예술이지 서사예술이란건 없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예술을 구분짓는데는 기존의 방식이 도움이 될것이며 기존의 예술에서 무엇인가를 빼낸 대신 무엇가를 얻었는지에 대한 판단만으로 좋은 예술의 개념은 유지될 수 있다고 봅니다.
봉이 이상이라고 말하는건 아니지만 이상의 시는 그 당시 시점으로 보면 좋은시와 아주 거리가 멀며 평론가들에게 엄청나게 까였지만 시인들에게선 평가가 대단했습니다. 그 차이는 얼마나 기존의 것들을 무가치하게 버릴 수 있냐의 차이인것 같네요.
13/08/11 23:53
그럼 디워도 한국의 현실을 베이스로 깔고 보면 우리 민족의 자부심을 느낄 사람이 있다면 좋은 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겠군요. 기존의 방식이요? 예술을 평하는 방식의 가장 근본된 내적 완결성을 부정하면서 어떻게 기존의 방식은 답습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굳이 서사 예술이란 표현을 쓴 이유는, 다른 예술은 다를 거란 말이 아니라 제가 상대적으로 그외 다른 예술에 대해 떠들만큼 잘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13/08/11 23:58
기존명작의 장점과 디워의 장점은 상충되지 않기에 실패했다고 볼수 있지안 설국의 장점은 상충되는 것들을 버림으로써 얻게된거라 봅니다. 다른거죠.
13/08/12 00:07
기존 명작의 장점과 설국 열차의 장점이 저는 전-혀 상충된다고 보지 않습니다. 오만 알레고리로 뒤얽힌 어슐라 르귄읜 어스시 연작은 그 알레고리에 대한 반대급부로 서사적 완결성이 결핍되어 있던가요? 르귄의 어스시 연작 갖는 특유의 신화적 서사가 이야기 자체만으로 미적 쾌감을 주지 않는다는 건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소설로서 내적 완결성을 결핍하고 있진 않거든요?
13/08/12 00:14
읽어보지 않아 모르겠습니다. 다만 최인훈의 태풍은 그러하죠. 순수하게 작품 내적으로만 보면 설국열차가 가지는 단점 고스란히 가지고 있죠. 그 광장을 쓸수 있는 사람도요. 이쯤되면 선택이란 생각을 안하는게 이상한거죠.
13/08/12 00:20
최인훈의 광장이고 태풍이고 종결부에 이르러선 극적 긴장을 잃어 비판의 여지가 있지요. 나중에 가선 관념들의 키배 현장으로 변하는 이청준 당신들의 천국도 마찬가지구요.
13/08/12 00:04
예, 그런데 이상은 당대 시에 대한 형식적 부정을 의도했고 그걸 시를 통해 구현했지요. 그런데 설국 열차는 그렇지 않습니다. 영화란 매체에 대한 형식적 부정을, 제가 장담하건데 봉준호는 설국열차를 만드는 도중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을 겁니다.
저는 3D의 화려한 기술력이나 영상미로 승부하는 아바타나, 간지 폭풍의 분위기와 미쟝센으로 승부해보려는 달콤한 인생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서사외적인 영역에서 선사할 수 있는 미적 쾌감? 긍정합니다. 그리고 저 영화들은 분명 자신들이 호소하려는 영역을 구현하기 위해 필요한, 아주 통속적인 형태의 서사라고 할지언정, 충족합니다. 전 그래서 이 영화들을 비판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설국열차가 가진 알레고리를 온전히 다루기 위해선 아바타나 달콤한 인생 같은 통속적인 서사로는 안 된다구요? 그래서 서사에 실리는 무게가 저 영화들보다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구요? 그건 비평하는 입장에서 신경 쓸 게 못되죠. 대체 왜 그런 것까지 신경을 써줘야합니까. 어떻게 자기 좋을대로 단 것만 취할 수 있나요? 알레고리를 위해 서사를 수단으로 동원했다고 하면 그걸로 끝입니까? 그걸 영화 안에서 책임을 져야죠.
13/08/12 00:11
이상이 단 한번이라도 형식을 염두에 뒀을지는 의문입니다. 형식을 증명하기 위해 그렇게 쓴게 아니라 그렇게 쓰는게 좋고 맞는거같으니까 자기가 하고 싶은말을 그런 형식으로 쓴거죠.
비평이 비평을 위한 비평이 아니라 진짜 예술을 평가하기 위해서라면 기존문법으로만 바라볼게 아니라 다른 문법의 장단과 잃은것과 얻은것에 대한 고려를 당연히 해야죠. 특히 그게 새로운 시도도 아닐뿐더러 이미 대중영화에서 시도됬던 문법이라면 더욱더요.
13/08/12 00:21
당대에 이상은 형식적 고민했습니다. 또한 이상은 1930년대 비평가 계열에서 별로 비판받지 않았습니다(당대와 후대 서정시를 지향하던 계열이나 후대의 유종호와 같은 평론가에게서 비판을 받았죠.). 되려 이상을 거부한 건 대중들이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문에 연재를 계속할 수 있었던 건 이상의 새로운 형식적 시도를 반긴 문인과 평론가 계열 덕분이었죠.
13/08/12 00:36
말씀하시기로는, 설국열차가 서사가 정말 형편없다고 생각하시는것 같습니다.
저는 설국열차를 작품전체로 봤을땐 최고수준, 내러티브는 상급은 아니라도 보통이상은 되는 괜찮은 수준으로 봤습니다. 팟저님은 작품전체적인 평가는 말씀을 안하셔서 잘모르겠고,서사적 개연성은 수준미달의 형편없는 수준으로 보시는것 같은데 디워와 비교될만큼 서사적 측면을 말아먹었다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아서요.
13/08/12 00:40
음, 디워와 비교하는 게 아니라, "예술에 있어서 내적 완결성이 단지 시대에 따라 상대적인 보편적 경향이라고 말하면 그 순간, 디워도 비호할 수 있다"란 이야기였습니다. 제가 지적하려하는 건, 서사적으로 영화의 내적 완결성이 미진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균열이 한 영화에 대한 평이 극단적으로 나뉠만치, 그리고 그 양상이 보편적으로 드러날만치 뚜렷하기에 다른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비판들이 나오는 이유라는 것이구요.
제가 봉준호 영화를 플란더스의 개, 살인의 추억, 괴물 이 셋에 설국열차까지 넷을 봤는데요. 영화를 보면서든 보고 난 후 지인들과 이야기를 하면서든 살인의 추억 다음으로 재미있긴 했습니다. 다만 영화를 통해 궁글려볼 생각거리와 달리, 하나의 작품 속에서 흠결없는 완성도를 놓고 말한다면(그리고 내적 완결성이란 게 특정 작품을 평하면서 말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기준이라는 걸 감안한다면) 그리 높이 평가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정도의 입장입니다.
13/08/12 00:53
서사적 미진함이 호불호를 갈리게하는 원흉이라는 말씀이시군요. 그건 맞는 분석인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영화에서 이야기를 중시하는 경향이 좀 두드러지는데, 그래서 개봉전의 평가를 보면 그래서 외국평론가들은 호평이 많고, 한국평론가들은 흥행할 작품이라고 말하길 꺼려했던것 같습니다. 대체로 해외시장은 울나라사람들보다는 내러티브에 좀더 관대한 경향이 있으니 이번엔 해외에서도 제대로 흥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13/08/12 01:26
음... 영화는 모르겠지만 한국 사람들이 다른 나라에 비해 서사물에서 '이야기'를 중시한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당장 장르문학 시장만 들여다봐도, 서사를 중시하는 영미권에 비해 한국 판타지, 무협들은 캐릭터성을 굉장히 중시하는 양상을 보이죠.
13/08/12 01:58
물론 영화한정으로 드리는 말씀입니다. 우리나라 영화시장의 특수성이죠.
요즘은 그래도 예전보다는 좀 달라진듯 합니다만 다른게 아무리 괜찮아도 일단 이야기가 안되면 관객들이 외면하는 경향이 좀 쎄죠. 우리나라에서는 쟝르영화가 별 재미를 못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13/08/11 22:57
애당초 길리엄의 희생이 윌포드와의 합의 하에서 이루어졌느냐가 중요할 것 같은데요. 1984에서처럼 무산계급에만 희망이 있다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전개하자면 무산계급에만 존재하는 희망도 윌포드가 만들어낸 것인데..
13/08/11 23:20
음... 저는 길리엄과 윌포드의 결탁은 그 길리엄의 희생 이후에 만들어졌다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 전에는 윌포드는 물론, 앞칸이든 뒷칸이든 다들 뭐가뭔지 모를 혼란스런 상황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윌포드와 길리엄이 공모를 할만한 이유도 없고 상항도 아니었겠죠. 인류가 멸망하고 열차가 처음 달리기 시작했을때는 꼬리칸의 아비규환은 아니었겠지마 앞칸도 혼란이 적지 않았을거라 생각되는게, 당장 내 친구 가족들중 상당수는 죽어 없어진 상태에서 기차에 타서 목숨이나마 건진 상황인데 일등칸에 탄들 행복했을리도 없으며 좁은 공간에 갇혀 미래를 기약할수 엇는 좌절감에 실성한 사람도 여럿나왔을겁니다. 그리고 일을 해야 먹고살수있는 무산계급은 설국열차에는 없습니다. 꼬리칸은 무산계급 즉 프롤레타리아들이 결코 아닙니다. 사실 노동이라 할만한게 서비스업정도만 남아있는데다가 인류가 멸종했는데 돈과 재산이 무슨 소용있겠어요. 설국열차는 노동도 없고 재산도 없는 유산/무산계급의 의미가 없는 세상입니다. 단지 처음탔을때의 좌석만이 신분을 결정하고, 사실상의 진정한 노동자는 윌포드와 엔진부속이 된 아이들 뿐이죠.
13/08/25 12:08
좋은 글에 추천드리고 갑니다.
저는 영화를 보면서 감독이 의도적으로 감정이입을 철저히 배제하고 굉장히 냉정하게 가려고 애썼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히 '바라보기' 를 유지하고 있다고 해야할지..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치 인물들 하나하나가 단지 열차의 부속품에 불과하다는 듯이 말이죠. 그래서 더욱 비극적으로 느껴졌던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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