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이미 퍼거슨 감독과 관련된 이야기는 엄청나게 나왔지만 맨유 측에서 이제 내일부터 정말 새로운 시대라고 홍보도 하고 있고, 자게글도 좀 뜸해서 써봅니다.
맨유 경기를 10년 정도 봐온 만큼 퍼거슨 감독에 대한 추억은 물론 정말 많습니다. 그런데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머리가 크면서 '축구' 감독이 아니라 축구 '감독'으로서의 퍼거슨 감독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았던 적이 있고, 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10-11 시즌이 시작되고 얼마 안되어 맨유팬들에게 정말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합니다. 바로 웨인 루니의 이적 요청 파동이었죠.
09-10 시즌 호날두가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맨유가 강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던 가장 큰 이유는 루니의 원톱으로서의 대성공이었습니다. 호날두가 떠났는데 대체 누가 그만큼 골을 넣어줄까라는 질문에 대해 루니는 완벽한 답을 해주었습니다. 특히 칼링컵 결승과 밀란과의 챔피언스리그 16강은 그 정점이었죠. 칼링컵 결승에서 루니는 부상 때문에 선발 라인업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결국 헤딩으로 결승골을 만들어냈고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는 산시로 원정에서 2골을 넣으면서 승리를 견인했으며, 홈에서도 2골을 넣으면서 밀란을 완파하는 데 1등 공신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분위기를 몰아 PFA 올해의 선수상까지 수상했구요. 그러나 루니는 이어지는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 뮌헨과의 경기 막판 부상을 당했고, 덕분에 리그 타이틀이 걸려있던 첼시전, 블랙번전에 결장했고, 챔스 8강 2차전에서도 다리를 절면서 전반 3:1 리드를 이끌었음에도 하파엘의 퇴장이 야기한 탈락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그 경기는 유독 기억에 남는데, 당시 루니가 경기 중 다리를 절면서 최대한 움직이지 않으려고 자꾸 피치에 서 있던 게 참 짠하더군요. 상상치도 못했던 루니의 등장 때문인지 뮌헨 수비진은 순식간에 완전히 무너져버렸고, 특히 깁슨이 공을 몰고 오는데도 뮌헨 수비진이 루니만 막고 있다가 중거리를 허용했던 첫 골 장면에서 그 존재감은 정말 돋보였습니다.
마무리는 아쉬웠지만 이렇게 09-10 시즌을 겪으면서 루니는 언터쳐블한 입지를 갖게 되었죠. 그런데 그 루니가 이적 요청을 한 겁니다. 그것도 다른 클럽도 아닌 맨체스터 시티로.
맨유로서는 정말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거액의 이적료를 챙겼음에도 어쨌건 원치 않게 호날두를 레알 마드리드로 보내면서 클럽의 이미지에 손상이 가해졌고, 첼시에게 리그 타이틀을 넘겨줬으며 바로 옆에서 맨시티가 엄청난 투자를 하면서 맨유의 입지를 흔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팀의 에이스이자 상징인 선수를 맨시티에 내준다는 건 단순한 선수 이적 차원의 일이 아니었죠. 이는 맨유의 헤게모니가 흔들릴 수 있는 중요한 상황이었고, 이에 걸맞게 루머가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되었는데 이를 진화하기 위해 퍼거슨 감독은 직접 현 상황에 대한 긴 인터뷰를 하게 됩니다.
당시 제가 번역했던 인터뷰를 싣겠습니다. 원문 출처는 맨유 공홈입니다.
"To maintain the success at any football club is not a certainty, i.e. I always believe a four-year cycle is probably the most you can achieve in terms of success. Very few teams can create more than that four-year cycle. Last season we almost did it, we were one point short of winning the league for a record fourth time.
"그 어떤 축구클럽이건 성공을 유지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전 언제나 4년 정도를 성공의 주기로 생각해왔구요. 정말 소수의 팀만이 4년 이상 전성기를 유지할 수 있죠. 우린 지난 시즌 리그 4연패에 도달할 뻔 했으나 승점 1점 차이로 아깝게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We realised that to maintain that high consistency of being there challenging we had to inject youth into the club and we’ve been doing it for the last three or four years. We realised some years ago that Giggs, Scholes and Neville were never going to last forever and our policy is therefore to develop players within the club. We had a player that once said to me Rooney and Ronaldo weren’t good enough. Can you believe that? He actually said they weren’t good enough and he wasn’t prepared to wait until they were. That’s what happens, that’s the problem with potential – people don’t identify potential, they’re very poor at it. I’ve identified it all my life within young people – I know potential, I know how it can be developed and I know how to have faith in it - young people surprise you when you give them an opportunity. And that’s what this club is about. So when you see Manchester United at the moment with all these young players, you can’t see Manchester United three years ahead because you’re not thinking about that.
"우린 경쟁력 있는 팀을 유지하기 위해 유스를 키워야 한다는 것을 알았고 우린 그것에 지난 3~4년간 중점을 둬왔습니다. 우린 몇년 전 긱스, 스콜스, 네빌 같은 선수들이 영원히 뛰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이에 따라 우리는 클럽 내에서 선수들을 키워내는 정책을 시행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선수가 나에게 루니와 호날두로는 우승할 수 없다고 말한 적도 있습니다. 믿어지십니까? 그는 루니와 호날두로는 충분치 않으며 그들이 성장할 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바로 이게 문제의 발단이 되는 경우가 많죠. 사람들은 어린 선수들의 포텐셜을 잘 알아보지 못합니다. 하지만 전 제 커리어 동안 선수들의 포텐셜을 잘 파악해냈었고, 그들을 어떻게 성장시켜야 하는지도 알고 있고, 그들에게 어떻게 믿음을 주는 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기회를 줬을 때 그들은 당신을 놀라게 할만한 퍼포먼스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것이 클럽이죠. 당신이 지금 어린 선수들로 가득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실망스럽게 보고 있다면, 당신은 3년 후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어떨 지는 짐작도 못할겁니다. 당신은 팀의 미래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죠."
"We will invest in players when the time is ready. This summer wasn’t the right time as far as I was concerned; there was no value for me. There was one player who we would have liked to have got but he chose another club. I don’t think he ever wanted to come to England anyway. Some players don’t want to leave their country, it’s a fact of life, some players are happy in their own country. Some players are happy to leave and Manchester United is always a big attraction for any player. If they don’t want to leave their country then we forget about it.
"우린 어린 선수들이 준비되었을 때 본격적으로 이적시장에 뛰어들껍니다. 이번 여름은 제가 생각하기에 적절한 시기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영입하기를 원했지만 다른 클럽으로 간 선수가 1명 있기는 하지만, 난 그가 잉글랜드로 올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어떤 선수들은 조국을 떠나고 싶어하지 않기도 하죠. 이건 축구를 떠나서 삶의 문제고 어떤 선수들은 그들의 조국에서 행복해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어떤 선수들은 기꺼이 조국을 떠나기도 하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그 어떤 선수에게도 항상 매력적인 클럽이었습니다. 다만 그들의 조국을 떠나고 싶어하지 않을 때 우린 그 선수에 대해 관심을 접는거죠."
"In terms of the future of Manchester United there are a lot of things in my favour – history, the respect we have from people – if I told you how many agents phone my secretary every week about players who would love to play for us - and I don’t just mean run of the mill players, I’m talking about players at almost every club in the world - it would amaze you. It’s because this club still has that fantastic romance and respect from everyone.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미래에 대한 관점에서 볼 때, 좋은 전망이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존경을 받죠. 만약 내가 당신에게 내 비서가 매주 얼마나 많이 맨유에서 뛰기를 원하는 선수들의 에이전트에게 전화를 받는 지를 얘기해준다면 당신은 깜짝 놀랄겁니다. 여기서의 선수들이란 단지 평범한 선수들을 얘기하는게 아니에요. 거의 세계 모든 클럽의 선수들에 대해 얘기하는겁니다. 이 클럽이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로망이기 때문이죠."
"Sometimes you look in a field and you see a cow and you think it’s a better cow than the one you’ve got in your own field. It’s a fact. But it never really works out that way. It’s probably the same cow which is only as good as your own cow. We have to deal with that – some players like to think that it’s a better world somewhere else, it never really works like that.
"가끔 남의 떡이 커보일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는 종종 있죠. 그러나 그게 꼭 사실이진 않습니다. 상대가 가진 것은 사실 나와 큰 차이가 없을 때가 많습니다. 어떤 선수들은 다른 곳에 좀 더 좋은 클럽이 있을거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꼭 사실이진 않죠."
"As I said, three Premier League titles in a row is fantastic and we were within one point of a record fourth. It didn’t happen for us and we didn’t like that and we want to do something about it. We’ll be okay – I’ve got every confidence in that. We have a structure at the club which is good, we have the right staff, the right manager, the right chief executive, he’s a brilliant man. There’s nothing wrong with Manchester United, not a thing wrong with it. So we’ll carry on."
"프리미어리그 3연속 우승은 멋진 일이었고 우린 승점 1점만 추가했다면 4연속 우승을 달성했을 겁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었고, 물론 우린 그것에 대해 실망스럽습니다. 우린 야망이 없는게 아니라 우승에 실패했다는 사실에 대해 뭔가 조치를 취하기를 원합니다. 우린 괜찮을겁니다. 확신하고 있습니다. 우린 훌륭한 클럽 구조를 가지고 있고, 좋은 스태프, 좋은 매니저, 좋은 사장이 있습니다. 데이비드 길, 그는 멋진 사람이에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잘못된 건 없습니다. 단 한 가지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지금처럼 나아갈겁니다."
루니가 당시 이적을 요청하면서 표면적으로 든 이유는 클럽에게 야망이 부족하다는 것이었고, 이와 더불어 자신의 주급 인상과 스타 플레이어 영입을 요구했습니다. 바꿔 말하면, '나는 지금 이 선수들은 수준 떨어져서 같이 못 뛰겠다.' 이런 소리기도 하죠. 여기에 대해 맨유측에서 가만히 있었다면 맨유는 루니 말대로 '야망이 없는 클럽'으로 낙인 찍힐 수도 있었죠. 그리고 이 때문에 퍼거슨 감독이 이례적으로 클럽 운영에 대해 전체적인 생각을 밝힌 것으로 보입니다.
저도 사실은 사건 당시에 꽤나 불안했습니다. 루니의 거취와 그 괘씸함을 떠나서 스탐, 네빌, 스콜스, 로이킨, 베컴, 반니스텔루이, 슈마이켈, 긱스 등 스타플레이어가 즐비하던 맨유가 어느덧 루니 말고는 세계적으로 내세울 선수가 없는, 적어도 네임밸류는 예전만 못한 팀이 되어가고 있었고 특히 08-09 시즌이 끝나고 있었던 호날두와 테베즈의 이탈은 맨유가 스타 플레이어를 놓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인터뷰를 번역하고 나서 제 불안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당시 맨유당사 회원들의 반응도 저와 비슷했구요. 퍼거슨 감독이 갖고 있던 자신의 선택에 대한 완벽한 확신이 잘 드러난 인터뷰였죠. 그 천하의 거장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잘못된 건 없다고 하니까요. 단 하나도. 퍼거슨 감독은 이 인터뷰 하나로 팬들의 우려를 종식시킴과 동시에 루니에게 끌려가던 분위기를 잡아왔습니다. '너는 내가 틀렸다고 하지만, 난 틀리지 않았다. 단 하나도.' 이런 느낌의 반격이었죠. 클럽에게 야망이 없다는 루니의 주장은 부정당했고, 찌라시들의 루머 대신 퍼거슨 감독의 입을 통해 사건의 전말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점점 여론은 루니에게 안 좋게 돌아갔죠. 결과적으로 맨유측에서 루니의 주급을 올려주고 양보한 점은 있었지만, 자신의 독보적인 입지를 이용해 언론을 가지고 장난치던 루니를 인터뷰 하나로 궁지에 몰아넣음과 동시에 상황을 정리하고 결국 자신의 의사를 관철시킨 퍼거슨 감독의 노련함이 돋보인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루니를 내치자는 의견도 많았지만, 자존심을 따질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여러 정황상 루니를 남기는 것이 맨유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옵션이었고 퍼거슨 감독은 이를 이뤄냈습니다.
또한 결과적으로 퍼거슨 감독의 길은 틀리지 않았다는 게 중명되었습니다. 10-11 시즌 맨유는 리그 타이틀을 되찾아 왔고, 챔피언스리그에서도 다시 결승에 올랐습니다. 11-12 시즌 시티의 추가 시간 기적으로 주춤하긴 했으나 12-13 시즌 20번째 리그 우승을 달성했구요. 데헤아, 하파엘, 에반스, 존스, 치차리토, 웰백, 클레버리, 카가와 등의 젊은 선수들이 팀에서 핵심적인 역할들을 담당하고 있고, 다들 미래가 더 기대되는 선수들입니다. 여기에 포웰, 자하 등 가능성을 인정받는 유망주들도 많죠. 그러면서도 루니, 반 페르시, 캐릭, 퍼디난드, 비디치 등 중심을 잡아줘야 할 선수들은 건재하고 성적까지 잘 나오고 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전 '축구' 감독이 아니라 축구 '감독'으로서의 퍼거슨 감독에게 큰 인상을 받았습니다. 맨유가 어떤 위기에 처하건 퍼거슨 감독이 존재하는 한 절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기도 했구요. 그런데 이제 그 감독은 떠나는군요. 그의 시대가 끝나는 마지막 날에 문득 생각나서 글을 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