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3/06/23 06:50:36
Name 떴다!럭키맨
Subject [일반] 찌질찌질
주말이다.
무한도전을 보지 못한 지도 벌써 삼주나 지났다.
삶이 그다지 치열하지 않은데 좋아하는 프로를 챙겨 보지 못한다는건 무슨일일까
이유는 아마 내가 웃음을 얻기 위해 예능프로그램을 봐도 전만큼 마음 편히 웃을 수 없는 연유에설까

주말이다.
보름전에도 손님이 와서 자고갔고  지난주에도 손님이 왔다.
이번주에도 손님들이 와서 자고 갔다.
어인일로 삼주 연속 집에 손님들로 북적인다. 손님은 친구들이다.
우리집에서 만나 담소를 나누고 술잔을 기울였지만 정작 주인은 잠을 자지 못한다.
세상에서 가장 편한 내집에서조차 섞이지 못한다는 기분이 든다.

주말이다.
일주일전부터 다른 친구들과 만날 예정이였는데 우리집은 오래된 친구들로 가득찼다.
오래된 친구들은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왔다.
오래된 친구들은 예고도 없이 찾아오자마자 짜장면을 먹고 세시간을 누워 잤다.
코도 골았다. 지금도 골고 있다.
옛 친구중 하나가 오늘 아빠가 되었다고 한다. 그것을 축하받기 위해 멀리서 찾아 왔다.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주말이다.
새 친구들과 오래된 친구들을 둘 다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예정에도 없던 이 어색한 조합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 게임을 하고 밥을 먹었다.
밥을 먹고 오래된 친구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새친구들을 밖으로 불러내어 담소를 나눈뒤 집에 바래다 주었다.
오래된 친구들은 처음 식당에서 세시간넘게 술을 먹고 있었다.
소주병을 세어보니 무려 다섯 병이다.
지난 겨울에 열명이서 여행을 갔을때도 이렇게는 안마셨던거 같은데...


주말이다.
유부남 둘은 집에서 안들어온다고 마나님들께서 노발대발이다.
현관 비밀번호를 바꿔버린다는니 삐져서 전화를 안받는다는니...
노총각인 나와 다른 친구 하나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고충이다.
하지만 유부남 둘은 반역을 꾀하기 시작했다.
이미 열두시가 넘었기 떄문에 겁도 없이 우리집으로 2차를 가자고 한 것이다.
사람은 시시 떄때로 일탈을 꿈꾼다.
그들에게는 바로 오늘이 그날이다.


주말이다.
우리집에서 새로이 시작된 2차는 얼마가지 못했다.
이미 1차에서 모든 힘을 소진한 유부남1은 자리에 앉자마자 10분도 안되 고개가 뒤로 젖혀졌고
다른 친구 하나는 아에 드러누워 코를 골고 자고 있다.
새로 추가된 여동생하나는 이것들 도대체 뭥미 라는 반응을 남기며 어안이 벙쪄있다.
새벽 두시쯤 전화를 받지않던 유부남2의 마눌님꼐서 전화가 왔다.

유부남2는 두손으로 곱게 전화를 받으며 대역죄라도 저질른 마냥 굽신굽신 대며 전화를 받는다.
잠시후 유부남2가 나에게 전화를 바꿔준다.
그리고 눈치를 준다 제발 제발 제발..'

'안녕 친구야? 근데 지금 시간이 몇신데 왜 애를 붙잡고 안보내고 블라블라...'
전화를 받자마자 짜증 섞인 목소리로 나에게 타박을 준다. 나는 대답했다.

오늘 친구가 예고도 없이 와서...
우리집에 오늘 손님이 오기로 돼있었는데 나도 중간엔 따로 있었는데..
이미 손님들 배웅하고 오니깐 다른 친구 셋이 이미 술판을...
'그럼 내 남편이 나한테 거짓말을 했다는거야?'

아니 거짓말한건 없는데...
'남편 바꿔봐'
터졌다. 마눌님은 결국 울음을 터트리셨다.
덕분에 나는 세상에서 가장 눈치없고 센스없고 고지식한 친구놈이 되었다.
친구는 새벽두시가 넘어서 급하게 택시를 타고 집으로 귀가했다.


주말이다.
한 친구는 예고도 없이 외박을 나오자마자 우리집으로 출근했다.
그리고 오늘 아빠가 된 기쁜 소식을 알리러 친구 하나 역시 한시간넘게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우리집에 왔다.
회사에서 회식을 제낀 친구 하나도 집에 다가 속이고 우리집에 와 같이 술판을 벌였다.
오래된 친구 셋은 약 두시간 정도 내가 손님들을 보내는 동안 자기들끼리 소주 다섯병을 마시고 거나하게 취했다.
서로의 근황을 묻고 추억을 이야기하고 오래간만에 그들은 즐거워 보였다.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는 기쁨까지..
아마 나를 제외한 친구들은 요 몇년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게 기억될 황금 시간이 아닐까.


주말이다.
나는 오늘 오기로 한 손님들을 제대로 대접도 못한채 그렇다고 오래된 친구들과 제대로 어울리지도 못한채..
오래된 친구들과 늘 그렇듯 갈굼과 그 들이 뿜어내는 행복 바이러스에 노출되어 무한도전도 보지 못한채 주말을 지냈다.
다 같이 모인건 꽤 오랜만이지만 어느 친구도 나에게 안부를 묻는 친구는 없었다.
아니 안부를 물을 필요도 없는 그런 느낌이랄까


그리고 엔딩으로 난 세상에서 눈치 없고 센스 없고 남의 집 마누라나 울리는 파렴치한은 보너스...
다른 친구에게 물어봤다 정답은 뭐였냐고..

'엄마가 된걸 진심으로 축하해!
오늘 친구가 아빠가 되서 너무 기분이 좋아서 자랑할라고 오랜만에 모였는데..
거기서 도란 도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결국 밤이 늦어져서 어쩌다보니 자고가게 됐네.
미리미리 보내지 못해서 미안하고 아침에 첫차 달리면 바로 보낼게 정말 미안하고 다음에 또 보자.
엄마가 된거 다시한번 축하해'


저 정도 멘트도 생각내지 못하는 내가 그 정도의 여유가 없나보다 이제는...



지난 삼주간 세 모임이 우리집에서 자고 갔다.
가장 오래된 친구들과 함께 했던 오늘의 내모습이 가장 낯설고 슬펐다
그리고 가장 찌질했다.



찌질찌질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13/06/23 07:13
수정 아이콘
저는 미국사는 관계로 옛 친구들 만날 때에는 제가 가든 그쪽에서 오든 한 달 전부터 연락해서 스케줄부터 짜고나서 만나는데, 그건 그 나름대로 아쉽습니다만 원글자분의 경우도 나름대로 깝깝하신 면이 있겠네요. 아무리 죽마고우라도 오래간만에 만날 때에는 서로 조심할 필요가 좀 있는 것 같습니다.
떴다!럭키맨
13/06/23 08:43
수정 아이콘
좀 이래저래 꼬인 날이긴 했는데 거기에 요즘 컨디션이 안좋아서 좀 더 예민해진 기분인거 같네요.
하도 오래된 친구들이고 집에 가족들이 없으니 더 부담없이 찾아오는건 알겠는데 먼저 오기로한 동생들이 있어서
제가 가운데서 유도리있게 잘 대처해야됐는데 그러지 못한거 같네요.
tannenbaum
13/06/23 08:02
수정 아이콘
글쓴님과 친구들과의 문제이니 타인이 나서서 왈가왈부 하는게 실례인줄은 압니다만...

만일 아직 20대 중반이시라면 그 나이때 친구들은 원래 웬수이니 그러려니 해야죠 제 경우는 더 심했었어요 ㅜㅜ(자기집 놔두고 왜 내집에서 출퇴근을 하냐고!!!)
다만 20대 후반 넘어서 그런다면 친구분들이 철이 늦게 드는 분들로 보입니다. 우정과 민폐는 서른이 가까워지니 저절로 느껴지게 되는것 같습니다 글쓴님이 찌질한게 아니라 친구분들이 철이 없는걸로 보입니다. 솔직히 님의 입장을 설명하시고 다른 방식으로 만나는 방법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근데 다른 손님이 와 계시는데 무시하고 자리 잡고 술판 벌이는 친구들은 좀 생소합니다. 보통 친구네집이라도 다른 손님들이 먼저 와 계시면 자리를 피해주지 않나요? 다른 손님들 계시는데 술판을 벌인다...
떴다!럭키맨
13/06/23 08:53
수정 아이콘
시작부터 저희집에서 술판을 벌인건 아니구요 아는 동생 두명이 와서 나가서 저녁을 먹어야됐는데 친구들이 그 시간쯤 합류를해서 어쩌다보니 같이 우르르 몰려나가 밖으로 나가서 저녁을 먹었거든요.
그래서 좀 뻘쭘하고 어색한 동생들을 데리고 나가서 같이 좀 놀아주다가 집으로 보냈는데 친구들이 계속 술을 마시고
늦었지만 대리부르거나 택시타고 집에 갈까 하다가 시간도 애매해져서 그냥 저희집에서 한잔 더 하다가 자고가는거라..

하나 둘씩은 자주자주 보지만 아무래도 직장인들이니 셋이상이 한번에 들이닥치는 일은 나이먹어서 별로 없는데...
친구 하나가 아빠됐다고 자랑[?]하러 온 축하스러운 자리기도 하고 뭐 크게 눈치 줄건 없었는데...
저에게는 눈치있게 행동해주기를 원하면서 본인들은 별로 자각을 못하는거 같아서 약간 속상하고 그렇네요.
저글링아빠
13/06/23 09:20
수정 아이콘
뭐든 결국 내가 즐겁자고 하는 사교인데 내가 즐거울 수 있는 한도에서 하세요...

남녀간에서만 호구가 있는 거 아니거든요...

남자가 째째하게 그런 걸 가지고...
친구사이에서 팍팍하게 그런 걸 가지고...

다 같은 이야깁니다.
부기나이트
13/06/23 10:55
수정 아이콘
저런 친구들의 만행도 30대초중반까지죠. 중반을 넘어가면 당하고(?) 싶어도 아무도 안해줍니다.
주말아침부터 옜날 생각나네요.
Go_TheMarine
13/06/23 12:11
수정 아이콘
그래도 이런 글 좋네요
잘 읽었습니다~
애패는 엄마
13/06/23 13:53
수정 아이콘
그래도 즐거운 이야기 같습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44715 [일반] 차라리 잊혀져버렸으면... 내 영웅들 [46] 마술사얀7362 13/06/24 7362 1
44713 [일반] 김치찌개의 오늘의 메이저리그(추신수 서커스 캐치) [4] 김치찌개4984 13/06/23 4984 0
44712 [일반] 지식채널e - 장밋빛 인생 [12] 김치찌개4728 13/06/23 4728 2
44711 [일반] 손님도 왕 종업원도 왕.JPG [29] 김치찌개10872 13/06/23 10872 0
44710 [일반] 장애에 대한 잡설 [1] Love.of.Tears.6369 13/06/23 6369 12
44709 [일반] 마흔, 역사를 알아야 할 시간 - 학술 세미나, 그리고 거북선 [2] 자이체프3647 13/06/23 3647 2
44708 [일반] 영어 이야기가 나와서 써보는 저만의 영어 공부 10계명 [14] 삭제됨8878 13/06/23 8878 9
44707 [일반] 미국인들이 일상 생활에서 가장 많이 쓰는 100가지...아니, 498가지 표현... [23] Neandertal14386 13/06/23 14386 12
44706 [일반] <단편> 디링디링-8 (늦어서 죄송합니다.) [4] aura7423 13/06/23 7423 0
44705 [일반] [역사] 조선후기 주막 네트워크, 그리고 1903년의 대한제국. [14] sungsik18366 13/06/23 18366 5
44704 [일반] 강희제 이야기(10) ─ 바다의 사람들 [5] 신불해5681 13/06/23 5681 12
44703 [일반] 지나치게 평범한 토요일 [5] 이명박4219 13/06/23 4219 1
44702 [일반] 나의 영어유산 답사기 [17] 안동섭4756 13/06/23 4756 1
44701 [일반] [해축] 일요일의 bbc 가십... [14] pioren3855 13/06/23 3855 0
44700 [일반] 레드오션화되는 스마트폰시장에서 애플&삼성의 미래는? [66] B와D사이의C7839 13/06/23 7839 1
44698 [일반] 뭐니뭐니해도 甲질 최고는 공무원 아니겠습니까? [130] 샨티엔아메이13345 13/06/23 13345 0
44694 [일반] 찌질찌질 [8] 떴다!럭키맨4283 13/06/23 4283 0
44693 [일반] 부산 사투리를 배워봅시다 - 종결 어미편 [69] 눈시BBbr26558 13/06/23 26558 2
44692 [일반] 호감. [4] Love&Hate9360 13/06/23 9360 4
44691 댓글잠금 [일반] 홍어, 운지 그리고 일베(혐오주의) [143] 엄배코11951 13/06/23 11951 3
44690 [일반]  BoA 2005년 활동 영상 모음 [4] style3719 13/06/23 3719 0
44689 [일반] 강희제 이야기(9) ─ 뒤집히는 대세 [10] 신불해6722 13/06/23 6722 13
44688 [일반] [아스날] 간략한(?) 시즌 결산과 다음시즌 전망 [60] pioren5714 13/06/22 5714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