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영남이니 호남이니 그런 이야기는 일단 제쳐두고,
정말 우리 정치계에 입지전적인 인물로 남을 듯 하다.
상고졸업(물론 그 당시 상고의 위상은 훨씬 높았지만)의 학력에
독학으로 변호사, 이후 6년간 인권변호사로 나서고
정부로부터 위험인물로 낙인찍혀 변호사 자격정지,
이후 청문회스타, 3당합당 때 유일한 반대,
부산에서 낙선, 종로 낙선, 부산에서 또다시 낙선...
그는 불안하다는 평가가 있다. 그건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건 그가 말을 많이 바꾸어서가 아니라
그가 너무 말을 바꾸지 않는 것 때문이었다.
한국의 정치사는 마치 중국 10세기 무렵 5대 10국같다.
그 시대 공자처럼 떠오르던 풍도는 지금은 비굴한 처세술의 좋은 예로 꼽힌다.
어떤 생각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살아남느냐가 중요한 것이 한국 정치이다.
기성 정치인들에게 그는 바보처럼 보였을 것이다.
저 사람과 일해봤자 별로 붙는 것도 없겠다는 생각도 했겠지...
실제로 어떤 민주당 중진은 상고출신 밑에서 있기 싫다고 당을 옮기지 않았던가...
작년 이맘때 만약에 노무현 대통령을 예상한 사람이 있었다면
그 사람은 바로 돗자리 차리길 바란다.
국민경선 시작 때만 해도 그는 2위권이었다.
광주경선에서 나는 한화갑 후보가 이길 것으로 생각했다. 왜? 광주였으니까...
하지만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나는, 이제 모든 국민이 변화를 원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뭔가 바뀌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국민이 모두 노무현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인제 후보는 결국 그 중압감에 자멸하고 말았다...
또다른 고비가 찾아왔다.
대통령의 아들들이 검찰 조사를 받기 시작했으며
두번의 중대한 선거에서 한나라당은 낙승을 거두기 시작한다.
원래 동교동계는 이인제를 3~4년간 밀고 있던 터,
계보도 없던 노무현에 대해 점점 의구심을 나타내고
정몽준의 상승세가 돋보이면서 약 30%의 지지도를 깎아먹고 만다.
한화갑 당 대표와는 항상 이견이 있었고,
믿었던 김민석 의원은 당을 나.갔.다.
하지만 정몽준의 상승세가 꺾이면서 서서히 단일화 분위기가 만들어졌고
결국 단일화는 이루어졌다.
그리고 노무현은 두번째 고비를 넘긴다.
그리고 선거전날 밤 세번째 고비는 결과적으로 고비라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상당한 날벼락이었다.
어제 새벽 수많은 사람들이 노심초사하며 경과를 지켜보았다.
이길수도, 질수도 있는 법이지만
이런 식으로 진다면 정말, 정말 그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만세를 부르는 쪽을 보면서, 서둘러 공짜신문을 발매하는 언론을 보면서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상했다.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2번이 질것 같은 마음이 심하게 들지 않았다.
물론 불안감은 있었지만...
한나라당이 로고송으로 '낭만 고양이'를 쓰려다 취소한 것도 그렇고...
('낭만고양이'에서 '우연'으로 바꿈)
날씨도 그럭저럭 따뜻하고...
광주경선과 같은 일이 벌어지기를...Once Again...
여론조사의 기적이 재현되기를...Once Again...
이번 선거운동 말미에 있었던 대부분의 일들은
예전같았으면 모두 노무현의 표를 깎아먹는 일들이었다.
내가 오늘 정말 기쁜 것은, 예전과 같은 방법으로는
국민들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바꾸기를 원한다면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나 자신이 안 것이다.
우리가 원하면 월드컵 4강에도 갈 수 있는 것이고
우리가 원하는 후보가 보이지 않는 힘과 상관없이 당선될 수 있는 것이다.
나, 권력이 없는 인간은 권력이라는 것에 지기 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생각, 이제 미련없이 접으련다.
새 대통령은 선출되었고, 결과는 나왔다.
결과가 만족스러운 사람도, 불만족스러운 사람도 있을 것이다.
광주 95, 대구 78이 다소 아쉽기는 하지만
그 문제가 단시간에 해결되리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 아닌가?
서로에게 실망하기보다는 서로를 이해하려는 자세가 중요할 듯 하다.
새로운 대통령에게는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
잘 아는 것이 있는가 하면 취약한 부분도 있다.
대통령이 잘 아는 부분에 대해서는 믿고 따르고
취약한 부분은 우리가 돕자.
이제 우리 모두가 대통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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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한표를 아낌없이 행사하신 모든 분들,
개표과정 가슴 졸이시며 지켜보신 모든 분들,
내일 다시 잠에서 일어나 어디선가 대한민국을 이끌어가실 모든 분들...
소모적인 말싸움하기에는 갈 길이 너무 멉니다...
이제 열릴 새로운 날들을 어떻게 만들까 생각해 나가기로 하죠...
오늘 슬펐다가 기뻤다가 피곤하실 노무현 당선자...
개인적으로는 좋아하지 않지만 오늘 그 모습이 왠지 초라해 보였던 이회창 후보...
아쉬움과 뿌듯함이 함께 묻어나는 얼굴을 하셨던 권영길 후보...
선거결과에 가장 많이 낙심할 이한동 후보...
5만여 명을 대동단결(?)하는데 성공한 김길수 후보...
정말 오랜만에 볼수 있었던 사회주의자, 김영규 후보...
선거운동하셨던 모든 분들...
화려한 축제는 오늘로 끝입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역사는 계속됩니다.
오늘은 이만 피곤한 몸을 침대에 눕히십시오.
그리고 내일부터 다시 하나되어 시작하는 겁니다.
Once Again...Togeth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