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te |
2002/12/06 18:57:27 |
Name |
황무지 |
Subject |
나의 마음은, 황무지 |
헌책방에서 먼지 쌓인 시집들을 뒤지다가 박남철 시집 <러시아집 패설> 책갈피에서 엽서 하나를 발견하다.
<책세상> 출판사의 독자엽서인 그것에는 출판사에 바라는 바들이 꼼꼼히 적혀 있었고... <절을 찾아서>라는 책을 구입한 시기는 91년 10월이라고 적혀있다. 적어도 10년 전의 엽서인 것이다...
왜 그랬을까, 나는.
그 '독자엽서'에 적힌 주소와 이름 앞으로 편지를 보냈다.
詩를 적어 보냈다...
어쩌면, 엽서의 주인공은 엽서에 적힌 주소에 살고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2002년, '독자엽서'에 적힌 책 구입 시기는 1991년 10월.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이던 때이다... 몇년 늦은 편지, 그러나 꼭 그 엽서의 주인공이 수취인이 될 수 없더라도... 어떤가... 혹시라도 그 주소에 살고 있는 누군가가 나의 편지를 받고 답장을 보내 줄지?
우울한 샹송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그곳에서 발견한 내 사랑의
풀잎되어 젖어 있는
悲哀를
지금은 혼미하여 내가 찾는다면
사랑은 또 처음의 衣裳으로
돌아올까
우체국에 오는 사람들은
가슴에 꽃을 달고 오는데
그 꽃들은 바람에
얼굴이 터져 웃고 있는데
어쩌면 나도 웃고 싶은 것일까
얼굴을 다치면서라도 소리내어
나도 웃고 싶은 것일까
사람들은
그리움을 가득 담은 편지 위에
愛情의 핀을 꽃고 돌아들 간다
그때 그들 머리 위에서는
꽃불처럼 밝은 빛이 잠시
어리는데
그것은 저려오는 내 발등 위에
행복에 찬 글씨를 써서 보이는데
나는 자꾸만 어두워져서
읽질 못하고,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그곳에서 발견한 내 사랑의
기진한 발걸음이 다시
도어를 노크
하면,
그때 나는 어떤 미소를 띠어
돌아온 사랑을 맞이할까
......
끝내, 헌책방에서 먼지를 마신 보람도 없이
마음에 드는 시집을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우체국을 나온 나는 낮꿈에서 깨어 있음을 깨달았다.
몽롱함이 끝나면 건조한 황무지 밖에 보이는 것이 없어
나는, 나의 마음은 황무지.
찬 바람에 밀려 우체국 앞 거리를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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