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Pine) - 용기
솔·솔나무·소오리나무라고도 한다. 한자어로 송(松)·적송(赤松)·송목·송수·청송이라 한다. 줄기는 높이 35m, 지름 1.8m 정도이며 수피는 붉은빛을 띤 갈색이나 밑부분은 검은 갈색이다. 바늘잎은 2개씩 뭉쳐나고 길이 8∼9cm, 너비 1.5mm로 밑부분의 비늘은 2년이 지나서 떨어진다.
꽃은 5월에 피고 수꽃은 새가지의 밑부분에 달리며 노란색으로 길이 1cm의 타원형이다. 암꽃은 새가지의 끝부분에 달리며 자주색이고 길이 6mm의 달걀 모양이다. 열매는 달걀 모양으로 길이 4.5cm, 지름 3cm이며 열매조각은 70∼100개이고 다음해 9∼10월에 노란빛을 띤 갈색으로 익는다.
종자는 길이 5∼6mm, 너비 3mm의 타원형으로 검은 갈색이며 날개는 연한 갈색 바탕에 검은 갈색 줄이 있다. 잎은 각기·소화불량 또는 강장제로, 꽃은 이질에, 송진은 고약의 원료 등에 약용으로 쓴다. 화분은 송아가루로 다식을 만들며 껍질은 송기떡을 만들어 식용한다. 건축재·펄프용재로 이용되고 테레핀유는 페인트·니스용재·합성장뇌의 원료로 쓰인다. 관상용·정자목·신목(神木)·당산목으로 많이 심었다.
중국 북동부, 우수리, 일본에 분포하고 한국의 북부 고원지대를 제외한 전역에 자라며 수직적으로는 1,600m 이하에 난다. 남복송(男福松:for. aggregata)은 열매인 구과가 가지의 밑부분에 모여난다. 금송(for. aurescens)은 잎의 밑부분을 제외하고 전부 황금 빛깔을 띤다. 여복송(女福松:for. congesta)은 열매인 구과가 가지의 끝부분에 여러 개가 모여달린다.
(네이버 백과사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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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는 어떤 일을 막힘없이 치뤄 낼 때, 쓸 수 있는 말이다.
그 말에는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뜨거운 열정과 열기가 함께 배어 있다.
용기 있는 자만이 어떤 일이든 쟁취할 수 있는 것이고,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앞에 놓여 있는 것은 무수한 장애물의 연속이다.
그 장애물을 넘어 설 때만, 어떤 새로운 현장이 다가온다.
그 현장에서 먼 곳을 바라보는 것은 승리한 사람의 특권이다.
설사, 모든 것은 다 졌다고 하더라도, 오직 자신에게만은 승리한 사람의 특권.
용기 있는 자에게 그런 특권은 주어진다.
현실의 기준으로 볼 때, 승리라는 것을 얻는 사람도 있을 것이요, 그렇지 못하고 패배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남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또 어떤가.
결국, 도전을 했다는 그 자체가 중요하지 않은가.
무수한 시간을 넘어, 그 도전의 향연을 바라보는 것이 어떤가.
용기 있는 자는 바로 그 향연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다.
남이 가지 않은 길을 용감하게 나서서, 결국 완성된 하나의 길로 만들어 내는 자다.
늘 푸르게 있는 사람만이 용기를 가진다. 푸름은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푸름이 끝까지 푸름이 되는 것은 모진 바람과 눈보라를 이겨내는 그들의 강인함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푸른 사람이 용기 있는 사람인 까닭이다.
소나무는 푸르다.
모진 바람 앞에서도 푸르고, 불길에 자신의 몸이 탈 때도, 그 푸름은 유지가 된다. 차라리 한 줌의 재로 화할지언정, 자신의 푸름을 버리고 다른 모습으로 살아남을 꾀하지 않는다. 거센 눈보라 앞에서도 굴하지 않는다. 쌓인 눈에 자신의 몸을 하얗게 만들기는 하지만, 결코 굴하지 않는다. 그저 기다리고 기다려서 기어이 자신의 푸름을 지킨다. 꺾여서 쓰러지는 것이 있을지언정, 굽혀서 살아남지는 않는다.
역경을 넘어서는 것이 푸름이다.
그래서, 소나무는 절개에 많이 비유되는지도 모르겠다.
용기와 절개, 너무 비슷한 단어다.
서구인들이 소나무를 용기에 비유했다면, 동양인들은 소나무를 절개에 비유했다.
차가운 날에도 그 소나무는 여전히 푸르다.(歲寒高節)
절개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마 용기를 가졌기 때문은 아닐지.
자신이 어떤 상황인지 알면서도, 그 상황이 틀렸다는 것을 알면, 주저하지 않는 그런 용기가 함께 있기에 나올 수 있는 것은 아닐지.
그래서 용기와 절개는 결국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인 것이다. 모두 소나무 속에 들어 있는 하나의 상징이며, 하나의 아이콘인 것이다.
푸른 달.
그 달빛은 참 서늘하다. 달을 직접 마주 대하는 사람은 그 서늘함이 자신을 상한다.
상대의 폐부에 예리하게 들어가는 빛은 어느 칼빛 보다도 서늘하고, 날카롭다.
그 빛을 함부로 다룰 수 없다. 겁 없이 빛을 맞이하는 자에게 달빛은 차가운 기를 뿜어내며, 자신의 서늘함을 보여준다.
서늘함은 그러나 한없는 자상함이다. 그의 빛은 적어도 그를 직접 마주 대하지 않는 자에게는 한없는 자상함이다. 그의 빛으로 어떤 다른 길이 열리고, 다른 세계가 열리고, 다른 기원이 열린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예외 없이 어느 순간에도 뿜어지는 그의 빛, 그의 승리의 빛은 그를 지지하는 많은 이들에게는 축복의 빛이다. 그래서 푸르다. 비록 그를 따르는 이들의 그를 흉내 낼 수는 없어도, 경외하고, 축복하고, 용기를 얻는 것은 푸른빛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소나무의 빛이기에 가능하다.
늘 푸른빛이기에 가능하다.
어느 순간마다 그는 상식을 넘는 용기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것은 센티널의 여타 침묵하는 사람들에 대한 절개의 표시였다. 결코 있지 않고 있다는 뜻의 절개의 표시. 망각을 넘어, 자신을 기억하는 사람을 위해 유닛을 절개를 바친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걸고.
그는 그런 재능으로 자신의 빛을, 늘 푸른 그 소나무의 빛을 온 천하에 새겼다.
그의 빛에 맞선 자들은 모두 그 빛에 무릎 꿇었다.
또 다시, 그는 온 천하의 대인들과 격전을 치루어야 한다.
그는 빛을 낼 수 있을 것인가? 과연 그가 이루었던 그 대업의 무게에 눌리지 않고, 또 다른 성취와 대업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성취와 성공은 오직 그의 몫이다. 다만, 확언할 수 있는 것은 그의 빛은 소나무의 빛이고, 소나무의 빛은 용기와 절개의 빛이라는 것이다. 그가 자신의 빛을 배반하지 않은 이상, 여전히 용기 있는 도전과 성취는 계속 될 것이라고 믿는다.
한 사람의 열정, 한 사람의 뜨거운 가슴, 한 사람의 도전과 역경을 넘는 의지.
용기는 그것이고, 소나무가 보여준 것은 그것이다.
그리고, 지난 번 그가 보여준 빛이 바로 그것이다.
소나무의 빛.
소나무. 어떤 어려움에도 그 푸름이 사라지지 않는 그 나무를 보며, 그가 이번에도 자신이 가진 푸름을 뿜어낼 것이라고 믿는 것은 절대 허황된 것이 아닐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한다.
푸름이 영원한 나무. 소나무. 용기. 장재호 Spirit_M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