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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19 19:01
저는 영화를 보지는 않았으나 말씀하신대로 조커 영화가 종과 종의 대립을 다룬 영화라면 더더군다나 정의에 관한 영화가 아닌게 되지요.
정의는 인간들이 모여사는 공동체에서 출발한 개념인데요. 대신 약육강식의 영화라고 불러야겠네요.
19/10/19 19:02
인간 관점에서의 선과 악이죠.
타인의 해하면서 얻는 행복을 인간사회는 보편적으로 악이라 구분하고 있습니다. 조커로 대변되는 집단을 인간과 다른 존제로 분류해버린다면 피해자는 조커라는 범죄자에게 살해당한게 아니라 재해를 입은거고 인류는 조커를 해수로 인지하고 구제하면 간단합니다. 말그대로 종과 종의 대립이니까요. 하지만 인간사회의 정의는 유전자 레벨에서 확실한 차이가 나지 않는 한 조커를 인류에 포함시키기 때문에 조커를 악으로 칭하는게 맞다고 봅니다.
19/10/19 19:24
아 윗글에는 구쳊거으로 적지 못했는데, 사실 종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과장이 심하고.. 사실 찐과 인싸의 대결이라고 해야 할까요... 사회적 상류층과 하류층의 대립으로 볼 수 있는데... 사실 조커는 정규분포에서 너무 밑에 있어서 조커가 이해가 가더라구요.. 저 나름의 정당성이 있구나 하구요. 그 난쟁이랑 여자는 살려주는 대목에서
19/10/19 20:09
상류층과 하류층의 대립이라기 보단 사회에 적응한자와 적응하지 못한자의 대립구도라고 보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육체적,정신적장애같은 극복 불가능한 약점 때문에 아무리 노력해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아실현이 불가능한 이들이 가지는 절망이 폭주하는 순간을 담은 작품으로 봐요. 주변의 열악한 상황은 그 절망을 부각시키는 장치이지 이걸 계급간의 대결이라고 보기엔 좀 엇나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본문에 쓰신 주제와 어울리는 캐릭터는 조커보단 언브레이커블과 글래스에 나오는 일라이저가 더 가깝다고 생각해요.
19/10/20 12:49
저랑 생각이 다르시네요. 시위 현장을 보면서 조커가 하류층의 대표하는 혹은 울분을 대신 표하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하류층의 대부분은 사회에 적응한 하지 못한 사람 아닐까요?
19/10/20 13:31
영화의 핵심은 조커고 나머진 다 주변 환경이라고 생각해요.
즉 시위자들의 시선에서야 자신의 대리자로 여기겠지만 애초에 출발점이 틀리거든요. 조커는 먹고살기 힘들어서 무너저 내린 사람이 아닙니다. 자신의 꿈이 자신이 가진 능력의(재능뿐이 아닌 모든 사회적,육체적)한계를 통해서 절망하고 무너져버린 사람입니다. 하지만 조커는 이들과는 확실하게 틀립니다. 배고픔,괴롭힘 등 이 모든 외적 고난을 이겨내면서 꿈을 이루려고 했지만 자신의 꿈을 이루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이런 경재적이고 환경적인 요건이 아니죠. 자신이 애초에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육체적,재능적 한계였습니다. 거기에 절망하는 순간 외적 고난앞에서 폭발해버린거죠. 방과후님이 생각하는 주제에 어울리는 캐릭터가 될려면 조커는 차라리 노숙자 출신의 인물이 억울한 폭력에 노출되면서 조커로 변하는 스토리가 훨씬 어울린다고 봅니다.
19/10/19 21:29
(스포) 주제와는 다른 이야기긴 하지만.. 자길 쫓던 경찰들이 린치를 당하는걸 비웃으며 빠져나가는 장면이나,
마지막 상담사 살인(일수도 있는) 장면을 보면 조커로 변하며 인간성을 많이 상실했다고 봅니당 남에게 웃음을 주고 싶어했던 아서의 모습을 점점 잃어가는 거죠 그리고 그 이유는 물론 부조리하고 불쌍한 환경에 큰 원인이 있을 거고요 명작이고, 여러 면으로 해석해도 다 좋은 영화라 더 여운이 남네용
19/10/19 20:41
첫 살인때 터진 행복감의 배경은 지금까지의 존재감없이 무시당하던 날들을 묻어버리는 조커 존재 증명 그 자체라고 생각해요.
하지말라고해도 괴롭히는 자들은 약한 사람의 고통에 무감각하고 상황을 즐기죠. 그 상황이 우연에서 비롯된 총격이지만 그걸 계기로 자신감이랄까;; 소심한 그에게 과격하리만하게 변화한 그의 행동은 지켜지거나 존중받지못하는 자들에게 폭력의 정당성을 심어주는거 같아서... 뭐 그게 조커의 참맛이죠.
19/10/19 22:24
영화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 뭐라 말하기가 어렵습니다만 배트맨과 조커의 관계를 단순히 종의대립이라 볼수는 없지 않을까요
작중에서 브루스 웨인도 웃는 장면이 한번도 안나와요 심지어 영화에서 브루스 웨인이 사랑받고 자란다는 표현도 없죠 이건 브루스 웨인도 무언가가 결여되어 있다는 암시라고 생각합니다 종의대립으로 볼 수 없는 이유가 또 있는데 조커가 살인한 사람이 누군가를 보면 나옵니다 기억나는 것이 증권맨 3명, 어머니, 랜달, 사회자인데 이 명단만 봐도 어머니, 랜달은 비슷하거나 같은 종 아닌가요? 게다가 종의대립이라고 보면 문제가 생기는 것이 조커의 살인이 정당화 비슷한게 되고 말죠.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저항한 것으로요. 살인은 어쩔 수 업는 선택이었다는 것으로요. 어떤 관객이 조커를 '그래 저건 죽일만 하지'라고 생각할까요 뭐 그런 사람이 한두어명 있을 수도 있겠죠.
19/10/20 12:52
저의 생각은 제목처럼 색다른 견해이니까요. 사전적 정의에 나온 "종"이란 용어를 쓴것이 아니라, 완벽히 다름을 표현하는 것에 있어서, 종의 속성까지 끓여 들인것 뿐입니다.
19/10/20 02:16
"배트맨의 경우 상류층의 아들로 태어나 충분한 사랑을 받고 난 이후 옳고 그름을 판단 하였습니다."
이 부분은 원작 설정과 맞지 않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8살짜리가 눈 앞에서 자기 부모님이 살해당하는 것을 목격했는데요.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는건 배트맨도 비슷한 상황입니다.
19/10/20 13:41
조커가 배트맨의 부모를 죽이는 순간 행복이 역전되었죠.
조커는 방과후님의 말씀대로 이미 인간사회에서 벗어나는 순간 자신만의 행복을 쟁취한 상황이고 배트맨은 그 행복을 조커에게 뺏겨버린 상황이니까요. 조커는 불행 했었다가 행복해진 상황이고 배트맨은 행복했다가 불행해졌습니다. 방과후 님이 생각하시는 행복의 조건을 따진다면 조커는 배트맨보다 훨씬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봐야합니다. 브루스 웨인이 배트맨이 아닌 브루스 웨인의 삶을 살았다면야 부모의 죽음을 극복하고 부유층의 삶을 온전히 즐기면서 살았겠지만 배트맨은 그 죽음을 극복못하고 얽매여있으니까요.
19/10/20 09:20
재밌네요. 베트맨과 조커를 종과 종으로 나눠주셨습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렇게도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배트맨과 조커는 서로 다른 환경에서 주입된 가치관으로 세상을 판단하기 때문에 서로 다른 종이며, 글쓰신 방과후계약직님과 저 또한 다른 종이고, 우리는 모두가 저마다 행복추구 방법이 타인과 다른, 서로 다른 종입니다. 이 무수히 다른 종들이 모여 절대적 옳고 그름을, 절대적 정의를 정의내릴 수 있을지 생각해보는 것도 재밌는 것 같네요.
19/10/20 12:21
사실 개개인마다 세상을 보는 시야가 다 제각각이라서, 제가 보는 시선으로 바라보면, 결국 개개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고 볼 수 있을것 같습니다. 세상에 절대적 옳고 그름은 없고 다만, 아주 압도적 다수가 지키고자 하는 공동의 선이 법으로 만들어 진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을 합니다. 도덕은 조금 덜 압도적인 다수가 공감하는 방향으로 나간것이구요.
예시로 길거리에 아무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면 거의 모든 대부분이 이건 나쁘다 생각하지만 길거리에 아무이유 없이 개미나 개를 죽였다고 거의 모든 대부분이 이건 나쁘다 생각하지는 않으니...
19/10/20 13:01
디지털 신호처럼 0과 1의 옳고 그름에 절대적 선이 있는것 아니라 아날로그처럼 항상 왔다 갔다 하는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개념이 아닐까...
19/10/20 09:42
조커가 살인한 사람이 조커에게 어떤 의미인지, 조커가 살인하지 않은 사람이 조커에게 어떤 의미인지 본다면 종이 다르다고 할 수 없을텐데요.
배트맨이나, 우리나, 조커나 모두 무례한 것을 무례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잘해준 것을 잘해준 것으로 받아들이니까요. 행복에 대한 기준이 다르고, 정의에 대한 기준이 다른 것은 같은 종 안에서도 당연한 일입니다. 단지 상대방을 설득시키는 방법에서 차이가 있는 거죠.
19/10/20 12:56
저의 생각은 제목처럼 색다른 견해이니까요. 사전적 정의에 나온 "종"이란 용어를 쓴것이 아니라, 완벽히 다름을 표현하는 것에 있어서, 종의 속성까지 끓여 들인것 뿐입니다.
19/10/20 09:56
참신하지만 단순하게 생각하신듯. 어쩌면 평소 가진 관점을 대입시키신건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심플이스베스트인 경우도 있지만, 배트맨과 조커의 상징성은 그렇게 보기엔 좀 아쉽다고 생각해요.
19/10/20 12:57
제가 베트맨을 보았을 때 항상 조커를 죽이지 못하는 모습에서 항상 답답함을 느꼈는데, 제가 생각한 관점으로 보게 되면 결국 서로 다른 정의를 실현함에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에, 베트맨이 조커를 죽이지 못하는 것이 설명이 되어서 저는 제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견해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19/10/20 10:28
글과는 별개로
제가 아는 조커는 히스 레저의 조커이고 why so serious?의 조커인데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는 시작부터 끝까지 so so so serious해서 별로였어요 히스 레저의 조커는 '설명할 수 없는' 광기인데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는 망상장애+신경장애+소외감+자존감으로 설명되는 조커여서 그것도 별로였어요 히스 레저의 조커는 고담의 '영혼'을 두고 배트맨과 한판 승부를 벌여요 하지만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는 사회는 난 모르고 사회에는 관심이 없다고 하죠 하지만 히스 레저의 조커를 전혀 떠올리지 않고, 조커라는 캐릭터 자체에 대한 토드 필립스와 호아킨 피닉스의 또 다른 해석이라고 보면 연기도 연출도 소재도 훌륭합니다 문제는 히스 레저의 조커가 비교 연상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
19/10/20 12:53
제 경우에는 두명의 조커가 이어지더라구요. 처음에는 설명할 수 없는 조커가 왜 저렇게 되었을까? 그냥 히스레저의 조커는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 갔는데, 이번에 호아킨 조커를 보면서, 아 이 조커가 계속 광기를 거듭하다 보면, 어느 순간 다시 보았을 때 히스레저의 조커처럼 될 수 있겠구나 하고요.
19/10/20 13:34
히스 레저의 조커는 "만화의 캐릭터를 현실로 끄집어내면 어떤 모습일까?"라는 상상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해요.
그에비해서 호아킨의 조커는 현실의 인물이 조커로 바뀐다면 어떤식으로 바뀔까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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