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동네 어디서는 사연팔아 경품받고 경품을 팔아 문제가 된 것 같지만 나는 사연을 판 것도 아니고 그냥 정말로 운이 좋았다.
미친 척하고 뜯어서 쓸까도 생각해 봤지만... 이미 유사 전자 기기가 ㅡ 한.... 6세대 이전의 물건이긴 하지만.. ㅡ 있기도 하고, 딱히 내가 예술을 하는 것도 아니니 뜯어봤자 용도는 넷플릭스 감상, 혹은 피지알일 뿐인데 그 정도는 6세대 이전 물건으로도 충분히 가능 했기에 역시 미개봉 상태 그대로 팔아서 RTX2080 Ti 구매에 보태고자 마음을 먹었다.
중고나라에 미개봉 키워드로 시세를 검색해 본다.
?!
아니 이벤트 경품을 얼마나 뿌려댄 거야... 미개봉을 파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다. 거기다 정가는 미쳐날뛰는 가격인데도 불구하고 대체로 정가의 20%, 많게는 정가의 33% 이상 다운된 가격에 팔고 있다. 죄다 선물 받았다느니 하는 식이다.
... 이 사람들아 선물해 준 사람의 성의는 생각 안하냐, 그 가격에 팔면 정가주고 사서 선물해 준 사람은 뭐가 되냐. 혀를 끌끌 차면서 나는 소신있게 정가의 10%만 깍아서 올려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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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간 후려치는 문자 1통 이외에는 어떤 구매자도 나타나지 않았다.
당연하지. 내가 파는 게 중고나라에서 제일 비싼데. 가격을 조금 내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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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간 이전보다 살짝 덜 후려치는 문자 1통 이외에는 어떤 구매자도 나타나지 않았다.
여전히 내가 파는 가격은 중고나라에서 가장 비쌌고, 나는 가격을 아주 조금만 더 내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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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매 희망자가 나타났다!!
그런데 연락 온 날이 화요일인데 다음 주 초에 거래 가능하냔다.
"네. 대신 평일은 밤에만 거래 가능합니다."
"앗 네. 감사합니다! (이모티콘) 정말 혹시나 해서 여쭤보는데 5만원만 깍아주시면 안될까요? 안될까요? ☞☜ 곤란한 질문 드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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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후려치기에 비하면 소소한 후려치기긴 한데 아무리 제품 가격을 생각하더라도 5만원이면 명품 치킨집 순살 블랙 알리오 2마리를 시키고도 만원이 남는 돈이다. 게다가 이 돈이 어떤 돈인가. "그" RTX 2080 Ti를 구매하기 위한 비자금이란 말이다. 이모티콘이 잔뜩 들어간 걸 보니 여자분이신 것 같지만 어차피 나랑은 상관없다.
"저도 판매 후 사고자 하는 제품이 있어 네고는 어렵겠습니다. 죄송합니다."
"ㅠㅠ 생각 조금만 해봐도 될까요... 제가 학생이라 부모님께 돈을 어느 정도 받아야 해서요..!"
"네. 대신 다른 구매자 연락올 시 판매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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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사흘.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제 후려치는 문자도 오지 않았다. 위 구매자도 부모님 설득에 실패한건지 연락이 없다.
"가격을.... 더 내려봐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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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판매 완료 되었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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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왔다! 근데 학생이라던 이모티콘 홍수로 문자보내던 그 사람이다.
"아뇨 아직 제품 있습니다."
"정말...(이모티콘) 마지막으로 여쭤볼게요.(대충 울먹이는 이모티콘) 3만원만 빼주시면 안될까요??(대충 검지끼리 부딪히는 이모티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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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솔직히 연락 계속 왔으면 당연히 네고 안해줬다. 그런데 열흘이 넘도록 진지한 구매자는 이 사람 뿐이고, 3만원 네고한 가격이 현시점 내가 파는 제품의 중고나라 최고가다. 그만큼 내가 비싸게 올려둔 건 맞다.
"하는 수 없네요. 3만원 빼고 가져가시죠."
"헐 느므느므 감사합니다!! (대충 씐나하는 이모티콘) 오늘 내일 중에 언제가 편하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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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거래 약속을 잡고, 자신은 내일이 공강이라 내일이 더 편하다는 답변에 미루어 대학생, 제품 특성상 아마도 예술 계열, 그리고 송금해 주신 이름에 미루어 여성분이신 것 같다. 중고나라 최고가이긴 하지만 어쨌든 나보다 더 잘 써줄 사람에게 가는 게 이 제품에게도 좋은 일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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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진짜 죄송한데 이따가 저녁에 제품에 포스트잇으로 제 이름 적어서 한번만 더 인증해 주시면 안될까용?? (대충 눈 초롱초롱 이모티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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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도대체 문자에 이모티콘을 어떻게 쓰는거지. 나름 젊다고 생각하는데 카톡 아니고 SMS에 이모티콘을 적을 생각조차 해 본적이 없는 나를 반성했다. 그보다 보통 송금 전에 추가 인증을 요청하는 게 관례 아니던가? 이대로 내가 돈먹고 째면 어쩌려고? 역시 사회초년생이구만. 내가 따끔하게 교육..은 무슨 교육. 퇴근하고 집에 와서, 구매자가 요청한 대로 포스트잇에 구매자분 성함과 오늘 날짜, 그리고 혹여 사진을 도용하려는 사기꾼인가 싶어 [구매자 누구누구님] 하고 적어 사진까지 전달했다.
"너무 감사합니다!! 한결 안심이 되네요!! 그럼 내일 XXYY역 A번 출구에서 뵈어요!!"
"네 좋은 저녁 되세요"
열흘 간 마음에 응어리져있던 게 조금 풀린 기분이었다. 네고를 해주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고나라 최고가. 이 정도면 만족할만한 결과다. 역시 중고거래 15년 인생 헛되지 않았다. 하고 스스로 대견해 했다. 한가지 의문은 어째서 저 사람은 하고 많은 매물 중에 가장 비싼 가격에 올린 나에게 연락을 한 것인가. 그리고 또 어째서 만나서 하는 직거래임에도, 굉장히 고가의 물건임에도 선입금을 도대체 뭘 믿고서 해주는가. 이거 중고거래 15년 단 한 번도 사기당해 본 적 없는 내 인생에 신박한 신종 사기로 오점을 남기는 게 아닌가 두려운 맘이 조금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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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선입금까지 받은 시점에서, 그리고 제품이 미개봉 새상품이란 점에서, 이제 물건만 전달해 주면 잡음이 생길 여지도 없이 거래는 완료될 것이다. 다만 나는 3만원 네고해준 것이 아직도 마음이 쓰여 사진 전송까지 끝마치고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중고나라에 들어가 보았다. 이번에는 판매자가 아니라 구매자의 심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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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도 안된다. 그 사이 나보다 싸게 팔던 제품들이 모조리 시장에서 사라지고, 내가 파는 가격 - 3만원이 중고나라 최저가가 되어 있었다.;;;
아니이이이 제품이 무슨 비트코인도 아니고 열흘 사이에 이게 말이나 되나;;; 정말로 네고 직전까지도 중고나라 검색을 했었었다. -3만원이 최고가가 분명했지만 지금은 내가 팔던 가격에 +2만원, +12만원, +15만원.. 제품들만 즐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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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탄에 당한건가. 연락 온 구매자가 친구,지인,친인척 들의 네이버 아이디를 총동원해 작업한 것이 분명하다.! 제길.. 당했다. 선입금까지 받은 시점에 이제 와서 "죄송한데 역시 네고는 어렵겠네요. 현장에서 3만원 주실 거 아니면 다시 송금드리겠습니다." 라고 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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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그럴리 없쟎은가. 화투패 한 번 못잡아 본 놈이 어디서 보고 배운 건 있어 가지고 탄은 무슨 탄. 그저 팔려고 할 때의 마음과, 살려고 할 때의 마음이 다를 뿐인 것을. 이 당연한 사실을 오늘 새삼 다시 깨달았다. 어떻게든 빨리 팔려고 전전긍긍 할 때와, 어떻게든 싸게 살려고 전전긍긍할 때는 아예 눈에 필터링이 낀다는 사실을. 팔려고 검색할 때는 판매자의 신뢰도 같은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그저 제품이 내 것과 같은지, 그리고 가격 정보만 눈에 들어왔는데 막상 구매자 입장에서 보니 가격이 저렴하게 올라온 제품들은 어딘가가 구려 보였다. 지역이 팔도강산에 있어서 절대 직거래는 안될 것 같다던가, 연락처가 카카오톡 아이디 뿐이라던가, 사진이 누가 봐도 업장(?) 사진이라던가. 그럭저럭 믿을만한 인증사진과 서울 직거래 가능, 그리고 전화번호가 적혀 있는 판매 제품 중에는 내가 올린 게 제일 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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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제품을 거래하기로 한 날이다. 중고 거래를 처음 해보는, 100만원이 넘는 제품을 직거래로 사는데 선뜻 선입금 때려박는 사람 얼굴은 도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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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디 어린 새파란 여대생이 3만원 에눌 기준 현시점 중고나라 최저가에 구매해서 아주 해맑고 씐난 얼굴이겠지 뭐. 내일은 공강이랬으니 에눌받은 3만원으로 친구들과 대학교 앞 호프에서 치맥이라도 한잔 하고 있으려나? 바람이 차다. 내 마음도 차다. 에눌해준 3만원을 위해 이번주와 다음주 치킨은 걸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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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아직 신종 사기인가 아닌가 깅가밍가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랬다가 내일 갑자기 변심해서 다시 송금해달라면서 다른 계좌 번호를 불러준다던가... 이쁜지 아닌지는 중요한 요소는 아닌 것 같고 내일 정상적으로 거래 잘 끝나면 글 수정으로 후기 남길게요. 아 중요한 요소는 아닌데 이쁜지 아닌지도 남길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