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외국에서 지낸 나에게 추석이란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진다. 싱가폴이라는 중화권 나라에서 지내다보니 추석 (중화권에서는 중추절이라고 부른다)을 지내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귀성길이 남달리 멀었던 관계로 실제로 고향집에 가서 친적들과 모인 기억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특히 대학생활을 할때 부터는 기숙사에서 자취를 시작했는데, 알바를 병행하며 간간히 마련한 생활비와 학비로도 벅찬 나에게 비행기표는 사치였기 때문에 추석은 늘 조용하게 혼자서 보내는 날이 되곤 했다.
그래서 난 추석(명절)만 되면 홀로 남겨질 위기를 맞곤 했다. 당나라 왕유(王維)라는 시인이 이런 마음을 아주 잘 표현한 시가 있는데, 그 글귀중 일부를 인용하자면 이렇다:
獨在異鄕爲異客(독재이향위이객) 나 홀로 타지에서 객으로 지내니
每逢佳節倍思親(매봉가절배사친) 매번 명절이 찾아오면 가족들이 배로 그립구나
명절이 오면 사람들은 자신의 집을 찾아 뿔뿔히 흩어진다. 그 와중에 타지에 남은 사람들은 가족을 보지 못해서 그립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도 전부 각자의 고향 집을 찾아 떠나기에 그 공백이 생겨 두 배로 그리운 것이 아닌가 싶다. 길거리로 나가면 왠지 모르게 고요해진 거리는 한복판에 누워서 뒹굴어도 될 만큼 한적해져 있다. 마치 나 빼고는 다 갈 곳이 있는 것 같아서 조금은 쓸쓸해진다.
그래도 다행인 건, 귀향길을 오르지 못한 사람은 존재하기 마련이고 난 그런 사람들과 함께 추석을 보내곤 했다. 그 모임이 끝나면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서로에게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격려는 "내년은 이 날엔 보지 말자" 였다. 금의 환향까지는 아니더라도, 집에 가고 싶을 때 집에 갈 수 있을 정도의 여유를 가지게 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너도, 나도, 집에 가있어야 마땅한 사람이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난 추석에 대한 좋은 기억이 더 많다. 가족과 보내는 추석이 가장 좋겠지만, 그런 아쉬움이 들지 않도록 늘 누군가는 나와 추석을 함께 보냈던 것 같다. 밥 한끼 먹으라고 집에 초대해주신 아주머니부터 같이 밤새 문명 멀티플레이 (...) 하자던 친구들까지, 혼자 타지에서 지내는 것이 조금은 덜 서럽도록 적재적소에 온기를 제공해줬던 것 같다. 송편이며 월병(Moon Cake, 중국 추석 음식)이며 한상자씩 챙겨주셔서 내 자취방에 추석 먹거리가 부족했던 적은 없던 것 같다.
遠水不救近火(원수불구근화) 멀리 있는 물은 가까이서 난 불을 끄지 못하고
遠親不如近隣(원친불여근린) 먼 곳에 있는 친척은 가까이 있는 이웃만 하지 못하다
피를 나눈 가족들만이 아니라, 내 옆에 같이 지내는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가족같은 존재가 아닐까? 돌아보면 기나긴 타지 생활중에 가족처럼 챙겨주시던 분들이 참 많았던 것 같다. 내가 뭘 잘해서가 아니라 그분들 또한 가까이 있는 이웃을 가족처럼 여겼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나는 추석이 되면 그 시절의 추억들이 떠오르곤 한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라는걸 참 많이 느끼는 요즘, 추석을 통해 다시 한번 내 인생에 고마웠던 사람들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고 싶다.
부디 각자의 집에서, 같은 달을 올려다 보며, 그 시절을 회상할 만큼의 여유를 찾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