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잘 짜여진 밑그림과 플롯]
후속작의 정석이라고 해도 될 정도입니다. 영화의 큰 밑그림은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와 추억 → 페니와이즈로 인한 트라우마와의 직면 → 루저 클럽과 본인의 노력을 통한 트라우마의 극복' 이란 세 단계를 깔끔하게 해냈습니다. 무려 7명의 등장인물 모두를요.
우선 모든 등장인물은 각자 루저 클럽 내에서의 아름다운 추억이 있습니다. 동시에 트라우마도 존재하죠.
빌은 어린 시절 동생을 잃은 아픔이 있습니다. 그 것이 자신의 탓이라는 자책감 또한 존재합니다. 베벌리는 어린 시절 아버지에 의한 성적 학대와 왕따 경험이 있습나. 벤은 비만으로 인한 왕따와 위축된 모습이 존재하죠. 에디는 부모님의 과도한 집착과 그로 인한 결벽 등이 존재합니다. 리치는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영화 내 묘사로 봤을 때 동성애자이며 이를 숨기려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마이크는 부모님의 교육에 대한 기억과 마약, 화재로 부모님을 잃은 기억이 있습니다.
대부분이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어릴 때 트라우마를 심하게 겪은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있어도 크게 이상하지는 않은 경험입니다. 물론 한국인에게는 다소 어색한 트라우마일 수 있지만, 충분히 외국인이어도 공감하기 쉬운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2.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묘사]
보통 후속작들의 가장 큰 문제는 전작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는 겁니다. 감독이나 제작진들은 후속작을 위해 전작을 철저히 연구합니다. 덕분에 전작의 내용을 많이 기억합니다. 하지만 관객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그 것 1>에서 페니와이즈가 나온다, 애들이 나온다 이런 단순하고 직접적인 요소들을 제외하면 기억이 거의 나지 않습니다. 특히나 이 영화는 루저 클럽 7명에 대한 모든 묘사가 나와야되기 때문에 전작에 대한 소개는 더욱 중요합니다. 이걸 제대로 소개하지 않으면 '저 새X는 갑자기 왜 저래?' 라는 의문이 들게 됩니다.
이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스티븐 킹, 그리고 영화 감독은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는 묘사를 적극적으로 수행합니다. 특히 감독은 훌륭하게 영상 연출을 수행합니다. 각자 트라우마가 될만한 공간을 성인이 되어 되찾으며 자연스럽게 아역 배우와 성인 배우를 교차시킵니다. 아역 배우가 왜 여기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지, 어떻게 페니 와이즈를 조우했는지,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 왜 이 것이 반복되는지를 간단하고도 직관적으로 설명합니다. 그 덕분에 많은 노력을 할애하지 않고도 각 등장인물들이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 쉽게 설명하게 됩니다.
물론 이럼에도 등장인물이 많은 탓에 약간의 문제가 생깁니다. 이 문제는 밑에서 후술합니다.
[3. 그럼에도 너무 길고, 너무 많다.]
물론 잘 풀기는 했습니다만, 영화 러닝타임이 너무 길고, 등장인물이 너무 많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최근에 마블과 DC 유니버스, 외에 망해버린 대작으로 인해 많은 등장인물을 등장시킬 때 발생하는 문제점들을 관중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마블은 많은 등장인물을 등장시키기 위해, <어벤저스 시리즈>를 위해 무려 18개의 영화를 냈고, 9명을 주연으로 내세웠습니다. 덕분에 관객들은 어벤저스를 소개하는 시간이 굉장히 짧았음에도 그들이 누군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등장인물들로 인해 구멍이 생기게 됩니다. <엔드게임>에서는 많은 등장인물들을 보여줘야한다는 강박으로 인해 최종 전투신에서 속도감이 확 죽어버리는 모습이 보이죠. 게다가 헐크, 워 머신, 호크아이, 로켓, 윈터 솔저 등등 많은 등장인물들이 그냥 비중이 먼지급이 되어버립니다.
DC는 일련의 소개 과정을 죄다 생략했습니다. 그랬다가 정말 대참사가 났죠. 대표적으로 <돈 오브 저스티스>의 느금마사 드립, 그리고 <저스티스 리그>에서 슈퍼맨과 원더우먼을 제외한 모든 등장인물이 잉여가 되어버리는 최악의 사태가 생깁니다.
국내 영화로는 <마약왕>이 있습니다. 주연 이두삼(송강호)를 제외하고, 조연급 등장인물이 너무 많습니다. 김인구(조정석), 김정아(배두나), 이두환(김대명), 최진필(이희준), 성숙경(김소진), 조성강(조우진), 서상훈(이성민), 김순평(윤제문), 백운창(김해곤), 구사장(최덕문) 등등... 덕분에 영화가 중반 정도 넘어가면 누가 누군지 기억도 잘 안납니다.
그래서 <그 것 2>는 최후의 선택을 합니다. 짧은 시간에 7명의 등장인물이 가진 가치관을 모두 소개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영화 상영시간을 무려 4시간으로 잡습니다. 물론 이 것도 너무 길어서 영화관에서 틀 수가 없는 급이었습니다. 잘라고 잘라낸게 무려 2시간 49분입니다. (상영판 169분, 감독판 248분) 너무 길어요. 호흡이 길어지고 영화는 늘어집니다. 위에서 말한 트라우마의 발생, 위기, 극복 3단계 장면이 7명 모두 나옵니다. 처음에 서너명까지는 괜찮은데, 그 다음부터는 이제 관객들도 영화도 너무 벅찬 기분이 듭니다. 적당히 괜찮은 동네 식당에서 밥을 먹는 느낌이 듭니다. 음식 맛이 없지는 않는데, 다음에 재방문 의사가 있냐고 묻는다면 재방문 의사는 없는 그런 느낌입니다.
솔직히 원작 고증을 위해 어쩔 수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에디와 리치는 없애거나 합쳐도 무방했을 겁니다. 이 둘이 영화 내에서 감초역할을 톡톡하게 해내지만, 스토리 연결의 본질에는 너무나도 영향력이 없습니다. 마이크는 극중 등장인물을 연결시키는 다리 역할임에도 불구하고 중간중간에 계속 비중이 없어집니다. 빌, 베벌리, 벤, 마이크 넷에게 초점을 맞추고 영화가 진행됐어도 크게 무리는 없었을 겁니다. (물론 이러면 데드 스페이스3 마냥 공포로맨스물 찍는 사태가 생길 수도 있긴 합니다만...)
[4. 애매한 공포]
<그 것 1>이 페니와이즈라는 대상에 대한 직접적인 공포를 그려냈다면, <그 것 2>는 러브크래프트 소설이나 H.R 기거의 그래픽에 나올법한 코즈믹 호러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페니와이즈가 선사하는 트라우마적 공포는 기괴하고 미지 그 자체입니다.
그런데 무섭지가 않아요. 물론 코즈믹 호러가 대중들에게 호불호가 강하게 느껴지는 장르입니다만, 딱히 미지나 기괴에서 오는 공포가 강하지는 않습니다. 이미 어디서 한 번 쯤 본 애들 같습니다. 결국 공포라고 할만한 요소는 죄다 점프 스케어고, 너무나도 뻔하게 나옵니다.
개인적으로 공포영화의 본질은 '무서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려웠습니다. <곤지암>이나 <그레이브 인카운터 시리즈> 등의 장르에 제가 좋은 평가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개연성까지 좋으면 좋겠지만, 일단 공포 영화는 무서워야 합니다. 무섭기 위해서 개연성을 말아먹어야한다면 그래도 괜찮습니다. 어차피 대부분의 관객은 공포를 기억합니다. 그런데 그 공포가 무섭지 않으면 개연성에 의문을 품게 됩니다. 재밌는 것은 <그 것 2>는 공포를 놓친 대신, 개연성을 잡은 이상한 공포영화입니다(...).
[5. 총 정리]
- '트라우마'라는 소재를 페니와이즈를 통해 잘 풀어낸 점은 원작 초월
- 하지만 동시에 원작의 고질적 문제인 긴 호흡과 늘어지는 플롯을 해결하지 못함
- 공포영화인데 무섭지가 않음
정도로 요약 가능합니다. 공포영화라기보다는 80-90년대 미국인들이 가진 향수와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영화 정도로 봐도 무방할 듯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