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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31 10:02
사실 한국 독립운동...특히 임정 정통성을 기반으로한 독립운동 신화는 어느정도는 만들어진 신화라고 봅니다.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국민대표회의 이후의 임정이 망명정부로써의 입지를 인정받을 수 있는지 납득이 안되고요.. 독립군 이야기도 보면 김좌진 장군 경우도 있지만 자유시참변때 상황 자체가 흑역사 그자체였죠.
19/08/31 11:06
글쓸 재주는 없어서 좀 힘들거 같구요....ㅠㅠ
정말 극단적으로 비유하자면 국민대표회의때 임정은 박근혜[이승만] 탄핵문제 해결 겸 시국 대책 회의를 열었는데 우리공화당[극우, 현상유지파, 김구 포함, 최고 소수파]은 회의고 뭐고 인정도 못한다고 참석 안하고 자한당[자한당처럼 막장이란건 아니고....개조파(우파), 원내 다수파 1, 안창호 포함]이랑 민주당[원내 다수파 1, 창조파(좌파), 신채호 포함]이랑 둘이서 치고박고 싸우다가 결국 둘은 열받아서 정부를 나가버린 꼴이에요. 그리고 나서 남은 우리공화당이 정부를 끌고 간 셈이고요.
19/08/31 10:30
국민대표회의가 일제말기도 아니고 꽤 이른시기였죠.... 뭐 이부분과 함께
자유시사태는 너무 암울하고 속터져서 언급자체가 싫어질 정도입니다. 꿈도 희망도 없고 남은것도 없고
19/08/31 10:08
빈주사건을 주 원인으로 보기엔 지금까지 밝혀진 김봉환에 대한 연구가 너무 많아서 보통은 별개의 사건으로 보죠. 굳이 연계하려는 측도 빈주사건으로 인해 북만주에서 김좌진에 대해 커진 악감정을 김봉환이 이용한 것으로 보는 정도고. 결국 [김좌진 장군은 공산주의자에게 돌아가셨다]라고 언급한 내용이 틀린 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주 원인은 그쪽이므로. 동학농민운동을 외세를 끌여들여 진압한 민비에 대한 증오가 하늘을 찔렀겠지만 그와 별개로 민비는 일본 낭인들에게 살해된 정도의 이야기로 보면 되는거죠.
19/08/31 10:37
저도 학문적으로 접근하기 버거워 최대한 간단히 적었습니다.
빈주사건-김좌진장군암살 이게 화살표가 확실히 이어지는게 맞는지 확실히는 모르겠습니다. 저도 약간의 이유는 되지만 결정적으로 빈주 피해자들이 주도했을까 싶었어요. 앞에다가 김좌진장군은 공산주의 독립단체들과 사이가 좋을 수 없었을거라고 쓴것도 인과관계를 잘 몰라서였습니다. 님 말처럼 김봉환이 정적제거를 위해 지역민들의 악감정을 이용했을 수 있겠네요. 근데 저분도 바로 또 암살당하셨군요...
19/08/31 10:12
같은 독립운동가를 암살했는데도 독립운동계 최고 거두로 추앙받는 분도 계시죠. 한번도 아니고 여러번 그랬다는게 더 쇼킹하지만...
19/08/31 10:42
김봉환이라고 가명이 김일성인 자가 있습니다.
혹부리우스는 당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고,공산정권이 세워지기 전까지는 혹부리우스가 그정도 역량이 될 리가 없다는게 중론입니다.
19/08/31 10:44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그 김일성이 저 김일성이라고 배웠거든요.
나중에 보니 그 김일성은 그 당시에 그럴 능력이 없는데 이상하다고 느껴지더군요.
19/08/31 10:26
김좌진 장군 정도면 그래도 양호합니다.
김구 선생은 그냥 해방전이나 후나 일관되게 ... 오죽하면 미군정이 테러리스트라 표현했을까요. 결국 몰리다가 남북합작 쇼한게 압권이죠. 김일성 입장에서는 '날 죽이려고 폭탄 던진 놈이 합작하자고????' 속으로 웃었을 듯 합니다.
19/08/31 10:41
김구의 임시정부를 지켰던 공로는 인정해야 하지만 그 과도 역시 똑같이 지적받아야 하는 인물이죠.
이승만보다 더 파시스트에 가까왔던 분은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19/08/31 10:43
제 느낌인지 몰라도 김구선생님의 흑역사는 그래도 좀 알려는 져있어서..물론 흔히 알려진건 치하포사건 정도뿐이긴 하지요.
김구선생님이 좀 많긴 많아요. 그런데 나열하자니 역시 이걸 왜 써야하나 자괴감도 들고..
19/08/31 10:46
개인적으로 해방 되고 나서 우리 민족에게 최선의 선택이 뭐였을까 고민하면서 그 시대를 되짚어본 적이 있습니다.
김구 선생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현대인들이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너무 많더라고요
19/08/31 10:56
어려운 문제죠. 민주주의랑 공산주의가 치고박고 하는 상황에서 수만가지 경우의 수 따져봤을때 지금의 대한민국이 나쁜경우는 아닌것 같긴 합니다만... 통일이 되었어도 이념문제 때문에... 이승만이 아니라 김구가 정권 잡았어도 과연?
19/08/31 10:59
김구가 정권잡았으면 국민당 시즌 2였을거라고 봐요. 정치를 장제스한테 배워서 마인드도 장제스랑 다를바가 없었죠 독재인데 민주주의 의식도 없는 이승만 열화판이 아니었을까요...
19/08/31 22:52
김구선생이 대표적인 독립운동 방식이 일본 주요 인물들 암살, 테러 였죠
이 과정에서 장개석에 눈에 들어 임정이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결국 장개석의 강력한 요구로 한국이 독립되기도 하고요 어째든 김구의 암살 테러 방법이 성공했다고 봐야죠 그런데 그런 성공에 맛들리면 계속 그 방법만 쓴다는거예요 결국 일본인들에게 했던 방식을 해방후 정적이 된 자기 동포에게 그대로 쓴거죠 문제는 김구일파가 죽인 사람이 여운형, 송진우 같은 사람들은 좌,우를 대표하는 온건파예요 특히 여운형이 테러로 죽자 그 밑에 있던 온건 좌파들 대부분 극단 좌파로 넘어 갔고 송진우 같은 경우도 보수적 색체가 옅고 현실주의자라 좌파랑 협의가 가능한 인물이였죠 김구의 태러행위가 좌우갈등을 극단적으로 몰고간 이유중 하나죠
19/08/31 10:38
목적을 위한 수단이
활동을 오래하다보면 수단이 목적이 되버리는 경우는 많죠. 현대 한국정치인들도 많은분들이 비슷하게 변질되었죠. 정치권에서의 힘이 있어야 하고싶은걸할수있어서 거기에 매진하다보니 정치에 입문할떄 가지던 생각하고 자신의 지금모습이 정반대가 되버리는.. 똑똑하던 사람이 멍청한 소리를 하게되고 불의에 맞서 싸우던 사람이 불의를 저지르게 되는거죠. 저런 거물들뿐 아니라 제 인생도 나중에 돌아보면 저렇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19/08/31 10:47
영향이 작을뿐 나쁜짓은 누구나 할수있습니다.
넷에 흔히 희자되는 악덕상술을 쓰는사람들이라던지 (x팔이로 지칭되는) 어제 유게에 쓴 유치원원장이라던지 커뮤니티 운영자가 한순간에 커뮤니티를 바꿔서 다른목적에 쓰는경우도 있죠. 그 사람들이 모두 처음부터 그런짓하려고 업계에 입문을 했을지..
19/08/31 10:47
또 진짜 운동만 열심히 하던 사람들은 낙오(이런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지만)되거나 정치와 다른길로 가는경우가 많겠죠.
군사정부시절 선봉에 있다가 정치쪽으로 들어온 분들 대부분은 님 말처럼 바뀌었고, 아니면 바뀐 후 들어왔고.. 저는 그래도 내가 잘났다고 떠벌이지는 않으니 이부분은 제가 더 낫지않나 싶기도 합니다.
19/08/31 10:59
그래서 학창시절에 운동권 출신 가운데 유난히 냉소적인 분들이 있죠. 너무나 밑바닥까지 잘알기 때문에....
어떨 때는 부럽기도 합니다. 저렇게 정치인에 몰입할 수 있는 분들은 ..... '체'가 인기를 얻은 건 단순하잖아요 어렵게 얻은 권력을 버리고 떠났다는 거. 실체는 전혀 다르지만요
19/08/31 11:57
진지하게 워성턴 최고 업적이 딱 두번 하고 떠나서 4년 중임제를 공고히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음만 먹으면 왕이 되었을건데 떠나버려서 두번이 관례가 되어버렸죠.
19/08/31 10:53
그 당시 돈은 전부 친일파인 사회상류층에 몰려있었기 때문에 독립운동 자금을 만들기 위해 온갖 수를 썼다고 들었습니다.
처음엔 서로 웃으며 지원을 받을 수 있었는데 쉽게 요약하면 일반인 입장에서는 내 돈 100원 중에 20원 이상은 못 준다는 것이었고 독립군 입장에서는 하나씩 봐주면 나중에 20원이 10원이 되고 자금줄이 말라버리는 것을 막아야 했다더군요. 그 당시의 절박한 상황에서 각자의 정의가 있겠지만 찾아볼수록 복잡하긴 해요.
19/08/31 11:01
친일부호들 삥뜯거나, 일본 금광이나 은행 털거나 하는것 말고는..
봉오동전투 영화에서도 독립운동자금이 상당히 중요하게 거론되죠. 김좌진장군 주요 활동지역이 북만주니 저기 무슨 친일부호가 있었겠습니까. 하지만 절박한건 민초들도 마찬가지라...
19/08/31 10:57
저는 그래서 자유시 참변이 아쉽고 더 알려져야 하는 역사라고 보는데 이상하게 부각이 안되고 있죠.
자유시 참변 그 자체만으로도 일본이 기를 쓰고 하려고 했지만 결국 이루지 못했던 독립군 주력을 단번에 괴멸시킨 대참사인데다 그 스노우볼로 만주 일대의 독립군이 군사력을 상실하는 건 물론 임정에서는 이동휘가 몰락하고 무력투쟁론자들이 힘을 잃고, 결국 임정 몰락의 계기가 되거든요. 김립 암살도 자유시 참변이 불러온 공산주의 독립운동가들과의 깊은 골로 인한 비극이고. 이정도 사건을 북한이야 그렇다쳐도 한국에서조차 그냥 한두 줄 정도로 짚고 넘어가는 게 참 신기합니다.
19/08/31 11:04
이게 좌우문제부터 나중에 조선족들을 강제이주시키는 문제 등 여러 갈래로 영향을 미친 거 같은데
왜 그렇게 진행되었는지 잘 모르겠더군요. 잘 아시는 분들이 좀 조명해줬으면 좋겠네요
19/08/31 11:14
홍범도 장군이 자유시 참변 겪고, 소련군생활도했고 나름 연해주 지도자로 소련생활에 적응하고 있었는데...
스탈린이 카자흐스탄으로 강제이주 보내버리고.. 카자흐스탄에서 고려인들의 배려로 극장관리하며 연금도 받고 노년까지 이념싸움이나 권력투쟁없이 영화보고 글쓰다가 돌아가셨더군요. 돌아가실때까지 고국을 그리워 하셨겠지만, 어쩌면 못볼꼴 안본건 다행일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자유시 참변은 정말 너무 비극이라, 비극이라도 그럴수있지 공감이 좀 되면 좋겠는데 그것도 안되니 언급하기가 힘든것 같아요. 짜증이 확 올라와서...
19/08/31 11:19
뭐라고 해야할지 조선조까지, 좀 크게 보면 한일합방이전 대한제국까지는 교과서같은곳이든 교과서이외의 역사서술에서든 뻘짓 한것들도 조명하면서 넘어가는데, 일제강점기부터는 그게 잘 안 되더라고요.
꼭 이것만이 아니라 근현대사로 갈수록 나쁜일은 부각이 잘 안되고, 나쁜일도 그 이후 극복한것들만 부각이 되더군요. 아무래도 조선조보다 우리나라라는 개념이 그때부터로 인식되서 그런가? 자유시 참변이야 그냥 폭망하고 땡이잖아요.
19/08/31 11:23
독립운동이 멕시코의 혁명과 다르겠지만 멕시코 혁명 당시 판초 빌라와 사파타 등을 봐도 알 수 있지만 산적, 마적인지 아니면 혁명군 혹은 독립군인지 구분하기 모호하다고 봐야죠.
그나마 사파타는 무엇을 위해 싸운다는 확고한 신념은 있었지만 판초 빌라는 혁명군의 탈을 쓴 산적에 가까웠던 것처럼 독립군들도 ......
19/08/31 13:31
김좌진 장군은 30년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더 활동하셨으면 어찌 되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약간 실드를 치자면... 독립운동 할때 어디든 강경파가 있고 김좌진 장군은 매파쪽이다보니... 반대파까지 포용한다거나 이런분은 아닌것 같아요.
19/08/31 11:45
일제 식민시기가 너무 오래된 것이 원인이 아닐까 합니다.
말이 36년이지 36년이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냥 조선에 대한 생각 자체가 없었을 겁니다. 일제가 식민지를 수탈하니까 그게 너무 힘드니까 독립하자 라는건 1940년대에나 가서야 나오는 문제고, 1930년대 까지는 조선왕조 때나 지금이나 사는 건 똑같이 힘들었거든요. 일제가 수탈을 하는 거나 양반님네가 수탈을 하는 거나 일반 양민들에게는 무슨 차이가 있었겠습니까. (그렇다고 일제가 잘했다는 건 절대 아니니 오해 마시기 바랍니다.) 1920년대 까지만해도 나라를 잃었다는 게 통했지 1930년대가 되면 조선이 내 나라라는 생각도 없었을 겁니다. 그러니까 그 상황에서 독립운동을 하다보면 이게 독립운동인지 정권탈취운동인지 애매하게 되어가는 거겠죠.
19/08/31 13:36
무고한 사람들을 죽인쪽 수장이다보니 이에대한 평가도 따로 해야할듯하고..
양민들의 사정까지 다 봐주고 무장투쟁까지 둘 다 하는게 어려웠고, 신념을 이어가기위해 희생을 택한것이겠죠. 당시 어떤생각이었는지... 본보기든, 보복이든.. 독립운동가로 김좌진장군은 우리가 최고의 대우를 해주고 있으니..
19/08/31 17:48
갑자기 옛날 판타지 소설 나이트 골렘 초반부에 나왔던 어느 게릴라 조직이 떠올랐네요. 이런건 좀 어쩔 수가 없는 것 같아요. 당위나 옹호의 의미는 전혀 아니고, 조직은 인간이 만들지만 결국 인간을 드라이브해나가기 마련이라 사병 내지는 반군 같은 조직은 서서히 정의롭게 굶어죽느냐 조금씩 타락해나가느냐를 매순간 고민해야 하고 그 시간이 길어지면 고민을 그만두게 되는 그런게 어쩔 수 없는 현실인 것 같습니다. 지금도 어느 나라에서는 군인들이 민간인을 뺏고 죽이고 하는데 그 사람들이 특별히 사악함을 타고나서 그런건 아닐테니까...어쩔 수는 없는데 물론 그렇다고 우리 편이니까 옳다는 식으로 합리화는 될 수 없는 부분이죠.
19/09/01 09:24
무장투쟁할때 자금 확보 어떤 방법이 있을까 딱히 없는듯. 그 지역의 유력자가 뒤를 봐준다거나, 다른국가가 도움을 준다거나... 아니면 금광이라도 장악하고있거나... 조직원중에 부자가 있다거나..
그래도, 힘없는 동포들 죽인걸 어쩔 수 없었다고 하긴 좀 어렵지요.
19/09/01 16:03
사실 역사왜곡이라는 건 일본만의 무기가 아닙니다. 실은 세계 어디에서나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려는 행동은 똑같아요.
미국이든 영국이든 중국이든 한국이든 인도든 탄자니아든. 소위 가해자 포지션은 가해자대로, 피해자 포지션은 피해자대로 합니다. 실은 누구나 역사왜곡을 하고 있지요. 보통은 그 주체가 국가냐 아니냐의 문제를 얘기하고, 그런 나라는 일본뿐이다....뭐 그런 결론들을 내리시는 것 같은데. 한국도 그 부분에서 국가주도적인 성격이 강해요. 아니 동북아 국가가 다 그런게 있죠. 문화적으로. 그러다보니 '국가에서 인정하는 역사 = 국사 = 역사'가 되어버립니다. 원체 한국사와 국사는 다른 말인데 이 부분도 분리가 안되는 와중에 이제는 역사와 국사라는 말까지 하나로 섞어서 쓰는 참담한 상황에 이르렀어요. 결국 여기 PGR같은 곳에서나 이런 이야기들을 접하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일제점령기의 조선과 조선인에 대해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접근하기보다는 모두 묶어서 '애국'이라는 이름 하나로 이해하려는게 소위 말하는 '화해와 상생의 정치'에 알맞는 행동일 겁니다. 그러니 저런 내용은 더더욱 묻어야죠. 그러면 그게 왜곡이 됩니다. 보통은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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