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내 외모는 늘 중하 정도라 생각했지만 나는 어떻게든 연애를 하긴 했었다. 첫 연애는 서른 살이었고, 두 번째 연애는 서른 하나였다. 지금 서른 중반의 나이에 두 번 정도의 연애가 많다고 할 수는 없다. 공교롭게도, 나는 스무살 이후 참 많은 여자들을 좋아했고, 고백도 안 하고 스스로 많이 포기하기도 했고, 고백을 한 경우엔 한 번을 제외하고는 다 차였다. 그런데 신기한 일들도 종종 발생했다. 그건 바로 고백을 받은 적도 종종 있었고, 혹은 누군가가 나에게 직접, 혹은 주변 사람을 거쳐 호감을 표하거나 했던 적도 종종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때 나는 너무 의아했었다. 왜냐하면, 누군가가 내 마음에 들어서, 상대의 마음에 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하고, 그러고 나서 고백을 하면 차이는 게 다반사였는데, 잘 보이려고 한 아무 노력도 하지 않은 상대는 왜 나에게 고백을, 혹은 호감을 표시하는 것인가?

# 2
그러면 왜 나에게 고백을 하거나 호감을 보여준 그 친구들과는 사귀지 않았는가? 그건 타이밍이라 생각한다. 내가 연애를 별로 갈구하지 않았을 때거나, 상대가 내 스타일이 아니거나, 내 상황상 지금 이 친구와 연애를 시작하기가 어려울 때. (가령 취업을 다른 지역으로 할 가능성이 높을 때) 어쨌든 핑계긴 하지만. 그래, 이런저런 핑계로 고백, 혹은 호감을 보인 상대와 잘 안 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 3
그러다가, 어떤 얘기를 접한 바 있다. 그게 피지알에서였는지, 다른 곳이었는지, 지인에게 들은 것인지 분명하지는 않다. 가물가물하지만 그 얘기의 요지는 이렇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순간, 그 사람과 잘되기 어렵다는 것. 와닿았다. 내 경우 누군가를 좋아하고, 고백을 할 때 그 과정은 어떠했나.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나라는 사람은 어떤 상태였나.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계속 그 사람을 의식하게 된다. 그리고 행동, 말투 같은 것들을 조심하게 된다. 카톡도 그렇고 만나자고 할 때도 조심스럽다. 즉, 생각이 많아지게 되고, 방어적이게 되고, 뭔가 나의 단점을 안 보이게 노력하고, 장점을 돋보이게 하려 한다. 그러니까, 부자연스럽고, 인위적이고, 여러모로 나답지 않게 된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상대는 답답해할 수도 있고, 매력을 느끼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즉 확신을 갖기 어려울 것이다.

# 4
반면 고백을 받을 떄의 상황은 어땠는가. 나는 상대에게 그 무엇도 해준 적이 없는데(없다고 생각하는데), 왜 얘는 대뜸 나에게 고백을 하나, 혹은 호감을 표시하는가. 그런데 사실은 상대에 마음에 들기 위해 노력하는 내 모습보다, 평소 내 모습이 어딘가 마음에 들었다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상대와 연애를 해 본 적도 있다. 그런데,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다. 연애를 하면서도 상대에게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해, 되려 상대에게 미안해서 먼저 관계를 정리한 적이 대부분이었다.

# 5
내가 좋아해서 고백을 해서 잘 풀린 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럴 때는 그렇게 깊게 좋아하면서 시작하지는 않았다. 얕은 호감 정도만 있었던 상태에서, 고백을 하면 받아줄 것 같으니 고백을 했었다. 고백은 확인 행위라고 그랬던가.

# 6
인연을 만나지 못한 탓인가, 내 마음에 혼란이 많은 탓인가. 아직 제 인연을 못 만나고 있다. 그러다가 최근에 어떤 상대가 마음에 들어왔다. 문제는, 약간의 호감 정도만 유지한 채 이 사람을 대하면 좋은데, 나도 모르게 너무 좋아져버렸다.(신기하게도 불과 2,3년 전만 해도 별로라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에게서는 그래도 여유롭고, 유머러스하고, 리드하는 모습을 잘 보일 수 있는데, 이 상대에게는 이상하게 그런 게 잘 안 된다. 불길하다. 마치 예전부터 겪어온 것처럼, 이 관계, 이 감정에 너무 빠져 평소 모습을 잃게 되면서, 결국 실패하는, 그런 전례가 자꾸 생각이 난다.

# 7
그래서 다시 생각한다. 어떤 상대를 진지하게 좋아하면, 참 어렵게 되는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