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체스동아리방에서 본 태리선배는 항상 체스판 앞에서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기다리는 듯 했다. 체스판에서 폰과 퀸, 그 두개를 계속 손으로 잡았다 놓았기를 반복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처음에 뭘 하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배가 가진 체스에 대한 애정은 궁금증을 나로 하여금 유발했다. 잠깐이나마 지켜본 바로 선배는 대외활동도 적극적이고 항상 많은 사람들과의 약속으로 바쁜 사람이었다. 그러나 체스동아리, 그 방안에만 들어가면 조용하고 체스판만을 바라보며 주위에 아무도 없는 양 온전히 체스에 몰입했다. 그러나 그 체스판에 항상 상대방은 존재하지 않았다. 혼자 체스를 바라보며 한쪽 손으로 턱을 괴고 한쪽 손으로 기물들을 만지는 모습은, 나로 하여금 체스한판 하자는 말조차 못한 채 그저 바라보게 만들었다.
선배의 지갑에는 체스의 퀸으로 되어있는 지갑 고리가 있었다. 그걸 처음 봤을 때 나는 선배를 보고 말했다
“선배, 체스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크면 체스말을 무슨 지갑에 매달고 있어요.”
하지만 선배는 그에 대해 말을 안했고 나는 고리를 볼 때마다 그걸 선배에게 놀리듯이 말했다.
선배는 그때마다
“넌 몰라도 돼.”라고 나에게 말했고 나와 선배의 그 대화는 매순간 매번 얼굴을 볼 때마다 반복되었고 이 행동은 내게 있어 일종의 습관처럼 되어버렸다.
선배는 체스동아리 소속 사람이었고 항상 체스를 좋아하는 듯 보였지만 실제로는 체스보다 다른 종류활동에 더 관심이 많아 보이고 엉뚱한 모습도 자주 보였다.
태리 선배는 우리와는 다른 중력에서 사는 사람 같았다. 아니 실제로 어느 사람인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선배에게 고향을 물어보면 항상 프라하 출신이라고 말했다. 다들 서울이나 부산, 전주 등등 한국의 도시가 나올 꺼라 생각했으나 뜬금없는 프라하에 다들 어이없어했고. 선배는 프라하 모르냐고 프라하,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나오는 프라하, 체스이야기의 슈테판 츠바이크가 살았던 프라하라고 소리 높여 얘기했다. 그 대화들을 멍하니 구석에서 듣던 나는 조용히 한마디 했다.
“선배, 슈테판 츠바이크는 오스트리아 사람이에요. 오.스.트.리.아 프라하가 아니라 빈이라고요. 빈”
선배는 당황해하며 얼굴을 붉혔다.
“아니 그래? 어? 나는 슈테판 츠바이크가 프라하사람이라고 누가 말해줬는데…….”
그뿐만이 아니었다. 항상 선배의 가방에는 레몬이 들어있었다. 처음 우연히 그 레몬을 본 건 술자리에서였다. 선배는 소주를 마시고 안주로 오뎅탕을 시켰던 그 자리에서 느닷없이 레몬을 꺼냈다.
“아니 웬 레몬이에요?” 라고 내가 묻자, 선배는 이렇게 말했다
“소주가 쓰잖아. 레몬은 시고 난 그래서 둘 다 싫어하거든. 그래서 레몬과 소주를 같이 먹으면 쓴맛과 신맛이 중화되어서 그 맛이 없어져 나는 그래서 그 싫어하는 두 개를 먹기 위해서 이렇게 먹는 거야”
아니 레몬을 싫어하면 안 먹으면 되고 소주는 싫으면 안마시고 다른 술이거나 음료수를 마시면 되지. 왜 그 둘을 먹겠다고, 그것도 술자리에서 라니. 나는 속으로 당황해하고 무슨 상황인지 이해를 못하고 있었다.
“ 아니 내가 오스트리아 빈에서 아파서 거리에서 잠시 풀썩 쓰러진 적이 있었는데 어떤 분이 나에게 레몬을 줬어. 나는 웬 레몬이지 하면서 그 레몬을 먹었는데 그 신맛에 정신 차리고 몸도 괜찮아진 거야. 그래서 그때부터 레몬을 먹게 되었어. 그런데 나는 레몬을 원래는 싫어했어. 그래서 레몬을 어떻게 먹으면 좋을까 생각했는데 내가 또 싫어하는 소주랑 같이 먹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같이 먹는 거야.”
선배는 그렇게 말하며 소주에 레몬을 짜고 먹고 있었다. 나는 이 기괴한, 아니 레몬향처럼 싱그럽기까지 한 이 상황에 애써 적응한 척 술을 마시고 오뎅탕에 숟가락을 넣었지만 그 상황은 매번 반복되었고 그 반복 속에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어느 날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어떤 한 사람이 다 같이 분식먹자고 제안을 해서 우리는 학교 앞 분식점에서 떡볶이와 순대, 튀김을 사와서 먹고 있었다. 그러다가 태리 선배가 들어왔다.
“선배, 어쩐 일이에요. 지금 수업 중 아니에요?” 옆에 있던 한 애가 선배에게 물어봤다.
“아! 그러고 보니 수업이네. 선배 그냥 출석만 하고 나왔어요?” 다른 애들도 궁금해졌는지 선배에게 질문을 건넸다.
“수업이 재미없더라고, 플랑드르 지방 반고흐나 여타 다른 그림들을 소개하는데 그 지역은 체스그림 하나도 없냐. 무슨…….”
여전한 체스사랑이네 싶었다. 그러다가 선배는 순대를 먹기 시작했다.
“얘들아 간장 없냐 간장. 순대는 간장 찍어 먹어야지”
“그냥 거기 있는 떡볶이 국물에 찍어먹어요. 그리고 또 무슨 간장이에요. 소금이나 쌈장, 아니 초장까지는 들어봤는데, 웬 또 간장이라니.”
다들 선배의 투정에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나는 내버려두려고 생각했으나 더 이상 내버려두면 이제는 짜증을 부릴 거 같아서 한마디 했다.
“선배 그 레몬에 찍어먹으면 되겠네. 레몬. 그만 투정부려요. 아니 애들이 밥 대신 먹겠다고 사온 거에, 선배가 감 놔라 배 놔라에요. 선배 돈 한 푼은 냈나요?”
선배는 이내 조용해졌고, 애들에게 미안하다면 돈을 건네주고는 나갔다. 애들은 한사코 거부하려했지만 선배는 책상에 놓고 나갔다.
그러나 문을 열고 나갈려는 찰나에 선배는 우리를 향해 돌아섰다.
“ 미안하다 얘들아. 맛있게 먹었고 담부터는 그래도 간장도 챙겨줘. 그럼 안뇽~”
그러고는 환하게 웃으며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나갔고 우리는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이 동아리에 들어와 선배와 인연을 맺게 된 건 작년 2학기 때의 일이었다. 이 동아리에 들어와서 선배와 이렇게 오래 보게 될 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신입생으로 들어온 나는 동기들과는 그럭저럭 어색하면서도 친한 그 이해할 수 없는 대학의 우정을 만들어가며 하루하루 보내고 있었다.
오후 프로그래밍 수업이 끝나고 나오는 길에 복도 벽에 게시된 하나의 전단지가 내 눈에 밟혔다. A4용지에 워드로 대충 휘갈겨 놓은 듯 한 종이에 쓰인 내용은 체스동아리 홍보였다.
학교에 체스동아리가 있었나 하는 의문도 잠시 종이 아래 부분에는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서였는지 체스행마에 관한 퀴즈가 있었다. 5수안에 폰과 퀸을 살리는 게 목적인 퀴즈였다. 나이트와 룩사이에 둘러싸여있는 폰과 퀸이 외로워 보이면서 동시에 왜 킹이 아니고 폰이었는지 의문이 들면서 나는 전단지를 지나쳤다.
그렇게 체스동아리에 대한 기억과 생각이 머릿속에서 잊혀져가고, 학기는 마무리되었다. 무엇을 하고 있으며 무엇을 앞으로 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이 방학이라는 시간은 처음에는 천천히 흘러가다가 추진력을 얻고 빠른 속도로 지나가 버렸고 어느새 2학기가 되었다.
학교라는 공간은 분명 체스게임처럼 전쟁터와 같은 곳으로 내겐 느껴졌다. 그러나 학교는 체스에서처럼 명확한 상대가 보이는 공간도 아니었고, 누가 내 폰이고 누가 내 나이트인지 판단도 되지 않는 안개 같은 곳이었다. 그 속에서 나는 그저 홀로 남은 킹처럼 묵묵히 체크메이트만을 피하려 애쓰게 될 뿐이었다.
수업이 끝난 후 나는 학교동기들과 식사를 하러 학교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개강시즌에 맞추어 학생회는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아니면 스스로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해 여러 행사들을 기획했다. 그 중하나는 동아리 소개행사였다. 학교 내 많은 동아리들이 부스를 세우고 자기가 속한 동아리에 사람들이 오기를 바라고 여러 홍보활동을 하고 있었다. 여럿 부스들을 구경하다가 체스판이 놓여있는 부스가 눈에 들어왔다. 학교에 체스동아리가 있네라는 생각을 하다가 저번 학기 초 때 체스동아리 관련 전단지를 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체스판에는 폰과 퀸이 그때 퀴즈처럼 올라가 있었다. 그러나 체스를 두는 사람은 보이질 않았다. 동기들은 나보고 혹시 체스동아리 회원이냐고 묻고 자기들 먼저 밥 먹으러 간다고 얘기했다. 잠시 거기 부스에 서서 누가 올지 기다려볼까 싶다가 나는 혼자 밥을 먹기 싫어서 그냥 잠시 관심이 갔을 뿐이라고 둘러대고 나를 두고 떠나가는 동기들을 서둘러 쫓아갔다.
다음날 첫 수업이 끝나고 다음 수업이 있는 건물로 급하게 가고 있었다. 그러다 멀리서 체스동아리 부스를 보게 되었는데 누군가 앉아있고 마주앉아있는 사람과 대화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궁금해서 가까이 가고 싶었지만 나는 다음 수업이 지각할 수 없었기에 수업이 끝나고 찾아가보기로 결정했다. 강의실에 들어가 앉아있는데 강의를 할 교수는 제때에 오지 않았고 나는 그저 멍하니 시간만을 죽이고 있었다. 그리고 수업이 끝난 후 체스동아리에 앉아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도대체 그 퀸과 폰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기다리는 와중에 강의하러 교수가 들어왔다.
수업은 요새 유행한 알파고, 딥마인드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인공지능이 스스로 수많은 바둑을 자기 자신과 두어서 발전해나갔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얼마 전 읽었던 슈테판 츠바이크 소설 ‘체스이야기’가 생각났다. 자기 자신과 분열하여 끊임없이 체스를 두다 정신분열에 휩싸였던 주인공이 서서히 알파고와 오버랩 되었다. 둘이 두는 게임에 적이 없는 상황은 분명 불완전하고 비정상적인 상황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쓸쓸하고 외롭게 느껴졌다.
수업이 끝난 후 나는 체스동아리 코너가 있는 자리로 갔다. 하지만 가는 그 짧은 시간동안, 왠지 모를 회의감이 조금씩 차올라갔다.
‘내가 지금 뭘하는 거지. 내가 체스를 그렇게 좋아했었나? 대학 들어와서 별 다른 거 한번 해봐야 겠지라고 생각했지만 하지만 그게 체스라니... 구경 한번 한다는 마음으로만 가야겠다.’
이러한 생각을 하며 걸어갔고 어느새 부스근처까지 왔다. 하지만 부스에는 정리하고 있는 여자 한명만이 있었다. 나는 다 치우고 있는 마당에 귀찮게 하고 싶지도 않고 내 맘속에 차올라가던 회의감은 끝내 심장부분까지 올라왔다.
‘그래, 그냥 돌아가자.’
라고 생각하며 뒤로 돌아서려는 찰나에 그 여성분 방향에서 말소리가 났다.
“저기. 혹시 체스동아리 가입하려고 오신건가요?” 떠나가려는 나를 굉장히 시원하고 청량한 목소리가 붙잡았다.
“네?, 아…….아니요. 그냥 혹시나 하는 마음에 들른 건데. 지금 정리하고 있으니 다음에 올게요.”
나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그 자리에서 나오려고 했다. 하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으며 붙잡지도 않고 그저 자리를 치우는 모습에 나는 조금 아쉬움을 느꼈다.
“ 아니에요. 어차피 정리하는 거라 동아리방 쪽에서 얘기하면 되요. 잠시만기다리세요.” 단호한 어조로 말하며 여성분은 의자를 접고 있었다.
나는 그 상황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엉거주춤 서있었다. 그 의자를 잡고 물건들을 채운 짐꾸러미도 같이 들고 나가려던 여성분은 나를 보고
“저기 혹시 민망하면 물건이라도 하나 들고 가실래요? 저 혼자서 다 못 들어서 두 번 나누어 왔다 갔다 해야 해서, 도와주시면 편할 거 같은데.”
나는 당황해하며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아 예. 뭐들면 될까요.”
“ 의자가 무거우니깐 의자 말고 저 짐들고 따라오세요.”
“아뇨, 제가 의자들게요.”
그래도 나름 남자라며 무거운 부분 들고 가겠다고 나섰지만 그녀는 자기가 무거운 게 드는 게 도리라고 말릴 틈새도 없이 무거운 짐을 들고 앞장섰고 나는 아무 말 없이 그저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체스는 오프닝과 미들 그리고 엔드게임으로 단계가 나눠져요. 오프닝에서는 다들 어떻게 둘 것인가 기본 포석을 깔고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하는 단계지요. 미들은 이제 그 포석과 파악한 상대방의 의도를 가지고 게임을 조립해나가는 단계에요. 마지막으로 엔드게임은 이제 서로의 체스기물이 얼마 안남은 상태에서 끝내기에 들어가는 단계지요. 이 단계가 아마 가장 큰 집중력을 요할거에요.”
“그런가요.” 나는 어색한 침묵을 깨기 위해서 입을 열었지만 입에서 나오는 말은 이런 말 뿐이었다.
“앗. 그러고 보니 저희도 오픈게임을 안했네요. 소개를 안했네요. 저는 체스동아리 회장, 김태리라고 해요.”
라고 말하며 나를 보고 환하게 그녀가 웃었다.
짐을 들고 들어간 동아리방은 작은 방에 여러 명 앉을 수 있는 테이블과 책장 그리고 의자 이렇게 조촐하게 구성되어있었다. 그 아무것도 없이 조촐한 방 모습이 너무나도 기물이 거의 없던 체스퀴즈가 생각나서 나는 동아리에 들어오겠다고 결정해버렸다.
매일 수업이 끝난 오후, 동아리방을 찾았고 갈 때 선배가 있건 없건 나는 체스를 두기 시작했다. 체스를 두는 법을 잘 모르는 나는 책장에 꽂혀있던 ‘카스파로프의 체스교본’을 보면서 체스를 배우기 시작했다. 카스파로프는 컴퓨터 딥블루와 체스대결을 했던 역사상 가장 뛰어났던 체스플레이어라고 책에는 쓰여 있다. 카스파로프는 인간들 중에는 그를 상대할 플레이어가 없었다. 그렇게 정점에 올라서 외로웠을지도 모르는 그에게 컴퓨터 딥블루는 어떤 존재였을까. 하늘에서 그를 위해 내려준 커다란 시련이었을지 아니면 이른바 신의 한수에 접근하게 할 수 있었던 파트너이었을지. 그렇게 궁금해 하며 나는 혼자서 매일 체스 두는 법을 배웠다.
“선배, 캐슬링으로 룩과 킹을 바꾸면 킹이 구석으로 가게 되잖아요. 이게 성으로 들어가는 모습 같아서 캐슬링이라고 한다고 하네요.”
“ 왕은 그렇게 항상 성으로 도망가지, 자신이 영지로 말야."
" 네?"
"아냐 나 이제 좀 바쁘다. 나중에 마저 얘기하자. ”
“ 아니 선배가 이것저것 알려주면 좋잖아요. 저는 혼자서 책보니깐 심심해서 이것저것 그냥 말해보는건데. 아니 날 동아리에 입부시킨 건 선배면서 체스는 왜 안 알려주고 저는 어째서 맨날 혼자서 체스 두고 있는 거죠? 선배는 또 왜 체스 안 두나요?”
나는 투정부리듯이 말을 내뱉었다. 선배는 항상 동아리방에서 체스를 누구와도 두지 않았고 가끔씩 체스를 할 때 보면 체스판 앞에 혼자 앉아있기만 했다.
선배는 체스와 체스동아리에 대한 애정은 있었지만 정작 체스동아리에 투자할 시간이 없었다. 너무 많은 활동과 바쁜 일로 동아리는 잠깐만 얼굴비추기 일 수 이었다. 그러다보니 나랑 비슷한 시기 입부했던 사람들은 이름만 올린 채 사라져갔고 동아리에 이름 올린 내가 오히려 동아리 주요 회원인양 다른 사람들을 받고 모임들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상황이었다.
“선배. 금요일에 동아리 모임 있는 거 알죠? 동아리에서 다 같이 체스공부하기로 했잖아요.”
“ 아 그거 못 갈거 같은데...” 태리선배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말했다.
“아니 또 왜요.” 나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얘기했다.
“그때 누구 만나기로 했어.” 선배는 차분한 목소리로 나를 쳐다보며 얘기했다. 선배는 더 이상 캐물으라는 식의 표정이었지만 나는 그냥 선배가 뭘 숨기는 느낌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나는 그만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무시한 채 계속 물어봤다.
“누구 보기로 했는데요.”
“내가 시시콜콜 얘기해야겠니……. 체스 두러 간다. 체스”
나는 선배가 누구랑 체스를 한다는 말이 믿겨지지 않았다. 그러나 더 이상 얘기하면 선배가 화를 내고 짜증낼 수도 있어보여서 그만 말하기로 했다.
“알았어요. 선배 이기고 와요.”
“넌 뭘……. 싱겁게 시리. 체스 하러 간다니깐 갑자기 안 물어보는 거야?”
갑자기 웃음을 빵 터트린 선배는 나보고 이게 캐슬링이라는 거야 보고 배워 라고 웃으면서 농담을 던지고 사라졌다.
홀로 동아리방에 남은 나는 선배가 누구랑 과연 체스를 할까라는 생각을 하며 카스마로포의 체스교본을 보며 계속 체스공부를 했다. 나도 누군가 옆에서 지켜보면 혼자 체스를 두는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
선배는 그 뒤에도 계속 주기적으로 누구를 만나러 가는 듯 했다. 금요일마다 모이던 우리 체스동아리 모임에는 끝끝내 참여하지 않았다. 체스공부를 목적으로 모인 우리들은 매주 금요일마다 ‘우리 동아리의 자랑스러운 회장’님은 매주 왜 그리 바쁜 거고 도대체 우리랑 체스는 안두는 이유가 무엇인지 성토대회로 바뀌었다. 하지만 더 이상 얘기 나올 구석도 어떤 스캔들도 없었다. 여자애들은 뭔가를 아는 눈치였지만 걔네들도 명확하게 안다고 말할 수 없었기에 우리는 그저 다들 궁금했지만 그렇다고 물어볼 용기도 없던 사람들이 우리들이었다.
성토대회는 길게 이어지지 못했고 결국 우리는 다시 체스 둘 줄 모르는 바보들의 스승은 언제나처럼 카스마로포였다. 카스마로포는 그의 제자가 이렇게 한국에 있는 대학에, 그것도 조그마한 구석방에 모여있을거라고 짐작이나 했을까. 우리는 카스마로포의 체스교본을 성전인양 모셨고 그가 가졌던 1인자로서의 고독과 체스에 쏟아 부었던 고민들을 나누어지기로 결의했다. 그렇게 한주에 한번 씩 모이던 모임은 두세 번, 따로 번외 모임을 가지기도 했고 우리는 학기가 마친 이후에도 모이기로 얘기했다. 그렇게 우리의 우상 카스파로프를 모시는 12사도들은 회장에 대한 고민과 그녀와 체스를 두고 싶어 하는 것은 우신을 향한 예찬일뿐이고 진정한 길은 교본에 있다고 믿으며 체스공부에 여념이었다.
카스파로프가 체스에서 가장 강조한 부분은 오프닝과 엔드게임이었다. 그러나 그의 체스에서 가장 화려하게 빛나는 부분은 미들게임이었다. 초반 오프닝은 사람마다 스타일이 다르고 어떻게 시작하냐의 차이일뿐이었고 엔드게임은 중반이후 끝나가는 게임에서 마무리 짓는 법이기에 집중력의 차이만이 있었다. 그러나 카스파로프의 컴퓨터와 같던 수읽기는 미들게임에서 돋보였다. 그가 하나하나 둬가는 수들은 불리했던 오프닝을 뒤집었다. 나는 그가 뒀던 미들게임을 매번 복기하고 체스 모임에서도 항상 이부분에 대해서 같이 공부하자고 했다. 오프닝에서의 약점을 가졌던 나는 어떻게든 미들게임에서 항상 역전을 노렸다. 그러나 나는 미들게임에서 도저히 오프닝에서의 불리함을 뒤집지 못한 채 엔드게임을 들어갔다.
체스동아리 내 체스모임은 호황이었지만 동아리 자체는 위기였다. 사람도 잘 안 오고 여러 일도 터지고 매주 매주가 고생길이었다. 그러다 보니 다들 학기가 끝이 나면 시원하게 술마시고 놀자고 매일 매일 서로에게 약속했다. 학기 중에도 물론 술마시고 놀 수는 있지만, 그래도 모든 일이 끝나서 그 해방감에 가득 찬 상태로 마시는 맥주 한 모금이 우리에게는 체크메이트보다 짜릿한 순간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학기는 끝이 났고 마지막 주 금요일 다들 모여서 종강총회겸 다같이 모여서 술이나 마시자고 결정되었다. 시험기간이라고 고생도 많았고 그간의 약속을 지키자는 의미였다.
그러나 그 자리에도 태리선배는 늦게 온다고 연락했고 잉 외에도 다른 몇몇 애들도 바쁘고 자기 약속하러 갔고 우리는 결국 조촐하게 모임을 가졌다. 그러나 그 조촐함 속에도 우리는 모여서 체스얘기, 시험얘기, 군대얘기 등으로 수다 떠느라 바빴다. 다들 시험이 어려웠다. 체스가 은근 재미있다. 군대를 갔다 온 사람들은 나보고도 군대를 가야하지않냐고 얘기했고, 나 역시도 갈 날은 잡고 아마 내년 상반기에 갈 것 같다고 얘기했다. 군대얘기 후에도 서로가 누굴 좋아하니 마니 연애얘기가 이어졌다. 그러한 이야기 폭포 속에서 우리는 나는 늦게나마도 온다던 선배한테서 연락이 왔다.
“얘들아 나 잠깐 전화 좀 받고 올게. 태리선배한테서 전화 왔다.”
핸드폰 액정을 꺼내서 사람들을 향해 보여주고 나는 자리에 일어섰다. 그걸 보고 동아리 사람들은 맞다 선배, 항상 이럴 때마다 늦거나 없어서 몰랐다. 하면서 맞장구들을 쳤다
“ 선배 늦게라도 오라고 얘기해줘. 이상하게 니 말은 그래도 잘 듣더라.”
사람들의 권유에 나는 손가락으로 OK사인을 보여주고 전화를 받으러 가게 문 밖으로 나왔다.
크리스마스를 얼마 안남긴 겨울의 밤은 전화를 오래하기에는 추운 날씨였다. 가게 문밖에는 추위를 녹이려고 하는 건지 아니면 술기운을 녹이려고 하는 건지 많은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어찌되었든 나는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받았다.
“선배. 어디에요. 저희는 이제 끝나가는 분위기에요. 언제쯤 도착해요? 다들 선배만 기다리고 있어요.”
“ 나? 히……. 못갈 것 같은데…….”
선배의 목소리는 장난기가 섞인 목소리였다.
“ 또 왜요……. 먼일 났어요? 오늘 체스 하러 간거 아니었어요?”
“아니 그게 아니라……. 그냥 좀……. 피곤해서…….”
나는 답답해져서 선배에게 언성을 높여 말했다.
“선배 장난치지 말고 그냥 빨리 와요. 우리 학교 앞 자주 가던 편의점 옆에 술집. 아 맞아요. 거기 그 술집이요. 얼른 오세요. 저 끊습니다.”
전화를 끊고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아마 선배는 술을 마셔서 목소리가 텐션이 올라갔다고 짐작되었다.
시간이 지나고 우리는 다들 술에 술이 취한 마냥 무슨 이야기를 해도 웃기지만 더 이상 할 얘기는 없는 경지에 도달했다. 얼른 다른 자리로 옮겨서 늘어진 분위기를 살리던가 아니면 이 자리가 빨리 끝나기만을 바라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선배를 기다리기에는 너무나도 늦은 시간이 되었고 다들 자리에서 하나 둘씩 떠나기 시작했다. 그들만의 다음 회차 술자리, 혹은 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 역시 지쳐서 선배에게 연락을 남기고 자리를 뜨려고 했다.
‘선배, 이제 너무 늦었으니 그냥 오지 말고 집에 들어가 쉬세요. 다음에 놀아요.’
이렇게 선배에게 문자를 남기고 가방을 챙기고 문밖을 나섰다. 다른 사람들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돌아가는 길에 전화가 울렸다.
선배였다.
“ 나 지금 술집 앞이야. 다들 어디야!”
“선배 지금 다 집갔거나 각자 노래방이든 어디든 갔어요. 선배가 너무 늦었다고요.”
“늦었다는 말 하지마. 진짜 싫어 늦었다는 말. 왜 나보고 다들 늦었다고 하는 거야. 난 왜…….”
선배의 목소리는 장난기 가득했던 목소리가 아니라 조금 떨리는 목소리였다. 아까의 장난기는 위장이었나?
“알았어요. 선배 저라도 갈게요. 그 근처 술집 잡아놔요.”
선배에 대한 생각 반, 귀찮음 반. 내 속의 알코올은 각각 저 두 반잔씩 나뉘어 섞어지고 있었다.
술집에 도착한 나는 문 열고 선배가 있는 자리를 찾았다. 하지만 선배는 보이지 않았고 내가 잘못 왔나 라고 생각하고 핸드폰을 다시켰다. 그러다가 어느 테이블에 폰과 퀸이 놓여있는 자리가 보였다.
저 자리인가 싶어서 그 옆자리에 앉았고 메뉴판을 집었다. 선배가 안주를 먼저 시켰을 것 같았지만 그냥 앉아있기 뭐한 나는 퀸과 폰을 슬쩍 슬쩍 훔쳐보며 메뉴판을 보는 둥 마는 둥 있었다.
그리고 선배가 나타났다.
선배는 목소리와는 다르게 굉장히 멀쩡해 보이고 오히려 활기차보였다.
“도착했어? 히히……. 매일 고생하는 우리 후배님을 위해서 늦게나마 내가 왔다~~~~” 선배는 신이 난 듯 내 팔뚝을 때리면서 말했다.
“아 선배 아파요. 아파요”
“ 내가 온다니깐, 왜 그렇게 보채. 하도 보채서 제가 왔습니다. 후배님~”
선배는 꽤나 취한 듯이 보였다.
“안주는 내가 쏠게. 뭐 먹을래.”
“전 괜찮아요. 조금만 먹고 일어나요. 시간도 늦었는데.”
나는 선배의 손을 막고 테이블에 얹어놓게 하고는 말했다. 실제로 긴 기간의 술자리라서 뭘 먹고 싶지 않았다
“ 그래. 선배 오늘은 왜 이렇게 늦은거에요. 일이 늦어지면 늦어진다고 말을 하거나 아니면 무슨 일이 있다고 미리 말해야…….” 내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소주가 도착했다.
“ 잠깐만 소주가 왔으니 마시고 얘기하자.”
바로 자신의 잔에 소주를 채우고 내 잔에도 가득 소주를 채웠다.
건배를 하고 나랑 선배는 소주를 들이켰다.
“선배. 그러고 보니 레몬은요? 레몬은 안 넣기로 한거에요?”
“레몬? 그 지겨운 레몬얘기는 갑자기 왜 꺼내. 이제. 그거 안 먹을 거야. 그거 먹으라고 했던 사람도 이젠 지겨워.”
선배는 짜증을 내며 말했다.
이게 무슨 소리지. 술 취해서 아무 말이나 하는 건가싶었다.
선배와 술을 몇 잔 더 마시고 아까 동아리에 있었던 술자리에 대해서 얘기해주고 선배와 농담 따먹기를 했다. 선배는 그런 일이 있었냐며 웃고 나도 걔가 그럴 줄 몰랐다니깐요. 하면서 더 신나게 농담을 했다. 서로가 마신 술의 양만큼, 술자리가 익어가는 속도도 빨랐다.
나는 그렇게 회장에게 동아리 있었던 일을 보고했고 회장님은 좋다~ 하고 시원시원하게 결재했다. 이래서 다들 술자리에서 회사일을 진행하나 싶었다.
“ 선배, 테이블에 왜 퀸과 폰을 꺼내놓은거에요. 체스덕질이 좀 과한 거 아니에요? 술자리에서까지.”
나는 테이블에 있던 퀸과 폰을 만지면서 말했다.
“ 너 기억해? 지난 학기 초, 체스동아리 전단지. 언젠가 그게 기억에 남아서 체스동아리의 존재가 마음 속 어딘가에 남았다고 했잖아.”
“ 기억하죠. 뭔가 저 퀴즈가 뭘까 싶기도 하면서 동아리도 궁금해졌죠.”
“ 그때 폰과 퀸이 둘러 쌓여있는 모습 보면서 어떻게 살아날 수 있을까. 고민 안 해봤어?”
나는 팔짱을 끼며 잠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며 고민했다.
“ 글쎄요. 뭔가 떠오른 답이 있긴 했어요. 갑자기 그건 왜요.”
“ 음……. 나에게 체스를 알려준 사람이 있었어. 대학 와서 친해진 사람이 있었어. 그 사람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그 사람 취미가 체스라서 나에게도 체스를 알려주었어. 알잖아.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 같이 활동적인 사람이 체스를 좋아했을 리가 없잖아. 그냥 둘이 앉아있을 때 매일 할 얘기도 한계가 있고 서로의 취미에 대해 얘기하면서 얘기한 거였지.”
“선배가 체스를 싫어했었구나. 나는 선배가 체스판에서 태어난 줄 알았죠. 맨날 체스기물 달고 다니기에.” 선배가 하는 이야기에 관심이 갔지만 그렇다고 마냥 그 이야기를 다 듣기에는 알 수 없는 섭섭함이 있던 나는 농담을 던지고 말았다.
“ 그래? 그 사람이 들으면 좋아했겠네. 어쨌든 매일 체스 얘기를 그 사람은 하고 나는 그걸 멍하니 들었지. 지금 생각하면 뭐하는 짓이었는지 몰라. 어디 가서 영화나 한편보거나 하다못해 오락실가서 오락이라도 할 걸.”
조용히 얘기를 하던 선배와 나는 각각 퀸과 폰을 손에 쥐고 있었다.
“ 그런데 어느 날 그 사람이 유럽으로 간다고 하더라. 프라하가 있는 체코랑 헝가리라고 했어. 체코가 체스의 체자와 같아서 맘에 든다더라, 뭐라더라. 어이가 없었지 나는. 이게 무슨 일이야 했어.”
“ 가야할 이유가 있다고 얘기했고 나는 가만히 듣고만 있었지. 그리고 가기 전날, 나는 체스한판만 두자고 했어.”
“체스요?”
“그래. 체스. 체스한판을 두자고 했지. 꼭 그 사람과 한번만이라도 두고 싶었어. 하지만 그 사람은 나랑 체스를 결국 두지 않았어. 갑자기 종이를 꺼내는 거야. 그러고는 문제하나를 그려줬어.”
선배는 그때의 감정과 행동을 하나하나 체스행마를 복기하듯 계속해서 떠올렸고 나는 말없이 그 얘기들을 듣고 있었다.
“ 그 문제가 바로 전단지에 있던 문제야. 퀸과 폰을 살리는 문제. 이걸 풀어보래. 체스 두는 건, 미루자면서 말이야.”
선배는 내 손에 있던 폰을 뺏고 테이블위에 얹어 놨다. 그리고 자신의 퀸 또한 올려놓았다.
“ 너는 이 문제를 풀 수 있겠어?”
나는 고개를 가로 젓고는 조용히 웃으며 술을 마셨다.
“그치? 이상하지. 이게 도대체 뭐야. 나는 체스를 두자고만 했을 뿐인데.”
선배는 어이가 없고 자기도 이게 무슨 얘기인지 모르겠다는 식으로 말을 했다.
“그래서요. 그렇게 끝인 건가요.”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은 나는 계속해서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 아냐. 이번에 잠깐 한국에 왔어. 그래서 얼굴을 봤지. 내가 자꾸 바빴던 게 그 사람을 보려고 했던 거야. 여전하더라. 체스에 대한 사랑. 유럽에서 있었던 일보다 체스얘기를 더 많이 들었던 것 같아.”
“ 니가 나보고 체스 꼭 이기라고 했지? 나는 하지만 그 사람과 결국 체스한번을 두지 못했어. 그 사람은 이번에도 나에게 저번과 똑같은 문제만을 남기고 떠나갔어. 자기가 폰이고 내가 퀸이라는 건가. 아니면 내가 폰이고 자기가 퀸? 이게 뭐하자는 거야.”
선배는 짜증을 냈고 나는 그 얘긴 더 이상 그만하자고 달래면서 다른 재미있는 일들을 말했다. 동아리 내 누구와 누구가 사귄다라고 말했을 때 선배는 놀란눈으로 “진짜야? 아니 나없는 사이에 다들 동아리에서...”하며 말했다. 그리고 체스모임에 다음에 한번은 챙겨주라고 하는 말에는 “아니 나 없이 잘하는 데 굳이 내가 낄 필요가 있겠어? 내가 끼면 오히려 그게 더 어려울 거야. 잘하고 있잖아?”하며 어떻게든 빠져나가려고만 했다.
우리 테이블 말고는 모든 자리가 빈자리가 되었고 나는 선배에게 그만 일어나자고 말했다. 선배는 ‘딱 한잔만 더’를 말했지만 나는 날이 늦었다고 말하고 선배를 일으켜 세우고 가게 밖을 나섰다.
택시를 잡기 위해서 대로를 향해 태리선배와 골목길을 걸었고 선배는 체스고 레몬이고 뭐고 다 싫다고 말했다. 나는 알았다고 이제 우리 체스동아리말고 장기동아리로 바꾸자고 말했고, 선배는 웃음이 터져버렸고 배를 잡고 깔깔하고 크게 웃었다. 우리가 걷던 자정의 겨울은 춥고 어두웠지만 그래도 아직 더 어두워지기만을 남았던 시간이었다. 그 속에서 우리는 더 불을 태우고 싶어도 온도는 그저 내려갈 일만 남았었다.
큰길가에서 우리는 택시를 잡기위해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한 택시가 우리를 발견하고는 다가왔다.
선배를 태우면서 나는 고민했고 하고 싶지 않았지만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말했다.
“선배 사실 저 그 체스문제 정답을 알…….”
라고 말하는 나의 말꼬리를 잡았다.
“ 너 오늘 나랑 체스 둔거야. 나는 퀸, 너는 폰을 잡고 말이야.”
“ 네? 무슨 체스를 뒀어요. 저희가. 네?”
“ 둔거야 둔거. 그러면 다음에 보자. 아 맞다 그리고 순대는 간장인거야. 그래도 이건 안 바껴.” 선배는 택시 문을 닫고 가버렸다.
“ 아니 선배. 그 말 하나마저도 심지어 내손으로 둔 것도 아니고 선배가 내손에서 빼앗고 뒀으면서…….”
그날 이후로 동아리 활동을 계속 하면서 나는 선배 보고 체스를 두자는 말을 안했다.
그냥 그 말을 이제 더 이상 선배에게 하기 싫어졌다.
선배와의 체스 같지 않은 체스가 체스에 대해 가지고 있는 내 생각을 바꿔버린 것 같았다.
동아리에서 정기적으로는 동기들과 또는 후배들과 같이 카스파로프의 체스교본을 보고 공부하는 시간을 가지기는 했지만 그건 신앙 잃은 교인이 여전히 주말에도 교회를 가는 모습과도 같았다.
나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체스에 대한 고민과 걱정은 사라져갔고, 그 자리를 앞날에 대한 고민으로 바꾸어갔다.
체스는 체스일뿐이었다. 서로의 킹을 노리는 게임말이다.
그렇게 모든 기물이 킹을 노리지만 끝끝내 킹을 직접 손으로 따내지는 못하는 이상한 규칙을 가진, 그냥 보드게임일 뿐이다.
장기는 상대의 왕을 따내는 전략이 가능했지만, 체스는 그게 불가능했다. 가장 완벽한 상황을 끊임없이 찾아내야했다.
완벽한 상황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모임에서 같이 얘길 나눴던 나날들은 이어져갔지만 그 상황 자체에 대한 궁금증이 마음 속에 일었다.
나는 점점 선배와 마주치는 시간은 적어지고 나와 선배가 얘기했던 술집에서의 일이 실제로 있던 일인가 착각마저 들었다. 흘러간 시간 속에서 나는 모든 게 무감각해져만 갔다.
그렇게 나와 선배의 엔드게임은 끝이 보였다. 가끔씩 마주친 선배 지갑에 달려있던 열쇠고리도 수없이 바뀌어갔다.
바뀌어가는 열쇠고리를 5개쯤 세어갈때 쯤 나는 군대로 갔다. 거기서 나는 폰으로서의 삶을 느끼며 왜 그들이 앞으로 전진만 하는지 알게 되었고
상대 기물을 잡는 방법으로 대각선으로 가야하는지 어렴풋이 몸으로 체화했다.
시간이 지나고 나는 가끔씩 누군가 체스를 두자는 얘기를 꺼낼 때만 억지로 뒀고 시간이 지나자 심심풀이로 다시 두게 되었다.
군에서의 시간은 밖에서 수많은 일들을 까먹게 했지만 손만은 체스룰을 그대로 기억했다.
체스룰은 잊는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 것만 같았다. 체스룰은 정립 된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변화 없이 이어져왔다. 오직 두는 사람만이 수없이 바뀌었을 뿐이다. 나는 많은 상대들 속에서 단 한명 두고 싶은 사람이 있지만 결국 두지 못했다. 체스는 혼자가 아닌 둘이서 두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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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잘 읽었어요!
글을 읽다가 궁금한 부분이 있는데, 체스를 통해 표현한 것들이 아래와 같나용?
알듯 말듯 너무 어렵네용 ㅜ_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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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의 폰과 퀸 -> 짝사랑하는 관계
묘수 풀이 -> 주변의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야한다는 의미
체스를 둔다 -> 연애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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