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자취할 때였습니다. 제가 사는 동네에 새로 식당이 하나 생겼더라구요. 저는 새로 뭔가 나오면 하나씩 먹어보는 얼리어답+소믈리에 타입이라,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저녁을 먹으러 갔습니다. 내부 인테리어가 약간 카페처럼 깔끔한 느낌인데 메뉴가 부대찌개, 된장찌개, 제육 3개 밖에 없더라구요. 된장찌개를 주문했는데 고깃집에서 주는 그냥 밍숭맹숭한 국물이 아니라 완전 진국이었습니다. 사장님이 생각보다 어려 보이시던데 직접 주방도 지휘하고 홀에 서빙도 돌보셔서 약간 신뢰가 가더라구요. 메뉴 생각하기 귀찮을때 종종 이용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혼밥을 하러 갔더니 사장님이 안계시고 여자 알바생이 주문을 받더라구요. 평소처럼 된장찌개를 주문하려고 알바분과 눈을 딱 마주치는 순간 저는 뻑이 가고 말았슴니다. 아나운서 준비생이나 승무원을 연상시키는 단아하면서도 공부 잘할거처럼 생긴 타입의 알바생이었슴니다. 단정하게 빗어 올린 머리에 흰색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는데 사극 같은데 보면 나오는 의녀 캐릭터 느낌도 나고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더라구요. 주말에 친구4명이서 같이 간적도 있었는데 알바하시는분 미녀 린정? 하니까 린정 또 린정 하면서 네이버 블로그에 올라오는 이모티콘처럼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엄지를 척 올리더군요.
그후로 주 3~4회 정도 혼밥하러 갔습니다. 식당 밖에서 카운터쪽을 살피고 알바생이 있으면 가고 없으면 집에서 라면먹고 그랬습니다. 어느날 장을 보려고 마트쪽으로 걸어가는데 몇미터 앞 건물에서 그분이 딱! 나오시더라구요. 가까운 곳에는 배달도 해줬는데 배달 다녀오시는지 앞치마를 하고 계시더군요. 혹시라도 이쪽을 봐주지 않을까, 몇 미터 간격을 두고 졸졸 따라갔습니다. 식당 쪽으로 걸어가는데 맞은편 길에서 누가 알바생 곁으로 웃으며 다가 오더군요. 그 식당 사장님이었습니다.
사장님이 젊으셔서 알바생이랑 친한가보네 하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사장님이 알바생에게 입술을 쭉 내미니까 알바생이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살피더니 입을 쬮 맞추더라구요. 뭔가 현실이 아닌것 같은 장면에 돌덩이가 심장 위로 쿵 떨어진거 같은 느낌이 들면서 저는 그대로 석고상이 되어버렸슴니다. 알바분은 부끄부끄한 표정으로 사장님 어깨를 몇대 때리고는 둘이서 키득키득 웃더군요.
그날 집에 가서 울었슴니다. 그리고 그 식당에 다시는 안갔슴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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