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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2/16 08:18
이 시리즈 전체에 대한 한줄 요약 :
그러나 황제가 오래 살아야만 유지될 수 있는 시스템이라면, 애초에 그 시스템 자체가 글러먹었던 게 아닐까요.
18/12/16 12:43
군주제가 가지는 근본적인 문제점이죠.
그러나 공화제로는 다른 사람을 믿을 수 없었던 난세였기 때문에 군주제가 유지되었다고 생각합니다.
18/12/17 10:16
솔직히,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시절에 통치자가 오래 살지 않고 죽어도 괜찮은 시스템을 만들라는 게 무리한 요구임은 잘 압니다. 더군다나 태생불명의 8살짜리를 황제로 앉히고도 망하지 않는 나라를 만들라는 건 더더욱 무리수겠지요.
위나라의 멸망은 사실 조예가 너무 빨리 죽은 게 가장 결정적이었습니다. 조비는, 물론 조예를 후계자로 삼는 게 너무 늦었다는 문제는 있지만, 그래도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해요. 반면 조예의 지나치게 이른 죽음은 이후의 모든 걸 망쳐놓았습니다. 하지만 그럴지라도 위나라의 멸망이 무조건 조예의 이른 죽음 때문이라는 운명론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조조가 만들어놓고 이후 아들과 손자가 보완해 온 제도였지만 그 자체의 문제점도 있었고, 그게 조예의 이른 죽음으로 인해 촉발되었다고 보는 편이 더 옳지 않을까요. 뭐,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18/12/16 09:14
1. 조조 시대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친족 측근으로는 조인, 조홍, 하후돈, 하후연이 있습니다. 조비와 조예 시대에서는 조진, 조휴, 하후상, 조상, 조조, 하후현이 있고요. 그런데 두 집단 모두 똑같은 조씨 또는 하후씨 일가라고는 하지만 직접적인 혈연 관계는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조진에서 조상, 조휴에서 조조, 하후상에서 하후현으로 권력과 명성이 그대로 이어지는 것과 달리 조조 시대의 인물들로부터는 이어지는 인물들이 없다는 점은 특이한 것 같습니다. 별다른 이유가 있을까요? 고평릉 사변 이후 조씨의 친족들이 완벽히 쓸려나감으로써 황족 보위 세력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고 말씀하셨는데 조상의 삼족이 멸해질 때 조인, 조홍, 하후돈, 하후연의 후손들도 다 같이 죽임을 당한 것인가요?
2. 애초에 위나라는 조비가 워낙 친족에 대한 견제를 많이한 터라 왕이라고 해봤자 별 힘이 없었고, 이미 사마의를 필두로 한 귀족들이 정권을 많이 장악한 상태였다고 하죠. 그럼에도 황실이 직접적으로 귀족들로부터 멸시를 당하는 것을 넘어 나라가 아예 사마씨에게 넘어가 망할 지경에까지 이른 상황에서는 남아 있는 조씨 일가들이 위나라 전역에 걸쳐 있었다면 미약하나마 이를 결코 가만히 두고 보지만은 않았을 듯싶은데 어떻게 별다른 내분이나 갈등 없이 조용히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인가요?
18/12/16 09:36
조창 조식 등의 세력이 조비대에 한번 휩쓸리고.. 조예 대에도 조상이 본인외의 하후/조씨 세력을 쓸어버리고.. 친족이라는게 왕위 계승권이 있으니.. 왕권에는 늘 양날의 검... 결론적으로 보면 유재시거+친족중심의군권..이라는 시스템은 조비 조예의 수명보다도 조조라는 걸출한 인물이 아니면 본질적으로 진행이 불가능한게 아닐까...요
18/12/16 09:52
1. 일단 당시의 가문 개념은 현대 대한민국보다 훠어얼씬 더 강력했습니다. 그리고 조조 대의 유명인사들 자식도 다들 높은 벼슬을 했습니다. 당장 하후상만 해도 하후연의 조카, 하후무는 하후돈의 아들로서 중용되었지만 이후 쫓겨난 케이스, 하후연의 아들 하후패도 정촉호군까지 역임했으니 잘나갔습니다. 그 외에도 마찬가지고요.
2. 결코 조용히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조위의 충신이 없었을 리 만무하죠. 반란만 해도 왕릉 문흠 관구검 제갈탄... 요란했어요.
18/12/16 09:57
잘 배우고 갑니다.
조위의 황족들이 성공적으로 경륜을 쌓았다면, 그 다음엔 찬탈을 했겠죠. 당태종처럼. 어차피 피는 흘렀을 겁니다.
18/12/17 10:22
이 글을 쓰면서 저는 의도적으로, 그리고 자의적으로 '친족'과 '황족'을 구분해서 썼습니다. 황위계승권의 유무를 기준으로 해서요.
조비는 황족에 대해서는 미칠듯이 견제를 했지만 친족에게는 그러지 않았죠. 조예의 대에 이르러서는 조우 등 일부 황족들에게 오히려 힘을 실어주었고요. 조우가 찬탈자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는 데는 동감합니다. 하지만 친족들은 그러기 어려웠을 것 같아요. 예컨대 조상 같은 녀석들이 찬탈을 할 수 있었을까요? 오히려 사마씨 같은 귀족들보다 더 가능성이 낮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친족들의 권위는 본질적으로 황실이 힘을 실어주었기에 생길 수 있는 것이었으니까요.
18/12/16 10:15
숨막히는 필력입니다...
중간에 할아버지 조조와 아버지 조예가 만들어놓은 체제를 복구할 수 있었습니다. 조예에게 필요한 건 오직 시간뿐이었습니다. 여기서 아버지 조비로 고치면 더더욱 숨막힐거 같습니다 헤헷
18/12/16 12:06
어떤 의미에서 사마씨는 위나라를 무너뜨리기만 했지 권력을 잡다고 말하기 어려운 거 같아요. 서로마제국의 멸망때 처럼 무너뜨린 사람은 있어도 계승한 사람은 없는 상태랄까요. 사마염도 무려 통일군주임에도 귀족한테 약했고 그 이후는 그냥 강한 귀족 1 정도?
18/12/16 14:22
애초에 조위의 붕괴는 조비 때문에 생긴 것이죠. 조비가 주변 황족을 믿지 못하니 결국 외부 세력에 의존하는 체제가 구성된 것이 너무나 큽니다.
18/12/17 10:29
저는 조비가 조위 붕괴의 원인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습니다. 조비는 황위계승권의 유무에 따라 황족과 친족을 철저히 구분했고, 황족을 극도로 경계했지만 친족에게는 매우 너그러웠을뿐더러 오히려 중용했습니다. 물론 조비가 사마의나 진군 등 일부 귀족들에게 문호를 열어준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친족만으로 국가를 경영하려는 게 아닌 다음에야 그건 당연한 일이었어요. 그리고 조비 제위시 외군은 조진/조휴/하후상이라는 친족에 의해 완전히 장악되었지요. 현실적으로도 이들은 조위 황실을 보위하는 보루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습니다. 사마의가 본격적으로 황제조차 제어하기 힘든 권세를 가지게 된 건 오히려 조예 대에서부터였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위나라 멸망의 책임은, 적어도 60% 이상은 조예에게 있습니다.
18/12/17 10:51
저는 처음부터 조비를 후계자로써 지정해주지 않고, 자신의 사후를 대비해서 기반을 탄탄하게 마련해 주지 않은 조조에게 10%
조창, 조식이야 후계자 다툼이 있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다른 형제들에게 매우 가혹하게 대해서 친족들이 귀족들을 견제할 힘을 뺏아버린 조비 20%. 어디서 데려왔는지 출신도 모르는 조방을 후계자로 낙점하고, 사마의와 함께 조상 따위에게 후사를 맡긴 조예에게 30% 본격적으로 나라 말아먹은 조상에게 40% 있다고 생각하고 싶.....
18/12/19 23:41
동감합니다.
어쩌면 어쩌면 말입니다. 위나라 멸망의 책임의 10% (나머지 30% 가까이는 조비에게 돌아갈테니까요) 정도는 조식에게 있었던게 아닐까요? 음주운전을 즐기지만 않았다면 조식이 황제가 되는 다른 역사를 만났을 지도 모릅니다. 결국 인류역사의 분기점은 술이 아닐까요?
18/12/16 16:42
한국어로 정사 삼국지 읽어볼 방법은 없는지 궁금하네요. 번역서가 있다고는 하는데 오역으로 엄청나게 까이는 걸로 봐서 다른방법은 없는지 궁금합니다.
18/12/17 10:47
기본적으로 파성넷을 보고, https://ctext.org/sanguozhi/zh 에서 원문을 봐서 대조합니다.
그런데 저 원문 사이트에도 가끔 오타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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