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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9/27 08:54
사서에는 그 전에도 꽤 활약상이 있지만, 국제전에 본격적으로 두각을 드러낸 건 처음에 가깝죠. 두둥!
의외로 나이가 많아서 제갈량과 두 살밖에 차이나지 않습니다. 제갈량이 181년생, 육손이 183년생이죠.
18/09/22 07:16
고생하셨습니다
다녀오시면 몰아쓰기 콜? 결과만 보니 조조가 운이 엄청나군요 조식이 술만 안마시고 멀쩡하게 왔으면 잡힌게 우금이 아니라 조식이었을 수도 있겠네요 조식이 버텼으면 후계구도의 강력한 라이벌이 되서 원소꼴 났을거구요 역시 운칠기삼이네요
18/09/27 08:55
조식이 잡혔으면...... 아마 꽤 재미난 장면이 연출되었을 겁니다.
아마 조식을 내세워서 위나라 내의 조식 지지파들을 조금이라도 끌어들이려 하지 않았을까요.
18/09/22 07:27
그나저나 이 공성전이 관우의 첫 공성전이 맞나요? 어디선가 그런 내용을 본거 같은데 그렇다면 첫 공성전이 진짜 특이한 공성전 양상이네요 사실 양번이 저렇게 생긴건 이번 글로 제대로 알게됐기도 해서
18/09/27 08:56
창천항로에서 그렇게 말하기는 하는데, 여포를 잡을 때 하비 공성전이나 적벽 이후의 강릉 공성전 등 공성전 경험은 있었을 걸로 추측합니다.
18/09/22 07:33
이쯤에서 유비군이 물러나는군요. 그럼에도 관우는 더욱더 맹공을 가하고요.
이러면 관우의 진격이 후방교란보다는 점령을 위한 진지한 공격이였다고 봐야할까요? 아니면 처음에는 그럴의도로만 공격했는데 너무 잘풀려서?
18/09/22 08:13
육손와 여몽 등 영웅의 활약이 곧 다가오는 군요.
헛된 명성만 있던 관우를 사로잡을 무명의 장수 마충의 활약도 기다려집니다.
18/09/22 09:14
항복군을 대량으로 학살하는건 이미 역사의 오점인 시대였지요 춘추를 마스터했다는 관우로서는 (전국시대인물이긴하만) 백기를 모를리도 없고
18/09/22 10:30
처형은 처형 나름대로 명분적으로는 물론이고 실리적으로도 문제가 생길 겁니다
유비의 무기 중 하나가 명분이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명분적인 타격도 타격이구요
18/09/22 10:37
헐.. 덜덜덜..
삼국지 게임도 아니고 포로 3만을 처형한다니요.. 그리고 포로3만이 없었어도 쥐새끼 통수는 벌어졌을겁니다.
18/09/22 10:47
관우가 다른군주 밑에 있었거나 포로를 잡은게 유비본인이였으면 고려했을지도 모르지만 유비의 동생이자 부하라 힘들었을거 같습니다
조조는 원소군 포로 많이 죽였거든요. 관도에서 대승한 이후 원소군 포로를 [생매장]했는데 이때 죽인것이 [7만] [자치통감] 오소에서 생포한 순우경의 부하들 1천명을 전부 코를 베고 죽임 서주대학살에 비해 이 학살은 역풍도 별로 없었습니다.
18/09/22 08:47
잘 읽었습니다 추천합니다
근데 유비가 물러난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까요? 글을 읽다 보니까 유비가 물러나버리니까 관우 혼자 공격하는 형태가 되어서 고립되기 딱 좋은 것처럼 보여지네요...
18/09/22 09:12
한중전이후에 다시 총력전하기엔 무리이기도하고 유비 참전이면 양번전이 양번전으로 안끝나고 국가빵이 될 수도 있으니 제한전으로 두고 내정을 추스리려는게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물론 관우를 더 불안정하게 만들었고 그래서 제갈량 음모설이 들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18/09/22 09:22
형주 3군 정도의 기반으로 천하를 흔든 갓우느님
이정도면 충분히 의형의 명대로 조조를 괴롭힌거 같은데 철군하여 수비를 두텁게 하심이 어떠신지...
18/09/27 13:27
저도 인터넷에서 그 내용은 봤는데, 가지고 있는 자치통감이 다른 사람 버전이라 그 책을 아직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1군은 12500명인데 권중달 교수는 14500명으로 계산한 모양입니다. 근거가 궁금하네요.
18/09/22 10:30
7군이 7사단 같은 7th army 이런 건 줄 알았더니 7개의 군(단) 이었군요...
실로 엄청난 대군을 끌고 온 것이었군요..
18/09/22 10:54
하하하 이렇게 형주공방전이 끝났군요. 역시 관우의 위엄은 세계제일 ^^ 완결을 축하드립니다.
설마 외전 같은게 있진 않겠죠? 하하
18/09/22 10:56
유비 쪽 막느라 움직일 수 없었던 장합과 이미 죽은 악진 빼고 우금-서황-나중에 장료까지 오대장 전부 다 투입하고, 조조 친족 중 최고였던 조인이랑 마찬가지로 일류인 만총은 일찌감치 투입되어 있었고....사실상 조조가 동원할 수 있었던 에이스란 에이스는 전부 다 끌고 와서 들이부은 셈인데 뒤에서 통수치면서 들어오는 게 여몽이랑 육손.... 관성대제니뮤 흑흑....
18/09/22 10:59
어떻게든 손권은 뒤통수 쳤다고 봐야합니다.
그 뒤통수가 위쪽을 쳤었어야 된다고 보입니다만... 그렇게 좋아하던 합비를 왜 이때 안치고, 관우를 쳐가지고...........
18/09/22 11:47
손권은 위의 반격을 정면으로 받아야하는 서주등보다 위에게서 지키기 쉬운 형주를 원한거죠.어짜피 천하통일을 할 생각도 없었고 인재풀과 군사력도 대부분 지방호족들과 그들의 사병들 빌려쓰는거라 원정에도 약하니까..
18/09/22 11:49
주유, 노숙, 제갈각 등의 기록을 보면 분명 오도 천하통일의 야망이 보이긴 했습니다.
주유, 노숙이 좀더 오래살았거나, 제갈각이 조금만 더 일찍 등장했다면 좀더 멀리봤을텐데 참 아쉽네요
18/09/22 13:04
이 분 글에서 수없이 반복되는 얘기인데 실제 전쟁은 게임같은게 아니라서 겐세이라고 표현될 무언가가 불가능에 가까울겁니다
위군을 가정한다면 한중전때의 조조군을 보면 그게 파악안되기도 힘들고 그러면 가치가 없고 실제 군세를 어느정도 한중전에 이어 지속한다면 유비가 성도로 돌아간것과 같이 익주 내부안정화가 지속되는 전운으로 어려워 후방 반란의 위험성이 생기고 한중전에 이어 익주한중이 총력전을 지속한다면 신생국으로서는 감당이 안되겠지요 그냥 겐세이라는게 성립안되니까 유비도 성도로 회군하고 형주에서의 제한전으로 이 전쟁을 생각했을겁니다
18/09/22 13:58
아뇨 말씀하시는게 전문가 같아서요
생각 조금만 해봐도 국가간의 전쟁에 대해서 깨우칠 수 있는건데 제가 생각을 조금도 안하고 사나봅니다. 전알못이 댓글써서 죄송합니다
18/09/22 15:37
유비가 관우의 승전 소식을 빠르게 알았다면 성도로 안갔을거 같긴 합니다.
성도와 형주간의 소식이 전달이 늦어서 유비가 관우의 승진을 뒤늦게 알아 대응이 늦었다고 나오죠.
18/09/22 15:42
유비가 한중에서 조조와 맞다이를 하는데
관우야 너가 아래에서 겐세이 좀 놔라 해서 유비는 한중전을 이겼는데 관우가 겐세이 했던게 생각보다 대승을 거둬서 계속 싸우다가 손권에게 뒤치기....뭐 이런 느낌일까요?
18/09/22 15:50
네 그 느낌이 맞습니다 크크..
물론 관우가 오나라 뒤치기 대비를 안한건 아닌데... 오나라의 뒤치기는 글곰님의 형주 공방전 (4) 로 보시는게 더 좋을듯 합니다.
18/09/22 15:20
손권 이나 오나라 이 멍청한것들 관우가죽고 촉나라가 무너진다면 다음 타겟은 오나라인게 뻔한데 말이죠
차라리 관우가 건강할때 유비 장비 관우 제갈량 까지다모여서 다 끌어모아서 한번에 조조 사마의하고 한타싸움 가는게 더 좋았을지도요 지던 이기던 도원결의 3형제 한방러쉬요 관우죽고 장비 유비 너무 허무하게 끝났어요
18/09/22 15:35
촉이 위나라 먹으면 다음 타겟은 오나라 아닌가요?
애초에 오나라 방위를 위해서는 가장 먼저 취해야 할게 건업 앞에 있는 합비고 그 다음이 형주(강릉+양양+번성)인데 합비는 워낙 방어가 거세니 형주라도 취할 수 있을 때 취하는게 나쁘지 않은데요? 서주는 워낙 먼데다가 지형이 평지라 뺏는다고 해도 지키기 어렵구요. 그냥 촉에 애정이 있어서 촉위주로 생각한게 아닌지... 제가 오나라 실권자면 무조건 형주 취할 수있을 때 취합니다.
18/09/22 22:24
정말 치사한 결과적으론 오에게 형주는 아무의미없었고 촉은 동력을 잃고 진(위)에게 통일당했으니 의미없는 뒤통수가 아니였을까요? 방어가 거센 합비를 뚫어볼만했을때가 관우북진때밖에없었던거같아요.
18/09/22 23:01
합비를 먹어도 어차피 형주를 못먹으면 뚫리게 되어 있습니다. 합비랑 강릉이랑 양양/번성 지역을 모두 차지해야 그나마 방어가 되거든요. 사실 이것도 부족해서 촉땅도 먹어야 지형으로 일당백이 가능합니다. 촉땅이 위나 진에게 먹히면 양쯔강 상류에서 배로 보급하며 내려오는 병력을 막기 어렵거든요.
어차피 오는 합비를 뚫나 안뚫나 천하통일은 불가능했는데 몇십년이나 지속되어 창업군주인 손권대에는 평안했다면 그걸로 족한거죠. 통일한 서진이 51년 버티고 망했는데 오가 52년 버텼으니 버틸만큼은 버텼죠.(이것도 황제된 이후만 따진거고 실질적인 주인이던 군벌기간까지 합치면 서진보다 훨 오래갔습니다.)
18/09/22 15:53
질문 두가지만 드리고 싶습니다
- 저 당시 조조의 본거지(수도 말고 주로 상주했던 곳)는 업인가요 허창인가요? - 가정이지만, 손권이 어느날 갑자기 개념을 차려 쥐새끼같이 동맹국을 치는 뻘짓을 하지 않았다면 번성까지 함락시킨 관우가 재정비를 끝내고 유비의 본군이 양평관을 통해 장안을 치고, 관우의 형주군이 완을 통해 허창을 공격하고, 손권의 오군이 수춘을 공격하는 형태가 완비되었을까요?
18/09/22 16:13
조조는 업에 있었고 헌제가 있던 한의 수도는 허도입니다. 조조가 지가 무서워서 수도 옮기려고 한게 아니라 관우가 북상하려 하고 이에 호응하는 반란 세력들이 칭궐 중이라 혹시라도 헌제가 넘어갈까봐 수도를 옮기려고 한 거죠.
두번째 가정도 별 의미 없습니다. 오나라는 호족 연합체라 방어전은 단결해서 막으려고 하나 멀리 원정나가려고 하면 내부에서 갈등이 심해서 하기 힘들구요. 아직 양쯔강 이남이 개발된 상태도 아니고 무릉이나 산월 등의 이민족 세력이 있어서 내부를 다지는 것만으로도 힘들어서 공격은 합비 정도 취하는게 한계입니다. 서주 공격도 고려는 해봤으나 워낙 멀어서 취하는 것도 힘들고 얻는다고 해도 지키려면 수비병력 최소 10만은 남겨야 해서 이득이 없다고 판단내렸을 겁니다. 당연히 어느 정도 공백 상태가 되어 취약해진 형주를 취하는게 낫죠. 양양과 번성까지 먹었어야 방어라인을 완벽히 갖추는 건데그걸 못해서 훗날 진에게 털리긴 했지만요. 촉은 두갈래로 공격할 수야 있긴 한데 인구수 격차가 워낙 커서 위를 이기기 힘들죠. 한번 이겼다고 하더라도 관우꼴 재현밖에 안됩니다. 훗날의 환온급 군재를 가진 사람이 있었다면 모를까 제갈량이나 관우 수준의 군재라면 답이 없죠.
18/09/27 13:32
위나라의 수도는 업이었고, 위왕 조조의 본거지는 업으로 보는 게 맞습니다. 허도는 당시 한나라의 수도지요.
두번째는 말 그대로 가정일 뿐이지만...... 적어도 천하를 한바탕 뒤흔들 수는 있었을 겁니다.
18/09/22 17:14
손권의 생각은 뒷치기를 하더라도 유비의 주적은 조조가 있는 위니까 익양대치처럼 적당히 협상하면서 형주는 자기가 먹을 생각이었겠죠
그런데 관우를 죽여버리는 바람에 화가 단단히 난 유비가 주변의 반대에도 전면전을 벌인게 모든게 어긋나 버린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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