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차이가 꽤 나는 사촌형이 있습니다. 큰아버지는 농사를 지으시고 아버지는 일찍 도시로 나와 자리를 잡으셨습니다. 사촌형들이 고등학교, 대학교를 우리집에서 같이 살면서 다녔습니다. 지금도 저는 사촌이라기 보다 그냥 형제라고 생각합니다. 형이 오랜기간동안 외국에서 일하는 중입니다. 얼마 전에 애들 교육문제 때문에 사촌 형수만 한국에 들어오신다고 하더라구요. 집 계약 관련해서 도움을 좀 드렸더니 형수가 맛있는거 사주신다고 나오라고 했습니다. 형네가 외국에 나간지 꽤 돼서 꼬맹이들도 볼겸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초등학생 시절에 처음 형수를 봤습니다. 성당에서 연애하는 덕분에 같이 살던 저는 본의 아니게 일요일이면 성당에 끌려가야 했죠. 설교가 지겨워 온몸을 배배 꼬고 있으면 형수가 옆건물에 있던 오락실에 몰래 데려가주곤 했습니다. 둘이서 동전탑을 세워놓고 횡스크롤 액션게임을 종종 했었는데 형에게 발각되서 혼나기도 했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형수가 약간 철이 없는과(?)라서 저랑 죽이 맞았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많이 변해서 알아보기 힘들겠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멀리서 애들 손잡고 오시는데 진짜 예전 모습 그대로더라구요. 온유한 분위기에 낭창한 눈매, 소녀 같은 웃음소리까지 너무 똑같아서 반가웠습니다. 채도가 낮은 원피스에 엄청 큰 선글라스를 꼈는데 뭔가 꼬맹이들까지 패션 소품인 것 같은 느낌이드는 포스더라구요. 둘째 조카는 친화력이 왜 이렇게 좋은지 거의 처음 보는데도 안겨서 이거 사달라 저거 사달라 하는데 너무 귀여웠습니다. 자그마한 손에 어른들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전폭적인 신뢰가 느껴져서 기분이 묘했습니다. 왜 딸바보 아들바보가 되는지 알겠더라구요.
비싼거 먹자고 뭐 먹고 싶나고 형수님이 묻는데 애들이 한국 햄버거 먹어보고 싶다고 하도 졸라서 그냥 패스트푸드점에 가자고 했습니다. 큰맘먹고 비싼거 사주려고 했는데 햄버거 먹으러 오니까 "니들이 자꾸 떼쓰니까 삼촌 맛있는거 못먹잔아" 하고 약간 시무룩해 하시더라구요. 당황해서 "저..저 햄버거도 진짜 좋아해요" 그러니까 낭창하게 웃으면서 "도련님은 어릴때부터 영혼이 자유로운거 같아서 좋아요" 이럽니다. 시동생 불러놓고 햄버거 먹이는 형수가 더 자유로운거 같은데 라고 속으로만 생각했습니다. 근황도 물어보고 옛날이야기도 하면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어릴때 사촌형이 지방에서 근무했던 적이 있었거든요. 방학때면 누나와 함께 몇주정도 형집에서 놀다오곤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결혼한지 얼마 안된 집에 죽때리면서 놀았던게 굉장한 민폐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만 그때는 형도 그렇고 형수도 너무 즐겁게 놀아줘서 너무 좋은 추억이었습니다. 형 퇴근하기 전에는 여기저기 드라이브도 가고 구경 다니다가 형 오면 게임도 하고 고스톱도 치고 그러면서 놀았습니다.
하루는 노래방에 간 적이 있습니다. 형수가 성악전공 하셨거든요. 저랑 누나랑 그때 당시 유행하던 노래를 부르고 형수는 그냥 웃으면서 박수만 치고 있었습니다. 마이크가 몇바퀴 돌고 형수님 노래도 듣고 싶다고 마이크를 넘겼더니 한번쯤 빼다가 웃으면서 선곡하시더라구요. 노래 제목이 어느 산골 소년의 사랑이야기였습니다. 처음 듣는 제목이고 전주가 약간 가곡 같은 느낌이어서 약간 시큰둥하게 듣고 있었습니다. 노래가 시작되는데 첫소절부터 정말 머릿털이 쭈뼛쭈뼛 서는 것 같았습니다. 항상 어설프고 철없는 이미지로만 생각했던 형수님이 성악 창법으로 깨끗한 고음을 마구 때리는데 무슨 오페라 주인공처럼 예뻐 보이더라구요. 노래가 끝나고 마지막 숨소리까지 멈췄을때 제 양쪽 눈은 하트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그때 당시 다른 형수들과는 다르게 이 형수님에게는 좀 더 특별히 좋아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방학이 끝날즈음 돌아오는 기차역에서 손흔들며 배웅해주던 모습이 계속 생각나서 불끄고 누우면 눈물이 막 났었거든요. 즐거웠던 기억 때문에 학기 시작하고 1~2주는 후폭풍에 시달렸던 것 같습니다. 진짜 어느 산골의 소년이 된 것처럼 말이죠. 형네는 외국으로 떠나고 서로 바쁜 삶을 살면서 거의 잊고 살았습니다.
당연히 명절에도 형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최근에는 집안 어른들 걱정하는 목소리가 들리더라구요. "이번에도 XX(사촌형)는 벌초에 안오냐?", "큰아버지 연세도 많으신데 XX 이제 한국 들어와야지." 뭐 이런식입니다. 명절마다 우려의 목소리만 들리고 장남인 형은 돌아올 생각을 안하고 그러니 궁금하더라구요.
저희 큰집 분위기가 유교적 전통을 답답할 정도로 고수하는 편입니다. 명절 아침에 제사를 지낼때 첫번째 집부터 마지막 집까지 돌면 오후 2시 가까이 됩니다. 제사 끝나고 바로 선산에 성묘를 가면 큰아버지께서 몇십기나 되는 무덤 하나하나 어떤분이셨는지 내력을 설명하고 아랫 항렬에게 숙지하게 합니다. 대충 느낌 오시죠?
요즘 시대에 뭘 저런것까지 지키냐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으실거라 생각합니다. 저도 사실은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윗대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을 내 대에서 끊어먹는다고 생각하면 후대에 미안함과 책임감을 느낄때가 있어요. 저는 이 전통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일단 배워서 전해주고 그들에게 받아들일지 말지 선택할 수 있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종중원으로서 집안일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구요.
형제처럼 가까운 사이여도 굉장히 오랜기간 동안 만나지 못하면 서로에 대한 믿음이 흔들릴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아는 형은 굉장히 책임감이 강하고 정말 착한 교회 오빠같은 사람이었는데 주위에서 집안일에 소홀한 사촌형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듣다보니 자꾸 좋지 않은 쪽으로 생각이 들더라구요. 못보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다른 식구들처럼 약간씩 섭섭함과 오해가 쌓였던 것 같습니다.
이번에 형수랑 조카들 보니까 형 마음이 너무 이해가 되더라구요. 행복이 뭐 별거 있겠습니까. 하고 싶은일 하고, 자기를 돌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집에 오면 낭창한 와이프와 귀여운 꼬맹이들이 기다리고 있고, 그러면 뭐 끝난거죠. 이효리와 이상순 나오는 예능프로 보면서 너무 부러웠는데 사촌형네 사는 모습 보니까 진심으로 부럽더라구요. 자기 행복이 뭔지 알고 그것을 지킬 줄 아는 것이 요즘 시대에 가장 필요한 덕목 아니겠습니까. 형은 무심한 사람이 아니라 용기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명한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이란게 있죠.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행복이 분명 가까이 있는것 같은데 저에게는 잘 보이지 않네요ㅠ 명절 맞아서 어른들에게 시달릴 회원님들 같이 화이팅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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