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우리 일이야 크게 별 게 없다. 싸움났다 싶으면 뛰쳐가서 말리고, 도둑맞은게 있으면 자료 확보한 후에 보고서 하나 날려주고
교통사고 났으면 도로정리 해주고, 술에 취해 길바닥을 장판삼아, 가로등 불빛을 이불삼아 잠을 청하는 처사들의 태평천하
몸과 마음을 깨워 무사히 가족의 품에 데려다주고. 다만 취기가 도를 넘어 당신들의 손과 발로 우리들과 뜨거운 신체접촉을
시도하고, 때로는 주변의물건을 집어다가 던지면? 잠시 하회탈은 벗고 오니 마스크를 쓰기도 하고.
변수가 좀 많기는 하다. 큰 유형은 A/B/C/D/F 정도로 나뉜다면 하위 카테고리는 x 20 정도 될까. 대한민국 5천만의 생각이 다
같을수는 없는 법이니깐. 하지만 몇번 상대하다 보면은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대략적으로 큰 그림은 그려진다. 당사자들간의 대화
내용을 듣다 보면 결국 그네들이 원하는 바는 하나로 통일된다. 나 손해 안보게 좀 도와달라. 하지만 법이 정하는 우리의 권한은
생각보다 그렇게 많지 않다. 우리 힘으로 하기에 스케일이 좀 크다 싶으면 구청에, 상급기관에 인계하고 상황을 정리할 수 있게 된다.
후속조치는 피 인계처에서 할 일이고 난 해당 내용을 상관에게 보고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끝이다. 앞의 일을 정리하고
다음 일을 할 준비가 된 것이다.
하지만 하나는 다르다. 고인(故人).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 그들의 슬픔을 마주하면 항상 난 피가 싸늘하게 식는다. 표정은 어디
도둑 하나가 리모컨 하나 들고간 일을 처리하는 것 처럼 무표정이다. 하지만 내 직업이 직업이고 내 역할이 역할이기 때문에
그럴 뿐, 이미 속은 번개맞은 고목마냥 시꺼멓게 타들어간지 오래다. 동료들도 같은 생각이지만 내색하지 않는다. 누구도 보지
않는 곳에서 담배연기 하나로, 한숨 하나로 응어리진 잿가루를 날려버릴 뿐. 결국 우리도 다 같은 사람이니깐. 돌아갈 집이 있고
먹여살릴 가족이 있으니깐.
절차는 똑같다. 장소, 시간, 원인, 유가족 또는 이웃을 상대로 사실관계 확인. 대략적으로 보고서 작성 후에 상급기관에 보고하는것으로
우리의 일은 끝난다. 우리의 손을 떠난 것이다. 뒷 일에 더 이상 관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 고인의 흔적을 정리하는 것은 유족의
몫이니깐. 그러나 "별 일 없나? 저 집은 애가 유치원도 안 갔네, 저 집은 찾아오는 자식도 없네, 나한테도 이런일이 생기면
어떡하지? 울까? 속으로 삼킬까? 내가 죽으면 부모님은 어떻게 하실까?" 라는 생각이 하루 종일 머리속을 떠나지 않는다. 또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내 살아온 인생과 앞으로 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생각해본다. 올해 54세니깐 대략 30년 남으셨나, "걸어 갈 길 보다
걸어온 길이 더 많으신" 부모님 생각도 몇번하게 되고, 몇달 전 심장병으로 돌아가신 동기의 아버지 장례식장 갔다온 일도
머리속을 지나가고...
이래서 사람이 종교를 믿는거구나. 그런 생각이 들면서 피식 웃었다. 1년 전 바티칸에서 본 [최후의 심판]을 보고 "이래서 사람이
종교를 믿는구나" 라고 생각했지만, 아니겠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떠나가는 것, 떠나보내는 것. 그 슬픔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
사람은 종교를 믿을 수 있겠다고 느꼈다. 무너져 가는 마음에 버팀목이라도 없으면 괴로워 미칠거 같으니깐.
괜시리 부모님께, 동생에게 주변사람에게 전화라도 한통 더 하게 된다. 장례식장에 부조금 봉투 하나라도 더 채워넣어야지
하는 시덥지않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슬프겠지만 세상 진리란게 다 그런거 아니겠나, 누군가는 다 겪을 일인데 의연하게
받아들여아지. 라는 쓸데없는 자기위로와 함께 난 오늘도 사물함에 고이 잠들어 있던 근무복과 조끼를 챙겨 순찰차에 몸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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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라는 것...
재작년에 문득 우리 부모님도 나이가 이제 이렇게 됐구나 싶더군요. 그 전 까진 그런 생각을 해본적이 없었는데...이제 준비를 해놔야겠다 싶더라구요.
나만 나이를 이렇게 먹고있다는 생각만 했었는데...내가 나이를 먹어가는 시간보다 부모의 나이는 배로 들어가는것 같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