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k를 처음 본 것은 xx 년 3월, 중학교 2학년이 시작되는 새 학기가 시작될 무렵이었습니다. 그때의 저는 낯선 학교에 온 탓에 항상 긴장해 있던 초등학생 티를 꽤 벗어서 수업시간에도 선생님을 상대로 종종 짓궂은 농담을 던지고 쉬는 시간에 교탁에 설치된 컴퓨터로 비트매니아를 하거나 친구들 사이에 껴서 판치기를 하는 등 꽤나 학교에 익숙해진 상태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학년에 올라가고 새로운 반에 배치되어 적응하는건 저에게는 꽤나 힘든 문제였습니다. 저는 새로운걸 좋아하는 편이지만 그 것에 대해 적응하는 과정을 수월하게 견디는 편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우리 중학교는 학생수가 많은 만큼 클래스의 개수도 많아서 새로운 반에는 1학년때 알던 친구들이 너댓명밖에 없었고 그마저도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이 아니였기 때문에 저는 쉬는시간이 되면 1학년때의 친구들이 있는 다른반으로 달려가 농담이나 지우개등을 따먹다가 수업시간 개시종이 울리면 번개처럼 돌아오고는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좋았던 시절도 잠시, 저를 위시한 학기초 부적응자들 때문이었을까요? 다른 반 학생 출입금지라는 표시가 학교의 교실들 문 밖에 붙기 시작하고 저는 꼼짝없이 우리반에 갇혀 쉬는시간이 되면 미어캣처럼 겁 많은 눈망울을 하고 주위를 둘러보는 1학년 학생으로 되돌아가고 말았습니다.
무리를 짓는 것은 역시 인간의 습성일까요? 학기가 시작되지도 제법 시간이 흐른 터라 이제 친구들 사이에서도 무리가 몇 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쉬는 시간마다 다른 반에 있는 친구들에게로 달려갈 수도 없는 터라 저는 그 무리들 중에 제가 낄 만한 무리가 있는지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눈에 띈 것은 수돗가로 선생님 몰래 담배를 피우러 가는 무리였습니다. 그 무리에는 제가 낄 자리는 없어 보였습니다. 싸움꾼, 얼굴마담, 개그맨 이 셋 중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잘 쳐줘봐야 개그맨이었고 그마저도 티오가 없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담배는 몸에 해롭기 때문에 저는 그 무리는 가지 않기로 했습니다. 두 번째 무리는 만화를 그리는 무리였습니다. 그들은 쉬는 시간마다 모여 수업시간 동안 수업은 안 듣고 연습장에 열심히 그린 자기들 그림을 비교해보곤 했습니다. 저는 만화는 그럭저럭 좋아했지만 그림은 정말이지 형편없었기에 그 무리에 들어가는 것도 힘들어 보였습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제 눈에 띈 무리는 게임 이야기를 하는 무리였습니다. 그들은 쉬는 시간마다 모여 리니지의 방어구의 방어력이나 물약값 계산을 하거나 스타크래프트 빌드 이야기를 하는 무리였습니다. 역시 제가 들어가기에는 가장 무난한 무리였고 저는 그 무리들 틈에 섞여 2학년 생활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그 무리에 들어가기로 결정한 제 눈에 하나의 무리가 더 들어왔습니다. 그건 여자들의 무리였습니다. 그 무리는 쉬는 시간마다 모여 아이돌 관련 굿즈들을 모아놓고 아이돌 관련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K는 그 무리 중 하나였습니다. K가 제 눈에 띈 건 K는 그 무리 안에서도 분명히 이질적인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K는 그 여자들의 무리 속에 있는 유일한 남자였기 때문입니다.
여자 같은 남자, 저는 그런 정도로 K를 규정하고는 눈 밖에 두었습니다. 그 당시의 저에게 K는 별로 친해지고 싶은 대상도 관심이 가는 대상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와 K는 인연이 있었던가 봅니다. 저희 반은 서로 친해지라는 명목하에 한 달마다 자리를 바꾸고 있는 교풍이 있었고 어느덧 개학한지 한 달이 지나 자리를 바꿀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저는 K와 짝이 되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여자 같은 남자에 대한 일종의 생리적인 거부감이 있었기에 K가 상당히 싫었습니다. 쉬는 시간마다 모여 남자 아이돌 이야기를 하는 것 이외에도 그의 여자처럼 가느다란 손목을 덮고 있는 얇은 가죽 손목시계, 음료수를 마실 때마다 치켜올라가는 손가락, 피구할 때 공을 피하면서 발을 들어 올리는 것 이런 것들 때문에 저는 K를 게이로 규정지었고 당시의 어리석었던 저는 게이에 대한 선입견과 거부감이 매우 컸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K로부터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어차피 한 달이 지나면 바꿀 짝이기에 저는 K에게 혐오 혹은 무관심의 스탠스를 취했고 그래서 비록 짝이 되었지만 서로 별다른 대화도 하지 않은 채 며칠이 흘러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쉬는 시간에 화장실을 간 K의 책상 밑에 A4용지로 인쇄된 종이 몇 장이 떨어져 있는걸 발견했습니다. 수업시간에 K가 종종 몰래 보고 있던 인쇄물이었습니다. 그 당시의 저는 팬픽이라고 하는 남자 아이돌 멤버사이의 연애를 대상으로 하는 소설이 있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것이겠거니 하고 그 종이를 주웠습니다. 주우면서 살펴보니 팬픽이라고 보기에는 무언가 이상했습니다. 그 종이에는 스케줄표처럼 시간과 장소가 적혀있었습니다. 그걸 보고 있는데 마침 일을 다 마치고 온 K가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바로 그날 저는 그 친구 집에 방문하게 되었고 그 이후로 그 친구와 저는 절친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K는 게이도 여자 성향의 남자도 아니었고 K의 여자 같은 행동은 누나들 셋 사이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때로 저는 생각하게 됩니다. 제가 우연히 그 종이를 보지 않았더라면 그때 그 친구에게 그 종이가 뭔지 묻지 않았다면 거친 쌍욕을 하며 제 옆자리에서 게임을 하는 이 친구가 있었을까 하고요. 아마 어리고 어리석었던 저는 맹목적인 거부감으로 친구 한명을 잃게되지 않았을까요?
“아 xx 맨 akm만 나오냐. 야 7탄좀 있냐?”
“미친xx. 중학교땐 착했는데 나랑 다니더만. 이제는 욕이 입에 붙었네”
다들 아시겠지만 백문이 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백번 듣는건 한번 보는건만 못하다는 말입니다. 이 들을 문(聞)자를 물을 문(問)자로 치환하면 그 반대가 될 것 같습니다. 백견이 불여일문(百見-不如一問), 백번 보는건 한번 묻는것만 못하다는 말입니다.
오해는 보통 바라보는것 만으로 생기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어쨌든 우리의 눈으로 세상과 타인을 바라보니까요. 이 글을 보는 여러분도 혹시 누군가 오해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바라만 보기 보다는 직접 대면해보시는게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의 눈은 분명히 잘못될수 있으니까요. 저는 우연히 오해라는 그 강을 건넜지만 우리가 그렇게 놓치는 인연은 분명히 있을거니까요.
이해와 오해라는 바다 사이는 분명히 넓습니다. 인간은 결국 섬에 가까운 존재이기 때문에 그 끝단과 끝단을 오가는 것은 우리가 인간인 이상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가끔 우리는 그 넓어보이는 이해와 오해의 사이를 관심 한번 간단한 질문 한번으로 건널수 있을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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