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영화 <아저씨>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편의상 반말체인점 너른 양해바랍니다.
영화 아저씨를 보며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 했던 장면이 있다.
가방절도범으로 몰려 애타게 도움을 청하는 소미를 외면해 놓고선 나중에 한다는 소리가
"너무 아는척 하고 싶으면 모른척 하고 싶어져"
소미의 도움요청을 외면한것도, 그 이유랍시고 얘기한것도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다.
그를 이해해보자.
극중 차태식은 감정표현이 극도로 서투르다.(그렇게 생겨먹었으면 감정표현따위 안해도 연애에 지장없었을테니 훌륭한 고증이라 하겠다.)
애초에 소미를 생각하며 구입했던 소시지였건만 같이 밥먹자는 말이 차마 입밖에 나오지 않았는지
소시지를 소미가 볼 수 있게 배치해놓고 돌아서는 소미를 퉁명스럽게 불러 거스름돈을 내어준다.
'소미가 소시지를 못보면 어떡하나.. 봐놓고도 먹고싶다고 안하면 어떡하나..'
안절부절하는 심사가 있었을터지만 그걸 친절하게 묘사하는 결의 영화는 아니니 미루어 짐작해야 한다.
그러한 성향은 힘든 사투 끝에 악당들을 물리치고 생을 내려놓으려는 순간,
죽은줄 알았던 소미의 생환을 목도한 그 장면에서 정점을 찍는다.
놀람, 기쁨, 환희, 격정이 한데 어우러져 감정을 분출해야 마땅할 그런 상황에도 그는 소미가 한없이 소중하고, 그래서 조심스럽다.
"오지마 피묻어"
(오늘만 살던 차태식이 내일을 기약하는 순간)
차태식은 복수가 끝나고 미련없이 자살을 결심하고, 만신창이가 된 자신보다 소미 옷에 피묻을걸 걱정할 정도로 소미를 격하게 아꼈다.
그리고 그 격한 관심과 사랑을 들키기 싫어한다.. 왜?
극도로 마초적인 집단에 속했었고 가족과 사별한 후 은둔생활을 하여 감정표현하는게 서투르고 어색해서?
자신의 사랑을 받았다는 이유로 죄없이 먼저 간 아내와 딸에 의한 트라우마 때문에?
자신의 일방적이고 격렬한 관심과 사랑이 행여 소미에게 부담과 압박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때문에?
어느쪽인지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너무 아는척 하고 싶으면 모른척 하고 싶어져"
자신의 일방적인 감정이 상대에게 부담될까 저어하는건 고백을 망설이는 짝사랑러에게 굉장히 좋은 명분이 된다.
자신의 용기없음을 지고지순한 사랑으로 포장하기 좋기 때문이다.
차태식은 '너무 좋아하면서도 그 마음 들키기 싫어하는' 짝사랑러의 정서를 공유한다.
중요한건, 우리는 영화상에서 전지적 시점으로 차태식의 깨알같은 순수함과 가슴아픈 가족사와 이세계에서 온듯한 미모를 보았다는 점이다.
모든 언행이 선의로 해석될만한 미모나 배경지식이 없는 대다수의 우리는,
극적인 이벤트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모멘텀이 되어주는 일따위는 없는 여느 일상을 사는 우리는,
감정표현에 보다 덜 인색할 필요가 있다.
고백따위 할 필요없는 다른 세상사람 이야기에 현혹되지 말고
명절을 맞아 사랑하는 사람에게 온기를 전해보는 것은 어떨까?
마지막 순간, 그 차태식마저도 그러했듯 말이다.
한번만 안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