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옷이 너무 싫었다.
엄마가 얻어온 자주색 비로도 마이.
TV어린이 드라마에 악역으로 나오는 부잣집 도련님이 입을 법한 그 마이.
작년에는 동네 부잣집 BJ형이 입고 있었던 그 마이.
우리반 EJ의 오빠인 BJ형이 입고 있었던 그 마이.
가난한 살림에 사서 입힐 방도는 없고, 누가 봐도 비싸 보이는 그 옷을 입지 않으려는 아들이 참 철없어 보였으리라.
12살에게도 자존심이 있고, 나름의 말 못할 사정이 있음을 헤아려주지 않는 엄마가 야속하기만 한 것 또한 철이 없는 이유에서라면
딱히 변명할 말은 없다.
우리집은 흔한 가난뱅이 가정이었다.
물려받은 재산은 없고, 젊은 시절 뭘 좀 해보려다 실패했으며, 고생 끝에 얻은 질병으로 노동력을 상실한 가장.
그로 인해 가계를 홀로 도맡은 엄마와 나름 밝고 성실하게 크는 오누이.
가난은 불편한 것이지 불행한 것은 아니라고 믿으며 끼리끼리 어울려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냈지만,
그 자주색 벨벳 자켓만은 정말 입기 싫었다.
내가 6살 무렵부터 엄마는 그 집에서 파출부아줌마 생활을 했다.
동네 가장 부잣집이었고, 같은 동네다 보니 어린 두 자식을 건사하며 일하시기 편한 이유였을 것이다.
그 집에는 나와 동갑인 여자아이 EJ가 있었고 6살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나이인지라 우린 소꿉친구가 되었다.
꽤나 알콩달콩 잘 니냈던 듯 한데, 학교에 다니게 되면서는 오며 가며 눈인사 정도 하다가
그마저도 3학년 무렵 부터는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성’이라는 것을 인지하면서부터 생기는 거리감이랄까?
요즘은 모르겠지만, 당시만 해도 이성과의 접촉은 심한 놀림의 대상 이었다.
그렇게, 그냥 그렇게 5학년이 되어 우리는 한 반에서 만났다.
가난뱅이 치고는 너무 활달했던 나는 어머니의 치맛바람으로 이미 유명하던 EJ를 선거에서 꺾고, 우리반의 대권을 차지하게 되었다.
돈의 힘과 본인의 노력으로 (당시 EJ는 좀 도도한 이미지였던 것 같다.) 실패를 경험하지 못했던 EJ가
개표 후 대성통곡을 했던 것은 약간의 난감함과 꽤나 통쾌함이 공존하는 기억이다.
아무튼, 이러던 차에 EJ의 오빠가 입던 마이를 나에게 입으라니!
이런 사정을 차분히 엄마에게 설명했다면 엄마가 더 이상 나에게 그 자켓을 종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건 당시에도 알았다. 하지만, 사정을 알게 된 착한 울엄마가 슬퍼할 거라는 것도 알았다.
그 벨벳 자켓을 결국 입었는지 입지 않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확실히 기억나는 것은 왜 입기 싫은 건지는 끝내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비록 지금도 큰 재산은 없지만 원하는 옷 정도는 부족하지 않게 입고,
내 자식이 가난으로 상처받는 일은 없을 만큼 살게 되었다. 엄마와도 웃으며 가난했던 시절 이야기를 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이 자주색 비로도 마이 이야기는 아직도 할까 말까 고민을 한다.
* 며칠 전 인터넷기사를 보다 우연히 EJ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미대로 진학했다는 소문은 들었던 것 같은데 꽤 유명한 큐레이터가 되어 있었고, 사진을 보니 25년전 도도한 새침데기 그대로였다.
만약 만난다면 6살 소꿉친구 EJ일까? 5학년 부반장 EJ일까?
이 또한 연락을 해 볼까 말까 고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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