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게임을 끄고 한숨을 쉬었다.
10여년 전에 친구에게 스타를 가르쳐 주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아니. 이게 안돼? 드래군으로 어택 누르고 저글링이 뛰어 들어오면 뒤로 무빙치면서 홀드 한번 누르고 다시 뒤로 무빙하고… 이게 안돼?
그때의 난 드래군 한부대로 저글링 2부대쯤은 쉽게 요리할 수 있었는데…
왜 지금은 어택 누르고 뒤로 한번찍고 다시 어택 누르는게 안될까?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현재의 나도 중얼 거린다.
말이 없던 내가 주절주절 말이 많아진건 나이가 들었다는걸 인지하면서 부터였다.
이렇게 과거의 좋았던 기억을 하나씩 더듬다 보니 들추면 안될것 같은 기억들도 만져 질거 같아 회상하는걸 멈췄다.
하이고. 벌러덩 누워 티비를 틀었다.
때마침 시라노 연애 조작단 영화가 나온다.
타이밍 좋다.
과거 떠올리다 티비 틀었더니 회상 영화 전문 감독님의 영화가 나온다.
회상 영화 전문 감독이란건 그냥 내가 갖다 붙인 명칭이었다. 매 영화마다 과거를 떠올리는 장면이 많아서…
(비슷한 예로 사랑 영화 전문 감독 허진호, 지구 파괴 전문 감독 롤랜드 에머리히 가 있다.)
스카우트란 영화도 좋아하고 시라노 이영화도 재밌게 봤었지만…시라노는 두번 보고 싶은 영화는 아니었다.
왜 두번 보기 싫지? 라고 생각해 본적 없어서 명확한 이유를 집어 내지는 못했지만… 여튼 다시 보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오늘은 타이밍도 좋고 기이한 우연이다 싶어 그냥 보기로 했다.
이민정이 최다니엘과 키스를 하고 엄태웅은 등을 돌리고 영화는 끝이났다.
그리고 이민정이 그 이쁜 얼굴을 자랑하는데도 이 영화를 보기 싫었던 이유를 알아차리게 되었다.
엄태웅의 찌질한 모습에서 나를 봤기 때문이었다.
홍상수 영화속 남자에서도 날 보긴 했지만 그 영화 속 남자들은 웃기기라도 했지. 시라노 속 엄태웅에게서 영화 내내 자기 합리화하고 상대방에게 상처줬던 내 모습이 보여 웃을수가 없었다.
그리고 자연스레 들추기 싫었던 과거 기억들에 손이 갔다.
한꺼풀, 두꺼풀 벗기자 부끄러움이 돋아났다.
미안해.
나의 미안한 마음을 담아 사과 전화를 할까? 이밤중에? 아냐. 전화하면 싫어할수도 있어. 그럼 내일 낮에 할까? 낮에는 좀 그런데. 지금 하자. 이 밤중에? 그래. 아직 안 잘거야. 아냐. 전화하면 구질구질하다고 할 수 있어. 문자로 할까? 그래. 문자가 좋겠다. 어어…근데 문자로 썼는데 뉘앙스 전달이 안되면 어떡하지? 편지를 쓸까? 편지는 길게 쓸 수 있으니깐 미안한 마음이 다 전달될거 같은데. 그래. 보기 좋게 연필로 쓰자. 아냐아냐. 편지 받으면 소름끼쳐 할 수도 있어. 얘 왜 이러지 하면서. 짧게 간결하게 전화가 낫겠다. 전화가 낫겠지? 에. 그러니까 전화를 하면……
주절주절 말이 많아진건 나이가 들었다는걸 인지하면서 부터였다.
나이가 들었다는걸 언제부터 인지했냐면……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