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저주(추저우), 화주에 이르는 길
화주를 경략(經略) 하며 순조롭게 세력을 다듬고 있던 주원장은 한동안은 큰 문제없이 평화를 누릴 수 있었지만, 그것도 잠시였을 뿐이었다. 처음에는 그렇게 큰일까진 아닌 듯했다. 하지만 잔잔한 호숫가에 무심코 던져진 게 돌멩이 하나라고 해도, 그 돌멩이 하나가 호수 전체에 지극히 큰 파장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법이다.
화주에 던져진 돌멩이란 바로 뜻밖의 인물인 손덕애였다. 과거 호주에서 곽자흥과 대립했던 바로 그 손덕애 말이다.
조균용과 함께 곽자흥을 몰아내고 그를 죽일 뻔하기도 했던 손덕애였지만, 이 무렵의 그는 상당히 비참한 지경으로 몰려 있었다. 주원장이 떠난 이후 호주의 상황이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는 앞서 언급한 바 있다. 가히 세기말적 묵시록이라 할 수 있는 형국이었는데, 그 한복판에 남아 있었던 손덕애의 형편이 좋았다고 하면 그게 더 이상할 일이긴 했다.
호주의 실권은 이미 옛날 옛적에 조균용이 모두 차지해버린 지 오래였고, 여러 정황을 살펴 봤을때 손덕애는 진작에 그의 부림을 받는 위치로 전락해버렸다. 도시의 모든 기반 시설은 전부 부서진지 오래였으나 포악한 조균용이 민정(民政)에 신경 쓸 리도 만무했다. 사람들은 도망치고 도시는 폐허가 되고 남아 있는 인간이라곤 악귀 같은 도적들 밖에 없었다. 호주는 이미 죽은 도시였다.
그런 몰락한 회색 도시에 덩그러니 남겨진 손덕애에게 아직 일말의 기반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그건 자신을 따르는 추종자들을 의미했다. 이 지경이 되었어도 그에게는 여전히 따라와 주는 부하들이 있었다. 문제는 조직을 유지하려면 다른 무엇보다도 이들을 먹여 살려야 했는데, 호주에서는 전혀 식량을 구할 수 없었다. 때문에 손덕애 부대는 일종의 유랑군이 되어 먹을 것을 찾아 정처 없이 헤매고 다녔지만, 지금처럼 수십만 수백만이 죽어나자빠지는 천하 난세에선 어디를 가건 양식을 구하기 힘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때문에 비참한 몰골로 헤메던 손덕애 부대는 마침내 화주 경계까지 오기에 이르렀다. 모습들은 전부 꾀죄죄 하고, 뭔가를 만족스럽게 먹지 못해 모두들 피골이 상접한 얼굴들이었다. 주원장의 내정으로 인해 비교적 여유가 있는 화주의 모습을 본 이들 ‘거지 군단’ 은 막무가내로 비집고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병사에 처자들까지 줄줄이 딸려 수많은 외지인이 난데없이 엉덩이를 붙이고 있으니 현지인들에겐 민폐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럴 생각이 있다면 이들을 무력을 동원해 쫓아버리는 것도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손덕애 측에서 “먹을 것을 주라.” 고 통사정하자, 주원장은 고민 끝에 그들을 받아들였다. 일단 쉬고 기운을 차린 후 떠나라는 것이다.
주원장이 어째서 굳이 이런 불청객을 받아들인 건지, 그 정확한 의도에 대해서는 확언할 수 없다. 인도주의적 차원이었을 수도 있고, 쓸데없이 전투를 펼쳐 피해를 감수하느니 적당히 체면을 세워주고 말자는 생각이었을지도 모른다. 혹은 일이 잘 되면 손덕애의 세력을 흡수합병할 수 있겠다는 속셈이었을 수도 있다. 그 자세한 내막은 주원장 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일이 그렇게 되어 손덕애 군이 화주에 진주(進駐) 하며 주린 배를 채우고 있었을 때, 그 소식을 듣고 격분한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저주에 있던 곽자흥이었다.
곽자흥은 손덕애와 불구대천의 원수였다. 한때는 동지였으나 분쟁이 생겼고, 손덕애의 음모로 인해 그는 죽을 뻔하기까지 했다. 손덕애에 대한 그 증오심은 뼈를 갈아 마셔도 시원찮을 수준이었는데, 마침 소식을 듣자 하니 주원장 이 작자가 손덕애를 거둬들였다는 것이 아닌가?
안 그래도 곽자흥 곁에서 참소하는 측근들은 “주원장이 화주에서 부녀자를 잔뜩 거둬들이고 희롱하고 있다.” 라던지, “군대의 장병들에게 재물을 갈취한다.” 라고 하는 유언비어를 지어내 보고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런 말을 듣고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하고 있던 찰나에 원수 손덕애에 대한 이야기를 듣자, 곽자흥의 분노가 폭발하고 있었다.
곽자흥은 말을 타고 그날 밤으로 달려 쏜살같이 화주에 도착했다. 미리 알리지도 않았던 갑작스러운 방문이었다. 문을 걷어차고 들어오는 곽자흥을 보고 놀란 주원장이 인사를 하려고 했으나 매우 화가 나 있던 그는 말을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상황이 심상찮다고 느낀 주원장은 곧바로 몸을 낮춰 꿇어앉고 조용히 있었다.
한참을 씩씩거리며 말 한마디 하지 않던 곽자흥은 대뜸 갑자기 소리쳤다.
“네놈이 누구냐?”
“총병 주원장이옵니다.”
주원장은 황망하게 대답했다. 곽자흥은 다시 한번 소리를 질렀다.
“네놈이 지은 죄를 알고 있느냐? 그래, 이제 어디로 달아나려 하느냐?”
그야말로 분기탱천한 목소리였지만, 침착함을 되찾은 주원장은 목소리를 낮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저는 대인의 자식인데, 자식이 죄가 있다고 한들 어디로 달아나겠습니까? 집안의 문제는 조만간에 얘기할 수 있으나 지금은 바깥일이 긴급하고 중요합니다. 처리할 방안이 있어야 합니다.”
“무슨 일 말이냐?”
다급하게 묻는 곽자흥을 본 주원장은 일어나 은근하게 대답했다.
“지금 이곳에 와 있는 손덕애가 옛일로 깊은 원한을 품고 있습니다. 지금 그의 사람들이 성 안팎에 깔려 있는데 공이 이곳에 있으니 혹시 변고가 일어날까 두려울 뿐입니다. 대인께서도 주의하시고 방비를 하십시오.”
곽자흥이 그 말을 듣고 보니 주원장이 손덕애와 한통속으로 붙어먹은 것은 아닌듯 했다. 조금은 노기가 풀린 곽자흥이었지만, 이제 문제는 남은 손덕애였다. 손덕애라고 곽자흥이 자신을 죽여 간을 씹어먹고 싶어 하리라는 것을 모를 리는 없었다. 그런 차에 곽자흥이 지난밤을 틈타 화주에 도착했다는 말을 듣자, 계속 엉덩이를 붙이고 있기엔 불안해졌던 것이다. 그는 주원장에게 사람을 보내 떠나겠다는 의사 표시를 전했다.
“자네의 장인이 왔다는 말을 들었으니, 인제 나는 떠나야겠네!”
불청객이 떠난다고 하면야 단순하게 생각하면 좋아할 일이지만, 생각이 깊고 의심이 많은 주원장은 일이 심상치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해 곽자흥에게 보고 한 뒤 본인은 직접 손덕애를 만나러 갔다. 그는 떠나려는 손덕애를 붙잡으며 말했다.
“기껏 오셨는데 어찌 이렇게 황망하게 떠난다는 말씀이십니까? 좀 더 머물러 계셔도 됩니다.”
“그대도 알겠지만 자네 장인과 난 함께 지낼 수 없는 사람이네.”
손덕애의 기색을 살펴본 주원장은 그가 홧김에 무력을 쓸 것 같지는 않자, 못 이기는 척하며 그를 보내주었다. 그러면서 손덕애에게 조언했다.
“부대를 이동시키는데, 원수께서 후미에 위치하시면 부대를 통제하기가 좋고 갑작스러운 사고를 방지하는 일에도 도움이 될 겁니다.”
이미 떠날 생각만 가득하던 손덕애는 달리 사고를 치고 싶은 생각도 없었기에 그러마 하고 승낙했다. 주원장은 그러고도 불안해 떠나가는 손덕애 군의 선두를 따라 10여 리 정도를 같이 이동하며 살펴보다, 이 정도면 괜찮겠다 싶어 막 말머리를 돌렸다.
바로 그때, 후군에서 전령이 황급하게 달려와 문제가 생겼다는 보고를 올렸다. 지금 성안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결국, 참지 못한 곽자흥이 기어코 후군의 손덕애를 습격하고 말았던 것이다.
상황이 이 지경이 되자, 천하의 주원장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어떻게든 일을 크게 만들지 않고 넘어가고 싶었는데 결국 전투가 벌어지고 말았다. 하물며, 아직 주원장은 화주 성 안에 입성하지도 못했다. 주위에는 선두, 중군의 손덕애의 군사들이 가득했던 것이다.
그야말로 범의 아가리 속에 혼자 머리를 들이밀고 있는 형국이 아닌가!
슬슬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한 선두와 중군의 손덕애군이 술렁거리기 시작하자, 식은땀을 흘린 주원장은 자신을 수행하던 장사 경병문과 오정을 불러 호위케 하고 바람처럼 옆의 손덕애군을 거슬러 화주로 달려갔다. 그렇게 미친 듯이 달려 화주의 초입까지 도착한 그였지만, 바로 그곳에서는 분노한 손덕애군의 후미 병사들이 칼을 빼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손덕애 군의 많은 군관들은 이미 호주에서 주원장과 면식이 있던 처지였다. 그들은 칼을 들이밀며 주원장에게 자신들을 배신했냐고 물었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은 분명 자네가 성안의 싸움을 미리 알고 있었기에 그리된 것이겠지?”
“아니오. 나는 결코 알지 못했소. 이 일은 내 본의가 아닙니다.”
주원장은 필사적으로 해명을 하며 자신이 저지른 일이 아니라고 설득했다. 하지만 그들이 영 들어줄 것 같지 않자, 한참을 빌다 갑작스레 허술한 틈 사이로 말을 몰아 달아나려 했다. 그 뒤를 손덕애 부대의 수십여 명이 말을 타고 화살을 쏘아대며 추격했다.
그런 화살 중 일부가 주원장의 몸을 스쳐 지나가기도 했으나, 철두철미하게도 겉옷 속에 연환(連環) 갑옷을 입은 주원장에게 큰 타격을 입히지는 못했다. 이렇게 결국 사지를 빠져나가나 싶었지만, 일이 또 그렇게 되지 못했다. 한참을 달렸던 말이 점차 몸에 힘이 빠져 지쳐버렸던 것이었다.
다급한 마음에 악을 지르며 몰아봐도 지친 말이 없는 힘을 더 낼 수 있을 리는 없었고, 느려진 말을 추격해 따라잡은 군관들은 주원장에게 창을 내찔렀다. 창에 맞은 주원장은 비명을 지르며 낙마했고, 곧바로 목에 쇠줄이 걸리고 말았다. 꼼짝없이 포로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포로가 된 주원장
생각해보면, 주원장의 일생 중에서 이때가 가장 큰 위기였다. 어떤 자가 홧김에 칼을 뽑아 들고 단칼에 그를 베어 죽이려 했으나 옆 사람이 이를 말렸다.
“손 원수께서는 아직 성안에 계시다. 지금 주원장을 죽이면 손 원수 역시 살아날 방법이 없을 터이다. 일단 사람을 파견해 상황을 알아본 다음에 손을 쓰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그런 의견에 따라 부대의 한 군관이 바로 성에 입성해 보니, 그들의 대장인 손덕애는 목이 묶인 채 곽자흥과 마주 앉아 한가로이 술을 마시고 있는 게 아닌가. 삼국지나 수호지에서나 볼법한 일화긴 하지만, 엄연히 명태조실록에 실린 정사의 내용이다. 여하간에 이런 어지로운 세상에서 홍건군 대장의 자리까지 오른 사람들이니, 다들 호걸이라고 할만했다.
곽자흥으로서는 원수 손덕애를 처치하기 전 같이 술이나 마시며 그를 비웃어줄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일이 이렇게 되자 상황은 묘하게 되었다. 이 앞에서 곽자흥과 주원장의 사이를 ‘애증’ 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곽자흥은 주원장을 미워했으나, 동시에 신뢰했다. 그가 있기에 지금의 자신이 있고, 앞으로의 난국을 돌파하기 위해서라도 꼭 주원장이 있어야 한다고 여겼다. 자신의 그 어떤 부하들보다도 더 신뢰한 사람이 주원장이었다.
그런 주원장이 적에게 사로잡혀 거의 죽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곽자흥은 깜짝 놀라 허둥지둥했다. 어떻게든 주원장을 살려서 다시 돌아오게 할 방법이 없을까 생각해 봤지만, 그 방법이라고는 결국 하나 밖에 없었다. 다 잡은 손덕애를 풀어주고 포로교환을 하는 방법뿐이었다.
마음 같아서 지금 당장이라도 손덕애를 죽이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곽자흥은 이를 악물고 포로 교환에 동의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이제 문제는 그 절차였다. 양 측 모두 상대가 약속을 어길 것이 두려워 먼저 포로를 석방시키려고 하자 않아, 상황은 며칠이나 답보 상태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때 나선 사람이 미래의 천하대장군, 서달이었다. 농부 출신의 이 용감한 장군은 자기가 주원장을 대신해 포로가 되겠다고 자청했다. 포로를 교환하겠다는 언질이 있긴 하지만 상황이 대단히 혼란한 만큼 이는 죽음을 각오한 행동이었다. 그래도 서달이 용기를 내어 자원한 덕분에 양측 모두 간신히 돌파구를 찾을 수 있었다.
일단 서달이 저쪽으로 가면 저쪽에서는 주원장을 석방하고, 주원장이 화주로 되돌아오면 손덕애를 석방한다. 그리고 손덕애가 돌아가면 서달을 석방하는 식이었다. 만일 서달을 포기한다면 곽자흥은 손덕애를 죽일 순 있었다. 하지만 이왕 약속한 이상, 맹세를 어기는 건 그의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곽자흥은 순리대로 일을 이행했다.
주원장이 손덕애 군의 포로가 되어 있던 시기는 3일 동안이었다. 그 3일 사이에도 우여곡절이 있었는데, 갇혀 있던 주원장은 몇 차례나 정체불명의 사람들에게 독살 위협을 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지인의 도움을 받아 구사일생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1) (2) (3)
이렇게 주원장은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았던 사지에서 천우신조로 살아돌아올 수 있었다. 주원장은 그렇게 살아남았지만 곽자흥이 문제였다. 손덕애에 대한 원한이 골수에 사무쳤던 곽자흥은 자신의 손으로 그를 결딴 내주고 싶었지만, 일이 이렇게 되어 그를 죽이지 못하자 답답함을 견디지 못해 속병이 들고 말았다. 앙앙불락(怏怏不樂) 하며 울적한 마음을 감주치 못하던 그는 3개월 동안 끙끙 앓다가 어이없이 죽어버리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곽자흥은 자신의 원한은 시원하게 갚지도 못했고, 죽을 운명이었던 주원장만 살려준 셈이 되었다. 그가 살아생전에 되고 싶었던 왕 자리는 죽고 나서 15년이 지난 1370년, 주원장의 명령으로 인해 저양왕(滁陽王)에 봉해지며 겨우 실현되게 된다.
죽을 위기에 처한 사람은 구사일생했고, 그렇지 않았던 사람은 반대로 어떻게든 죽고 말았다. 사람의 명운을 뒤흔드는 운명의 장난이란 그토록 지독하고 제멋대로인 법이다. 그리고 그 운명의 바람은, 이제 고아 빈민 출신의 주원장을 마침내 한 군벌의 주인으로까지 향하게 만들었다.
(1) 명태조실록 권 2
(2) 명사 곽자흥 열전
(3) 명사 서달 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