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밀가루로 만드는 음식, 싸고 간편하게 혼자서 끼니를 때울 수 있는 짜장면, 라면을 즐겨 먹는다. 싸고 간편한 것도 있지만 맛있어서 좋아한다. 건강 생각해서 한동안 멀리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밀가루로 만든 짜장면이나 라면을 떠올리며 군침을 흘리고 있을 때가 있다. 그때 정신 잃고 이윽고 정신을 차려보면 짜장면을 배달 시키거나 컵라면에 물을 받고 있다.
우리 부모님 세대에는 가난하고 힘든 시절, 짜장면은 특별한 보상이었다. 그리고 라면은 굶주려 허기에 시달리는 국민이 저렴한 가격으로 끼니를 해결할 수 있어 국민에게 정서적으로 아련한 감성을 자극하는 인(印)이 박혀 있다. 몇 년 전 농심에서 라면에 차별화를 두겠다고 호기롭게 출시했던 프리미엄 라면이 시장에서 배척당해 실패한 사실을 떠올리면, 라면은 저렴한 가격으로 서민들의 배를 채웠던 `인`이 문화적유전자로 자식들에게 계승되는 듯하다.
그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집에서 냄비와 물, 버너만 있으면 누구라도 끓일 수 있는 라면과 달리 짜장면은 양파와 양배추, 기호에 따른 채소, 돼지고기를 다듬고, 기름을 둘러 가열한 웍에 손질한 채소와 고기를 넣고 볶고, 채소가 익으면 미리 볶아 놓은 춘장을 넣고 거기에 조미료로 간을 하면 간짜장, 여기에 물과 전분을 풀면 물짜장이 되는 짜장면은 집에서 만들기 무척 까다롭다. 그렇기에 짜장면을 제대로 먹으려면 중식당에 가야 하거나 배달을 시켜서 먹어야 한다.
얼마전 오랜만에 중식당에서 짜장면을 먹다 보니 생각 나는 일이 있다. 곤궁하던 중학교 시절이다. 나는 군단위 면에서 멀리 떨어진 읍에 있는 학교를 버스를 타고 등하교를 했다. 시골에서는 버스 요금을 두 가지로 냈었는데, 하나는 현금이고 또 하나는 회수권이었다. 그때는 현금이라곤 만져보지도 못했고 회수권을 냈었는데, 그 회수권을 작은어머니에게 받았었다. 한 달에 한 두 번 회수권이 떨어지면 읍에 있는 작은어머니 댁에 가서 받아 썻다.
그러던 중에 작은어머니께서 친척 중식당에 일을 도와주고 있으니 회수권을 받으러 집이 아닌 중식당으로 오라고 했다. 아무 생각 없이 찾아갔었는데, 그때 거기 사장님이 내가 안쓰러워 보였는지 짜장면 한 그릇 먹겠느냐고 물었다. 예의상이라도 한번은 거절해야 했는데, 예전에 먹었던 짜장면에 맛을 기억하기에 혹시 거절 했다가 또 안 물어보면 어떻게 하지, 하는 걱정에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 쭈뼛거리다가 냉큼 `네`라고 대답했다. 금새 사장님이 짜장면을 내어 주었다. 제대로 먹지 못해 항상 허기에 시달리고 맛있는 음식에 대한 그리움이 있던 중학생이던 나에게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짜장면은너무나 감격스러웠다.
젓가락으로 짜장면을 신명나게 비비고 한입 먹었다. 한동안 먹지 못했던 짜장면의 맛을 다시 맛보니 황홀했다. 고작 오천 원도 안 하는 짜장면이 뭐라고 그리 맛있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그때는 그게 아니었다. 허접지겁, 게걸스럽게 지옥에 아귀가 해갈될 가망 없는 허기를 해결하려는 듯이 짜장면 한 그릇을 금세 비웠다. 그러고 나서야 민망함과 동정받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짜장면은 너무나 맛있는데, 아마도 식탐과 맛있는 음식에 대한 갈망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나보다.
그날 이후 일부러 회수권을 받기 위해 그 중식당으로 갔다. 회수권을 받으려는 핑계로 얻어먹는 짜장면은 너무 좋았다. 그렇게 몇 번 짜장면을 얻어먹다가 어느날 작은어머니가 불러. `일부로 여기 찾아와서 회수권 받아가지 말라`는 말을 했다. 어린 마음에 짜장면 먹겠다고 꾀를 낸 건데, 지금 생각하면 민망하기 그지없지만, 당시에 그게 너무 야속했다. 어떠한 즐거움도 만끽할 수 없었는데 그나마 그 행복을 앗아 가다니. 생각해보면 작은어머니가 거기서 짜장면을 먹고 있는 나를 보면서 본인이 더 민망했을 거라는 걸 이젠 알지만, 그때는 그것까지 해아리지 못했다. 선비도 삼일을 굶으면 담을 넘는다는데 배고픈 중학생의 코는 석 자가 아니라 달이라도 관통할 참이였다. 그렇게 그날 이후로 멀어진 짜장면은 고3이 되어서야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맛보았다.
별로 좋지 않은 기억이지만……. 뭐.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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