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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7/04 01:52
좋은 서평입니다. 저도 참 재미있게 읽었는데요, 여태껏 3번 읽었는데 읽을때마다 다가오는 포인트가 조금씩 다르더군요. 이런걸 명작이라고 하나 봅니다.
참고로 저는 디스토피아를 다룬 책 중에 '멋진신세계'를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혹시 아직 안읽으셨으면 강하게 추천드립니다 :)
17/07/04 01:53
멋진 신세계도 재미있지요. 저도 아주 인상깊게 읽은 책입니다.
다음 책으로는 화씨451 을 읽으려고 합니다. 1984 와 비슷한 듯 많이 다르다던데, 기대가 많습니다.
17/07/04 02:15
이중사고라는 어휘 설정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라면 '무지의 능동성'에 있다고 봅니다. 사람들은 흔히 무지한 상태를 보고 '수동적으로 외부의 억견이나 통념, 상식 등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대개의 경우 사실은 자신이 수용한 관념이나 주장이 그릇되다는 것을 어렴풋하게나마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무지한 상태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걸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무지한 상태로 유지시키고 반대증거들을 기각시키며 그 과정 전체를 투명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능동적'인 자기기만이지요.
본문에서 지적하고 있는대로 이중사고의 함의를 이데올로기나 세계관 같은 정치적/윤리적인 거시 개념을 관념적으로 사유하는 데에만 국한시켜서는 안 되는 것이, 애초에 인간의 인식 자체가 이중사고적으로 유지되죠. 예컨대 서사가 있는 소설이나 영화 같은 것을 보는 것도 마찬가지에요. 가령 <매드맥스> 같은 경우...이건 맥스와 퓨리오사와 다섯 신부와 임모탄의 실재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실은 샤를리즈 뜨론/톰 하디 같은 배우들 데려다가 조지 밀러가 현장 지휘하면서 이 동작 저 동작 시켜가며 찍은 다음 CG 덧붙여가면서 입맛에 맞게 편집해낸 '영상' 모음에 불과하죠. 즉 픽션이고 거짓일 뿐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그걸 알고 있고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그것이 물리적 쌩쑈라는 사실을 잊기 위해 무의식 레벨에서 애쓰면서 '영상'을 '리얼'로 받아들이죠. 마치 저것이 정말 실재하는 이야기인양...그리고 우리가 그런 식의 자기기만을 하고 있다는 것조차도 의식하지 않고요. 그럼으로써 수동적으로 영화의 내용을 뇌리로 받아들이는 게 가능해지죠. 결과만 보면 생각 없이 스크린에 걸린 영화를 머리로 복붙한 것 같지만, 그 사이에는 자기자신을 마취시키기 위해서 고도로 숙련된 지적운동이 펼쳐지고 있는 셈입니다. 한 마디로 정리하면 자기 자신의 이성과 자의식을 증거와 흔적없이 마비시키는 것이야말로 역설적으로 가장 세련된 지적 노동이라 할 수 있겠죠. 세상에 우동사리는 없다능..
17/07/04 02:21
오호라 구밀복검님 댓글 진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무지의 능동성이라, 뇌리에 팍 박히는 표현입니다.
(근데, 무지한 사람들 중 상당수는, 구밀복검님은 소수라고 하셨지만, 정말로 그냥 무식해서 그런 것 같긴 합니다)
17/07/04 02:52
개인적으로는.. 중우정치를 걱정하면서도 민주주의가 최선(혹은 차악)의 정치체제로 많은 국가에서 채택되고 있는 것은, 설사 국민이 우민이라 하더라도 그들은 <일부러>멍청한 것이다, 라는 믿음이 있어서라고 생각합니다. 트럼프 찍은 사람들이 트럼프 또라이라는거 모르는게 아니라 <일부러>모르는 척 하는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크 결국 멍청한 선택을 했더라도 그것은 국민의 뜻이고, 거기에는 반드시 고의성이 있기 때문에 죽이되나 똥이 되나 그 방향으로 가서 뜨거운 맛을 한번 본 다음에 선회를 하더라도 하는 것이 제대로 된 정치라는 그런..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이 이명박근혜를 경험하고 문재인으로 정권교체가 된 것은 아주 이상적인 민주주의가 구현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17/07/04 03:01
아무리 중우정치네 뭐네 욕 먹는다 해도 결국 민주주의는 100 년 세월동안 그럭저럭 잘 굴러간 제도이고, 따라서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그래도 민주주의를 통해 탄생한 나치당의 전력이 있는 이상, 너무 믿을 수는 없지 싶고요.
17/07/04 03:19
구밀복검님의 댓글을 보니, 장정일씨의 아담이 눈뜰 때가 생각납니다. 주인공의 엉덩이를 노리는 오디오가게 사장의 표현인데요...
--------------------------------- “재생으로 음악을 듣는 사람을 뮤직 러버(Music Lover)와 일렉트로닉 리스너(Electronic Listener)로 나누지. 전자는 음악을 좋아하여 음의 어느 일부분만 포착하여 좋고 나쁨을 왈가왈부하지 않는 사람이지. 그들은 레코드나 테이프를 재생할 때 조금이라도 실연에 가까운 느낌으로 감상하려고 노력하지. 그런 반면 후자는 기계 쪽에 관심이 많아. 끊임없이 기계를 바꾸어가며 많은 돈을 투자하지. 그들의 기계에 대한 관심은 끝이 없어. 지칠 줄 모르고 상급기에 도전하지. 그들은 음에 관심을 기술이고 가장 중요한 음악은 까맣게 잊어버려" "(뮤직) 러버의 경우 후자처럼 '해성력이 어떻다' '주파수는 아주 넓어야 한다'는 식의 기계적인 특성에 관해서는 별 관심이 없어. 그저 어느 정도 넓이로 찌그러짐이 적은 음이면 큰 불평을 늘어놓지 않지. 그러나 (일렉트로닉) 리스너들은 좀처럼 오랫동안 음악을 감상하는 일이 없으며 잠깐 잠깐 음악을 들으면서 음악의 즐거움보다는 측정수치나 데이터에 의해서 느껴지는 선명하고 날카로우며 또렷한 음을 포착하곤 그것에서 즐거움을 느껴. 또 그들은 음악 전체를 듣는 것이 아니라 고음, 저음, 분리도, 순발력 하는 식으로 음을 분리해 듣지." ------------------------------------- 저 구절을 보고서, 나는 뮤직러버인가 일렉트로닉 리스너인가 반문해 보곤 했습니다. '뮤직러버' 로서 내 감관을 얼버무려서 속일 정도만 된다면, 그걸로서 음악을 듣고 있다고 '착각'을 쉽게 시킬 수 있다면, 값쌀 노릇이죠. 하지만, 어쩌면 가짜임을 알면서 가장 즐기려는 자세의 극치가 빚어낸 '일렉트로닉 리스너'가 오히려 가장 솔직하고 깨어있는 유희오락을 즐기는 자세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기에 이 세계를 대하는 것도 마찬가지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은 아름다워!' 같이 쉬운 어린이를 위해 써 놓은 동화의 구절에다 본인의 전체 인생을 끼워맞추기로 마음 먹고서는 거기에 스스로를 잘 속이면서 적응시켜서 '나는 행복해!' 라는 머릿속으로만 빚어낸 마약(엔돌핀이죠!)을 자아내서 섭취시키는 속칭 [행복한 돼지]와, 인생이 얼마나 때로 잔인하고, 구질구질하고 모순덩어리에 추한지를 눈을 떼지 않고 보면서 그 '보는 것' 자체를 즐기는 [배고픈 철학자] 중에서 우리는 선택해서 살 수 있겠죠. (분명한 건, 돼지가 되고 싶은 사람을 철학자로 만들거나, 철학자가 되고싶은데, 돼지로 만드는 것만은 우리 서로 안하는 것이 서로 인간에 대한 예의일 것 같아요.)
17/07/04 02:46
OrBef님께서 해주신 이중사고에 대한 환기가 아주 재미있습니다.
이 정도 시점에서 '반야심경'을 되돌아보면 아주 그대로 '이중사고' 인거네요.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색수상행식(물질,감관,생각,행동,기억) 중에서, [물질됨]의 부분이 [공]과 다르지 않음을 말하고, [공]함 역시 [물질됨]과 다르지 않다고 한 후에, [물질됨]이 즉 [공]함과 같고, [공]함이 [물질됨]과 같다고 표현한 후에, 감관, 생각, 행동, 기억이 모두 다 똑같이 [공]함과 같도록 됨을 말합니다. 말씀하신 이중사고가 두가지가 근본적으로 다름을 알면서 의도적으로 하나로 합치시키는 작용이었다면, 색과 공을 하나로 합치시키는 것은, 말도 안되게 다른 스펙트럼 속에서의 존재의 본질을 명상으로 깨닫는 과정을 통해서 의도적으로 합치는 것이 아니라, 합친 것으로 인식할 수 밖에 없을 때에 그 다음으로 접근이 가능하다는 것이 차이 이기는 하겠군요. 저기까지를 완벽히 마음을 돌려 따라올 수 있다면, 空中無色 無受想行識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無眼界 乃至 無意識界 공중무색 무수상행식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 [공]에는 이제는 역으로 [색수상행식]의 인간 감관지식 작용 전체가 [무], 없고, 인간이 가진 [안이비설신의]가 닿아서 느끼는 [색성향미촉법]이 없어지고, 남아있는 모든 세계, 인식 가능한 세계, 인식 불가능한 세계, 상상도, 공포도 다 사라져 버린다고 가르쳐주네요. 이중사고 자체가 모순을 가진 '뻥'에 불과하다는 것과도 조금 대조하여 참고하자면, 이제는 [공]을 통해서 우리가 [안이비설신의]로 너무도 생생히 느끼는 [색성향미촉법]의 모든 것, 즉 [색수상행식]으로 이루어지는 세계 모두와 생각 모두 이 모든 것이 다 가짜에 [공]한 것에 지나지 않음으로 돌아갈 수도 있겠죠. 재미있는 관점과 정보 감사드립니다.
17/07/04 03:03
사실 불교의 색즉시공이나 기독교의 삼위일체 같은 이야기는, 해당 종교를 공유하지 않는 사람 입장에서는 전형적인 이중사고로 보이긴 합니다....
17/07/04 03:13
아 그런 모순적인 사고 말씀이라면 이해합니다. 근데 1984 에서의 이중사고는 특정인의 부귀영화를 위해서 하층민에게만 강요되는 사고는 아니에요.
애초에 IngSoc 에서의 승자는 아무도 없고, IngSoc 은 오로지 IngSoc 을 위해서 존재합니다. 내부당원들도 IngSoc 이전 사회 기준으로는 중산층 정도의 생활밖에 누리지 못하고 있고, 전체적인 인류의 삶의 질은 점점 내려가고 있죠. 그런데도 서로가 서로에게 이중사고와 절대적 충성을 강요하고 있고, 다 같이 망해가고 있는 것이 소설에서 묘사하고 있는 IngSoc 입니다. 뭐랄까, 우리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우리 개인 전체를 위한 부속품에 지나지 않듯이, IngSoc 의 인간 하나하나는 IngSoc 의 부속품으로서만 존재하죠. 본문에서 그나마 상황이 제일 나은 심문관 아저씨도 본인이 잘 먹고 잘 살 날이 올 거라는 기대는 전혀 하지 않습니다. '당은 인민을 위해서 존재하는 게 아냐. 당은 그냥 당을 위해서 존재하는 거고 우리 모두는 소모품이지' 라는 입장인지라. 그리고 그게 진심이고요.
17/07/04 03:28
알 듯 말 듯 하네요;;
예를 들면 국정농단 이후에도 박근혜를 여전히 따르는 무리들은 말씀하신 이중사고를 하고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17/07/04 03:33
박통이 최순실 게이트에 관련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박근혜는 애국자다.
정도면 흔한 박사모일테고, 박통이 최순실 게이트에 관련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박근혜는 최순실 게이트에 관련된 적이 없다. 정도를 믿어야 이중사고인 것으로.... [나를 돼지라고 놀리는 것은 괜찮아. 사실이니까. 하지만 나를 돼지라고 놀리는 것은 참을 수 없다!!!!!] 같은 거죠.
17/07/04 03:32
피자는 채소라니요...
피자는 고기입니다!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는 건 고기죠! 그나저나, 자신에게 해가 되는 진실에 눈을 감는 건 참 쉽고 빈번하죠. 그게 자기가 여태까지 믿어왔던 것에 반대되거나 이익에 반대되거나든..
17/07/04 04:00
피자가 고기라면 당뇨와 과체중 걱정에 많이 먹어서는 안 되지만, 피자가 채소라면 웰빙푸드니까 많이 먹어도 됩니다. 그러니까 피자는 채소입니다.
17/07/04 08:33
있지요. 실제로 1984 세계관에서 통용되는 문구들 중 '우리편에 적용할 때와 상대편에 적용할 경우 뜻이 달라지는 단어' 가 종종 등장합니다.
17/07/04 05:22
모든 현상을 어떤 특정한 인간의 일관된 관념적인 입장으로 꿰기(=만족스럽게 설명하기)가 쉽지가 않아서 그래요. 그래서 어느 지점부터는 그 관념의 일관성과 타당성을 포기하고 현실에 타협하여 대충대충 생각해야 할 때가 있어요.
원래 귀여운 여자만을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던 귀여운 연예인을 직접 만났는데 알고보니 실제로는 그 사람이 하나도 귀엽지 않고 터프합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여전히 좋게 느껴져요. 이때 '귀여운 여자를 좋아한다'와 '저 연예인을 좋아한다' 간의 모순점을 대충 얼버무리기 위해 어느 정도는 이중사고를 하면서 자기 자신을 속여야 하지 않겠어요?
17/07/04 05:30
1984 의 이중사고는 조금 다른 이야기라고 느끼긴 합니다만, 일반론 차원에서는 동의합니다. 이데올로기와 현실간의 모순을 해결하려면 어느 정도 타협을 해야 하고, 그 타협의 모습이 이중사고로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고 봐요.
'나는 자유지상주의자이다' '약자에 대한 일정 수준의 배려는 필요하다' 는 상호 모순이죠. 하지만 둘을 동시에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제법 많이 봅니다. '나는 리버럴이다' '나는 게이 운동이 싫다' 도 동시에 이야기하면 안되지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지요. 사실 이런 모순은, 내가 xxx 주의자이다라는 말만 포기하면 발생하지 않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 스스로를 xxx 주의자라고 믿어야만 삶이 편하긴 합니다. 본인의 소속이 무슨무슨 캠프라고 스스로가 확신을 해야만, 일상생활에서 부딪히는 많은 문제를 95% 확률로 일관되게 대응할 수 있으니까요. (저는 이제 xxx 주의자라고 이야기하기를 포기했습니다. '전 그냥 그때그때 말이 다르니까 저한테서 뭐 대단한 이야기를 기대하지 마세요' 라고 이야기를 하고 시작하면 편하더라는....)
17/07/04 05:35
나는 뉴턴 역학이 대체적으로 일상의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있다고 믿어. 하지만 이 경우에는 뉴턴 역학을 쓰고, 이 경우는 상대론을, 이 경우는 양자역학을, .. 이 경우는 현대 물리학이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한계를 알아.
..뭐 이런 거죠. 연예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고요.. 제 실화는 아닙니다..
17/07/04 05:32
전 개인적으로 고전 소설을 읽어볼 때마다 솔직히 이게 왜 대단한지 지금으로서는 못 느끼겠던 적이 많더군요(그만큼 후대에 영향을 줬으니 못 느꼈겠지만) 근데 예외가 바로 1984입니다. 그 이후로도 디스토피아를 다룬 걸 몇 개 읽어봤는데 기술적인, 사회학적인 설명은 더 그럴듯한게 있어도 디스토피아의 느낌을 더 잘 구현한건 없더군요.
전 개인적으로 저 3개의 명제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게 평화를 지키기 위해 선제적으로 전쟁을 일으키고 온갖 것들을 법으로 구속한 다음 그 안에서 자유롭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무지하지 않은 사람들은 오히려 자기모순을 인식하여 취약해지는 반면 그 반대는 맹목성을 무기로 얼마든지 자기멋대로 하고 있는 장면이 바로 연상되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면 한국에서도 정권에 따라 경제연구소의 보고서 기조가 바뀌고, .. 이런 것들이 이중사고의 사례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좋은 것이 좋은 것이다 이게 이중사고의 또 하나의 명제가 아닐지..
17/07/04 06:08
언젠가 조지 오웰보다 헉슬리의 예언이 더 잘 맞는다고 이야기하는 만화를 본 적이 있는데, 절대 아니라능!!! 1984 는 불멸의 명작이라능!
17/07/04 08:20
이게 왜 또 양비론으로 흐르는거죠?
민주화운동으로 투옥된 사람들과 사기, 기타 전력으로 투옥된 사람을 같은 잣대로 평가할 수 있나요?
17/07/04 08:54
그 부분은 정치가 아니라 제 모교에서 일어났던 일을 보고 쓴 건데 오해할만 하네요. 그 뜻이 아닙니다. 애초에 거기서는 그냥 둘 다 결격사유 아닌가요
17/07/04 08:13
저도 1984를 최근에 다시 읽다가 다시 초감동했.. ... 좋은 리뷰 고맙습니다. 현재의 우리가 여전히 이런 이중사고들로 둘러싸일 중이야ㅠㅠㅠㅠ
17/07/04 08:20
그는 빅브라더를 사랑했다...
말주변이 없어서 윗분들처럼 통찰적인 말은 못하지만 소설로써 1984가 가장 충격적이며 재미있던 장면은 역시 마무리인것 같습니다. 멋진 신세계의 존이 결국 자신과 세상과의 괴리를 좁히지 못하고 자살한 것은 자신의 이상과 신념을 지키는 모습이지만 1984의 주인공은 꿈도희망도 없는 엔딩이죠. 헐리우드식 스토리에 발을 담그고 있는 저희 세대로써는 더욱더 충격적으로 자가오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17/07/04 08:32
제가 본문에서 이야기한 '아들놈이 마지막 페이지 읽으면 멘붕할 것이 뻔하다' 라는 게 바로 말씀하신 그 문구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문구를 보고 멘붕하지 않을 수가 없죠.
17/07/04 08:42
1984보고 멘붕이 올 때는 이퀼리브리엄을 같이 감상하시면 됩니다.
액션영화라 깊이가 있고 그런 건 아니지만 닥치고 탕탕탕 다 때려잡는 맛에 고구마가 사이다와 함께 쑥 내려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죠.
17/07/04 08:51
그렇습니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이퀄리브리엄은 저주받은 명작입니다.
그래서 이퀄리브리엄의 원작이라할 수 있는 화씨451을 1984 다음에 읽어보려고 합니다.
17/07/04 08:53
[본인이 속한 조직의 편의에 따라 진실 따위는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거]
8_8 이중사고에 대해서도 이중사고를 하며 과거와 현실의 도피처를 파두고 많은 생각거리를 안고 하루를 시작해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17/07/04 09:06
이중사고라는 행위 자체가 IngSoc 의 모순을 드러내는지라, 이중사고라는 행위를 할 때에도 본인의 행위에 대해서 이중사고를 해야한다는 말이 책에서도 나왔던 것 같습니다.
17/07/04 09:03
에리히 프롬의 통찰력이 참 좋네요. 같은 책을 읽어도 줄리아의 날씬한 허리 라인밖에 생각이 안나는 저같은 사람은 이미 우민인지도..
17/07/04 09:05
저도 줄리아가 'I love you' 쪽지 줄 때 얼마나 두근두근하던지.... 여자 아이들이 하이틴 로맨스 소설을 왜 좋아하는 지 이해할 수 있을 듯 했습니다.
17/07/04 09:59
가장 잘 획득된 이중사고는 인류는 평등하지만 누구는 혜택을 더 받는게 당연한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같으면 같고, 다르면 다르지.. 아 이건 동물농장쪽이려나요. 뭐 요즘은 역의 방향도 그런것 같긴합니다만.
17/07/04 10:03
조지 오웰의 [1984]를 읽으신 분들은 [위건 부두로 가는 길], [카탈로니아 찬가],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도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르포르타주 작가로서의 오웰의 또 다른 면모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17/07/04 10:14
그렇잖아도 이 글 쓰면서 '예전에 조지 오웰 관련글 쓰신 분들이 누구 있나..???' 하면서 좀 둘러봤는데, 네덜란드님 글이 있더군요. 당시에는 못 보고 지나쳤는데, 이번 기회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17/07/04 13:38
카탈로니아 찬가, 저는 카탈루냐 여행 가면서 읽었는데, 바로셀로나 동네동네가 참 새롭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카탈로니아 찬가를 읽어야, 1984, 동물농장의 그 시니컬함이 참으로 이해가는 듯 합니다.
17/07/04 10:31
동물농장식 공산주의는 과거의 위험이지만 1984의 빅브라더는 현재 및 미래의 위험이기에 더욱 무섭게 다가오는 게 아닐까요.
두려움을 모르는 패기는 만용이고 두려움을 아는 상태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한 걸음 내딛는 게 용기니까.. 두려움을 알고서도 물러나지 않는게 성장이라고 봅니다. (물론 저야 입만 살았지 미숙하죠..) 암벽등반이나 다이빙 등에서 실수하면 큰일날 수 있는 걸 알고 있어도 그저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처럼요.
17/07/04 10:58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서 봤던 상호주관적 실재가 떠오르네요. 객관적으론 종이 쪼가리에 불과한 돈이 가치를 갖는 건, 우리가 그것에 가치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죠. 민족, 종교, 국가, 기업 등등... 모두 인간이 없어도 존재하는 객관적 실재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그것이 실제 존재하는 것처럼 여겨지고, 강한 힘을 행사하는 건 우리가 그게 실존한다고 믿기 때문이죠.
이중사고는 이런 상호주관적 실재를 조작하는 것 같습니다. 빅브라더가 있든말든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우리가 그가 존재한다고 믿는 거죠. 심지어 주인공은 그를 사랑하게 됩니다. 객관적 실재가 200인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너와 나는 그것이 150이라고 믿습니다. 그럼 그건 150이 되는 겁니다. 그리고 150으로서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물론 현실에서 이런 체제가 존재할 순 없겠죠. 현실적으로 모든 관계자를 세뇌할 순 없을 테니까요. 윈스턴도 정말로 빅브라더를 사랑하게 된 거라기 보다는, 폭력적 강압을 피하기 위해 자기 세뇌를 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일종의 자기정당화죠. 사실 이중사고라는 단어 자체도 모순적입니다. 그건 200이라는 진실이 존재한다는 의미를 내포하니까요. 그럼에도, 정말로 세상에 힘을 발휘하는 건 진실이 아닌 우리가 믿는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17/07/04 11:32
쓰신 내용에 공감합니다.
'결혼' 이라는 제도, '사랑'이라는 관념, 모두가 반드시 실재하는 것이라고 말하기에는 다양한 모습이 나타나죠. 맥주 피쳐 2000cc가 2000이 아니고 1700cc 지만 그렇게 부르면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되는 거니까요. 제주도에서는 감자가 고구마고, 고구마가 감자라도 되는 것이고, 일본에서는 '인삼(닌징)'이 당근이고, '고려인삼(고라이닌징)'이 '인삼'이 되고, 카스테라는 박스가 아니라 빵이 되고, 캥거루는 모른다가 아니라 동물 캥거루가 되니까, 기표와 기의가 다른 모든 언어활동, 사고활동의 순간이 세련된 고도의 기만작용이 수반되는 것일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부분을 감성적인 기만으로 넘어가는 것과, 종교적인 통찰로 관하는 것 사이 간극이 우리가 살아가는 방법들이 될 것 같습니다.
17/07/04 11:11
대한민국에서 대표적인 이중사고는 표는 새누리당에 던졌는데 자기가 억울한일 생기면 을지로 위원회 가서 하소연 하는 거죠
이중사고는 신념과 유사한 믿음 체계의 기본 속성이리고 봅니다 그래서 종교인에게서 특히 자주 볼 수 있죠
17/07/04 14:37
어차피 종교는 인간의 근본 정신의 작동 중 하나이고, 그런 관점에서 이중사고가 꼭 종교인에게서만 자주 볼 수 있다고는 볼 수 없죠. 종교인/비종교인 가릴거없이 자주 보이죠. 본문에서 프롬이 말했듯이 이중사고 이야기가 소비에트에서나 나올 만한 이야기가 아니라 서구 사회에서도 얼마든지 적용되는 것처럼요.
17/07/04 12:14
자유민주주의는 지켜야 하지만 쿠데타는 구국의 결단이고..
독재 파시즘 정권은 때려 잡아야 하지만 신입생들은 의식화교육을 시켜야 하고.. 왠지 대한민국의 근현대사가 이중사고를 설명하기 가장 좋은 케이스 같습니다. 실제 사회도 공익적인 바른 말보다는 조직의 명분 확보에 더 점수를 주는 사회이고..
17/07/04 13:25
다른 맥락인 것 같기도 한데 인지부조화랑 이중사고도 어느 정도 연관이 있는 걸까요? 아닌데 맞다고 믿는 것과 모순이지만 못본 척 하는 것.
17/07/04 14:36
조지오웰 소설들에 나오는 인물이름 참 재미있죠. 브론즈스테인 트로츠키를 따서 골드스테인이나 동물농장의 스노우볼과 나폴레옹이던지요 흐흐.. 개인적으로 오웰의 시니컬함을 참 좋아합니다. 조지오웰-마크 트웨인-존 스타인백 이 3명의 글 스타일이 저는 참 좋더군요
17/07/04 19:19
첫장부터 마지막까지 한번에 봤던 짧으면서도 재밌게 있었다고만기억하는 책이었는데 본문과 댓글의 무지의 능동성을 보니 새롭게 충격을 주네요. 영화평론가의 자세한 설명을 들으며 영화의 숨겨진 의미를 알려주는 그런 프로그램을 본 것과 비슷한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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