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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7/04 00:38
저도 왜 옥자를 보고 채식주의 얘기가 나오는지 모르겠어요. 선입견을 갖고 영화를 봐서 그런 거 아닌가 싶은데...
주인공의 서사에서 "내 가족 옥자를 죽이지 마세요. 옥자를 먹지 마세요."는 나와도 "동물을 먹지 마세요"는 안 나오지 않았나요...?
17/07/04 00:54
질문을 좀 바꿔 보겠습니다. 인간의 가족이 되면 생존한다고 가정했을때, 인간은 특정 동물을 가족으로 선택하거나 선택에서 배제시킬 권리가 있을까. 옥자를 구해오면서 다른 돼지들을 무시하는 것 또는 새끼 돼지만 특정해서 구해오는 것이 도덕적으로 올바른 선택일까. 인간이 과연 동물보다 우위에 있는 존재인지 고민해볼만한 장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17/07/04 01:24
옥자에선 그런 메세지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미자에게 그런 초인류적 미션을 해결할 거룩한 능력같은건 쥐어지지 않고 딱 금돼지 한마리만 가지고 있습니다. 금돼지로 옥자를 사고, 추가로 새끼돼지 한마리는 숨겨서 데려옵니다. 미자도 공장을 걸어나오면서 말씀하신 그 부분을 절절히 생각하죠. 하지만 미자가 할수 있는건 딱 한마리의 새끼돼지만 몰래 가져오는 진보입니다. 미자는 미자가 할수있는 만큼의 몫을 해낸거고, 누군가 미자처럼 할 수 있다면 그 슈퍼돼지들은 전부 구원될 수도 있는 것이겠죠. 육식을 하지마라 그런 일방적 메세지는 절대 드러내지않고, 어떤 것을 경험하게 해줍니다. 미자가 느꼈던 모든 것은 관객도 느낄수 있죠.
17/07/04 00:04
인간은 인간과 동물도 차별하지만 동물들 안에서도 차등을 두죠. 개미를 눌러 죽이는건 아무렇지 않아도 고양이를 때려죽이는건 비난받잖아요.
인간과 동물 사이의 차별이야 동족을 우위에 두는거라고 이해해도, 동물들 간에 멋대로 가치를 부여하는 건 무슨 오만인가, 싶기도 해요.
17/07/04 00:15
옥자에서 포커스는 돼지와 인간의 교감이라고 생각합니다.
보면 알겠지만 주인공의 할아버지는 닭을 그냥 잡고 주인공도 딱히 교감하는 옥자라는 돼지 말고는 다른 동물에 대해서는 연민을 안느끼죠. 인간과 교감하는 현실의 강아지같은 동물들에 대해 몇몇 단체들은 잡아 먹는것에 대해서 반대를 그렇게 외치지만, 영화는 어느 동물이건 교감을 느낄 수 있고 우리는 그들이 슬프게 잡히는 것과 그들도 강아지처럼 친구를 지낼 수 있다는 부분을 망각하기에 아무렇지 않게 고기를 먹을 수 있다 라는 부분을 얘기하려는 게 아닐까 합니다. 결국 주인공도 자본주의대로 자신이 애착가는 동물에 대해 비지니스적 관계로 합의를 봅니다. 영화는 동물을 먹어라 먹지 말아라가 아닌 동물을 기르고 먹고 하는 것에 대한 일반인들의 좁은 시야를 넓혀 준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에 대한 판단은 관객의 마음이지만요.
17/07/04 00:22
갑자기 이런 궁금증이 생깁니다. 옥자처럼 인간이 교감하는 동물은 친구가 되고 닭처럼 교감하지 못하는 동물은 잡아먹힌다고 생각해보면, 동물들 입장에서는 인간이 간택해주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생존이 왔다갔다 하게 된다는 말이죠. 결국 인간이 동물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은 전제하고 가야하는 걸까요. 어렵네요
17/07/04 00:16
중요한건 옥자는 미자랑 있을때 제일 행복하다는것 아닐까요.
미자나 할아버지가 어떤 심경의 변화를 느꼈는지는 모르겠지만 닭놀래게하지마 라는 대사와 끝까지 야채만 보이는 식탁은 어떤걸 암시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17/07/04 00:25
저는 간단한 진리 하나를 상상합니다. 인권이라는 가치 자체가 인간중심적으로, 인간의 편의대로 또 인간의 입맛에 맞게 만들어진 것이라는 상상 말입니다.
한 때 만들어진 신이라는 책이 유행을 했습니다. 신이 만들어진 것처럼 인간의 존엄함이라는 것도 만들어진 것이고 인간의 상상력에서 태어난 것이겠죠. 근데 여기서부터는 뭔가 더 논할 의욕 자체가 사라져요. 인간성이 상상력이라면 그밖에 동물의 권리나 동물을 먹지 말아야할 이유 같은 것도 다 인간의 상상력일 뿐인 얘기가 될 테니까요. 그러므로 저는 여기에 논리를 기대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기대는 절대 충족될 수 없는 것이거든요. 여기에서 기대할 수 있는 건 단지 감정론밖에 없다고 봅니다. 그것도 반드시 인간의 편의와 충돌하기 마련인 감정론이요.
17/07/04 00:32
http://mlbpark.donga.com/mp/b.php?p=1&b=bullpen&id=201706200005250322&select=&query=&user=&site=&reply=&source=&sig=hgj9Gg2AghjRKfX@hca9Sl-Yghlq
황교익씨가 이름을 붙인 가축은 반 사람이라는 말을 했죠. 그래서 옥자를 볼 수 없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동물을 잡아먹어도 됩니다. 옥자는 동물이 아닙니다. 가족입니다. 그래서 옥자는 먹는 게 아닙니다. 나머지 '슈퍼돼지'는 별개의 이야기지요.
17/07/04 00:37
결국 옥자를 데리고 나오는 미자를 보는 수많은 돼지들 보면서 배우 김혜자님이 장애인 배우 앞에서 넌 엄마 없냐고 펑펑 울던 장면이 강하게 오버랩되더군요
17/07/04 00:49
저도요. 미자도 속으로는 너흰 엄마 없니. 하면서 울고 있진 않았을까 싶어요.
옥자를 보는 내내 괴물과 마더와 설국열차의 향이 강하게 났습니다.
17/07/04 01:00
[스포일러]
<옥자>를 보면서 "사람은 동물을 잡아먹어도 되는가?" 에 대한 의문이 들 순 있겠지만 <옥자>가 2시간 동안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는 영화냐하면 그건 전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옥자>를 보고 '육식에 대한 회의' 혹은 채식주의에 대한 필요성을 느꼈다면 그건 영화의 메시지가 아니라 영화 속 불편한 부분에 대한 반사적인 반응이라 생각합니다. 육식에 대한 이야기는 표면적인 이야기에 불과하고 봉준호에게 가장 중요한 건 이번에도 역시 시스템이었다고 보거든요. 식품, 생명까지 자본주의 속 컨베이어 벨트에 올라 마음대로 재단되고 상품으로 매겨지는 이 무섭도록 정직한 시스템에 대한 환기. 단순 육식에 대한 반대(혹은 채식주의)라기엔 미란도 그룹 뿐 아니라 그와 대립하는 인물들까지 <옥자> 속 모든 인물들이 결함을 가지고 있고 마찬가지로 미자마저 채식주의자가 아니죠. 미자와 옥자의 관계는 육식과는 하등 관계없는 둘만의 교감, 사랑, 우정 따위의 문제에요. 돼지라서, 포유류라서, 동물이라서 소중한 게 아니라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미자의 옥자이기 때문이잖아요. 이 소동극을 통해 하고 싶었던 건 결국 모두가 비정상적인 인물들 가운데 유일하게 정상적인 (자본주의)시스템에 환기라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옥자>뿐 아니라 봉준호 월드의 인물들은 전부 시스템(사회) 속에서 계속해서 희생되어왔고 여기에 인물들이 마주하는 결론과 선택은 모두 다릅니다. (저항도 해보고 심지어 아예 절망 끝에 체제에 대한 전복까지 시도해봅니다) 그런 점에서 봉준호 오랜만에 들고온 <옥자>에서 선택한 마무리는 시스템을 받아들이고 그 희망마저 시스템 안에서 가능하다는 이야기니.. 다만 결말이 완전한 배드엔딩은 아니지만 뒷맛이 개운치는 않죠.
17/07/04 01:06
공감가는 말씀이 많네요. 여러 의견들을 듣고 보니 제가 너무 육식에 대해서만 협소한 관점으로 영화를 본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인간의 가족이 되면 생존한다고 가정했을때, 인간은 특정 동물을 가족으로 선택하거나 선택에서 배제시킬 권리가 있을까. 옥자를 구해오면서 다른 돼지들을 무시하는 것 또는 새끼 돼지만 특정해서 구해오는 것이 도덕적으로 올바른 선택일까. 이 질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네요
17/07/04 01:28
인간은 선택을 할 수 있죠. 인간종이 나타나면서부터 할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지금은 많은 영역에서 선택가능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돌고래나 범고래 중 어느 녀석을 가져갈 지를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소수죠. 단순 완력이나 수영능력만으로는 불가능하고 재력과 법적권한을 갖고 있어야 우린 '선택'할 수 있습니다.
즉 선택이라는 권리에는 능력이 있어야 하는 겁니다. 모든 인간에게 동등한 권리나 능력이 있는게 아니기에, 인간의 선택도 선별적으로 주어지죠. '옥자'에서 미자는 옥자를 금덩어리로 사죠. 미자가 옥자를 선택할 수 있던 권리가 금이라는 재화로 생겨난 겁니다. 이 재화는 사회적 가치를 갖구요. 이는 한국의 시골촌구석에서는 물론 미국에서까지 동등한 가치를 지닙니다. 즉, 선택할 수 있는 가치가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것이었고 이를 미자가 지녔기에 미자만 권리를 가질 수 있던겁니다. 다른 돼지 주인들이 그만한 가치를 소유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돼지를 구할 "선택"을 하지 않거나 못한건 분명해 보입니다. 그리고 그 작은 소녀인 미자에게 권리를 준것은 "인류문명상호간에 인정된 가치에 대한 동의"였고 이는 자연권에서부터 나온다고 봅니다. 인식론적평등주의 하의 상호동등성에 대한 인정이 제3 국의 작은 소녀에게도 발언권을 준 거니까요.
17/07/04 01:31
나아가 새끼돼지만 구해온 것은, 작은 돼지가 "그 경계울타리 쪽에 있었고", " 그 울타리 사이를 지나갈 수 있었고", "옥자가 입안에 숨킴으로써 경계근무자들에게 새끼 돼지의 탈출이 안 들킬 수 있었기 때문" 이라고 봅니다. 여기에는 한 생명이라도 더 구하려는 미자의 갈망과 다른 돼지들의 바람이 더해진 결과이면서도,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선택"이지 도덕적인 비판의 대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17/07/04 01:38
동감합니다. 저도 인간이 동물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은 전제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입니다. 그런데 논리구성을 하자니 인간들끼리 상호간에 설정한 권리로 동물들의 생존권을 좌지우지 한다는 것이 굉장히 부당하게 느껴져서요. 생각이 복잡하네요
17/07/06 03:28
개인적인 생각들이야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겠죠.
봉감독은 이를 '팔자'라고 보지 않았을까요? 영화속 대사처럼 말이죠. 그러고보면 옥자도 "옥으로 된 팔자"는 아닐까 합니다. 미자는 "아름다운 팔자" 처럼 말이죠 크크
17/07/11 23:47
그 팔자에 대한 시선이 굉장히 담담하면서도 슬프게 느껴지더군요. 팔자라는게 달리 말하자면 운명... 즉 우리가 하나의 굴레, 시스템 안에 갇혀있다는 말도 될 수 있으니까요.
마지막 울타리 씬은 쉰들러 리스트가 떠올랐습니다. 실제로 봉준호 감독이 나찌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이미지를 차용하고 실험실을 731의 이미지에서 차용했다는걸 듣고 실제 깐느 상영 이후 해외평론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나온걸 볼 때면...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세상에서도 동물, 아니 어쩌면 동물보다 더 못한 취급을 받고서 착취 당하고 있는 사람들의 사례들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옥자를 본 뒤에는 무언가를 먹기 전에 늘 한번씩은 멈추고서 생각을 하고서 먹게 됩니다. 예전에는 생각없이 먹었다면 말이죠. 우리는 과연 앞에 있는 것에 대해 뭘 알고 먹고 있는 것인지...
17/07/04 01:52
많이 공감하는 댓글입니다만 정직한 시스템을 보여주고 싶었다면 오히려 집단사육, 도축장을 그리 부정적으로 묘사할 필요가 있었나 싶습니다. 현실적이긴 하지만요.
17/07/04 01:31
영화를 예고편 밖에 보질 않아서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모르지만, 예고편을 봤을 때 글쓰신분과 비슷한 생각을 했었습니다.
육식은 인간에게 필요한 것 같습니다. 육식동물이 다른 동물을 잡아먹는걸 부정할 수 없는것처럼요. 다만, 그 과정에서 동물에 대한 불필요한 고통이 많고 그에 대한 존중이 부족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가격경쟁에서 경쟁력을 갖춰야하는 구조 상에서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어보이기도 하지만 그의 부작용을 줄이려는 노력을 해야하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미 외국에는 가격을 좀 더 높이더라도 가축에게 죽기전까지 나름의 보장된(?) 삶을 제공하는 회사가 있다하더라구요.
17/07/04 04:02
작가가 어떤 의도로 작품을 썼건 간에, 독자가 스스로의 의미로 읽을 수 있고, 그 읽음이 의미를 가지는 것이 모더니즘 넘어 포스트 모더니즘의 시대인 거니까, 옥자를 [사람은 동물을 잡아먹어도 되는가] 로 보셨어도 전혀 문제가 없으신 거라고 생각합니다.
20세 이전에 영적인 면에서의 천재 칼릴 지브란은 예언자에서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하여 중에서 동물을 먹는것에 관해 이렇게 썼습니다. When you kill a beast say to him in your heart, "By the same power that slays you, I too am slain; and I too shall be consumed. For the law that delivered you into my hand shall deliver me into a mightier hand. Your blood and my blood is naught but the sap that feeds the tree of heaven." 그리고, 정말 진지하게 종교활동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의식주'를 그중에서도 먹는 것에 대한 욕망, 그리고 필요에 대한 충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지 않는 예가 없습니다. 인도에서는 힌두교도 자이나교도 채식을 했죠. 불교는 원래 채식 수행하다가 부처님이 우유죽을 마시고 선정에 들어 깨달음에 달한 이래, '걸식'을 하되, 육식을 가리지 않고 드시는 것이었구요.(이 세상에 사람들이 먹고 남아 떠도는 썩어질 잉여의 음식을 먹는 받아먹는 것이니, 음식을 마련하기 위한 살생의 죄악과, 낭비의 죄악에서 그래도 가장 멀리있는 수행하는 이에게 적절한 식사법이라는 가정이었겠죠.), 아예 부처님 계시던 그 당시에는 나체수행하면서 대변을 먹으면서 수행하는 수행자도 있었구요. 현대에서도 일본의 야마기시 공동체 같이, 아예 본인이 먹을 것을 본인이 기르는 방식으로 먹는 것에 접근하는 것도 있고, 마크로뷰오틱 같이 인간은 무엇을 먹느냐에 따른 존재가 된다는 생각 하에 접근하는 것도 모두 우스꽝스럽기 보다 조금 더 진지하죠. 다만, 현대 기독교는 과거의 유대교가 뼈없는 동물도, 발굽이 갈라지지 않은 동물도, 새김질을 하지 않는 동물(돼지)도 자신의 젖에 삶아진 고기도, 어미와 새끼를 같이 먹지도, 피를 생명이니, 피를 먹으면 죽는다고 경고하기도 하고, 안식일에 노동을 해서 먹지도 못하게 하는 등 갖은 조건으로 통제한 것과 달리, '너희 입에 들어가는 것이 너희를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 입에서 나오는 것이 너희를 더럽게 한다'는 걸로 퉁치고, 근본적인 할례받은 유대인이 아니면, 먹는 것으로 괴롭히지는 않으니, 고마울 따름입니다만, 그렇다 하더라도 먹는 것에 대한 고민을 아예 없애라는 것은 아니겠지요. 위버멘쉬님이 다달은 음식물에 대한 깨달음은 또 잘 공유해 주시기 바랍니다~~.
17/07/04 11:38
이게 현대에 와서도 아직 명확하게 결론이 난게 아니군요.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동물, 식물, 인간의 관계에 대해서 관련된 책을 한번 읽어봐야할것 같아요.
17/07/04 04:34
옥자의 거대한 모순은 아니고 비거니즘 내지는 생명 존중의 거대한 모순에 가까운 글인데.. 의외로 옥자에서 담아낸 장면이 하나 있었죠. ALF단원이 운송에 쓰이는 기름 때문에 방울토마토 하나 먹지 못하는 장면... 사실 육식, 다른 생명에 대한 피해를 짚고 내려가다보면 인간 문명 전반이 그 위에 자리하고 있음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17/07/04 04:48
리플에 대한 반박은 아니고 본문보고 말씀하신 장면이 떠올랐는데 리플이 있어서 이어서 덧붙이자면.. 전 그장면 보고 이 영화는 절대로 육식을 반대하는 게 아니라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그 장면은 오히려 비건들의 모순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같았고.. 옥자는 육식반대를 말하려는 수단이기보단 그냥 소녀와 돼지의 교감을 위한 수단정도로 느껴졌어요. 혹시 굳이 메세지를 주려고 했다면 그건 육식에 대한 반대라기보단 육식을 하기 위한 시스템의 문제점을 차라리 지적하는 거라 느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미자가 생선을 먹고싶다하고 닭백숙을 그렇게 좋아할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육식반대를 말한다고 느낀다면 그건 요즘 많이 언급되는 성소수자, 채식주의, 페니미즘같은 주제에 너무 민감해져서 과도하게 반응하는 거라고 봅니다.
17/07/04 05:14
동감합니다. 저도 영화 보기 전에는 포스터부터가 자본주의에 대한 항거의 느낌이 물씬 났는데 정작 보고 나서 느낀 것은 그냥 현대라는 배경 속의 러브스토리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일단 기본적으로 미자라는 캐릭터 자체가 비건이나 생명 존중을 대변하는 캐릭터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대사나 행동이 그저 연인, 그것도 상대를 돈으로 사 오는 연인으로 그려진다고 생각합니다. 분명히 비거니즘이 영화의 한 가지 배경이 됐을 것은 같은데, 그렇다고 이 영화가 그것에 대한 영화라고 보기에는 어느 편에 서 있는지도, 어느 말을 하고 싶은건지도 너무 모호한 것 같아요
17/07/04 04:49
돼지와 풀을 차별할 이유도 없다는점에서 문제가 생깁니다.
차라리 지속가능성이 더 넢은 유형의 삶을 지향하는 쪽이 돼지를 먹지않는 이유로 적합하다고 생각되고요. 정말 생물학적으로 필요한 수준의 섭취만을 지향한다면 인간으로부터 가장 멀리 있는 원생동물 중심의 식단을 꾸리는게 가장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종으로서의 돼지는 인간이라는 환경조건 하에서 나름 번영하고 있기도 하다는 점에서 복잡한 문제가 되기도 하고요. 말씀하신 바와 같이 감정적 기초를 둔 접근을 한다면 다른사람은 몰라도 자신은 설득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17/07/04 09:13
피터 싱어의 <실천 윤리학>을 보면 도덕의 범위는 어디까지여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나오는데 공리주의적 입장에 의거하면 고통을 느끼는 모든 존재로 확장시켜야만, 옳은 공리주의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저도 참 공리주의적 사고를 좋아하고, 피터싱어의 논리 역시 좋아하지만 이상하게도 동물의 쾌락과 고통을 인간의 쾌락과 고통과 동등한 정도로 취급해야 된다는 것은 이상하리만치 받아들이기가 어렵더라구요. 도저히 육식을 포기할 수는 없는 기분? 피터 싱어의 논리를 보면 이성적으로는 맞는 소리 같지만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기가 힘든 것을 보고, 윤리의 범위는 결국 인간이 안고갈 수 있는 범위만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윤리의 범위가 점점 확장되어 온 것 처럼 언젠가는 동물로도, 어쩌면 AI로도 확장될 지도 모르지요.
17/07/04 09:59
판타지 소설에서 흔히 나오던 말인데...
사람은 내 일이 아니면 관심이 없다. 그렇다면 내 일로 만들어주면 된다. '내 가족', '내 친구'처럼 내가 감정을 나눌 수 있는 테두리 안에 들어간 존재는 특별해집니다. 돼지는 이 감정선 안에 들어 '옥자'가 된 거고요. 나의 옥자는 남의 돼지에 불과하고, 남의 존재는 무정하고도 무차별적으로 재단해 버리는 이 모든 과정은 육식만이 아니라, 인간의 자기중심적인 판단기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고 해도 틀리지는 않을 것 같아요.
17/07/04 10:05
뭐 기분이 나쁠수 있겠지만 현실은 내가 아는 스토리가 있는 존재들만 귀한거죠.
외국 아니 국내에도 지금도 죽어가는 사람이 있지만 우리는 그것에 대해 슬퍼하지 않잖아요. 비슷한 방향성의 이야기로 '세월호는 왜 기억될 슬픈 일인가?'를 논할 수도 있을 껍니다.
17/07/12 00:48
어차피 영화도 '육식 안돼!' 라고 외치는거 같진 않아서, 채식해야되는거 아닌가 이런 생각까진 하지도 않았습니다만
영화 보고 나서 '적어도 내 식탁위에 있는 것이 무엇이고 내가 뭘 먹고 있는지, 먹기전 최소한 한번쯤은 생각을 하자' 라는 마음을 가지게 됬습니다. 우리 입에 뭔가가 들어가고 난 후 그 피해를 우리가 고스란히 받는 것이기도 하고, 솔직히 생각없이 먹는 경우도 많고 우리가 먹고 있는게 정확히 어떻게 이루어져있는지 모르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우리가 그걸 100% 다 알 순 없어도, 최소한 의식을 갖고서 먹는것과 의식을 갖지 않고서 먹는것의 차이라고 해야할지. 영화 속 옥자가 인간이 애초에 명백한 목적을 지니고서 유전자 조작을 통해 만들어낸 GMO (그것도 지능이 뛰어난) 여서 더더욱 고민거리가 많았습니다. 오히려 인간들끼리 서로 소통이 안되서 벌어지는 촌극을 지켜보는게 씁쓸하더군요. 여담이지만 영화 속 ALF (동물 해방 전선) 단체는 실제로 있는 단체더군요.;;
17/07/11 23:55
더 나아가면 나, 그리고 내가 아닌 모든 것으로 이분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영화속에서 동물과 사람간의 관계뿐 아닌, 사람 사이에서도 소통이 안되서 곤란을 겪고 촌극이 생기는 걸 볼 수 있죠. 인간의 철저한 이기심과 모순에 관한 모습을 감독이 카메라를 통해서 냉정하고 차분히 응시하는거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중에 제일 끔찍했던건 비폭력을 주장하면서 자신의 단원을 무자비하게 폭행했던 ALF의 리더였습니다. 물론 모순적인건 거짓말을 하는 미란도도 마찬가지지만...
17/07/12 00:33
아마 그것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생각일겁니다. 설령 애완동물을 기른다고 해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을겁니다.
더 나아가서 사람들끼리 조차도 나 또는 우리, 그리고 그 범주에 있지 않은 모든 것으로 이분하는 사람들도 있죠. 물론 그 때문에 서로를 죽이는 끔찍한 전쟁이 일어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을 사람으로 안보고 노예 취급하고 착취하는 무서운 사례도 있습니다. 영화 속에 나오는 옥자가 일반적인 동물이 아닌, 인간이 유전자 조작으로 만든 인공 생명체라는 점에서 더더욱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더군요. 무려 처음부터 명백한 목적을 위해서 인간이 직접 만들어 냈다는 점... 어떻게보면 인간의 이기심이 극에 달한 경우라고 볼 수도 있으니까요. 실제로 현실에서도 GMO 를 비롯하여 생물은 아니지만 인공지능 로봇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 더욱 실질적으로 와닿습니다. 이를 소재로 한 영화도 이미 많이 나와있지요. 그런 생명체 또는 로봇에 인간이 당하는 그런 소재들은 공포 및 SF영화의 단골 소재이기도 하구요.
17/07/04 12:27
영화내에서 동물단체 일원 중 하나가 풀조차 지구에 생체기 내는거라며 거부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먹기 위해서 키우는것이 문제가 될까요? 잘 키우면 문제가 덜할까요? 그럼 사냥은 괜찮은가요? 애초에 문제가 아닌갓을 문제로 만드는 동물 보고 단체가 문제인가요?
17/07/04 12:42
영화 속 동물보호 취지나 방울토마토 안 먹는 모습은 살아있는 것을 먹지 말자는 게 아니라 현재의 공장화되고 비자연적인 시스템을 비판하자는 취지였죠. 그래서 글이나 몇몇 댓글에 공감이 안 가네요. 윗분이 풀먹는 것조차 지구에 생채기낸다고 안 먹는다 하셨는데 정확히는 공장화된 시스템으로 에틸렌가스니 뭐니 이용하며 환경을 파괴하는 작물농법 때문에 거부한 거고...
그냥 죽이는 거나 학대하며 죽이는 거나 별차이 없다고 생각하면 위글과 영화가 대동소이 하겠으나
17/07/04 15:26
인도적인 사육 도축 방법도 어찌보면 사람이 기준을 정한것이고 학대의 기준도 애매할수 있어요.영화에서처럼 극단적인 학대가 아니더라도 집단화된 사육을 하는 곳은 다 문제가 있는건지 방목하는 것만 학대가 아닌건지 의견이 분분한 지점이 굉장히 많습니다. 이슬람에서 할랄식으로 도축하는것이 누군가에는 굉장히 잔인해 보일수도 있는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신성한 의식이거든요.
이건 농업도 마찬가지인게 gmo나 산업화된 시스템이 지구를 망친다는 의견도 있고 이런 농업덕에 기아에서 벗어나게된것이라는 의견도 있어요. 지구에 생채기를 내는 그런 방법으로 인류가 생존해오고 있는걸지도 모릅니디 그래서 영화의 클라이막스에서 동물 보호를 외치며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의 발단이 된 자본주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이 영화의 주제의식이 가장잘 들어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지구상에 여전히 굶어죽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적절한 지점을 찾는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지요. 누군가에게는 학대에 불과한 일이 누군가에게는 삶이고 생존이거든요.
17/07/12 07:42
사육환경은 확실히 영화가 많이 순화한겁니다.
도축장이 순화한 버전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업장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요즘은 가축 도살시 스트레스를 최대한 적게하여 안락사 하려는 편입니다. 물론 인도적인 것보단 스트레스 육 발생으로 인한 상품 가치 하락이 더 큰 요인이겠지만요 우리나라에서는 육가공장이 도축장하고 붙어있는 경우가 많지는 않은데 영화보단 현실이 훨씬 깨끗하고 낫습니다.특히 서울권 학부모가 불시점검하는 급식제료 가공장 것은 무조건 믿고 구입하는 편입니다.
17/07/12 10:57
서울권 학부모가 불시점검하는 그 제도 괜찮아 보이네요.
도축장도 굉장히 순화한 버전이라고 봉준호 감독 인터뷰를 통해서 봤던거 같아요. 봉감독이 해외의 도축장 현실을 둘러봤다고 하더라구요. 참고로 영화 속 ALF (동물해방전선) 이라는 단체가 실제로 있는 단체라고 합니다. 영화속 사진들도 검색해보니 실제로 있는 사진들이더군요. 미국과 영국에서는 테러단체로 규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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