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하게 정리하면
법원 행정처에서 판사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하는데
1 행정처 심의관으로 발령된 한 판사가 블랙리스트 업무를 맞게되자 그런 일은 할수없다며 사직서 제출
2 판사는 인사이동전의 업무로 복귀. 행정처장은 판사의 복귀는 개인적 사정이고 판사의 요청으로 그 구체적 내용은 밝힐 수 없다고 함
3 해당 판사가 게시판에 관련 글을 올리고 2월 판사회의가 열림
4 진상조사위원회가 3월 행정처의 컴퓨터를 조사하려하나 당시 고영한 행정처장(현 대법관)이 거부. 블랙리스트는 없다로 결론 지음
5 6월 19일 100명의 판사가 모여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열리고 추가조사가 필요하다고 의결
6 이전 전국법관대표회의 개최가 확정었을때 내부게시판에 익명게시판이 신설되고 물타기가 이어짐
7 6월 28일 양승태 대법원장이 판사 블랙리스트를 추가조사하는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게시판에 글을 올림
조금 긴 글이긴 하지만 끝까지 읽어보면 좋을듯 합니다.
7월 1일 토요일 새벽에 깨니 전혀 모르는 분이 페이스북 친구 신청을 했다. 페친수락을 위해 글을 살펴보는데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첫글이 나를 맞았다. "블랙리스트 Blacklist 요주의 인물명부"이라는 제목의 글. 판사 블랙리스트 논란이 법원과 법관들에게만 맡겨둘 일인가. 판사가 써야 할 만한 글이었다. 내가 모두 동의하는 글은 아니었지만 3천명의 판사 중 몇 명이라도 실명을 걸고 그런 정의로운 분노로 글을 쓰는 사람은 몇몇은 있어야 했다.
나 또한 지난 3개월간의 과부하로 인한 극도의 피로감에, 언론과 사회단체, 정치권 등이 선정적 관심이나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걸 무기력하게 지켜보기만 하려고 했던 것 같다. 이 정도에서 타협하고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이 날 유혹한다.
판사는 블랙리스트 류의 비공식적이고 자의적인 인사자료가 작성되어서는 안되는 최후의 집단이어야 한다.
블랙리스트 류의 판사 뒷조사 파일이 작성된 정황이 최고의 요직인 행정처 기획조정실 심의관으로 발탁된 한 젊은 판사의 판사의 직을 건 용기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었다. 나는 그런 뒷조사 파일을 만들고 관리하는 일을 할 수 없다. 이런 취지의 마음으로 사직서를 쓴 그 결의를 무마하기 위해 당일 전대미문의 법원 행정처 심의관 발령 당일 겸임해제(원래 법원으로 복귀)가 이루어졌다.
사법부 역사상 처음이라는 이례적인 부임 당일 겸임해제는 당연히 뒷말을 나았고 결국 언론에 기사화되었다. 법원 행정처장이 공지를 올려 무마에 나섰다. 그 젊은 판사에 대한 부당한 지시는 없었으며 그 젊은 판사가 원하지 않으므로 겸임해제 사유를 밝힐 수 없다 했다. 행정처나 그 출신 일부 고위법관들을 중심으로 본인이 밝히기 싫어하는 개인적 사정으로 겸임해제가 되었다는 루머가 돌았다.
거짓말이었다. 대법관과 고등법원 부장판사들이 거짓말을 하셨다. 판사가 중대차한 사법부 이슈에 대해 거짓말을 했고 일부 고등부장판사는 그런 거짓말을 거짓말인 것을 잘 알면서 퍼뜨리고 다녔다. 젊은 판사는 행정처에서 자신에게 겸임해제 경위를 밝히는 걸 원하는지 물어본 사실이 없다는 취지의 담담한 글을 올렸다. 그 지인들은 그 사유에 대해서는 들을 수 없었지만 개인적 사정으로 겸임해제된 게 아니라는 말을 전했다.
공분이 일었다. 판사들이 들고 있어났다. 진상조사가 청원되고 판사회의가 여기저기서 개최되어 진상조사를 논의하고 참여할 법원 대표들을 뽑았다. 2월말 정기인사 직후의 어수선함과 바쁨 속에서도 적지 않은 판사회의가 열렸다.
제왕적 대법원장 권한분산과 비대화된 법원 행정처를 통한 승진구조-관리통제구조로 인한 법관관료화. 이 심각한 문제를 다룬 3월 25일 토론회, 설문조사 발표를 조직적으로 무산 축소시키려 했던 행정처의 사법행정권 남용이 진상조사에서 확인되었다. 대법관과 고등법원 부장판사들인 법원 행정처 처장, 차장, 실장들이 대외비 문건2개와 메모를 만들어 수차례 회의까지 했다. 그런데 꼬리자르기라는 의심을 살 정도로, 말단의 실행을 맡은 이모 상임위원만 구체적 책임이 진상보고서상 언급되었다. 행정처 핵심 의사결정 조직 차원의 사법행정권 남용이 있었는데 추상적으로 행정처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만 했다. 실행한 아랫사람은 있는데 윗사람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가 없었다.
젊은 판사가 이모 상임위원으로부터 들었다는 법원 행정처 기획조정실 컴퓨터에 저장된 비밀번호 걸린 판사들 뒷조사 파일. 대법원장이 전권을 위임한 이인복 전 대법관이 이끄는 진상조사위가 기조실 컴퓨터 자료 등의 조사를 행정처에 요청했으나 거절되었다. 사법행정최고권자인 대법원장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은 진상조사위원장의 요구를 거부한 행정처장의 행위는 항명이었다. 아니면 대법원장의 전권위임이 말뿐인 위임이거나, 대법원장이 다시 뒤로는 행정처 기조실 컴퓨터 자료등은 주지 말라고 행정처장에게 지시했거나.
파일 조사를 못했으면 판사 뒷조사한 블랙리스트 류의 파일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게 정상이다. 이모 상임위원은 "기획조정실 컴퓨터에 담긴 비밀번호 걸린 판사 뒷조사 파일"... 아예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누구 말을 믿어야 하나? 그 젊은 판사는 환청에 시달린 건가. 진상조사위는 이모 상임위원의 말을 믿었다. 블랙리스트 류의 파일은 없다.
컴퓨터 조사도 해보지도 않고, 사직까지 하려던 젊은 판사보단 사법행정권 남용에 적극 나선 이모 상임위원 말을 믿는다며, 섣불리 블랙리스트는 없다고 결론내린 진상조사위의 결론에 수많은 판사들이 고개를 저었다. 다시 판사회의가 더 많이 열렸고, 이번에는 직접 전국법관대표회의에 들어갈 대표들도 수십명을 뽑았다. 수십명의 대표들이 모여, 전국법관대표회의 개최예정날짜까지 잡고 대법원장에게 전국법관대표회의 수용을 압박했다. 수용안하면 대표들끼리 알아서 전국법관대표회의를 연다고.
대법원장은 마지못해 수용을 했고 6월 19일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열렸다. 95%이상 각급 법원 판사회의 등을 통해 뽑힌 100명의 대표 판사들이었다. 사법부 60여년 동안 사법파동의 역사중 몇개월만에 이렇게 많은 판사회의가 열린 적이 없었고, 95%이상의 판사들이 모두 선거등 민주적인 방법으로 뽑혀, 전국법관대표회의를 연 적도 없었다.
충분한 토론 끝에 블랙리스트 논란에 대해 84대14의 압도적 찬성으로 추가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결이 통과되었다. 충분한 토론이 없는 일방적 진행이었다는 왜곡된 보도가 잘못임은 곧 속기록이 공개되면 명명백백히 밝혀질 것이다. 행정처장, 차장, 실장들과 기타 관여자에 대한 인적 책임규명 의결, 전국법관대표회의 상설화 의결도 압도적 찬성으로 이루어졌다. 사필귀정이었다. 그런데 그 이후가 이상했다. 발단은 익명게시판이었다.
전국법관대표회의 개최확정 후 행정처가 신설한 전국법관대표회의 법원 코트넷 내부게시판에, 도입경위가 의심스러운 이상한 익명게시요청 기능이 들어왔다. 대법원장이나 행정처가 발언을 두려워하는 일선법관들의 말을 진정으로 듣고 소통하고 싶어하는건가. 첫글부터가 남달랐다. 추가조사나 전국법관대표회의의 정당성을 흔들려는 글들이 익명게시판에 줄지어 올라왔다.
“특정연구회 출신 대표들이 많다, 전국법관대표회의가 민주적 정당성이 있냐, 외부에서 이 집안싸움을 이용해 사법부를 흔드는 위기에서 단결해야 하는 것 아니냐, 추가조사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렇게 일을 키우는 게 사법부 독립을 해칠 것이다” 등등의 글들. 압도적 비판여론에 눌려 실명으로는 이번 사태 축소, 무마가 필요하다는 글을 쓸 용기를 내지 못했던 다른 생각을 가진 판사님들(대개는 고등부장 이상의 고위법관님들)을 위한 익명게시요청으로 전복적으로 이용되었다.
전국법관대표회의 추가조사 결의 직후, 조선, 동아, 중앙 등 일부 언론에서 “판사노조화 우려, 특정연구회 출신 비율이 높다”는 류의 색칠하기, 사실을 왜곡한 “일방적 회의진행 등”의 기사를 쏟아냈다. 위 기사들을 다시 인용, 전재하여 전국법관대표회의를 흔드는 코트넷 게시판의 익명글들이, 전국법관대표회의를 치루고 지친 몸과 마음을 이끌고 출근한 판사들을 맞았다. 반발하는 글들이 폭발적으로 게재되었다. 익명의 다시 반박하는 글들과 부딪히며 양쪽에서 일부 과한 표현들이 나왔다. 언론은, 집안싸움, 법원 내홍, 키보드워리어 등 본질을 흐리는 물타기식의 선정적 보도의 먹잇감으로 이를 이용했다. 소수의 글에서나 나온 자극적 표현에 대한 인용문과 함께 기사화했다. 뭔가 참 성공적인 흔들기였다.
그 와중에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는 회의결과를 발표했다. 블랙리스트 논란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이모 상임 위원의 징계필요성만 이야기하고 회의참석한 행정처 실장들에게는 면죄부를 주었다. 대법관인 전 행정처장에게는 주의촉구라는 전가의 보도인 구두경고로 마무리하자는 의견을 냈다. 대법원장은 윤리위 결정을 방패막이로 전국법관대표회의의 블랙리스트 논란 추가조사와 책임규명 결의를 거부하고, 제도개선에 관한 전국법관대표회의 상설화 결의만 수용했다. 전형적인 꼬리자르기였다. 허탈했다. 3,000여명 판사들이 3개월 동안 매달려 사법부 역사상 최초로 연 진정한 의미의 전국법관대표회의의 블랙리스트 의혹 해소 요구는, 진상조사 직후의 원점으로 돌아갔다.
사실 이는 진상조사 결과가 나온 직후 대법원장이 이모 상임위원만 대기발령을 내고, 사건을 대법원장이나 행정처로부터의 독립성이라고는 기대하기 힘든 대법원장이 모든 위원을 임명, 위촉하는 대법원 공직자 윤리위원회에 회부하면서, 이미 예상된 시나리오였다.
회부 직후, 문체부 블랙리스트 작성 핵심 연루자로 지목된 박명진 전 문예위원장이 대법원 공윤위 위원장으로 위촉되어 있는 사실이 밝혀져, 서둘러 공윤위 위원장직을 급히 사퇴하는 희극이 발생하기도 했다. 블랙리스트들이 서로 끌어당기는 만유인력을 가진 건 아니겠지만, 이 모든 결론의 전조였는지도 모른다.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는, 2009년 신영철 전 대법관 촛불재판 개입 때 "진상조사-> 대법원 공직자윤리 위원회 회부-> 구두경고"의 시나리오 순으로 탄핵사유가 될만한 심각한 징계사유를 구두경고로 끝낼때, 방패막이로 참 잘 활용된 전력이 있다. 결국 혹시나 혹은 설마 하는 부질없는 기대를 걸었던 것이 되었다.
역사는 반복되려고 하는데, 나는, 판사인 나는 받아들일 수 없다.
일부 언론은 이쯤에서 법원 내홍을 접고 합심해 제도개선 논의에 집중해야 한다고 하며, 무슨 근거인지 알 수 없지만 다수 법관들이 수용분위기라 전한다. 이 언론보도를 인용하는 익명 글이 게시판에 올라와 추가조사 논란은 이제 그만하고 제도개선으로 가자고 한다. 다만 단 한명의 판사도 실명으로 이제 그만하자는 류의 글을 올리지 않는다. 나는 대법원장의 블랙리스트 논란 추가조사 결의 수용거부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실명 글을 올렸다. 같은 취지의 반발하는 글들이 다시 올라오기 시작한다.
자신의 과오를 숨김없이 밝히고 책임지는 철저한 자성.
그런 자성을 거부한 대법원장과 행정처는 제도개선을 논할 자격이 없다. 그런 제도개선이 싫어 3월 25일 토론회조차 조직적으로 축소•무산시키려 했던 개혁의 대상이, 철저한 자기반성은 회피하며 개혁의 주체로 나서겠다는 적반하장의 태도는 국민들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가능성도 매우 낮은 다른 비밀사항의 유출 우려는, 사법부에 대한 판사 블랙리스트를 둘러싼 엄청난 불신을 해소해야 할 절실함의 절반의 절반도 될 수 없다.
최근 부산 문모 전판사에 대한 비위사실 통보에도 행정처가 구두경고로 그친 것이 도 넘은 ‘제식구 감싸기’ 로 보도된 바 있다. 판사 블랙리스트 논란을 이렇게 묻어두고 가는 것은 국민들에게 또다른 제식구 감싸기로서 비칠 것이다. 사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의 장벽을 더 높아질 것이다.
“사법부 판사 블랙리스트는 덮어두고 가면서, 문체부 블랙리스트는 판관으로서 단죄하려 하는가, 내로남불 아니냐”는 비아냥도 듣고 싶지 않다.
나는 이미 명확한 거부의사를 밝힌 대법원장에 대한 기대를 접겠다. 추가조사를 재요구한들 또 거부할 것이 명약관화하다.
내가 국민들에게 직접 호소하고, 내가 직접 취할 수 있는 행동에 나서겠다.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결국 사법부가 블랙리스트 논란을 묻어두고 간다면 내가 판사의 직을 내려놓을지를 고민하겠다.
돌아갈 수 없는,
배수의 진을 치는 나의 담담한 각오이다.
판사 차성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