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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7/06/26 21:34:18
Name 눈시BB
Subject [일반] 삼국통일전쟁 - 2. 살수대첩 (수정됨)


"삼가 보건대, 요동의 자그마한 오랑캐가 엄한 형벌에 복종치 않아 멀리 6군의 군사가 출동하고 황제께서 직접 출동하시게끔 하였습니다. 다만 오랑캐들은 속임수를 잘 쓰는바, 이에 대해 잘 방비하여야만 하니, 그들이 입으로 항복한다고 말하더라도 성급하게 항복을 받아들이지 말아야만 합니다. 지금 장맛비가 내리고 있으니, 지체해서는 안 됩니다. 오로지 제군(諸軍)을 엄하게 절제해서 성화같이 속히 진격하되, 수군과 육군이 함께 진격해서 그들이 미처 생각지 못하고 있을 때 진격한다면, 외로운 평양성쯤은 곧바로 함락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고구려의 근본 뿌리인 평양성이 넘어간다면 그 나머지 성들은 저절로 무너져 곧바로 평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혹시라도 가을장마를 만날 경우에는 몹시 곤란할 것입니다. 군량은 다 떨어지고 강적인 고구려가 앞에 있고 말갈이 뒤에 있는데, 머뭇거리면서 결정짓지 못하는 것은 상책이 아닙니다" -  병부상서(정3품) 단문진

3월에 죽으면서 양제에게 저런 충고를 했다고 합니다. 딱딱 맞아들어가죠. 항복한다는 걸 믿지 마라, 시간을 끌면 안 된다... 하지만 양제는 둘 다 어겼죠.

수나라의 백십삼만대군, 이게 불가능한 수치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 중국, 그 수나라라도 엄청나게 무리한 수치는 맞죠. 거기다 오래오래 준비한 게 아니라 급히 준비한 전쟁입니다. 안 그래도 오랑캐 땅-_-인 요동에 가기도 힘든데, 보급을 제대로 하기는 훨씬 더 힘들었죠. 그나마 수군을 이용한 보급이 가능했지만 급히 배를 만든다고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고 합니다.

요동까지 가는 데도 이런 상황인데, 방어선을 무시하고 강공하는 상황에선 어떻겠습니까. 보급부대가 따라갈 수가 없죠. 이래서 나름대로 혁신적인 방법이 동원됩니다. 식량을 짊어지고 가는 거였죠. 이들은 무려 백일치의 식량을 들고 갔고, 여기에 무기 등 다른 보급품도 메고 가야 했습니다. 사람마다 3석 이상의 무게라 하니... 한 석당 10kg로 따지더라도 어마어마하죠. 이걸 어찌 다 들고 가겠습니까. 병사들은 버리기 시작했고, 버리면 죽이겠다고 하자 땅에 묻어 버립니다. 이들이라고 안 먹으면 죽는다는 걸 왜 몰랐겠습니까. 들고 가다 죽을 것 같으니 그랬겠죠.

이걸 해결할 방법이 둘이나 있긴 했습니다. 첫째는 전통의 약탈이었죠. 전근대에 보급부대가 따라오지 못 한다면 적의 땅에서 돈 주고 사 먹거나 뺏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고구려는 이걸 불가능하게 만들었죠. 고구려는 이미 수도가 두 번이나 털렸던 나라입니다.  백제 공격할 때도 수도로 강공해서 이겼으니, 그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죠. 35만(혹은 30만 5천) 대군은 고구려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도 막기 힘든 대군이었습니다. 정면승부는 할 수 없었고, 그 힘을 최대한 빼야 했죠. 네, 청야 전술입니다.

그리고 두번째 방법은 그들이 남진하는 사이에 없어져 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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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본디 고구려에서 성을 튼튼히 지키고 들판을 깨끗이 비운 채 우리 군사를 기다리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지금 그들 스스로가 죽을 곳으로 들어왔으니, 그들을 멸망시키고 아침을 먹겠다."

내호아는 수군을 이끌고 평양으로 향합니다. 상륙하자 고건무가 이끄는 고구려군이 기다렸는데, 저렇게 말 하면서 격파했죠. (저번 편에서 수군이라 했는데 아닙니다. - -a 고구려 수군은 중국의 수륙협공에 별다른 힘이 못 되었죠) 고구려군이 이것가지도 계산하고 유인한 건지, 야전으로 안 되겠으니 작전을 바꾼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신이 난 내호아는 4만(혹은 5만)을 이끌고 직접 평양성을 공격하려 합니다. 별동대와 함께 공격하기로 했었고, 주변에서도 합류할 때까지 기다리자고 했지만 무시합니다. 그가 밀고 나가자 고구려군은 싸우는 척 하다가 다시 패합니다. 신이 날 대로 난 내호아는 그 날 밤에 약탈을 허락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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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평양성은 4중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니... 외성만 먹어 놓고 마음 놓아 버린 겁니다. 지 딴에는 두 번이나 이겼으니 설마 덤비겠냐 했겠죠. 하지만 고구려군은 병력을 보존하고 있었고, 이 모든 게 다 작전이었으니...

그 날 밤, 고건무는 500의 결사대를 이끌고 적을 기습합니다. 겨우 500이냐 하겠지만 성 내에서 매복한 거였고 방심한 적에겐 이걸로 충분했죠. (물론 북쪽을 방비하느라 그만큼 수도 평양에서도 쓸 병력이 적었다는 건 맞겠습니다만) 내호아의 수군은 정말 탈탈 털려서 달아났고, 배로 돌아간 이후에는 다시 오지 못 합니다. 고구려군도 더 공격하진 않았고 말이죠.

"내호아의 군사가 패하여서 먼저 물러나지 않았다면 평양성의 바깥에 진영을 치고서 우문술 등의 제군과 달려와 응원하면서 호응하여서 살수에서의 낭패는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 자치통감

이 의미는 정말 컸습니다. 만약 이들이 육군과 합류할 수 있었다면 보급 문제가 상당 부분 해결될 수 있었을 테니까요. 최소한 평양 앞까지 왔다가 바로 돌아가진 않았겠죠. 살수대첩을 있게 한 전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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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까지 가는 걸 고구려군이 그냥 두지는 않았습니다. 압록강 근처에 있는 오골성에서 뒷치기를 시도했죠. 우중문은 이걸 예측하고 일부러 약한 말들을 배치해서 유인한 후 격파합니다. 이것만 봐도, 아니 애초에 별동대를 맡은 것만 봐도 우중문이나 우문술의 능력은 충분했습니다. 양제가 바보였고 고구려가 더 훌륭히 막아낸 것일 뿐이죠.

압록강까지 오는 데만 해도 지칠 대로 지친 그들에게 고구려의 거물이 나옵니다. 양제가 영양왕 고원과 함께 언급했던, 온다면 반드시 붙잡으라고 했던 대신 을지문덕이었죠.

을지문덕은 항복하겠다고 한 후 돌아갑니다. 전편에서 썼듯이 (그리고 이후의 상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냥 항복이 아니라 왕을 데리고 입조하겠다는 거였겠죠. 그러고 돌아가겠다는 을지문덕, 수군의 내부에선 갑론을박이 벌어집니다. 저걸 잡아야 되나 말아야 되나로 말이죠. 우중문은 잡으려 했지만 상서우승(3품?) 유사룡이 말립니다. 사신으로 온 자를 죽이면 안 된다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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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걸 보면 수나라의 패인은 대국의 위엄을 지키려는 것도 꽤 큰 걸 알 수 있습니다. 양제부터가 이름이 관대하가 아닐까 싶으니까요. 물론 이 경우는 좀 다르긴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신을 죽이면 안 되죠. 사실 사신으로 그리 큰 거물이 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을 겁니다. 이 때 을지문덕을 잡거나 죽였으면 정황이 바뀌었을까도 재밌는 떡밥이죠. 기록이 부족해서 확신할 순 없지만, 이 정도로 대담한 행동을 한 걸 보면 애초에 자기가 죽더라도 뒷 계획을 다 짜 놓지 않았을까요?

그 짧은 시간에 을지문덕은 수군의 상황을 파악했습니다. 군량도 떨어지고 지쳤다는 것을 말이죠. 우중문은 뒤늦게야 생각을 바꿔 "의논할 게 더 있다"면서 다시 불렀지만 육지로 간 토끼가 돌아올 리가 있겠습니까. 이걸로 확실한 방침이 세워집니다.

"장군이 10만의 병력을 거느리고 와서 자그마한 적도 격파하지 못한다면 무슨 낯으로 황제를 뵈옵겠소?" - 우중문

우문술은 상황이 이러니 돌아가자고 했지만 우중문은 거부합니다. 그대로 밀고 나갔죠. 을지문덕은 이걸 파악하고 일곱 번을 일부러 져 줍니다. 이렇게 수군은 압록강을 건너고 청천강을 건너 평양성이 보이는 곳까지 가게 됩니다. 30리, 한국식으로 10리가 4km로 보면 정말 코 앞까지 온 것이었죠.

하지만... 그냥 무작정 달려온 적들이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평양성을 공격할 장비가 있었겠습니까. 군량도 없고 수군은 연락도 안 되고 말이죠.

을지문덕은 사자를 보내 철수한다면 왕과 함께 입조하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자를 통해 시를 하나 보내죠. 네, 그 유명한 수나라 장수 우중문에게 보내는 시, 여수장우중문시與隋將于仲文詩입니다.

神策究天文 신책구천문   귀신같은 책략은 하늘의 이치를 깨달았고
妙算窮地理 묘산궁지리   신묘한 셈은 땅의 형편을 다하였도다
戰勝功旣高 전승공기고   싸움에 이겨 공이 이미 높으니
知足願云止 지족원운지   원컨대 만족함을 알고 그만두기를 바라노라

+) ... 일베 안 합니다.

병법에서 따지는 것이 세 개 있죠. 하늘과 땅, 사람. 천시, 지리, 인화입니다. 하늘을 알고 땅을 알았다면서 칭찬해 주고, 니가 큰 공을 세웠다면서 띄워 준 겁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걸 모를 리가 없었죠. 정말 반어법의 극한을 보여 준 겁니다. 이런 굴욕을 당하고도 그 말대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 정도로 상황이 안 좋았으니까요. 그나마 저 시와 거짓 항복이 명분을 주긴 했습니다. 그게 아니었다면 그들 모두가 고구려 땅에서 뼈를 묻어야 했을 테니까요.

자치통감고이에서는 혁명기라는 책을 인용하며 다른 얘기도 해 줍니다. 고구려군이 성에 항복을 뜻하는 깃발을 꽂고는 5일 후에 지도와 호구 등의 문서를 들고 성문을 열겠다고 했답니다. 하지만 5일이 지난 후에는 싸움을 뜻하는 깃발을 세웠다고 합니다. 10일을 날린 거죠 (...)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답니다.

"배와 양식이 모두 패몰되어 수나라 군사들이 모두 돌아갔는데 공은 지금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가?"

저게 맞다면 그 10일도 수나라를 아예 굶어죽이는 좋은 방법이었던 것이죠.

결국 우중문은 싸움을 포기하고 철수합니다. 평양 근처까지 오긴 했지만 얻은 건 아무것도 없었고, 오히려 고구려군의 역공을 걱정해야 했습니다. 우문술은 이걸 생각하고 방진을 치면서 철수했다고 합니다. 단순히 도망친 게 아니라 방어를 튼튼히 하면서 천천히 간 것이죠. 이 정도면 그들도 할 만큼 했습니다. 고구려군이 더 잘 했을 뿐이죠. 고구려군은 그런 수군을 사방에서 찌르면서 피해와 피로를 누적시킵니다.

살수, 청천강에서는 이 진형을 깰 수밖에 없었습니다. 강을 건너야 했으니까요. 고구려군은 이 때를 노립니다.

"적이 물을 건너서 오면 적이 물 안에 있을 때 맞서지 말고 절반은 건너게 만들고서 치는 게 이롭다." - 손자병법 행군편

살수대첩이 흔히 수공으로 적을 몰살시킨 전투로 그려지는데 그건 어렵습니다. 단기간에 댐을 쌓아서 적을 쓸어버리는 건 지금도 힐들 거니까요. 만화 창천항로에는 하비성 공략전에서 발목이 담길 정도면 충분하다고 말 합니다. 수공은 그렇게 하는 것이죠. 거대한 물에 다 휩쓸려 갈 정도는 필요 없었습니다. 물살이 조금만 빨라져도 물에 빠지거나 움직이는 게 힘들어 집니다. 그 정도로도 충분했죠.

수군이 강을 절반쯤 건넜을 때, 고구려군이 다시 나타납니다. 이건 도저히 막을 수가 없는 것이었죠. 여기서 수군은 사실상 궤멸당합니다. 남은 이들이 하루만에 압록강까지 도망갔다고 하니 그 후는 그저 도망일 뿐인 걸 알 수 있죠. 물론 그 후에도 계속 공격을 받았을 거고, 요동성까지 겨우 돌아간 이는 불과 2천 7백명이었습니다. 모든 걸 잃고 몸만 돌아간 것이었죠. 그나마 왕안공, 설세웅 등 후방을 맡아 더 큰 피해를 막은 게 보이긴 합니다만 그 정도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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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제는 당연히 분노합니다. 우중문 등 패장들은 묶여서 끌려갔고, 직위를 잃고 일반 백성으로 깎입니다. 을지문덕을 보내주자고 한 유사룡은 참수당했구요.

이렇게 2차 여수전쟁은 고구려의 대승으로 끝이 납니다. 정말 누구도 예측 못 했을 대승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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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제의 요동 싸움은 군대를 일으킨 성대함이 예전에 없었던 일이다. 고구려가 한 모퉁이에 있는 조그마한 나라로서 이를 막아내고 스스로를 보전하였을 뿐만 아니라 수의 군사를 거의 다 없앨 수 있었던 것은 문덕 한 사람의 힘이었다. 『좌전』에 이르기를 “군자가 없으면 어찌 나라를 다스릴 수 있으리오?”라고 하였는데 참으로 옳은 말이다. - 김부식

을지문덕은 참 특이한 인물입니다. 살수대첩의 상황을 보면 수나라에서 알 정도의 거물이었는데, 그 출신이 어딘지 알 수 없습니다. 이거야 뭐 이해할 만 한데 더 큰 문제가 있으니, 살수대첩 이후의 상황도 모릅니다. (...) 진짜 살수대첩이 있는 2차 여수전쟁 때 갑툭튀 했다가 바로 사라진 겁니다. 이름도 文德으로 결코 평범한 이름이 아닌데 말이죠 (그래서 아들 이름을 이렇게 위대하게 지어도 되나 - 그럴 만할 인물이 될 거임 하는 전설도 있더군요)

대패했다고 수나라 역사서(수서)에서 묻었다고 하기에도 출신까지 묻어버리는 건 좀 심하죠. 김부식이 관심이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삼국사기 열전의 첫째는 판타지 수준인 김유신이고, 그 다음이 바로 을지문덕입니다. 고구려 중에선 맨 처음인 거죠. 위만 봐도 김부식이 그를 얼마나 대단히 여겼는지 알 수 있죠. (백제 쪽으로 처음 나오는 건 의외로 흑치상지네요) 거기다 김부식은 한국측의 기록이 없다면 중국 걸 복붙했지만, 있으면 한국 걸 우선했습니다. 그가 이른바 [구삼국사]도 참고한 걸 생각하면, 당시 고려에서 을지문덕에 대한 기록이 없는 수준이었다고 봐도 될 겁니다.

희한한 일이죠. 물론 후대에 그에 대한 게 있긴 합니다. 평양 출신이라구요(조선 때의 신증동국여지승람). 하지만 신빙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죠. 이래서 다양한 학설이 나옵니다. 저로서는 그가 아웃라이어(아웃사이더?)로 보는 데 마음이 더 쏠립니다. 그러니까 기록이 없지 않았겠느냐는 거죠. 이에 대한 걸로는 선비족의 [울지]씨 출신이 아니겠냐는 게 있습니다. 이민족 출신이라는 거죠. 여기에 평원왕의 온달과도 엮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바보 온달이라고 하는데 진짜 지적장애인이 싸움 잘 한다고 장군이 되었다고 생각하긴 힘들죠. 평원왕이 귀족들을 누르고 고구려의 혼란기를 끝낸 만큼, 온달도 단순 바보가 아닌 평원왕이 아웃라이어들을 끌어들인 대표로 보는 겁니다. 이걸로 보면 온달이 평원왕 죽고 바로 죽령 이북을 되찾겠다면서, 지면 돌아오지 않겠다는 게 충분히 이해가 되거든요. 평원왕의 비호 아래 성장한 만큼, 확실한 전공을 올리지 못 하면 대접 받을 수 없을 테니까요. 온달 얘기가 길었는데 을지문덕도 이런 경우였다면? 평원왕의 정책이 성공해서 정말 높은 곳까지 오른 용이었다면 하는 거죠.

물론 큰 반론은 있습니다. (어차피 결론 안 나는 문제죠) 을파소에서 볼 수 있듯 을씨는 고구려의 귀족 가문이었으니까요. 을지의 지는 존칭어로 보고, 기존의 귀족 가문 출신으로 보는 거죠. 이것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신라의 골품제에 볼 수 있듯 아무리 잘 나가는 신진세력이라도 그 정도의 자리에 오르긴 힘들 거니까요. 이후의 기록들이야 야사에 전설들이니 뭐 제대로 믿을 수가 없구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기록이 없는 게 안타까울 뿐입니다. 물론 남아 있는 기록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위대한 인물인지 알 수 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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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을 거뒀지만, 고구려에게 긍정적인 상황만은 아니었습니다. 통일 중국의 가공한 힘을 맛 봤으니까요. 이기기 위해 고구려의 꿀땅인 요동부터 평양까지 청야 전술을 써야 했습니다. 복구하기 쉬운 게 아니었죠. 거기다 작전이라 해도 평양성이 한 번 털렸습니다. 인적 피해는 몰라도 물적 피해는 고구려가 그냥 넘길 수 있는 게 아니었죠.

저 평양성 전투에서 고구려가 적의 입성을 허용한 것부터가 이 전쟁이 얼마나 어려웠는지를 말 해 줍니다. 자세한 기록이 없어서 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느 쪽으로 분석해도 마찬가지죠. 북쪽에 병력을 쏟느라 정말 소수의 병력밖에 남지 않아서 그랬다면, 실패했어도 수륙협공이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를 말 해 주죠. 병력은 충분했어도 적 육군과의 합류를 막기 위해, 빨리 섬멸하기 위해서 그랬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전쟁은 고구려에게 있어서도 살추뼈취, 살을 주고 뼈를 취한 전쟁이었던 겁니다. 그렇게 수나라의 뼈를 깨뜨렸다기엔, 바로 다음 해에 또 쳐들어 옵니다. 물론 전쟁의 피해는 수나라에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고, 계속되는 전쟁으로 수나라가 자멸하지만, 통일 중국이 그 정도의 힘을 계속 쏟아부을 수 있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죠.

정말 장난이 아닌 전쟁을 이겼습니다. 하지만 그 후의 상황도 정말 장난이 아니었죠. 평양성에서 대승을 거둔 고건무는 영양왕의 동생이고 훗날 영류왕이 됩니다. 전쟁영웅인 그가 당나라에 대해 온건책을 편 걸 보면 이 전쟁에 대한 그의 생각을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다 강경파에 당하지만요.

정말 힘든 전쟁을 이겼지만, 이건 끝이 아니었습니다. 시작일 뿐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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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무무무무무
17/06/26 21:43
수정 아이콘
첫 추천 찍고 갑니다 크크크크
17/06/26 21:57
수정 아이콘
크크 감사합니다~
17/06/26 22:07
수정 아이콘
유주자사 진의 묘나 동수의 묘 같은걸 보면
고구려가 중국에서 넘어온 망명객들에게 상당한 대우를 해주었다는걸 알수있죠
특히 유주자사 진의 묘는 지금까지 발견된 고구려묘중 내실이 가장 큰 묘이기도 하고요
그 당시 남북조시대중국을 보면 출신보다는 실력을 우선시 했던 시대이고요
신라의 김유신 또한 대표적인 아웃라이어 였고요

을씨였다고 하기에는 고구려시대에 활약한 을씨들이 많은데(을파소,을두지)
그런 을씨들 기록상에는 을지(乙之)가 아닌 그냥 을(乙)씨로만 표기되어있거든요
을지문덕만 을지로 표기하고 나머지 인물들을 을로 표기하는데 을지문덕을 을씨라고 하기엔 그런것 같습니다.
을지문덕의 출신에 대해 여러 의견들이 있는데 타민족 출신이라고 해도 크게 이상할것 같지 않습니다.
17/06/27 17:56
수정 아이콘
오오 네. 제 생각도 그 쪽으로 기울고 있습니다 '-')b
Neanderthal
17/06/26 22:07
수정 아이콘
강감찬 장군이 나중에 귀주대첩을 승리로 이끌면서 이 살수대첩을 응용했을까요?...
역사에서 배운다...

을지문덕에 대한 역사의 기록이 별로 없다는 사실은 오늘 처음 알았네요...
17/06/26 22:23
수정 아이콘
살수대첩하고 귀주대첩은 양상이 완전 다르죠
살수대첩은 퇴각하는걸 뒤쫒은것이고 귀주대첩은 퇴로를 막고 정면승부 한것이죠
귀주대첩 과정에서 흥화진 전투가 도강 할때 친것이고요
귀주대첩 자체는 전형적인 회전입니다.
Neanderthal
17/06/26 22:24
수정 아이콘
고등학교 졸업 후 역사를 놓다 보니...이런 망신이...--;;
17/06/27 17:57
수정 아이콘
어헣헣 (...) 귀주대첩도 수공이라는 건 제법 많이 퍼진 얘기예요 '-'a;;; 모르시더라도 망신까지는;
그거와 별개로 을지문덕이 꽤나 유명인물이었으니 (삼국사기 열전에도 김유신 다음으로 나옵니다) 연구 많이 했겠죠. 흥화진 전투도 그렇고
상계동 신선
17/06/27 01:25
수정 아이콘
우리 역사상 이런 대규모 회전에서 승리를 거둔 것은 전무후무 하지 않을까 싶어요.
한걸음
17/06/26 22:09
수정 아이콘
중간에 갑자기 연개소문이 나옵니다? 크크
17/06/27 17:58
수정 아이콘
허헣 고쳤습니다 크크
카루오스
17/06/26 22:13
수정 아이콘
고만 쳐들어와!
17/06/27 17:58
수정 아이콘
안 된대요 ㅠ_ㅠ)...
보통블빠
17/06/26 22:16
수정 아이콘
귀주대첩 더 비기닝 영화화 되기를 ㅠㅠ
17/06/27 17:58
수정 아이콘
크크 한 번 영화화 됐으면 좋긴 하겠어요 '-')
닉네임을바꾸다
17/06/26 22:17
수정 아이콘
원래 물 건너면 모랄빵나서 털기 쉽....
17/06/27 17:59
수정 아이콘
그렇지요 -_-! 체력부터가 확 빠진 상태일 텐데요
예니치카
17/06/26 22:26
수정 아이콘
중간에 유사룡 참수 부분에서 을지문덕을 연개소문으로 쓰셨어요! 잘 읽었습니다!
17/06/27 17:59
수정 아이콘
수정했습니다 >_<;;;; 감사합니닷~
이슈타르
17/06/26 22:30
수정 아이콘
장거리원정을 보낸다면 별도 치중부대를 편성해서 군량 수송을 시키는게 원칙인데..개개병사들에다 군량을 짊어지고 보내니 ..단거리도 아니고 그들 출발지가 북경 근처라 하든데 그 먼거릴 발로 걸어서 가야 했으니 참 인색한 수양제 결정이고 수나라군 노고가 이만저만이 아니엿을검니다 (본문이 좀 이상한점은 당시 수나라군이 별도 물자수송 부대원이 200만명로 추정해서 수나라측 총 병력이 300만명대 라던 말이 잇던데 ??) ..하튼간 본문대로는 물자도 인력도 풍부한 나라가 왜 그렇게 군량 수송을 한건지는 이해가 힘듬니다..그리고 수나라군 진격로 인근이 해변이라 지리적으로 해운이용이 효과적이고 해군 병진으로 제해권 장악후 선박의한 군량 수송만 해내도 군량 부족은 안 겪고할것인바...이래저래 기획 단계에서 실패로구먼요..그런데 대략 1500여년후 벌어진 일본군의 임펄 공략 실패의 원인이 이거 하고 비슷하군요
17/06/26 22:41
수정 아이콘
북경에서 요동까지는 물자수송부대가 있었고요
요동성에서 지체가되고 함락할 기미가 안보이니까 30만의 별동대를 따로 꾸린것이죠
요동에서부터 활로를 확보하지 않고 고구려영내를 진입한 별동대는 물자 보급받기가 어려우니까 개별적으로 딱 평양에 도착할 식량만 가지고 간것이죠
대신에 수군이 군량을 보급할예정이였고요 그런데 수군 장수 내호아가 욕심이 나서 단독으로 진격하다가 퇴패해서 철수하고
평양까지 진격한 수의 별동대는 군량을 보급 못받아서 철수한것이고요
이슈타르
17/06/26 22:59
수정 아이콘
요동지역 고구려 성을 그냥 두고 뒤에다 놓고서 수군 본진이 진격햇다면 고구려측이 난감하고 대응이 어려웟을검니다..본진하고 전방 돌격부대랑 간격을 크게 벌려놓고 한거가 수군측 작전 실패요인이고..고구려군이 용이하게 각개격파를 시킬수가 잇었죠..수나라 해군이 군량 수송위한 상륙도 그런데 30만 별동대 후미에서 해변지점 상륙이 제일 좋은 위치 엿겟죠
17/06/27 18:00
수정 아이콘
그 시대로 보면 수륙협공을 딱딱 맞춰서 하는 건 정말 어려웠을 겁니다. 연락하기가 얼마나 힘든데요. 공 쫓아서 평양성 공격한 게 문제였죠
17/06/26 22:52
수정 아이콘
대한민국 독립유공자이신 무타구치 렌야를 다시 한 번 찬양해야...
보통블빠
17/06/26 23:26
수정 아이콘
1500년전 장수들보다 머리가 안돌아가는 렌야님이란...
이슈타르
17/06/26 22:44
수정 아이콘
요하강하고 압록강 사이 요동 지역에 포진한 고구려 요새들 주요 성들은 당시 수나라군이 함락을 못시킨 상태 엿죠,,고구려 국방의 핵심이 이들 성곽 엿는데 그러한고로 수나라군은 그 전쟁에서 이미 실패가 결정난거라 진배 없던게죠...내호아 별동대가 평양성 함락한들 고구려측는 함경도 같은 동부 험산지로 대피하구서 여전히 항전 햇을검니다,,불굴의 의지가 충만된 이들이가 고구려인들이죠 ..사실 수나라 침공시기가 고구려 국력이 전성시대이니 고구려가 이길만도 했죠
아리아리해
17/06/26 22:56
수정 아이콘
우리 고대사 역사는 거의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중국측 기록에 의존하고 있는건가요? 땅속에 묻혀 있는 재밌는 고대역사가 많이 있을텐데 생각할수록 안타까워요. 물론 공부하는 학생들은 피곤하겠지만요 흐흐
17/06/27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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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으로 보면 거기에 일본서기 정도밖에 없죠. 안타깝긴 합니다 '-'a
김블쏜
17/06/26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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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읽고 갑니다.
다음편은 안시성 전투인가요? (이거 스포일러인가..)
17/06/27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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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안시성 가기 전에 잠깐 쉬고 가려구요 '-'
Je ne sais quoi
17/06/26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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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을문덕? 왠지 포스가 안 삽니다. 을지문덕!
잘 읽었습니다~ 흐흐
17/06/27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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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크 저도 그래요. 을지문덕은 을지문덕이죠.
늘 감사합니다 >_<
키스도사
17/06/26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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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개추 후감상!
17/06/27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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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헛 감사합니다 >_<
스타본지7년
17/06/26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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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 전공(일단 현재는)중인데 진짜 문헌사료 부족 때문에 돌아버릴 것 같습니다. 제가 관심 갖는 주제인 5세기 영동지방도 그렇고..으으..
보통블빠
17/06/26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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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참 신기한게 그렇게 사람 갈아 죽였는데 유물은 왜 이렇게 안나올까요???
퇴적층에 부식되었나 ㅠㅠ
스타본지7년
17/06/26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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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 과정에서 밀어버린 것도..
상계동 신선
17/06/27 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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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매체의 문제이기도 하겠지요. 당시 기록매체는 종이나 비단, 죽간이 주였고 금석문은 예외적인 경우였지만 고구려나 백제는 망한 왕조이니 싸그리 불타버렸고, 후속왕조가 전 왕조의 역사를 기록한다는 중국식의 관례도 정착이 안 되었을 때였을 테니까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경우는 기록매체가 불에 구운 점토서판이었기 때문에 당시의 역사기록이 당시기록 그대로 남아있는 희귀한 케이스 입니다. 기록매체로 무엇을 썼느냐가 역사기록이나 후대전승에 미치는 영향은 무지무지하게 큰 것 같습니다.
17/06/27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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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 많으시겠네요 (...) 영동이면 진짜 부족 오브 부족일 텐데요;;
스타본지7년
17/06/27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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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강문동에서 토성 발견되었고 며칠 전 후포매리에서 고분 또 발견된게 그나마 다행일 지경..금석문 좀...!!
하와이
17/06/26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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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시님 글은 선추천이죠!
17/06/27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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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하핫 감사합니다 >_<
홈런볼
17/06/26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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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흥미롭게 잘 봤습니다. 사실 중국 통일왕조와 고구려의 싸움은 인구 상으로나 물자 상으로나 상대가 안될 여지가 많은데 고구려가 기적적으로 너무 잘 싸우지 않았나 그리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는 고구려 입장에서 과거에 중국쪽에 두 번이나 수도가 떨어지고 선대왕조들의 무덤이 파헤쳐진 트라우마가 있었기 때문에 역사를 통해 후손 대대로 대륙에 대한 준비를 철저히 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수나라 입장에서는 백십삼만에 보급병까지 삼백만을 끌인 전쟁에서 방심이란 존재하지 않았을거라 봅니다. 하지만 오호십육국을 지나면서 왕조가 교체되고 그 사이에 요동을 치는 경험은 사라져서 경험부족에 의한 실패가 가장 컸을거라 보고(보급품을 짊어진 삼십만 별동대는 초무리수였죠. 그 상황에서 이미 수나라는 이성을 잃었다 봅니다.) 그 실패의 경험을 바탕으로 후대에 당나라가 고구려를 칠 수 있지 않았나(물론 당태종의 실패도 교훈이 됐겠지만요.)
그런면에서 제가 가장 아쉽게 생각하는건 그겁니다. 대륙이 혼란스럽고 고구려가 잘 나갈 때 왜 백제와 신라, 가야를 복속하지 못했느냐의 문제이죠. 반도의 특성 상 반도를 평정하면 후방의 부담이 없고 그 물자와 인구를 바탕으로 중국과 경쟁할 수도 있었을텐데 말이죠.
물론 이건 제 판타이지입니다. 인구적으로나 거리 상으로나 쉽지는 않았을거라 봅니다. 어찌보면 그 당시엔 제후국으로 삼고 여기는 우리땅 했을 수도 있었을테니까요.
그리고 그 때 고구려가 통일했으면 우리나라 자체가 중국에 동화됐을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 말이 꽤나 일리있더군요. 암튼 고구려는 우리 역사에 있어 굉장히 자랑스러운 역사가 아니었나 싶긴해요. 기회가 된다면 안시성이나 집안같은 곳으로 고구려 역사기행 다녀오고 싶네요.
스타본지7년
17/06/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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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쪽 지형이랑 경제력이 생각보다 만만찮지요. 나제동맹의 효과도 있고.... 신라 쪽은 특히 소백산맥이 상당히 천연 방벽의 역할을 했습니다.
홈런볼
17/06/27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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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동의합니다. 고구려가 땅은 넓었지만 인구는 백제와 거의 같았다는 얘기를 본 적 있네요. 전력상으로도 통일은 쉽지 않았을 뿐 아니라 중국을 맞대고 있는 상황에서 통일전쟁을 위한 남쪽 정벌은 국운을 걸다시피해야 하는 모험이라 생각들긴 합니다.
17/06/27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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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잘 싸웠죠 '-' 요동 방어선이 저렇게 막강했던 것부터가 말씀하신 과거의 기억을 잘 살린 것이겠구요.
고구려의 통일은 어쩔 수 없었다고 봅니다. 광개토대왕도 남쪽에 집중하다 후연에게 후방을 털렸었거든요. 광개토대왕이 일찍 죽긴 했지만 죽기 전 몇 년 동안 영토 유지로 돌아섭니다. 서쪽은 중국의 통일 전부터 상대하기 버거웠고, 남쪽에 집중할 수도 없는데 나제동맹까지 맺었으니...
상계동 신선
17/06/27 01:33
수정 아이콘
여수전은 어떻게 보면 현대전의 독소전쟁의 7세기판을 보는 것 같습니다. 세계 최강의 전력을 자랑하는 침공군에 맞서 수도 근처까지 털리다가 자연, 그리고 침공군 자체의 약점을 활용해서 역관광시킨다는 점에서요.
17/06/27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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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량으로 보면 오히려 러시아 쪽이지만 비교해보면 재밌긴 하죠 '-'
17/06/27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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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국 모두 이 전쟁으로 국력을 소모하지 않았다면 더 오래버텼을텐데 말이죠. 고구려는 삼국을 통일 했을지도...
17/06/27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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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란 게 그렇죠 뭐 '-'a 중국의 요동에 대한 집착은 정말이지
숙청호
17/06/27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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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고 갑니다
17/06/27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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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낭만없는 마법사
17/06/27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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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채호 선생님이 극찬하던 을지문덕의 위엄이란.... 저런 영웅의 정체를 하나도 알 수가 없다는 게 큰 비극입니다. 항상 느끼지만....
홈런볼
17/06/27 11:39
수정 아이콘
중국 백만대군을 물리친 영웅이 되었으나 이에 위협을 느낀 왕족이나 귀족에 의해 모함을 받고 역사 자체에서 제거되지 않았을까 예상해 봅니다. 전 역사를 통틀어봐도 그런적이 너무나도 많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신이나 신변잡기에 대한 기록 등등 티끌하나 나오지 않는건 사실 이해하기 힘듭니다. 중국을 상대로 승리한 영웅인데 말이죠. 뭔가 굉장히 아쉬움이 남습니다.
상계동 신선
17/06/27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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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의 이름조차 남지 않은(야사에만 양만춘이라고 전하고) 안시성의 영웅보다야 낫죠. 최소한 을지문덕이라는 이름은 남았으니까요.
17/06/27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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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운 일이죠 뭐 '-'a 어쩔 수 없는 일이구요
지니팅커벨여행
17/06/27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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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수십만이 갔지만 수군이 전멸한 미스터리 전쟁이군요.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17/07/01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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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재요 (...) 크크 감사합니다
soleil79
17/06/2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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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감사합니다. 다음편도 기대 가득입니다.
17/07/01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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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합니다~
운동화12
17/06/28 09:32
수정 아이콘
어휴 고퀄리티 글 감사히 잘봤읍니다
17/07/01 14:37
수정 아이콘
어휴 감사합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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