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고 회사 옆 버스 정류장에서 늘 그렇듯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의 예정 도착시간이 약 5분쯤 남은듯하여 좌석에 앉아 여유롭게 폰을 만지고 있었는데, 잠깐 한눈팔던 사이 내가 기다리던 버스는 전속력으로 질주하며 정류장을 그냥 지나쳐가고 있었다. 아무리 내가 일어서서 버스를 세우지 않았다지만 예정된 5분의 절반도 안되는 2분쯤이 지났을 뿐인데 이렇게 지나쳐버리는 게 조금은 야속하게 느껴졌다. 물론 애초에 한눈을 팔고 있던 내 잘못이 크지만.
생각해보면 삶은 늘 그렇다. 내가 예상하던 바와 같이 늘 잘 풀리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때도 많다. 그렇다고 그게 딱히 누군가의 잘못이냐면 그런것도 아니다. 오늘 아침 출근길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딱 맞춰 도착한 버스를 타게 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수 있을 것이다. 내 생각대로 잘 풀리지 않는 일도 있지만, 내 생각 이상으로 잘 풀리는 일도 있다. 그러니 너무 일희일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너무 아쉬울 때가 있다. 시간에 쫓겨서 그럴 수도 있고, 기회가 단 한번밖에 없어서 그럴 수도 있다. 정말 바라던 것을 이루지 못했을때의 심정이 어떠냐고 묻는다면, 막차를 놓쳤을때의 기분이 아닐까. 마치 다시는 오지 않을 기회를 떠나보낸듯한 그 심정은, 허탈함을 넘어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만든다.
"이럴줄 알았으면 조금 더 일찍 대비하고 있을걸..."
하지만 결론은, 이미 늦어버렸다. 조금 더 일찍을 한탄할 때에는 이미 늦어버린 것이다. 늦게 대비한 내 자신의 잘못 같기도 하고, 나를 조금도 기다리지 않고 빠르게 지나쳐버린 그 버스가 잘못한것도 같지만, 사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다 자신들이 보고 판단한것의 연장선상에서 그 결과를 맞이한 것이고, 모두 자신들 나름 최선의 판단을 했을 뿐이다. 내가 한눈을 팔았던건 그 잠깐의 여유를 즐기고 싶었기 때문일테고, 버스가 조금 더 빨리 지나친것도 탄 사람들이 목적지에 조금 더 빨리 도착하게 해주고 싶어서가 아니였을까.
버스를 지나치고 또 다른 버스가 바로 정류장에 섰다.
["어서 타요!"]
"이 버스 기다리는거 아니에요. 먼저 가세요!" ["아니 그러게 어서 타라니까요?"]
"저는 앞에 버스 탈 거라서 뒤늦게 달려나온거고 이 버스 잡은거 아니라니까요?" ["그러게 아직 늦지 않았다니까요? 지금 타면 앞에 버스가 신호등에 걸려서 따라잡을 수 있어요. 그러니 어서 타요 다음에 내려줄테니까."]
처음엔 뭔가 어리둥절 했지만 난 결국 그 버스를 탔고, 그 기사분의 말처럼 난 다음 정류장에서 환승으로 원래 타려던 버스를 탈수 있었다. 그 상황에서 그런 말을 건네준 기사분이 새삼 멋지게 느껴졌다. 뭔가 사소한 일이었지만 많은 걸 깨닫게 해준 고마운 에피소드였다.
절대로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았던 기회는, 놀랍게도 바라는 것을 포기할 때 쯤에서야 찾아온다. 이미 늦었다고 결론지었을 때 쯤에 다양한 방식으로 찾아오는 행운이야말로, 이 세상이 아직 살만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런 행운을 가져다준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사소하지만 의미 있는 친절이, 세상 전체를 바꿀 수는 없어도 개개인의 삶을 조금씩 더 풍요롭게 만들곤 한다.
나도 누군가의 행운이 될 수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분명 어려운 일은 아닌데 좀처럼 실행에 옮기지 않았던 일이지만, 생각해보면 너무 내가 놓친 것에 신경 쓰며 남들이 놓칠 뻔한 것을 잡도록 도와줄 생각을 까먹은 게 아닐까 싶다.
각박한 세상, 조금 더 여유를 가져봐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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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크크 근데 보통은 (1) 저 상황에서 싸움이 벌어지거나 (2) 꿍했다가 (3) 제가 잘못한 건가요? 이런 패턴이 많아서 흠칫했네요. 그게 아니라 영화적인 상황에 주인공이 되기를 택하셨네요. 앞 버스에 올라탄 한 여성을 쫓기 위함이면 완벽한데 말이죠. -_-; 글 잘 읽었어요 ~
와! 감사합니다. 제목에 이끌리듯 들어왔는데 더 좋은 내용의 글이네요. 이런 이야기를 듣고싶었나봅니다 :)
번외로 크크 버스얘기.. 저도 타려했던 버스를 놓치고 따라잡고자 하는 마음으로 다음 버스를 탄 적이 있는데요. 따라잡기 위해 탄 버스가 타려했던 버스를 역전하고, 환승하면 되겠다고 신나서 다음 정류장에서 내리고 환승하려하는 순간.. 제가 타려던 버스는 그 정류장에서 아무도 안내리는지 그냥 지나가더라구여 크크 결국 택시탔던 기억이 있네요..크크 다 되는건 아닌가봅니다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