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와 더불어 모기가 한창이다. 아니 웬 때 늦은 모기냐고? 유행이 돌고 돌 듯 여름에 떠난 모기가 초겨울에 다시 찾아왔다. 낮에 맞이한 손님보다 몰래 온 밤손님이 더욱 달갑지 않듯, 때 늦은 모기는 짜증이 일상이 된 여름보다 더 많은 스트레스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 덕에 오늘도 이렇게 잠을 이루지 못한다. 대책. 그래, 대책이 필요하다.
밤새 그늘을 한껏 먹은 움푹 팬 두 눈을 문지르며 창고로 향한다. 드르륵. 미닫이문이 열리고 쩨쩨하게 내리는 겨울 햇빛을 조명 삼아 먼지들이 서로 부비부비 비벼대며 춤을 춘다. 환기 좀 시켜 둘걸. 이곳을 찾을 때면 으레 하는 뒤돌아서면 붕어처럼 잊어버릴 그 후회를 오늘도 거듭한다. 입구에선 비닐에 쌓인 선풍기가 거들먹거리며 갈 길을 막는다. 너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으니 내년에나 보자. 휙. 베고 남은 적장의 목을 던진다. 그리고 뒤적뒤적. 아직 새것 같은 스프레이, 미개봉된 모기향, 작은 구멍이 하나 있는 모기장. 좋아 삼신기를 모두 모았다. 이거라면 신룡 소환은 무리여도 오로치 정도는 봉인할 수 있을 것 같다. 모기 네놈의 목숨은 이제 파리 목숨이다. 크크크크.
밤이 되었다. 늑대들이 인간이 되어 헌팅하러 다닌다는 보름달이 뜬 날이다. 그 때문인지 내 옆구리는 언제나 쓸쓸했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다. 나 역시 헌터가 되었다. 오늘 음탕한 암컷들의 피로 듬뿍 취하리라. 크흐흐
왜애앵―
왔다! 청각이 일러준 방향으로 눈동자를 굴린다. 어딘가? 어디인가? 동물팡으로 단련된 0.3의 시력이 하얀 벽지 위를 훑는다. 없다? 그때 말초신경이 외친다. 너의 손등이다! 오른손이 쥐고 있던 스프레이를 던지고는 쏜살같이 왼손의 손등을 후려친다. 이것이 슬램덩크를 10번 완독한 자의 파리채 블로킹이다. 하지만 벌겋게 부어오른 손등에도 파리채 같던 손바닥도 녀석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았다. 설마 그걸 피했단 말인가?!
그래. 녀석은 올해 가장 가혹했던 여름전쟁에서 살아남아 지금까지 버텨온 모기 중의 모기. 인간으로 치면 전장으로 거르고 걸러져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백전의 용사다. 후후후. 녀석은 이걸 맛볼 자격이 충분하다. 장롱으로 데구르르 구른 나는 방금 던진 파란색 모기 스프레이를 줍는다. 나에게 세 번만 뿌리는 자비를 바라지는 마라. 지금부터 네놈이 있는 공간, 네놈이 있을 공간 모두 사지가 되리라.
치이이이익-
한겨울 방안 가득 진동하는 킬러의 향기를 뒤로한 채 나는 밖으로 나간다. 전쟁의 끝 맛은 언제나 쓰다. 녀석의 삶을 마감시킨 장본인으로서 애도 정도는 해줘야겠다. 네놈의 패인은 단 한 가지다, 모기. 단 하나의 심플한 답이다. 네놈은 나를 화나게 했다. 그리고 내 눈은 그렁그렁 눈물로 차오른다. 모기약 너무 쳤는지 안방까지 냄새가 왔다는 이유에서 등짝을 맞았기 때문이다. 쓰다. 써.
집 앞 치킨집에서 반 마리의 치느님을 500의 맥주와 영접하고 남은 반 마리를 포장하여 의도치 않은 전쟁의 피해자가 되신 어머니를 위로해 드렸다.
돌아간 방안에는 잔인한 킬러의 잔향이 아직도 남아있었다. 뭐, 이 정도면 충분히 참다 보면 적응되겠지. 중국에선 오염된 대기를 직접 마셔서 정화하자는 운동도 있었다는데 이 정도야 감수하자. 취침 전 PGR 유머게시판을 보면서 오늘의 마무리를 해 볼까나. 아이고 이 아깽이 좀 보게. 심장이 멈출 것만 같다. 하악하악.
왜애앵―
잘 못 들었나?
왜애앵―
아니겠지.
Whyennnnnnnnnnnnnnnng―
으아악. 이런 초성초성초성초성체가.
어제는 모기와 함께 밤을 지새웠지만, 오늘은 방충제 냄새도 함께하게 생겼다. 그럴 수는 없어. 잡아야 해. 뿌린다 킬러를. 피운다 모기향을. 친다 모기장을. 우당탕탕. 방안은 아수라장이 된다. 더 이상의 다크서클은 Naver. 나는 필사적이었다. 그리고 내 마음이 하늘을 감동하게 했던 걸까?
쫘악-
잡았다. 보지 않아도 알았다. 형광등 아래를 이리저리 비행하던 녀석은 결국 나의 두 손바닥 예측 샷으로 생을 마감했다. 두 손엔 한가득 빨간 혈액이 진득거린다. 나의 것이었으나 녀석의 것이 되어버린 그것. 나는 그것을 녀석의 주검과 함께 물로 보낸다.
해냈다. 끝난 거다. 모기는 드디어 내 손에서 박살 난 것이다. 이것으로 어떤 모기든 인간을 능가할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하찮은 모기들이여, 숙면을 취해주마. 나의 모기장과 모기향에 도망가거라!!
사투의 끝, 급격하게 피로가 몰려온다. 이것은 꿀잠의 기운이다. 어지러운 방 안은 내일의 숙제로 미뤄두고 나는 오늘의 스위치를 누른다.
6초가 지난다. 침대를 감싸는 모기장은 귀족들의 침대 커튼 같았다.
7초가 지난다. 숨을 쉴 때마다 방충제의 향이 함께 들어온다. 향기롭다. 좋아. 오늘 밤은 어제의 몫까지 숙면하리라.
8초가 지난다. 머릿속에 머물던 여러 상념이 조금씩 연기가 되어 날아간다.
9초가 지난다. 의식은 내일을 위해 저물어간다.
그리고 10초가 지난다.
왜애앵―
뭐…뭣이!
왜애애앵애앵앵― (해석: 내가 모기장에 들어왔다. 모기향을 피우기 바로 전에 말이다)
또 한 마리가 있었단 말인가?!
왜애애앵애애애애앵― (해석: 지금부터 네놈을 괴롭히는 데에 1초도 쓰지 않겠다)
모기이이이이이이이!!
인간은 패배했다.
― BAD END ―
한줄 요약 : 모기장 속 모기가 너무 싫어요.
Ps.첫 글입니다. 투박하고 못났지만 예쁘게 봐주세요. 망글 읽느라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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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요즘 남성 아이돌 그룹의 노래와 참으로 흡사하게 느껴집니다. 외람된 질문이지만 평소에 남성 아이돌 그룹의 노래들을 자주 접하시는지요? 그렇다면 소름 돋을 것 같습니다. 아니라면 이런 문체는 대게 젊은이들에게 익숙할텐데, 연령대가 어리신가보네요^^ 마치 글에도 노래의 후렴구가 있는 것 마냥, 왜애애앵~이 귀여우면서도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크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