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나왔어요?? 음... 나이도 작은 편은 아니고.... 일단 차후에 연락드릴께요'
문돌이는 자신의 처지가 부끄러워서 그런지 화가 나서 그런지 대충 인사를 하고 도망치듯이 그곳에서 빠져나온다.
토익시험을 치고 몇 일 뒤, 문돌이는 바닥이 드러난 은행 잔고로 고충을 겪었다. 돈 한푼 없는 체크카드의 기능은 그저 후불교통카드의 기능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부모님한테 용돈 달라기에는 문돌이의 나이가 적지 않다. 그래서 고심끝에 취업 할때까지 용돈벌이라도 할겸 알바*국을 뒤적거리다 마침 집 근처 피시방의 주말 알바 공고를 보고 아침 일찍 준비를 하고 면접을 보러왔다. 문돌이 나름대로 4년제 대학까지 졸업했는데 피시방에서 알바하는게 조금 쪽팔렸지만 취직 할때까지 용돈벌이라도 하는것을 스스로 대견하다고 자위를 하였다. 하지만 돌아온건 겜방 사장의 무성의한 응대였다.
'x바 겜방 알바 구하는데 전공은 와 보노? 겜방알바 할라면 컴공과 나와야 되나...'
갑자기 문돌이의 기분이 급속도로 우울해진다. 겜방 알바에서 떨어져서가 아니다. 아니 차라리 그런거면 이렇게 우울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방금 겪었던 겜방 사장의 무성의하고도 은근히 깔보는 응대를 오늘뿐만 아니라 취업 활동을 하는 내내 겪을것 같은 슬픈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정장 까진 아니지만 면접이라고 나름 신경써서 단정하고 깔끔하게 입고 나온 문돌이는 자신이 더욱 초라하게 느껴진다. 한껏 신경쓴 옷차림에 머리엔 포마드까지 바르고 왔는데 면접은 5분도 안 걸렸고 결과도 안 좋다. 그리고 이대로 다시 집으로 돌아 가야한다. 탄식 섞인 한숨을 내쉬며 집으로 가는 문돌이가 갑자기 방향을 바꿔 버스정류장으로 향한다. 우울하게 집으로 가는것보단 한껏 꾸민김에 시내에 나가서 바람이나 쐬고 올 요량이다. 특별한 목적지가 없기에 제일 먼저 도착하는 아무 버스에나 올라탄다. 그리고 예의 그렇듯 운전석 바로 뒷좌석에 앉는다. 평일이라서 그런지 버스가 한적하다. 그렇게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는 문돌이. 얼마 지나지 않아 문돌이의 눈이 감킨다. 얼마쯤 지났을까 강렬한 햇살에 눈을 떠보니 어느새 버스는 문돌이의 동네를 한참 벗어나 있다. 다짜고짜 버스의 벨을 누르고 하차 준비를 한다. 혹시나 까먹을까봐 일찌감치 지갑을 꺼내 앞문에 있는 카드단말기에 카드를 찍는다.
"하차입니다."
그리곤 뒷문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내리기 전에 카드를 한 번 더 찍는다.
"이미 처리된 카드입니다." 이제서야 마음이 놓인다.
그리곤 다시 버스정류장에서 다음에 오는 아무 버스나 탄다.
비록 잔액이 없는 체크카드지만 이 카드 하나만 있으면 부산 시내 어디든 갈 수 있는 훌륭한 프리티켓이다. 후불제기에 지금 당장 충전하지 않아도 되는... 그렇게 돌고 돌아 어느새 해운대 센텀시티까지 왔다. 여기까지 온김에 이 세상에서 가장 크다는 신*계 백화점에 들어간다.
문돌이는 백화점이 좋다. 따뜻한 조명에 은은하게 나오는 음악. 백화점 특유의 그 옷냄새들 까지도....백화점에서는 그 누구도 문돌이에게 차갑게 대하지 않는다. 모두들 따뜻한 미소로 문돌이를 반겨주고 하나 하나 친절하게 응대한다. 물론 명품매장에는 들어가볼 엄두도 못내지만 말이다. 층마다 화려한 장식으로 치장된 이 곳은 바깥세상이랑은 완전히 다르게 느껴진다. 여기서는 누구도 가난해보이지 않는다. 누구도 우울해 보이지 않는다. 문돌이도 자신이 이 화려한 세상에 편입된거 같다. 비록 땡전 한푼 없고 미래도 불투명한 신세지만 말이다.
평소 좋아하는 브랜드의 매장에 가서 이것저것 눈으로 살펴본다. 마음에 드는거 있으면 마음껏 입어보라는 점원의 말에 마음에 드는 옷 몇가지를 입어도 본다. 우습게도 양말하나 살 돈도 없지만 문돌이는 마치 지갑에 신사임당이 가득차 있다늣이 당당하게 행동한다.
"이건 얼마에요?"
"네 그거 지금 세일하셔서 27만원 하시네요."
"이 컬러 말고 다른 컬러는 없나요?"
"아 그건 지금 그 컬러랑 여기 곤색밖에 없으시네요"
돈이 없어서 못 사는게 아니라 마음에 드는 컬러가 없어서 안 산다는듯이 문돌이는 옷을 벗어 점원에게 건낸다.
'네 잘 봤습니다." 하고 돌아서는 문돌이의 뒤로 점원이 잘가라는 인사를 건넨다. 웃으면서.
누군가에게 대접받는다는게 이렇게 기분이 좋다는걸 새삼느끼는 문돌이. 이래서 사람들이 그렇게 악착같이 돈을 벌려고 하는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층층별로 온갖 매장은 다둘러보는 문돌이. 그렇지만 허영심에 가득찬 문돌이는 꼴에 매대에서 모아놓고 파는 이월상품에는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정말로 백화점 고객 놀이에 심취한거 같다. 그렇게 두어시간을 둘러보고 애* 상품들을 판매하는 매장에 들어가 새로 나온
아*폰과 아이*드를 만져본다. 이것저것 만져보며 자신의 구형 아*폰과 비교해본다. 아직 남은 약정기간이 맘에 걸리지만 이번 기회에 새로 하나 바꿔볼까 생각해본다. 대한민국에서 십원짜리 하나 없이 신분증만 있으면 살 수 있는것중에 가장 대표적인게 바로 이 휴대폰이다. 돈 백만원도 넘는 상품을 신분증 하나에 넘긴다는게 어디 흔한 일인가? 물론 이 매장은 통신사 대리점이 아니기에 기계를 카드나 현금으로 주고 사야하지만.하지만 문돌이는 마지막 이성의 끈을 놓지 않는다. 지금 상황에서 새 폰으로 바꾸면 그에게 돌아올건 잠시나마의 행복보다 더 큰 고통이란것을 알기에. 그렇게 문돌이의 백화점 투어가 막을 내린다. 장장 세시간이 훌쩍 넘게 돌아다녔지만 백화점 문을 나서는 문돌이의 손에는 역시나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다. 쓸데없는 허영심은 덤으로 가져왔지만.
그리곤 다시 백화점 앞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허기가 진다. 배가 고프다. 하지만 어찌할 수가 없다. 최대한 빠르게 집으로 가는수밖에. 오늘 하루 초라함과 허영심 그리고 결국 초라함으로 돌아온 문돌이는 모순된 감정의 괴리감으로 더욱 우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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