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현'
문돌이의 기억으론 수현이는 아마 09학번인가 10학번인가 그렇다. 하지만 수현이와의 개인적인 친분은 별로 없었다. 예전에 수현이의 신입생 환영회때 고향이 부산이라는 말에 타지에서 만난 동향 사람이라 그런지 반가운 마음에 옆에 앉아 술잔을 주고 받았고 얼마간 대화를 나눴다. 얼마 뒤 수현이가 기숙사 통금이라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날때 형식적으로 전화번호를 교환했고 그 이후론 그냥 인사만 하고 지내는 사이였다.
그리고 수현이는 2학년이 지나고 부산에 있는 학교로 편입을 했기에 수현이의 편입 이후론 따로 만난적도 없다. 수현이가 편입한 사실도 수현이 동기들에게서 전해 들었다. 근데 갑자기 전화가 오다니... 문돌이는 반가운 마음보다는 무엇때문에 수현이가 전화를 하는지 곰곰이 생각을 해보지만 역시 다단계 같다.
문돌이의 경험에 비춰보아 별로 친하지도 않은데 갑자기 전화가 오는건 높은 확률로 다단계다.
일단 문돌이는 페북에 들어가 수현이의 페북을 둘러본다. 페북에 '성공'이란 단어의 출연 빈도가 높은거 보니 다단계 하는 애들의 특징에 부합되는거 같다. 의심은 이제 강한 확신으로 바뀐다. 그때 수현이의 전화가 한번 더 온다. 하지만 호기심 많은 문돌이의 마음이 흔들린다. 다단계라는 생각이 강하게 나지만 확인을 해보고 싶다. 왜 전화를 하는지 너무 궁금하니까. 만약 다단계가 맞다면 문돌이의 차단 목록에 오늘 한명이 더 추가 될것이다,
"여보세요"
"오빠. 안녕하세요. 저 수현이에요. 저 기억 나시죠?"
수현의 목소리에서 약간의 떨림이 느껴진다.
"어 알지 수현아. 오랜만이네. 잘 지내나?"
"저는 잘 지내죠. 그냥 오빠 생각나서요. 갑자기 전화해서 놀라셨죠?"
"아니 아니. 요새 어떻게 지는데?"
"요새 바쁘게 지내죠. 오빠는요? 취직은 하셨어요?"
"아니 아직. 생각처럼 잘 안되네"
"아 맞아요? 하긴 요새 경기가 어려우니까"
"니는 지금 몇 학년이고? 졸업했나?"
"졸업했죠. 지금 취직 했어요"
문돌이가 생각하는 시나리오 대로 흘러간다. 이제 슬슬 밥이나 커피 먹자고 하면서 자기 회사 근처로 부를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뜬금없이
자기 회사의 비전이나 자신의 수입을 자랑하면서 사람 혹하게 만든 다음에 마침 오늘 설명회 있으니까 같이 가자고 꼬드길것이다.
확인 사살을 위해 문돌이가 먼저 말을 꺼낸다.
"진짜? 어디?"
"그냥 중소기업 다녀요. 회사 이름 말해도 오빠 모를껄요 크크"
"요새 같은 불경기에 취업한게 다행이지. 뭐 혹시 영업 같은거 하나....??"
문돌이가 확실한 승부수를 던진다. 이제 그만 간 보고 실체를 밝혀라는 의도다.
"아니요. 영업은 여자 잘 안뽑잖아요. 저는 인사총무과요."
'얼레? 요새 다단계 패턴이 바뀐건가?' 문돌이의 시나리오가 빗나가기 시작한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의심의 고삐는 늦추지 않는다.
"아 그래? 잘 됐네. 일은 뭐 할만하고?"
"아직 신입이라서 그냥 정신 없어요.."
예상과는 다른게 전개되는 상황에 문돌이는 이제 더 이상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애초에 친하지도 않은 사이니 딱히 할 말이 없는게 맞기는 하지만... 수 초간의 정적이 지나고 수현이가 먼저 말을 한다.
"오빠. 우리회사가 오빠 동네 근처거든요. 언제 한번 보실래요?"
"우리 동네를 니가 어떻게 아노?"
"그때 옛날에 오빠가 말했잖아요 크크"
"아 그걸 아직 기억하고 있었나? 기억력 좋네"
"까먹었는데 지나가면서 오빠 몇 번 봤어요. 회사 근처에서"
"봤으면 아는척하지. 그래 다음에 밥이나 한끼 하자."
기약없는 식사 약속을 잡고 문돌이는 전화를 내려 놓는다. 전화를 끝낸 문돌이는 무척이나 혼란스럽다.
'원래 다단계는 서면이나 시내에서 만나자고 하지 않나? 아니면 우리 동네 근처에 내가 모르는 다단계 회사가 생겼나?
아니면 혹시 다단계가 아닌건가?? 그럼 왜 나한테 왜 전화를 한거지? 지랑 내랑 친한것도 아닌데....'
'설마....설마... 나를 좋아....'
문돌이의 지랄병이 다시 또 발현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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