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사꽃이 피는 모습.
삼국지라는 유명한 책에서는 복사꽃 아래에서 세 사람이 모여 의형제를 맺었다.
의를 위한 모임이라면, 모임일 것인데, 그 중요한 자리가 복사꽃이 피는 자리라는 것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복숭아꽃.
그 꽃이 피는 순간에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자신을 돌아보고, 남을 돌아보고, 세상을 돌아보게 하는 마력을 가진 것은 아닐까.
돌아보는 모습은 사랑하기에 돌아보는 것이다.
그 마력이 사람을 휩쓰는 것이라면, 아마도 그것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를 마력의 노예로 만드는 것이라는 힘을 가진 꽃이라고.
마력의 노예라는 것, 돌아보는 모습을 만들어 내는 그 모습이라는 것은.....
복숭아꽃, 복사꽃은 삼국지 속에서 또 하나 나온다.
제갈공명의 남만의 마지막 원정에서 복사꽃잎이 떨어져 강물에 있는 그 모습.
그리고 그 물은 독기가 강해 마실 수 없는 모습이 되었다는 점.
복사꽃의 기운이 얼마나 강한지를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기운이 얼마나 강했으면, 물을 마시지도 못한 것일까.
더운 날에 그 잎이 강에 얼마나 우러나왔다면, 그렇게 된 것일까.
결국 잔혹한 계략으로 종족을 전멸시키는 것으로 마지막이 끝이 나는데, 그 속에서 느끼는 것은 없었을까.
어쩌면, 공명도 그 복사꽃 물을 마시고 살짝 이상해진 것이 아닐까?
마력의 노예로 만드는 힘이 강하다는 것이 그런 생각을 들게 한다.
오래 사는 꽃도 복사꽃이라고 한다.
복사꽃이 지고, 그 곳에서 열리는 열매를 먹으면, 천년을 산단다.
천도복숭아의 이야기이다.
아마, 그 천도복숭아 때문에 많은 이들이 상상의 나래를 폈을 것이다.
자신의 꿈을 담기도 하고, 때로는 꿈과 꿈을 넘나드는 열정을 피기도 했다.
복숭아 열매하나, 그 하나에 담겨 있는 정성과 많은 이들의 모습이 천도를 낳는 것이 아닐지.
아마도 그 마력이 사람을 이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력이 없는 꽃과 과일은 사람을 설레게 하지 못한다.
탐스럽게 익지 않고, 수줍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꽃과 과일은 꽃과 과일이 아니라, 그저 지나가는 하나의 물건일 뿐이다. 의미 있는 것으로 가려면, 사랑을 끌어야 한다. 보통의 사랑이 아니라, 사람의 가슴에 영원히 기억이 되어, 정신을 차릴 수 없고, 의지를 뺏는 말 그대로 포로가 되고, 노예가 되는 그런 드러냄과 그런 탐스러움의 조합과 연결과 향연. 그런 꽃이 피고, 과일이 열리는 광경은 하나의 축복이다.
과거의 많은 이들이 왜 복사꽃 아래에서 중요한 것을 기념했는가에 대해, 문득 생각하게 하는 그런 모습이다.
사랑의 노예라...
복사꽃에 붙은 이름이란다.
사실, 그럴 만도 하다.
많은 이들이 마력에 빠져 그 앞에서 중요한 일에 대한 결심을 한 자리이니까.
자신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그것이 꽃이 가진 힘이라고 해야 할까?
누군가를 포로로 잡는 모습은 아마 꽃이 가진 능수능란함을 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 보여주는 것이 없어도, 꽃은 그 자체로도 믿음을 갖게 한다.
장황한 꽃이 피는 시절에, 결국 탐스러운 복숭아가 익어간다는 믿음이 있으니까.
그래서 사람들이 그 꽃에 사랑의 노예라는 말을 붙여 주었나 보다.
아마도 그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기 위한 기다림의 모습과, 그 결과를 생각했던 모양이다.
(아, 이 것은 어디까지나 필자의 망상에 가까운 추측이다....-_-;;;)
자, 복숭아꽃이 필 무렵이면, 어떤 중요한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가 어느 시점에 자신의 꽃망울을 터뜨릴지, 혹은 그렇게 하지 못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사실, 별로 알려진 것도 없고, 그래서 최대의 이변, 혹은 최대의 부진으로 나뉘지 않을까 그렇게 예상을 한다.
상당히 재능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보여주지 못하는 재능은 재능이 아니다.
피지 못하는 꽃이, 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그에게 많은 것을 바라고 싶지 않다.
그저, 다른 이들을 자신을 사랑하게 만드는, 그런 노예요, 포로로 만들고 싶다면, 정말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고 열정적으로 임하기를 바랄 따름이다. 복사꽃이 자신을 드러내 바라보는 이들을 매혹시키는 것처럼.
매혹의 기술을 펼칠 수 있을까, 사랑의 노예, 복사꽃 Guangmo 구오쳉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