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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5 16:27
메이지유신부터 다이쇼 데모크라시까지의 일본의 국가적인 역량은 여러모로 참 대단하다 느껴집니다. 전후에 자유주의 진영의 2인자가 된것도 다 그런 역량적인 베이스가 있었기에 가능했겠지요. 한편으로 지금 일본인 학생들은 과거에 비해서 확연하게 해외로 유학을 가는 경우가 줄었다고 들었습니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가지던 개방성과 역동성의 엔진이 당금에 이르러서는 과거만 못하지 않나 싶습니다.
20/03/05 16:37
동의합니다. 일본이 갈라파고스화 된다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죠. 과거 일본은 아주 진취적이고 유럽과 미국 그리고 중국에 적극적으로 진출(군대가 아니라 유학생, 민간인, 등)했는데 오늘날 일본은 굉장히 내향적이죠. 물론 여전히 축적된 역량이 상당하여 많은 고퀄의 서적을 계속 발간하고 있지만, 너무 바깥 세상과 교류 안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심지어 여행도 많이 안합니다. 반대로 우리나라는 국내 대학교수의 거의 대부분이 미국유학파 출신이고 (문제는 너무 미국에 편중되었다는 거지만....) 국내 엔터테인먼트가 일본의 오타쿠 문화와 달리 해외에서도 주류 문화가 되어가고 있죠. 여행도 엄청나게 많이 해서 이제는 외국에 대한 환상도 거의 없는 편이고요. 개인적으로 엔터 분야의 발전이 감개무량합니다. 학창 시절의 거의 대부분을 외국에서 보냈는데, 당시 일본문화(애니메이션 등)도 많이 퍼져있긴 했지만 이를 즐기던 애들 대부분 오타쿠였거든요. 당시 동방신기를 알고 있던 여자애도 원래 일본매체 즐기다가 KPOP쪽으로 넘어온 애였고... 근데 이제 KPOP과 한국영화는 당당히 주류가 되어서 아주 뿌듯합니다 크크
20/03/05 16:38
일본인의 정신에는 '이이토코토리'가 있다고 하죠. 새로운 것은 받아들이더라도 옛것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옛것과 함께 좋은 문화를 섞어서 일본식으로 만든다. 저의 짧은 생각이지만 일본의 발전은 이 이이토코토리의 순환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인다. 개량한다. 발전한다. 발전의 원동력이 줄어들어 쇠퇴한다. 메이지 유신에서 출발한 이이토코토리가 태평양 전쟁 패망으로 사그라들고 60년대 경제발전으로 시작한 이이토코토리가 지금에 이른 것이죠.
현재의 일본은 이 마지막 단계에 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삽질을 하겠지만 언젠가는 다시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 발전하지 않겠습니까?
20/03/05 17:28
글 내용 자체는 대략 동의합니다만 미국의 만주 진출 시도라 함은 처음 듣는 얘기입니다. 러일전쟁 직후 일본의 지나친 세력확장을 경계한 일부 반일주의자(결국 4반세기쯤 지나 이 사람의 걱정이 현실이 되지요.)들이 반일을 미 행정부에 요구했고 이를 시어도어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 있었는지요?
20/03/05 18:32
시어도어 루즈벨트의 Open Door Policy는 만주와 중국시장에 대해 특정 국가의 배타적 우위를 인정하지 않는 정책으로, 다시 말해 일본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구상에도 전격적으로 도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일본이 이러한 미국의 도전에 상당히 부담을 느끼게 되었는데, 이민자문제와 필리핀 문제 등의 원만한 해결로 당분간 미국의 호의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재미있는건 미국은 조선합병을 묵인한 거지, 명문화해서 인정(acknowledge)한 게 아니어서 일본이 실제로 조선을 합병한 후에도 계속 찝찝했다고 하네요.
20/03/05 17:36
또한 4번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는데 인적네트워크는 조선정부 역시 이를 형성하고자 노력했으나 일본과 조선의 체급차가 넘사벽이었기 때문에 못 했다고 보는 게 타당해 보입니다. 우리는 역사책에서 조선 왕실-대한제국 황실의 엄청난 지원을 받은 외국인을 여럿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들의 영향력은 뭐.. 이 당시 일본은 러시아 남하를 막는 영미의 주요 파트너였고 조선은 근대화의 자취조차 찾아볼 수 없는 일개 약소국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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