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썸녀 A는 갓 헤어진 여자였다. 원래 이전 술자리에서 만났는데 만난날 분위기는 매우 좋았다고 봤는데, 좋았던 분위기에 비해 다음날 이상하게 연락이 잘 안되었고 만났던 자리의 다른 친구의 말에 의하면 남친이 있다더라. 바로 관짝에 넣고 관뚜껑을 닫았다. 3-6개월에 한번씩 안부인사나 주고 받았 아니 주기만 주고 못받았는데, 그날따라 평소에는 단답이나 읽씹하던 애가 갑자기 대화를 할수 있더라. 그래서 살짝 긁어보니 남친이랑 깨졌다고 술사달라고 하더라. 안부인사 간간히 날리는 목적자체가 상대의 상태변화를 내가 듣기 위해서다. 그래서 족발에 쏘주한잔하기로 했다. 그렇게 족발집에서 만나서 화끈하게 달렸고, 화장실 다녀오면서 옆자리에 앉았고, 남친이랑 헤어진지는 3주째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전남친 험담을 하길래 전남친변호도 좀 해줬다. 개인적으로 성격상 그런 부분도 있고, 전략적으로도 전남친 같이 욕해주는거 별로 안하고 싶어한다. 그거 잘 받아줘봤자 기분이야 풀리겠지만, 기분좋아져서 계속적으로 전남친 이야기를 하게되는게 그리 좋다고 보지도 않기때문에. 그리고 자신이 보지못한 부분을 기분 상하지 않게 이야기해주는 남자 매력있으니깐 너무 끌려다니지 않아도 좋다. 그렇게 같이 술마시다보니깐 서로 주량의 임계점에 도달했고, 옆자리라 가벼운 터치를 서로 주고받다가 그녀가 먼저 임계점을 넘는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A : "나 니 입술에 이거(립스틱) 발라보고 싶어!"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나한테 이렇게 이야기했다. 술이 슬쩍 깨면서 정신이 든다. 술먹고 내 입술에 립스틱 바르려던 사람은 이 여자가 세번째다. 앞의 두번의 여자분들은 모두 너무 해보고싶다며 내 입술에 열심히 색칠을 했고, 만족스럽게 바르고 나면 본인이 바른걸 본인이 먹더라. 그래서 경험적으로 몹시 강력한 그린라이트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싸인이다. 립밤말고 틴트나 립스틱! 그런 강력한 신호를 받으면 잽싸게 호응해야 된다고 생각할수 있지만, 튕겼다. 모든 취객의 습성은 하지말라는 말을 도무지 들어쳐먹지를 않는 것이다. 취객이 눈을 반짝이면서 하고싶어 하는 일을 못하게 말리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두들 알것이다. 어차피 내가 하지말라고 해도 못말릴거고, 내가 하지말라고 한다고 해서 안하면 그건 취객이 아니다. 그래서 허락하고 싶은 일이라도 좀 튕겨도 된다.
나 : " 넌 술먹으면 꼭 나보고 너라고 하더라. 그래서 안돼."
A : " 아잉~ 오빠 나 입술한번만 발라보면 안돼요?"
나 : " 이번엔 그래도 부탁의 자세가 되었군. 그래도 안돼."
A : " 머야 너! 오빠라고 부르면 바르게 해준다더니 치사하네?"
나 : " 내가 언제 오빠라고 부르면 바르게 해준다고 그랬어"
몇번의 실갱이 끝에 그녀는 지워준다는 약조와 함께 입술을 바르셨고, 깔깔대며 즐거워했다. 맘에 드셨는지 사진도 찍어 남기시고. 술먹으면 지 화장도 안지우고 자는 애들이 태반인데, 당연히 내 입술에 못된 색조를 지워준다고는 생각도 안하고 있었다. 보통 이럴때 벌어지는 상황이 이렇다.
나 : " 이게 뭐야!!!!"
A: " (웃다가 숨넘어가며) 왜? 완전 예뻐!! 크크크크크크크크크"
술쳐먹고 내 입술을 이따위로 만들어놓고 본인도 웃겨서 숨넘어가면서도 이쁘다고 난리친다. 지우려고 했더니 내 물티슈를 뺏고 못지우게하려고 이쁘다며 난리친다.
A : " 예쁜데 왜지워!!"
나 : " 이게 진짜 이쁘다고??? 내눈 똑바로 보고 얘기해!"
A : " (눈 동그랗게 크게뜨고 내눈을 보며 웃음을 참으며) 응 완전 이뻐! 크크크크"
나 : " 눈 똑바로 보고도 그렇게 이야기하는거 보니 니눈엔 진짜 이게 이쁜가보네.."
A : " 응 그렇다니깐? 난 진실만을 이야기해~ 크크"
나 : " 그럼 이런 이쁜 입술로는 뭘 해야되는지 알고있겠지?"
A : " 뭘?? 응??? (그때 내가 입술로 만드는 뽀뽀 제스쳐를 보고) 아.. 아냐 내가 잘못했어 지워줄게.... 읍..........."
원래는 가만 놔둬도, 알아서 지워주러 올 가능성이 높지만 이번엔 그냥 강제이행시켰다. 예쁜 입술은 이렇게 대하는거고 또한 이렇게하면 지우는 약속도 지키는거라며 알려줬다. 그렇게 술자리에서 뽀뽀도 하고 손도 잡고, 집에도 손잡고 데려다주고 그렇게 우리의 두번째 만남은 끝이 났는데 문제는 그 다음날이다. 항상 술을 먹으면 다음날이 문제인건 숙취뿐이 아니다. 술은 이성을 급진전시키는데, 문제는 다음날 그 급진전을 뒤집으려는 사람들이 꼭 나온다.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사실 이 이야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또 술을 먹어라. 술먹고 실수했다고 생각하는 사람과는 다음에도 술을 먹어라. 어제 술먹고 분위기 좋았는데 왜 이러냐고 따지지도 말고, 술먹고 없던 일로 하자는걸 용인하지도 말고, 그냥 다음에 술을 먹어라. 술먹고 실수하는 애들은, (실수인지도 모르겠지만) 또 먹으면 또 실수하니깐 그냥 술을 먹어라. 다만 본인은 실수라고 생각하기에 다시 술을 안먹으려들텐데 거기에 약간의 교섭력이 필요할수 있다. 여튼 앞서 말한바와 같이 A도 다음날에 기억이 안난다는 메세지를 보내왔다.
A : " 나 집에 어떻게 왔지? 나 어제 일이 하나도 기억 안나. 족발집에서 이미 필름 끊었어."
실제로 기억이 안나는 사람도 있고, 기억이 안나는척 하려는 사람도 있는데 구분이 안간다. 그럴때는 나 나름의 테스트를 하는데, 내가 했던 행동을 상대가 했다고 하거나, 상대가 한 행동을 과장하거나 해서 떠본다. 일단 어디까지 기억나는지 물어보니 대략 립스틱부터는 기억이 안나는 영역이더라. 그래서 진실인지 떠보기로 했다.
나 : " 뭐라고?? 너 어제.. 하 진짜..너 나한테 그래놓고 이제와서 기억이 안나신다고?"
A : " (급 존대모드로) 오빠 제가 무슨 실수 했나요? 기억은 안나는데 실수했으면 죄송해요."
나 : " 니가 내 입술에 립스틱 바르고 지워준다면서 내 입술덮쳤잖아. 진짜 기억이 안나?"
A : " 헐..제가 그랬다고요? 그럴리가 없어요!"
나 : " 헐. 내가 피해잔데 본인이 저지러놓고 그럴리가 없다고 기억 안난다는 핑계로 했을리 없다고 발뺌부터 하는거야?"
A : "아... 아니에요. 죄송해요. 혹시 그랬더라도 제가 술많이 먹어서 실수했나봐요."
나 : "실수? 실수로 막 남의 입술덮치는 그런 여자였어?"
A: "아..아니에요. 실수가 아니고 뭐지 진짜 죄송해요. 앞으로 오빠랑 술 마시지 않을께요. 진짜 사과드려요. 진짜 죄송해요."
나 : " 뭐래~ 사고는 니가 치고, 술좋아하는 내가 같이 술마실 사람 잃게 되는거야? 무슨 이런 사과가 있어~ 나한테 피해를 끼치는 사과라니. 상대에게 좋은걸 해주면서 사과를 해야되는거 아냐?"
A : "아.. 그러네요. 제가 그럼 다음에 술살게요. 마음푸세요 오빠."
나 : " 어제 술 누가 샀지?"
A : " 오빠요."
나 : " 응. 너 속상하다고 내가 술사줬지. 그럼 다음에 나 속상할때 술을 니가 사줄수 있는거 아냐?"
A : "네. 맞아요."
나 : " 그럼 어제의 일이 기억안나는 너때문에 속상한 날위해 술을 사주시고요. 사과는 별도의 행위로 받겠습니다. "
A : " 제가 어떻게 하면될까요?"
나 : " 내 요구사항 하나를 들어주면 돼. "
A : " 뭔데요?"
나 : " 그건 다음에 술마시면서 말해줄게."
그렇게 1주뒤에 다시 만났다. 그녀는 이번엔 그 족발집은 다시 가지말자고 했고, 처음부터 다른곳에 가려고 했기때문에 그 족발집은 아니지만 다른 술을 마시는 래파토리로 안내했다. 처음에는 자기는 술을 조심히 먹어야하니 어쩌니 했지만, 놔두니깐 알아서 쭉쭉 드시더라. 여자와 술자리를 가지는 장소선정의 나의 1순위워칙은 들어가면 내가 꽐라가 되는곳이다. 대한민국의 잘못된 음주습관인 먹고죽자를 계승한 나조차도 꽐라가 되지 않는 곳을 술먹기 좋은 장소라고 절대 여기지 않는다. 술먹다 같이온 친구 몇번 업어본 곳을 선정하기때문에 당연히 술먹기 좋은곳이고 다시 만난 날 역시 둘이서 열심히 달릴수 밖에 없게 되었다. 술먹고 기분좋아지니깐 그날일 이야기하면서 "근데 제가 진짜 그런거 맞아요?" 라고 몇번 이야기하다가 진압당했다. 더 심하게 마시면 또 기억이 안난다고 할거라 적당한 시기에 이야기를 꺼냈다.
나 : "자 그럼 슬슬 오늘의 요구조건을 들어보셔야겠죠? "
A : "네. 궁금해요. 뭐에요?"
나 : " 나만 당하니 억울해서 너한테 똑같이 해줘야겠어."
A : " 내가 그럴줄 알았어~ 어우 이 뻔한 수작 진짜.... 크크"
나 : " 진짜 뻔히 보였어?"
A : " 응 완전 뻔했어. 눈에 뻔히 보이더라고! 나 정도면 눈치채지!!"
너의 뻔한수작은 이미 본인에게 파악되어있다며 의기양양해하면서 웃으며 손가락을 좌우로 흔들며 '넌 나한테 안돼~' 라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그녀. 깐죽대는 그녀가 귀여워보였다. 잠시간의 승리의 감정을 즐기고 계셔라. 이제는 그녀를 박살내러 갈 시간이다.
나 : " 그럼 알고 나온거네?"
A : "? .... !!!!"
나 : " 뻔히 알고도 나오셨고, 그랬으니 마음의 준비도 하고 나왔겠네?'
A : " 아니 마음의 준비까지는 안했..... 읍......"
끝.
끝이어야하는데 후일담을 조금더 써보자면, 그렇게 복수 아닌 복수도 끝내고 사실대로 이실직고 하며, "니가 덮친건 아니고 내가 덮쳤다. 너야말로 이제 복수(?)해도 좋다." 라고 이야기도 해주었더니 그녀도 웃으며 이미 알고있었단다. 처음에는 기억을 못하고 있었던건 맞는데 이야기하고 혼자 생각하다보니 립스틱바른거도 기억이 나고 그 다음에 내가 자기한테 뽀뽀한거도 기억나는데 분명히 본인이 아니라 아니라 내가 했는데 본인이 한걸로 하니깐, 기억이 복원되는데도 그냥 기억안나는척 하려는데 그거 니가 했다고 말할수도 없고, 약간 끊긴 기억이 복원된거라 본인 기억에 대한 확신도 없고 그래서 굳이 파헤치진 않았다고. 본인이 마냥 내가 싫어서 없던 일로 덮으려 한건 아닌데, 본인생각에 구남친과 뭐 여러가지 때문에 복잡하고 부끄럽고, 관계가 갑자기 급물살 타야될거 같은 느낌이 부담스럽기도해서 덮으려했는데, 강제 리빌당하셨다. 덮으려는 사람과 다툴 필요도 감정상할 이유도 없다. 또 하면 되니깐.